[이경섭 칼럼] 신령한 복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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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경섭 목사. ⓒ크리스천투데이 DB

▲이경섭 목사. ⓒ크리스천투데이 DB

‘신령하다’는 단어만큼 많이 왜곡, 남용되는 단어도 없다. 거기에 온갖 불건전한 신비주의자들과 은사자들이 숨어들어 기생하고 있을 뿐더러, 자신들을 신격화 내지 특별한 존재로 포장하는데 악용한다.

예컨대 자신의 비의(秘意)함을 자랑하는 밀교(Esoteric Buddhism, 密敎)의 수장들, 미래를 꿰뚫는다는 직통계시자들, 신통력을 발휘하는 은사자들이 그들이다

◈복음의 저자 성령

‘신령한 것’ 은 영어성경에선 ‘영적인 것(spiritual things, 고전 2:13)’으로 번역 됐으며, 그것의 성경적 의미는 ‘예수는 하나님이 사람되어와 우리를 위해 죽으신 그리스도시다(예수는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시다)’는 ‘복음’과 또한 ‘그것(복음)과 관련된 것들’이다.

‘신령한 사람’역시 어떤 특별한 신적 예지(Divine intelligence, 叡智)나 카리스마를 가진 사람이 아닌, 성령으로 거듭난 ‘영적인 사람(The spiritual man, 고전 2:15)’을 뜻한다.

그리고 그 반대편의 ‘육신적인 사람’은 ‘성령이 없는 자연인(고전 2:14, the natural man, The man without the Spirit)을 의미한다.

‘신령한 은사’역시 ‘복음 사역’과 ‘그리스도의 몸된 교회’를 세우는데 필요한 ‘영적인 은사들(spiritual gifts, 고전 12:1)’을 의미한다.

이렇게 ‘복음’을 ‘신령한 것’으로 표현한 것은 그것의 저자(著者)가 ‘인간의 영감(a man’s inspiration)’이 아닌 ‘성령(Holy Spirit)’이시기 때문이다.

“내가 전한 복음이 사람의 뜻을 따라 된 것이 아니라 이는 내가 사람에게서 받은 것도 아니요 배운 것도 아니요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계시로 말미암은 것이라(갈 1:11-12).”

‘복음’을 ‘휘장을 열어 보여준다(revelare)’는 ‘계시(revelation, 啓示)’라고 한 것은 그것이 인간의 ‘주관적인 탐구’로 발견될 수 없는 곧, ‘보게 해야 알 수 있는 피동적인 것’임을 나타낸다.
다음은 복음에 대해 이제껏 진술한 내용의 결론과도 같은 말씀이다. “아무도 보거나 듣거나 생각조차 못한 것을 하나님이 자기를 사랑하는 사람들을 위하여 사람들을 위하여 준비해 두셨다(고전 2:9, 현대인의 번역).”

이에 비해 ‘인간 마음의 산물’인 세상의 모든 종교는 대개 ‘제의(cult, 祭儀)’나 ‘신비주의 실행(exercise of mysticism)’. 아니면 ‘도덕, 철학, 마음 수양’ 혹은 그것들의 다양하고 부분적인 조합들(various partial mixing)이다.

‘예수는 하나님이 사람되어와 우리를 위해 죽으신 그리스도시다’라는 복음은 인간이 백 번 죽었다 깨어나도 고안할 수 없는 초자연적인 성령의 계시물(啓示物)이다.

◈복음의 해석자 성령

성령은 ‘복음의 저자’일 뿐더러 그것을 가르치는 ‘교사’이기도 하다. “너희는 주께 받은바 기름 부음이 너희 안에 거하나니 아무도 너희를 가르칠 필요가 없고 오직 그의 기름 부음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가르치며(요일 2:27).”

성령이 저자인 ‘복음’이 오직 성령으로만 알려진다는 것은 당연하다. 물론 모국어 해득력만 있으면 누구든지 그것의 문자적인 해석은 가능하지만, 행간(行間)의 ‘영적 의미’는 성령 없인 불가능하다.

계시(revelation, 啓示)가 배제된 ‘문자주의(literalism, 文字主義)’방식만으로는 복음을 해득할 수 없다는 말이다. 그것(문자주의)에 매몰된 이들이 유대인이다. 그들이 성경을 그렇게 애독했으면서도 그리스도에 대해 무지했던 것도 그 때문이었다.

“너희가 성경에서 영생을 얻는 줄 생각하고 성경을 상고하거니와 이 성경이 곧 내게 대하여 증거하는 것이로다 그러나 너희가 영생을 얻기 위하여 내게 오기를 원하지 아니하는도다(요 5:39-40).”

또한 성경은 성령의 저작(著作)인 복음을 아는데 ‘세상의 지혜’는 무용하다고 말한다. “하나님께서 이 세상의 지혜를 미련케 하신 것이 아니뇨... 하나님의 지혜에 있어서는 이 세상이 자기 지혜로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고로(고전 1:20-21).”

‘하나님께서 이 세상의 지혜를 미련케 하셨다’는 말은 세상의 지혜로는 복음을 알 수 없고, 오직 성령으로만 그것을 알 수 있게 했다는 뜻이다. 다음 구절 역시 성령으로만 알려지는 ‘복음의 계시성’을 진술한다.

“오직 하나님이 성령으로 이것을 우리에게 보이셨으니(고전 2:10)”. “아버지 외에는 아들을 아는 자가 없고 아들과 또 아들의 소원대로 계시를 받는 자 외에는 아버지를 아는 자가 없느니라(마 11:27).”

