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대 대통령 이승만에 대하여 십여 차례 글을 쓰고자 합니다. 어제 글에서 이승만의 탁월한 경륜과 남다른 전략에 대하여 썼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어느 인물이든 평가할 때, 그의 일생 중에 있었던 밝은 면과 어두운 면, 공(功)과 과(過)를 함께 볼 수 있어야 합니다. 무조건 좋은 점만 이야기하면 비판 의식 없이 추종하는 것이 되고, 무조건 비판만 하면 자신이 부정적인 안목의 사람이 됩니다.
이런 점이 이승만 박사의 경우에 더욱 그러합니다. 나는 이승만 박사의 공과 과를 7 대 3으로 인식합니다. 겨레를 위하여 세운 공로가 7이고 해를 끼친 점이 3이라 판단합니다.
그래서 이승만 박사에 대하여 말할 때는 그의 밝은 면과 어두운 면을 함께 이야기하여야지, 일방적으로 좋은 점만 이야기하거나 나쁜 사람으로만 이야기하는 것은 그릇된 처사입니다.
먼저 그의 두드러진 과오에 대하여 이야기하자면, 첫째가 친일파를 청산하지 못하고 가까이 등용한 점입니다. 대표적인 예로 노덕술(盧德述)이란 인물의 경우입니다.
그는 일제 시대에 일본 경찰의 앞잡이가 되어 온갖 악행을 저지른 인물이었습니다. 특히 독립운동가들을 색출하여 고문하고 옥살이를 시키고 그 분들의 아내를 겁탈하고, 재산을 탈취한 일 등은 절대로 용서받지 못할 일들입니다.
그런 그가 이승만 정권에서 빨갱이를 잘 잡는다는 이유로 수도 경찰청 수사반장으로 등용되었습니다. 그 자리에서 악행을 계속하여 자신이 일제시대에 검거하였던 독립운동가들을 검거하여 고문하고 공산주의자로 몰았습니다. 그러다 한 분이 고문으로 죽었습니다. 죽은 시체를 한강에 던져 자신의 비행을 감추려 하였습니다.
그러나 시체가 발견되어 노덕술이 체포되었습니다. 때마침 국회에서 반민족 행위를 한 친일분자들을 검거하는 법안이 통과되었습니다. 줄여서 ‘반민특위’라 부릅니다.
반민특위에서 노덕술을 조사하여 구속시켰습니다. 그런데 이승만 대통령이 ‘반민특위’를 해산시키고 노덕술을 석방시켜 제 자리로 복직시켰습니다. 이승만 대통령의 재위 시절 그와 비슷한 사례들이 종종 있었습니다.
이승만 초대 대통령의 오점 중의 오점이 애국지사들을 멀리하고 이기붕 같은 소인배들을 가까이 하여 국정을 망가뜨리게 한 점입니다.
그런 과오들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승만 박사는 위대한 전략가였고 탁월한 애국자였습니다. 그가 건국 대통령으로 있었기에, 우리는 지금 자유 민주주의를 누리고 북한과의 체제 경쟁에서 승리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