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사람을 죄로 평균케 하는 율법
‘율법’은 모든 인간을 평균케 한다. 손가락질받는 악인(惡人)과 존경받는 선인(善人)을 불문하고, 모두 동등한 죄인으로 만든다. 이는 ‘율법’이 모든 인간의 선(善)을 다 가짜, 위선으로 폭로하기 때문이다.
간음하다 붙잡힌 여자를 예수님께 고소했던 서기관·바리새인들과 구경꾼들이 ‘죄 없는 자가 돌로 치라’는 예수님의 말씀에 죄다 양심의 가책을 받아 돌아간 사실에서도 그것이 명백히 드러난다(요 8:3-9).
물론 이제껏 그들에게 자신을 비춰 볼 ‘율법의 거울(mirror of law)’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그들은 누구보다 ‘율법의 사람들’이었고, 매일 그것에 자신들을 비춰보며 단장했다. 그러나 그것은 자신들의 모습을 왜곡되게 반사시켰던 ‘짜부라진 거울(the distorted mirror of law)’이었다.
그런데 지금 비로소 ‘정각(正刻) 거울(the perfect mirror of law)’인 예수님 앞에 서서 자신들의 적나라한 모습을 보게 된 것이다(예수님의 십자가는 ‘정각 율법’, ‘정각 은혜’의 표상이다).
그 거울은 오직 ‘하나님의 의(義)’만 의로 인정하고 ‘인간의 의’는 부정한다. 성경도 전자가 있느냐 없느냐에 따라 인류를 ‘죄인’과 ‘의인’으로 갈랐다.
“성경이 모든 것을 죄 아래 가두었으니 이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은 약속을 믿는 자들에게 주려 함이니라(갈 3:22)”. “기록한바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으며(롬 3:10)”. “또 모세의 율법으로 너희가 의롭다 하심을 얻지 못하던 모든 일에도 이 사람을 힘입어 믿는 자마다 의롭다 하심을 얻는 이것이라(행 13:39).”
◈모든 사람을 의로 평균케 하는 믿음
‘율법’이 인류를 모두 평균되게 죄인으로 만들었듯, ‘믿음’은 그것을 가진 자들을 모두 평균되게 의인으로 만든다. ‘유대인·이방인’, ‘교양인·야만인’을 불문하고 ‘믿는 자 마다 의롭다(행 13:9)’고 해 준다.
“이제는 율법 외에 하나님의 한 의가 나타났으니 율법과 선지자들에게 증거를 받은 것이라 곧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모든 믿는 자에게 미치는 하나님의 의니 차별이 없느니라(롬 3:21-22).”
이 ‘믿음의 의(義)’는 인간의 ‘선·악(善惡)’과 무관하다. 그것이 ‘믿음의 의’의 효력에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 선인이든, 악인이든 믿는 자에게 모두 동일하게 부어진다.
예컨대 평생 율법을 쫓아 산 ‘바리새인’이나 평생 악행만 일삼았던 ‘십자가 강도’나 그리스도를 영접하는 순간 다 동일하게 의롭고(롬 3:1-21), 완전해진다. 하나님의 명령에 순종하여 독자 이삭을 바치기까지 한 아브라함의 경우도 예외가 없었다.
성경은 그의 의행(義行)이 그가 의롭다 함을 받는데 전혀 기여하지 못했다고 말한다. “만일 아브라함이 행위로써 의롭다 하심을 얻었으면 자랑할 것이 있으려니와 하나님 앞에서는 없느니라 성경이 무엇을 말하느뇨 아브라함이 하나님을 믿으매 이것이 저에게 의로 여기신바 되었느니라(롬 4:2-3).”
사도 바울의 ‘의의 근거’역시 다르지 않았다. 그가 유대교도였을 때, ‘율법의 의’로는 흠이 없었고, ‘열심’으로는 교회를 핍박(빌 3:6)했지만(이 정도면 유대교에선 최고의 의인이었다), 자신의 의는 ‘오직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았다(빌 3:9)’고 천명했다.
이렇게 모든 사람은 ‘율법’에 의해 동일하게 ‘죄인’으로 낮춰지고 ‘믿음’에 의해 동일하게 ‘의인’으로 높아진다. 이는 “골짜기마다 돋우어지며 산마다, 작은 산마다 낮아지며 고르지 않은 곳이 평탄케 되며 험한 곳이 평지가 될 것이다(사 40:4)”는 이사야 선지자의 예언의 성취이다.
◈하나님의 의, 우리의 의
‘믿음의 의’를 가진 모든 이들을 평균케 함은 그들의 의가 모두 동일한 ‘하나님의 의’이기 때문이다. 성경은 그리스도인이 가진 ‘믿음의 의(롬 4:13)’를 “그리스도로 말미암아(in Christ, 갈 2:17) 하나님으로부터 난(from God, 빌 3:9) 하나님의 의(the righteousness of God, 롬 3:22)”로 선언한다.
이는 그것이 ‘인간의 의’완 전혀 무관한, 말 그대로 ‘하나님의 의(갈 2:16)’라는 말이다. 그러나 이 ‘하나님의 의’는 하나님께 속했지만 동시에 ‘믿는 자의 것’이다. 하나님은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믿는 자에게 그것을 주셨다.
따라서 우리는 ‘하나님의 의’를 주저 없이 ‘내 의’라고 고백한다. 그러나 어떤 사람들은 어떻게 죄인이 감히 ‘하나님의 의’를 ‘내 의’라고 할 수 있느냐며, 겸손(?)을 뜬다. 그러나 이는 겸손을 가장한 교만이고 불신앙이다.
만약 ‘하나님의 의가 철저하고 완전하게 ‘내 의’가 못된다면 우리는 하나님의 심판을 면치 못한다. 오해 없길 바란다. ‘하나님의 의’란 인간에게서 나올 수 없는 ‘신적 차원의 의(Divine Righteousness)’라는 말이지 ‘오롯이 하나님만 독점하고 인간이 가질 수 없는 의’라는 말이 아니다.
하나님은 믿음으로 ‘당신의 의’를 ‘내 것’으로 수납하게 하셨다. 그것도 철저하고도 완전하게. 그렇게 함으로서, 우리에 대한 하나님의 ‘의의 경륜’이 성취되어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된다.
이 ‘하나님의 의’를 자기 것으로 수납하기를 주저하는 것은 우리에 대핸 그의 ‘의의 경륜’에 역행하는 것이며 그리스도의 피와 성령을 모욕하는 심대한 악이다(히 10:29).
우리는 우리가 가진 ‘하나님의 의’에 대해 두 가지 태도를 견지해야 한다. 하나는 ‘내게서 난 것이 아닌(not out of me) 전가된 의’라는 겸손이고, 다른 하나는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믿음으로 획득한 내 의'라는 당당함이다. 할렐루야!
이경섭 목사(인천반석교회,개혁신학포럼 대표, https://blog.naver.com/PostList.nhn?blogId=byterian ) 저·역서: <이신칭의, 값싼 은혜가 아닙니다(CLC)>, <개혁주의 신학과 신앙(CLC)>, <개혁주의 영성체험(도서출판 예루살렘)>, <현대 칭의론 논쟁(CLC, 공저)>, <개혁주의 교육학(CLC)>, <신학의 역사(CLC)>, <기독교신학 묵상집(CLC, 근간)> 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