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경섭 칼럼] 거듭남의 초월성과 실존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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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경섭 목사. ⓒ크투 DB

▲이경섭 목사. ⓒ크투 DB

◈비의한 교리

기독교 교리는 근본 초자연적이라 하나같이 다 비의(秘意)하지만, 그 중에서도 ‘거듭남(regeneration, 중생)’이 더욱 그렇다. 이 비의함이 이단 사이비의 기숙처(寄宿處)로 자주 악용된다.

어떤 단체는 이 ‘거듭남’을 ‘포교의 미끼’로 삼아 사람들을 끌어 모은다. 예컨대 사람들에게 ‘당신은 거듭났다, 거듭나지 못했다’를 판별해 주며 사람들을 현혹한다.

물론 정통 기독교도 ‘거듭남’의 교리를 중시한다. 그러나 그들처럼 그것만을 뚝 떼어 전면에 내세우거나 그것을 절대화시키진 않는다. ‘예정, 구속, 믿음, 칭의’ 등과의 연계성 속에서 고려된다.

또한 그들은 그것을 지나치게 주관화하는 오류를 범한다. 사람이 자기 생일을 모를 수 없듯, ‘거듭난 자’는 자신이 거듭난 것을 모를 수가 없다고 주장한다. (누가 자기 생일을 아는 것은 자신이 그것을 인지해서가 아닌 그의 부모가 그에게 알려줘서이다.)

그러나 거듭난 사람이라고 다 그것을 뚜렷이 자각하는 것은 아니다. 예수님도 니고데모와의 대화에서 “바람이 임의로 불매 네가 그 소리를 들어도 어디서 오며 어디로 가는지 알지 못하나니 성령으로 난(거듭난) 사람은 다 이러하니라(요 3:8)”고 했다.

비유컨대 바람이 나무에 부딪힐 때 그것의 흔들림을 통해 그것의 실재가 알려지듯, ‘거듭남의 소산물’인 ‘믿음’을 통해 그리스도인은 자신이 ‘거듭났다’는 것을 안다. 사도 요한도 ‘거듭남’의 증거를 ‘믿음’이라고 했다.

“예수께서 그리스도이심을 믿는 자마다 하나님께로서 난 자니(요일 5:1)”. ‘믿어지는 것’이 ‘택자 됨’과 ‘거듭남’의 증거이다.

◈그리스도인의 생명의 본질

성경이 그리스도인의 ‘생명’을 말할 때, 그것이 지칭하는 바는 대개 ‘거듭난 생명(regenerated life)’이다.

그에겐 ‘육체의 죽음’이 여전히 피할 수 없는 숙명(destiny, 宿命)임에도, 그가 ‘내겐 죽음이 없다, 나는 영생한다’고 확신함은 죽을 수 없는 이 ‘거듭난 생명’을 두고 하는 말이다.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죽지 아니하리니 이것을 네가 믿느냐(요 11:25)”. “저는 사망을 폐하시고 복음으로써 생명과 썩지 아니할 것을 드러내신지라(딤후 1:10)”. “사람이 내 말을 지키면 죽음을 영원히 보지 아니하리라(요 8:51).”

그리고 거듭난 후 그의 현실적인 삶을 견인하는 것 역시 여전히 ‘육체의 생명(life of flesh)’이다. 보이지 않는 ‘거듭난 생명(regenerated life)’은 언제나 비실재(nonexistence)로 보이나, 영적인 존재로서의 그의 정체성(identity)은 언제나 이 ‘거듭난 생명’으로 특정된다.

‘육체의 생명’도 ‘거듭난 생명’이 있기에 의미를 갖는다. 그것에 ‘거듭난 생명’이 없다면 그것은 그냥 고깃덩이(flesh)에 불과하다.

“육으로 난 것은 육이요 성령으로 난 것은 영이니(KJV-That which is born of the flesh is flesh; and that which is born of the Spirit is spirit. 요 3:6)”.

이 ‘성령으로 거듭난 생명’이 그로 하여금 ‘예수를 주라’(고전 12:3), ‘하나님을 아바 아버지’라 부르게 하고(갈 4:4, 롬 8:16), ‘하나님 나라’를 보게 한다(요 3:3). 그리고 하나님을 향해 ‘산 소망’을 갖고(벧전 1:3), 그를 찾고 그를 섬기게 한다.

