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경섭 칼럼] ‘죄의 숙명성’과 ‘이신칭의·의의 확신·죄씻음’과의 관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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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경섭 목사. ⓒ크투 DB

▲이경섭 목사. ⓒ크투 DB

◈죄의 숙명성과 이신칭의

죄와 완전히 결별할 수 없는 ‘죄의 숙명성(the inevitability of sin)’ 아래 있는 죄인이 죄를 해결하는 방식은 그 죄된 상태로 의롭다 함을 받는 ‘법적인 칭의(legal justification, 이신칭의)’ 방식뿐이다.

성경이 ‘죄의 해결방식’으로 제시한 ‘용서(forgiving), 덮음(covering), 간과(overlooking)’는 죄가 있음에도 의롭다 해주는 ‘법적 칭의’의 구현 방식이다.

“그 불법을 사하심을 받고 그 죄를 가리우심을 받는 자는 복이 있고 주께서 그 죄를 인정치 아니하실 사람은 복이 있도다(롬 4:7-8).” 이는 인간에게서 죄를 완전히 소멸, 분리시키는 방식이 아니라는 말이다.

그 결과 ‘법적인 칭의’와 ‘죄의 숙명성’ 간의 갈등이 필연적으로 유발되고, 그에 따라 그리스도인은 “오호라 나는 곤고한 사람이로다 이 사망의 몸에서 누가 나를 건져 내랴(롬 7:24)”같은 탄식을 쏟아내게 되며, 이 탄식은 육체를 벗는 날까지 계속된다.

루터의 “의인이며 죄인(simul justus et peccator)”은 ‘법적인 칭의’와 ‘죄의 숙명성’ 사이에서 갈등하는 그리스도인의 정체성을 설파한 것이다.

◈죄의 숙명성과 의의 확신

일견 사람이 ‘내재하는 죄의 실존(죄의 숙명성)’을 직면하면서 ‘의의 확신’을 갖는 것은 마치 ‘먹물을 뒤집어 쓴 사람이 자신을 희다’고 확신하는 것 같이 비이성적으로 보인다. 그러나 하나님이 ‘성령의 가르침’을 통해 우리에게 그것을 가능하게 하셨다.

이는 먼저, 성령이 그에게 ‘의의 확신’의 근간인 ‘법적 칭의(이신칭의)’의 탁월성을 인식시켜줌으로서 이다. “그가(성령이) 오시면 죄와 의(義)와 심판에 대하여 세상이 잘못 생각하고 있는 점을 깨우쳐 주실 것이다(현대인의 성경, 요 16:8).”

“이는 우리 복음이 말로만 너희에게 이른 것이 아니라 오직 능력과 성령과 큰 확신으로 된 것이니(살전 1:5).”

따라서 그는 자기 죄를 직면함으로 “오호라 나는 곤고한 사람이로다 이 사망의 몸에서 누가 나를 건져 내랴(롬 7:24)”는 탄식을 하면서도, 동시에 “이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에게는 결코 정죄함이 없나니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생명의 성령의 법이 죄와 사망의 법에서 너를 해방하였음이라(롬 8:1-2)”는 ‘의의 확신’을 노래할 수 있다.

또 다른 한편 성령께서 ‘우리의 죄 됨’이 ‘우리의 칭의(justification, 稱義)’를 무효화시킬 수 없다는 것을 깨닫게 줌으로서 이다. 사도 바울이 자신의 죄 때문에 괴로워하면서도 ‘자신은 죄에서 해방됐다’고 당당히 선언할 수 있었던 것도 그 같은 자각에서 나온 것이다.

“하나님께 감사하리로다 너희가 본래 죄의 종이더니 너희에게 전하여 준바 교훈의 본을 마음으로 순종하여 죄에게서 해방되어 의에게 종이 되었느니라(롬 6:17-18).” 여기서 ‘죄에서의 해방’ 선언은 자신이 죄(罪)에서 완전히 벗어났기 때문이 아니라 ‘죄가 있음에도 불구하고’서다.

