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기고] 한국교회사 속 조용기 목사의 위치와 그 의의 (6)
순복음교회는 어떻게 미래를 설계해야 하는가
1. 개인 카리스마에서 집단 정신으로 발전해야
2. 순복음 신앙을 잘 표현할 수 있는 순복음 신학
3. 성공한 오순절 교회, 세속화 위험 항상 경계를
조용기 목사 별세를 맞아, 박명수 박사님(서울신학대학교 현대기독교역사연구소장)의 글을 소개합니다. 이 원고는 박사님의 <급하고, 강한 바람: 조용기, 여의도순복음교회, 세계 오순절운동>에 수록된 것입니다. -편집자 주
II. 정체성과 적응성 사이에서: 순복음 신앙의 미래
앞 글에서 지적한 대로, 조용기 목사와 여의도순복음교회는 한국교회의 비주류에서 이제 주류의 대열에 들어서게 되었다.
지금 여의도순복음교회는 한국에서 제일 큰 교회일 뿐만 아니라, 조용기 목사는 세계에서 가장 잘 알려진 한국 목사였다.
뿐만 아니라 여의도순복음의 신앙은 한국교회의 일반적인 신앙을 대표하고 있으며, 오순절 교단은 한국의 보수적인 그룹과 진보적인 그룹에도 다 가입되어 있다. 그리고 여의도순복음교회가 갖고 있는 국민일보는 한국교회의 대변자 역할을 하고 있다.
여기에서 필자는 본 논문의 두 번째 질문을 제기하고자 한다. 그것은 이제 여의도순복음교회는 어떻게 미래를 설계해야 하는가 하는 점이다.
우리가 역사를 볼 때의 위험은 항상 승리했을 때 나타나게 된다. 섰다고 생각할 때가 바로 넘어지는 때이다. 필자가 보기에는 오순절 운동은 바로 그런 시점에 와 있다고 본다.
많은 학자들은 오순절 운동의 승리주의가 바로 위기의 근원이라고 본다. 즉, 오순절 운동이 숫자를 자랑하고 그래서 주류 사회의 일원으로 들어가기 위해서 적응하다 보면, 오순절 운동의 본래적인 모습은 잃어버리게 되고 결국은 맛 잃은 소금처럼 버려지게 된다는 것이다.
이와 같은 시점에서 순복음 신앙은 두 가지 고민을 갖게 된다. 하나는 순복음 신앙의 정체성을 지키는 일이다. 이것은 매우 중요한 요소이다.
해방 후 한국 사회에 수많은 교파들이 등장했을 때, 사람들은 왜 순복음 신앙을 택했는가를 연구해야 할 것이다. 실제로 오늘의 순복음교회는 단지 새로운 신자들로만 이루어진 것은 아니다. 많은 기존 교파의 신자들이 순복음교회로 옮겨왔다.
그들로 하여금 순복음교회를 선택하도록 만든 그 근본 이유가 무엇인가? 바로 이것은 정체성의 문제이다.
다른 하나는 적응성의 문제이다. 순복음교회는 더 이상 대조동의 변두리 교회가 아니다. 수도 서울의 중심지에 있을 뿐만 아니라, 세계 기독교의 중심에 서 있다.
지금 사람들은 순복음교회에 바라는 것이 있다. 그것은 한국교회의 대표 역할을 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것은 한편으로는 감사한 일이기도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정체성에 위기를 가져올 수도 있다.
필자는 이런 전제를 갖고 순복음교회가 미래 시대에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가를 살펴보려고 한다.
첫째, 순복음 신앙은 이제 개인의 카리스마에서 집단의 정신으로 발전되어야 한다.
누가 무엇이라고 해도, 오늘의 순복음교회를 형성하는 데 있어 조용기 목사의 위치는 절대적이다. 비록 초기에 최자실 목사가 있었고 외국의 선교사들의 도움이 있었지만, 역시 조용기 목사라는 걸출한 인물이 없었더라면 오늘의 순복음교회는 존재하기 힘들 것이다.
하지만 우리는 동시에 조용기 목사 혼자만으로 오늘의 순복음교회는 가능하지 않다는 것을 분명하게 인정해야 한다.
순복음 신앙이란 조용기 목사의 독창적인 작품이 아니라, 세계 오순절 신앙을 받아들여 그가 한국적으로 변형시켜 오늘의 형태를 만든 것이다.
따라서 우리는 조용기 목사를 하늘에서 떨어진 인물로 묘사하기보다는 20세기에 전세계적으로 확산된 오순절 운동의 일환으로 이해해야 할 것이다.
실제로 조용기 목사의 은퇴 이후 여의도순복음교회는 이와 같은 작업을 하고 있다고 본다.
조용기 목사 이후 여의도순복음교회의 새로운 담임목사가 된 이영훈 목사는 이 점을 잘 인식하고 있는 것 같다. 그리하여 2009년 여의도순복음교회의 지교회와 지성전을 독립시켜 독립교회로 만들었다.
이제 여의도순복음교회는 이영훈 목사를 중심으로, 조용기 목사가 남긴 오순절 신앙을 계승 발전시켜야 할 것이다.