때론 ‘육신(the flesh)’이 그것(거듭난 생명)을 거스리지만(갈 5:17), 그것을 궁극적으로 잠식하거나 질식시키진 못한다.

약해 보이고 실체도 없어 보이나 성도 안에서 강력한 생명력을 발휘해, 그로 하여금 결국 구원에 이르게 한다. 이는 ‘거듭난 생명’의 실체가 ‘영생하시는 그리스도 생명’이기 때문이다.

이렇듯 ‘거듭난 생명’이 성도의 본질적인 실체임에도 불구하고, 그들이 ‘육체의 생명’을 유지하고 그것의 요구에는 발빠르게 부응하면서도(예컨대 배고프면 먹이고, 추우면 입히고, 피곤하면 누이고, 아프면 약을 먹이면서도), 정작 ‘거듭난 생명’의 요구나 외침엔 무심하다. 그것이 주리고 목말라하고, 심지어 약하여 신음하는데도 그것에 부응하지 못한다. 육신의 약함 때문이다.

◈초월성과 실존성

‘거듭남’은 하나님이 ‘택자’안에서 일으키시는 그의 주권적이고 초월적인 사역이다. 또한 그것은 인간의 간섭이나 협력이 불가능한 하나님의 독단적인 사역이며, 오직 그리스도 안에서 택자에게만 시여된다.

따라서 자신을 ‘거듭나게 해 달라’고 하나님께 간청하고, 누구에게 ‘거듭나라’고 권면하거나 또한 자신을 개과천선시켜 ‘셀프 거듭남(self- regeneration)’을 도모하는 것은 비상식적인 작태다.

이는 비유컨대 ‘이미 숨이 끊어져 죽은 자가 자기를 살려달라’ 하고, ‘아직 생겨나지 않은 아이가 나를 태어나게 해달라’고 간청하는 것과 같고, ‘죽은 자를 향해 살아나라’ 권면하고, ‘죽은 자가 자기의 선행으로 스스로를 살리려는 것’과 같다.

동시에 ‘거듭남’은 ‘구원의 서정(order of Salvation)’상 그것의 전후(前後) 맥락 속에서 실존적으로 존치된다는 점도 말하고자 한다.

말하자면 그것은 하나님의 구원 예정 속에 담긴 ‘초월적이고 은밀한 사건’인 동시에 현재적으로 구현되는 ‘실존적인 사건’이라는 뜻이다.

곧 ‘믿음’으로 그리스도와 ‘연합’해 ‘칭의’를 받으므로 ‘거듭남’이 현재적으로 구현된다(혹은 ‘믿음 안에서의 연합과 칭의’를 통해 ‘거듭남’에로 소급된다)는 말이다.

주지하듯 ‘거듭남’이라는 용어 자체가 이미 ‘출생’이라는 실존적 의미를 함의한다. 남녀가 연합한 결과로 사람이 출생하듯, ‘거듭남’ 역시 ‘믿음을 통한 그리스도(그리스도의 죽음)과의 연합’을 통해 일어나는 현재적 사건으로 전혀 하나님의 초월적인 행위로만 그치지 않는다는 말이다.

영국 청교도 목사 토마스 빈센트(Thomas Vincent, 1634-1678) 역시 ‘중생’을 ‘초월적인 성령의 역사’인 동시에, ‘믿음 안에서 현재적으로 경험되는 것’으로 말했다.

“거듭남과 같은 것을 ‘성령’께서 행하신다(사람이 물과 성령으로 나지 아니하면 하늘나라에 들어갈 수 없느니라, 요 3:5)”. “그리스도의 영으로 말미암아 ‘거듭남과 성화’를 맛본다(오직 그의 긍휼하심을 좇아 중생의 씻음과 성령의 새롭게 하심으로 하셨나니, 딛 3:5).”(웨스트민스터 소교리문답 해설서)

이경섭 목사(인천반석교회,개혁신학포럼 대표, https://blog.naver.com/PostList.nhn?blogId=byterian ) 저·역서: <이신칭의, 값싼 은혜가 아닙니다(CLC)>, <개혁주의 신학과 신앙(CLC)>, <개혁주의 영성체험(도서출판 예루살렘)>, <현대 칭의론 논쟁(CLC, 공저)>, <개혁주의 교육학(CLC)>, <신학의 역사(CLC)>, <기독교신학 묵상집(CLC, 근간)>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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