베드로가 ‘당신은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마 16:16)’라고 고백했을 때 예수님이 “이를 네게 알게 한 이는 혈육이 아니요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시니라(마 16:17)”고 한 것은 그것의 결론과도 같은 말씀처럼 보인다.

그리고 후에 그 역시 예수님의 말씀에 화답이라도 하듯, ‘복음은 하늘로부터 보내신 성령을 힘입어 전하는 것(벧전 1:12)’이라고 했다.

‘복음 전도’는 스스로 그리스도께로 나올 수 없는 죄인을 향한 ‘성령의 계시’이고 ‘부르심’이다(계 22:17). 그리스도가 복음 전도를 위해 제자들을 파송하면서 성령을 부어주신 것은(요 20:20) 복음으로 죄인을 부르시는 분이 성령이기 때문이다.

이는 ‘복음’을 말하는 자는 언제나 성령 의존적이어야 함을 시사한다. 사도 바울이 “사람의 지혜의 가르친 말로 아니하고 오직 성령의 가르치신 것으로 한다(고전 2:13)”고 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복음 전도의 주체는 성령이시고 전도자는 다만 그의 수종자일 뿐이다(계 22:17). 세례 요한이 말했듯, 그는 ‘외치는 소리(a voice crying, 마 3:3)’에 불과하다.

◈복음의 낯섦 속에서 담대히 복음을 말하라

마르틴 루터(Martin Luther)가 말했듯, 성령에 의해 저작(著作)되고, 가르쳐지는 복음은 죄인에겐 언제나 낯설다. 이는 그리스도인들에게서 조차 예외가 아니다. 그들이 성령의 이끄심을 받는 동안은 그것에 친근하다가 육신의 생각이 그를 장악하면 곧 낯설어진다.

이 ‘복음의 낯 섦(unfamiliarity with the gospel)’이 그들로 하여금 복음 전도에 적극적이지 못하게 한다. 용기를 내어 전도를 시도하는 경우에도 ‘그것의 낯섦’으로 인해 ‘생 복음(a genuine gospel)’을 말하기 보단 누구나 공감할 수 있는 ‘인문학적인 어법(humane grammar)’을 취하려는 유혹을 받는다.

예컨대 ‘자연 만물을 보라 과연 이것들이 우연히 생겼겠는가?’라는 자연과학적인 접근을 하거나, ‘인간의 영혼은 무의식적으로 신을 갈망 한다’라는 종교심리학적인 접근을 한다.

그러나 ‘복음과 인간 실상’을 아는 그리스도인은 복음에 낯설어하는 자신에 대해 당황해하지 않으며 그것 때문에 복음전도를 주저하거나 ‘인문학적인 전도 방식’을 취하지도 않는다.

‘예수는 하나님이 사람되어와 우리를 위해 죽으신 그리스도시다’라는 생복음(a genuine gospel, 生福音)으로 직접 도발한다. 사도 바울의 전도 방식 역시 화려한 ‘인문학적인 어법’이 아니었다.

“그리스도께서 나를 보내심은… 오직 복음을 전케 하려 하심이니 말의 지혜로 하지 아니함은 그리스도의 십자가가 헛되지 않게 하려 함이라(고전 1:17)”, “내가 너희 중에서 예수 그리스도와 그의 십자가에 못 박히신 것 외에는 아무 것도 알지 아니하기로 작정하였음이라(고전 2:2).”

대개 사람들은 누가 ‘복음’을 담대하게 말하면, 그가 복음에 대한 남다른 체험이 있든가 아니면 ‘복음의 낯섦’이 그에게서 완전히 제거된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이는 넌 센스(nonsense)다.

복음 전도는 ‘복음의 낯섦’이 제거된 후에 하는 것이 아니다. 그 역시 다른 사람들처럼 자신 안에 여전히 ‘복음의 친근함(familiarity)과 낯섦(unfamiliarity)’이 교차하지만, 성령을 의지하여 직접 복음을 말한다.

말하자면, 자기가 말하는 복음이 입에 붙던 안 붙던 복음의 교사이신 성령께서 역사하실 것이라는 믿음으로 그렇게 한다는 말이다. 그렇게 하다보면, 어느새 복음이 그의 입에 찰싹 달라붙어 ‘내 복음’이 되어 있다.

이는 복음이 ‘생득적인 것’이 아닌 ‘성령으로 말미암은 것’임을 확증한다. 나아가 ‘그것(복음)의 낯섦’은 당연하며 그런 낯섦 가운데서 복음을 전할 수밖에 없다는 것도 인정하게 된다.

만일 복음이 언제나 내 입에 착착 감긴다면 그것은 ‘성령으로 말미암은 것’이 아닌 ‘생득적인 것’일 것이다. 할렐루야!

이경섭 목사(인천반석교회,개혁신학포럼 대표, https://blog.naver.com/PostList.nhn?blogId=byterian ) 저·역서: <이신칭의, 값싼 은혜가 아닙니다(CLC)>, <개혁주의 신학과 신앙(CLC)>, <개혁주의 영성체험(도서출판 예루살렘)>, <현대 칭의론 논쟁(CLC, 공저)>, <개혁주의 교육학(CLC)>, <신학의 역사(CLC)>, <기독교신학 묵상집(CLC, 근간)>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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