조용기 목사가 은퇴한 새로운 시대에 여의도순복음교회는 어떻게 조용기 목사가 남긴 신앙적인 유산을 공동정신으로 발전시킬 수 있는가 하는 중대한 문제를 직면하고 있다.
이런 점에서 여의도순복음교회가 이영훈 목사를 2대 담임목사로 선임한 것은 매우 적절한 것이다. 이영훈 목사는 여의도순복음교회 산하 국제신학연구원장을 맡아 순복음신학을 정리하는 데 가장 결정적인 역할을 한 분이다.
그의 이와 같은 노력으로 순복음신학은 변두리의 신학에서 한국교회의 주요한 신학의 흐름 가운데 하나로 바뀌었다.
이제 여의도순복음교회는 이런 신학적인 기반 위에서 공동의 신학을 발전시켜야 할 것이다.
둘째, 순복음의 신학은 순복음의 신앙을 잘 표현할 수 있는 방식으로 정립되어야 한다.
한 집단이 개인의 카리스마에서 집단의 정신으로 발전하기 위해 무엇보다도 필요한 것은 이론화 작업이다. 자기들의 주장을 이론적으로 정립해 놓지 않으면 결국 그것을 교육시킬 수 없다.
그러면 결국에 가서는 공동의 정신은 만들어질 수 없는 것이다. 이런 사실을 잘 알고 있는 순복음교회는 오래 전부터 신학화 작업을 해 왔다.
하지만 신학화 작업이 항상 유익한 결론을 가져오는 것은 아니다. 종교개혁 이후 개신교는 개신교의 정신을 신학화하는 작업을 하였다. 그 결과가 개신교 스콜라주의이다.
중세의 스콜라주의의 구조를 빌려서 개신교의 신학을 정리하였다. 그 결과 개신교 신앙은 상당하게 훼손되었고, 다시금 중세의 스콜라 신학을 받아들이는 결과를 가져왔다.
이것은 19세기의 감리교회도 마찬가지였다. 18세기의 웨슬리의 신앙을 신학화하는 과정에서, 감리교 신학자들은 개신교 정통주의의 구조를 받아들였다. 그 결과 웨슬리의 정신은 상당히 훼손되었다.
필자는 만일 오순절의 신앙을 신학화하려면 기존의 틀을 그대로 받아들여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다. 기존의 신학은 기존 교회들의 신앙을 표현하기 위해, 그들을 위한 구조를 만들었기 때문이다.
만일 오순절 신앙을 표현하는 신학을 만들려면, 오순절 신앙을 잘 표현할 수 있는 새로운 구조를 만들어야 한다.
다시 말하면 오순절 신학은 기존 신학이 제대로 다루지 않았던 성령세례, 신유, 재림, 축복과 같은 것들을 다룰 수 있는 구조를 가져야 하며, 오히려 이런 것들이 신학의 핵심 이슈가 되도록 해야 한다.
셋째, 오순절 운동은 세속화의 위험을 항상 경계해야 한다.
오순절 운동은 기독교의 변두리에서 기존 교회가 형식적이고 세속적이며 생동감을 잃었다고 비판하면서 출발하였다. 그러면서 기독교는 신약 성서를 따라서 오순절의 생생한 경험을 해야 한다고 강조하였다.
이런 오순절의 메시지는 많은 사람들에게 호소력이 있었고, 그래서 그들은 자신들의 교회를 떠나 오순절 운동에 참여하게 되었다. 당연히 초기 오순절 운동의 자랑은 그들의 생동감있는 믿음이었다.
하지만 세월이 지나가면서 오순절운동은 성공하게 되었고, 이제는 자랑할 것이 많아졌다. 거대한 건물, 많은 재정, 넘치는 숫자 등 가진 것이 많아졌다.
그리고 이런 것들을 배경으로 하여 사회에 영향력을 미치기 시작하였다. 많은 정치가들은 대형교회에 와서 목회자들에게 찬사를 늘어놓는다.
많은 연합단체가 오순절 교회의 재정적인 후원을 기대한다. 많은 방문객들이 거대한 성전을 보고 감격한다.
하지만 이런 가운데 한 가지 가장 중요한 것을 상실할 위험이 있다. 그것은 오순절 운동을 오순절 운동이 되게 하는 성령의 능력이다.
초대 오순절 교회는 은과 금은 없었지만, 나사렛 예수의 능력이 있었다. 하지만 현대 교회는 은과 금은 있는 대신에, 예수의 능력이 없다. 그래서 그들은 예수의 능력으로 일하려고 하지 않고, 그들이 갖고 있는 은과 금으로 일하려고 한다.
필자는 최근 여의도순복음교회에 대한 소식을 보면서, 순복음교회가 세속화의 위험 가운데서도 자신의 오순절적인 정체성을 확립하려고 하는 것을 본다.
실제로 이영훈 목사는 여의도순복음교회의 정체성이 무엇인지를 잘 알고 있다. 프로그램의 홍수 가운데 성령의 역사가 빠지면 아무것도 아니라는 것을 잘 알고 있다. 그리고 이것을 회복하기 위해서 노력하고 있다.
여의도순복음교회가 자랑해야 할 것은 숫자나 건물이나 재정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의 능력이어야 한다.
박명수 박사
서울신학대학교 명예교수
현대기독교역사연구소 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