그는 ‘칭의’ 후에도 여전히 ‘자신의 죄’를 직면하며 끊임없이 갈등과 번민을 경험하지만 그것은 자기가 ‘죄의 종(從)’이라서가 아니라, ‘죄의 법을 섬기는 육신의 연약성’ 때문임을 알았던 것이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께 감사하리로다 그런즉 내 자신이 마음으로는 하나님의 법을, 육신으로는 죄의 법을 섬기노라(롬 7:25).”

◈죄의 숙명성과 죄 씻음

성경은 ‘우리의 죄를 해결했다’는 뜻으로 ‘씻었다(엡 5:26)’, ‘정결케 했다(히 1:3, 벧후 1:9)’, ‘없이 했다(롬 12:27)’, ‘눈과 양털 같이 희게 했다(사 1:18)’ 등의 문구를 사용했다. 이런 문구들은 일견 ‘죄와의 완전한 결별’ 혹은 ‘죄의 완전한 소멸’ 등을 연상시킨다.

그러나 죄인에게 그것은 불가능하다. 우리는 구원받은 후에도 늘 잘못하며, 회개한 죄도 습관적으로 반복한다. 이러한 ‘죄의 숙명성’을 성경은 “구스인이 그 피부를, 표범이 그 반점을 변할 수 없다(렘 13:23)”는 말로 대신했으며, “선을 행하고 죄를 범치 아니하는 의인은 세상에 아주 없느니라(전 7:20)”고 단언한다.

그런데 많은 사람들이 ‘죄 씻음을 받아 깨끗케 됐다’는 말을 ‘죄와 완전히 결별하여 다신 죄를 안 짓게 됐다’는 말로 오해한다. 그래서 그들은 자신들의 허물을 발견할 때마다 하나님의 용서를 기껍게 받아들이지 못하며, ‘혹시 나는 죄 씻음을 받지 못한 것이 아닌가?’라는 의구심에 빠진다.

‘죄 씻음(the washing of sin)을 받아 깨끗케 됐다’는 말의 진의는 ‘그리스도 안에서 죄가 완전하게 용서(구속)받았다’는 뜻이다. 그것은 ‘다신 죄를 안 짓게 됐다’는 ‘마감(ending)’의 개념이 아닌, ‘반복성(repeatability, 反復性)’을 담지한 ‘용서(forgivingness)’ 개념이다. 이는 “일곱 번뿐 아니라 일흔 번씩 일곱 번이라도 (용서)할찌니라(마 18:22)”는 예수님의 말씀에서도 확증된다.

‘칭의’ 역시 ‘용서(구속)’ 개념인 ‘죄 씻음’ 위에 서 있다. ‘반복적인 용서’가 담보되지 않으면 ‘칭의’는 설 수 없다(칭의는 반복적인 용서를 담보한다). 따라서 용서받아야 할 짓을 했다고 ‘칭의’가 더럽혀지거나 손상되지 않는다.

‘용서에 기반한 회개(repentance)’와 ‘칭의(justification)’의 관계 역시 마찬가지다. ‘칭의 받은 자’의 ‘회개’는 죄로 잃은(손상된) ‘칭의’를 회복하기 위한 것이 아니다. 회개는 ‘칭의’와는 무관한, ‘내재(內在)하는 죄와의 싸움’이다.

예수님이 말한 ‘목욕한 자’가 ‘발을 씻는 것(요 13:10)’이다. 더 구체적으로는 “원하는 바 선은 하지 아니하고 도리어 원치 아니하는바 행한 악(롬 7:19)”에서 돌이키는 것이고, “내 지체 속에서 한 다른 법이 내 마음의 법과 싸워 내 지체 속에 있는 죄의 법 아래로 나를 사로잡아 옴으로 초래된 죄(롬 7:23)”에서 돌이키는 것이다. 할렐루야!

이경섭 목사(인천반석교회,개혁신학포럼 대표, https://blog.naver.com/PostList.nhn?blogId=byterian ) 저·역서: <이신칭의, 값싼 은혜가 아닙니다(CLC)>, <개혁주의 신학과 신앙(CLC)>, <개혁주의 영성체험(도서출판 예루살렘)>, <현대 칭의론 논쟁(CLC, 공저)>, <개혁주의 교육학(CLC)>, <신학의 역사(CLC)>, <기독교신학 묵상집(CLC, 근간)>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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