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승만이 프린스턴 대학에서 박사 과정을 밟고 있을 때입니다. 유학 중에도 백인들과 조선독립후원회를 조직하여 기부금을 모아 상해에 있는 임시정부에 보내곤 하였습니다. 하루는 후원회 회장이 육군 소령인 자기 사위를 소개하였습니다.
“미스터 리, 최근 딸이 결혼을 하였는데, 사위가 육사 수석으로 졸업하고 지도력이 뛰어나 장래성 있는 소령이니 인사를 하고 앞으로 교제를 나누세요. 앞으로 도움 받을 때가 있을 것입니다.”
이승만이 소개 받은 장교가 바로 훗날 맥아더 장군이 된 군인이었습니다. 서로 대화를 나누는 중 비범한 인물임을 서로 알아보고, 교제가 깊어졌습니다. 이승만은 그가 동양 도자기를 좋아하는 줄 알고 이조 백자를 선물할 정도로 투자를 하였습니다.
이렇게 공을 들였기에 6.25 전쟁이 일어났을 때 미군 태평양 지구 사령관으로 있는 맥아더에게 이승만 대통령이 새벽에 전화를 걸어, 맥아더 사령관이 즉각 수원 비행장으로 날아와 전선을 시찰하였습니다.
맥아더 장군이 전선인 안양 방어진지를 시찰할 적에 한 젊은 사병이 참호를 지키고 있었습니다.
장군이 물었습니다. “귀관은 어느 때까지 그 자리를 지키겠는가?”
사병이 답하기를 “후퇴 명령이 있을 때까지 지키겠습니다.”
“후퇴 명령이 없으면 어쩌겠는가?”
“죽을 때까지 자리를 지키겠습니다.”
“미국이 도와줄 것이 무엇인가?”
“무기를 도와주십시오. 총도 구식 총인데다 실탄도 없습니다.”
맥아더 사령관은 무명의 사병과 이런 대화를 나눈 후에 말했습니다.
“이런 젊은이들이 있는 나라는 도와줘야 한다.”
그러고서 그 자리에서 인천상륙작전을 구상하기 시작하였다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