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역사에서 탁월하였던 전략가 넷을 뽑자면 고구려의 주몽, 신라의 김유신, 조선의 이순신, 그리고 대한민국의 이승만이 있습니다.
우리는 이승만 건국 대통령에 대하여 너무 과소평가합니다. 그의 경륜이 아니었더라면 우리는 지금 공산치하에서 ‘김정은 장군님’ 하며 살고 있을 것입니다.
만일 초대 대통령으로 김구 선생이 뽑혔더라면, 공산화를 막을 수 없었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승만 대통령의 경륜과 전략이 아니었더라면, 이 나라가 자유민주주의 체제로 뿌리내릴 수 없었을 것입니다.
청년 이승만은 1899년 한성 감옥에서 사형수로 옥살이를 하는 동안 예수를 믿게 되었습니다. 그가 영어를 배우려고 선교사가 세운 배재학당에 다니는 동안, 그의 천재성을 눈여겨보았던 선교사가 옥중에 있는 그에게 성경을 반입시켜 주었습니다.
그가 성경에 흥미를 가지게 된 것은 십자가에서 죽음 당하신 예수님의 이야기에 사형을 기다리고 있는 자신의 모습과 통하는 바가 있다는 생각이 들어 성경을 읽기 시작한 것입니다.
그렇게 성경을 읽는 중에 믿음이 생겨, 크리스천이 되었습니다. 크리스천이 된 후로 그에게는 2가지 소망이 생겼습니다. 이 소망이 그의 평생의 사명이 되었습니다.
첫째는 이 나라가 어떻게 하면 국민들이 주인이 되는 민주주의 국가로 세울 것인가 하는 목표였습니다. 둘째는 대한민국을 어떻게 하면 기독교 국가로 세울 것인가 하는 목표였습니다.
그는 옥중에서 40여명의 인재들을 전도하여 독립운동의 기둥감들이 되게 하였습니다. 그들 중에는 이상재 장로, 이준 열사 등 기라성 같은 인재들이 있었습니다.
그가 사형수에서 풀려난 것은 선교사들이 고종황제에게 탄원하여 무기수로 감형되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그는 영어 구사에 능숙하였기에, 고종에게 발탁되어 미국에 보내는 사절로 가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그가 미국 대통령에게 고종의 친서를 전달하는 동안에, 나라는 이미 일본의 손에 떨어지고 말았습니다. 그 후 그가 초대 대통령이 되기까지 그가 걸어온 자취는 실로 눈물겹도록 인내와 좌절과 유랑의 세월이었습니다.
그런 세월 속에서 자주 독립국을 세우는 경륜을 기르고 자유민주주의 건국의 전략을 키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