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경 속에 피어나는 찬양의 꽃 122] 형통의 복은 어디서 오는가?
시편 122편 강해
요절: “예루살렘을 위하여 평안을 구하라 예루살렘을 사랑하는 자는 형통하리로다(6절)”.
이스라엘 사람들은 광야에서 인도함을 받아 가나안 땅에 갈 때 세 가지 철학이 있습니다. 첫째는 말씀 중심이고, 둘째는 성막 중심이고, 셋째는 주의 세우신 종 모세를 중심으로 합니다. 이 세 가지가 신앙 생활의 기본입니다.
이스라엘 사람들은 가나안에 살 때도 안식일을 지키고 하나님의 말씀을 듣습니다.
당시는 지금처럼 성경책이 없습니다. 회당에 나가서 하나님 말씀을 듣습니다. 율법을 지키는 것은 안식일을 지키는 것입니다.
가나안 땅에 가서는 일 년에 세 번 성전에 올라가므로 성전을 중심으로 절기를 중심으로 살아갑니다. 예루살렘에 갈 이야기를 하고 갔다온 이야기를 합니다.
현대 사람들은 주말과 휴가를 중심으로 산다고 합니다. 휴가 갔다 온 이야기, 휴가 갈 이야기만 하며 살아간다고 합니다.
우리 예수 믿는 사람은 주일날 교회에 나옵니다. 말씀 듣고, 만난 사람들 이야기를 하고, 다시 교회 갈 이야기 하면서 살아가는 것입니다.
1. 예루살렘에 올라갈 때 기뻐하였습니다
“사람이 내게 말하기를 여호와의 집에 올라가자 할 때에 내가 기뻐하였도다 예루살렘아 우리 발이 네 성문 안에 섰도다 예루살렘아 너는 잘 짜여진 성읍과 같이 건설되었도다(1-3절)”.
여호와의 집은 예루살렘의 성전을 말합니다. 이스라엘은 일 년에 세 번 명절마다 일주일씩 예루살렘에 올라갔습니다.
사람이 시인에게 예루살렘에 올라가 하나님께 예배드리자고 하였습니다. 시인은 예루살렘에 올라가자는 말을 듣고 기뻐하였습니다.
교회 가자는 말을 듣고 펄쩍 뛰며 기뻐하는 사람이 있고, 한 번 쉬면 안 되나 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교회에 가는 것을 준비된 마음으로 살아가는 사람이 있습니다. 교회를 사랑하므로 또 가고 싶습니다. 이런 사람이 건강한 사람이 복 받은 사람입니다. 교회에 나오는 발걸음이 무겁고 더디면 병이 든 것입니다.
시인은 예루살렘을 사랑하였고 하나님을 사랑하였습니다. 시인에게 여러 성도들을 만나고 하나님께 예배드리는 것이 기쁨이었습니다.
그는 예루살렘에 올라가 성문 안에 섰습니다. 성전에 가까이 갈수록, 더욱 기뻐합니다. 이것이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입니다. 신앙이 성전 사랑으로 구체화되어야 합니다.
그가 보니 예루살렘은 잘 짜여진 성읍과 같이 건설되었습니다. 성전이 사랑스러우니 성전이 있는 예루살렘 성도 아름답습니다.
아내가 예쁘면 처갓집 말뚝 보고 절을 한다고 합니다. 마당 한 구석에는 소말뚝이 있습니다. 제일 큰 소, 제일 좋은 소를 놓고 마당에 놓고 자랑합니다. 처갓집 가는데 아내가 예쁘니까 말뚝을 보고도 절합니다.
한 여자를 좋아하면 그 여자가 작으면 작은 대로, 크면 큰 대로 좋은 것입니다. 보이지 않는 하나님이 사랑스러우면 성전이 사랑스럽고 예루살렘 성도 예쁩니다.
2. 여호와의 이름에 감사하려고 올라갑니다
“지파들 곧 여호와의 지파들이 여호와의 이름에 감사하려고 이스라엘의 전례대로 그리로 올라가는도다(4절)”.
이스라엘의 열두 지파, 곧 여호와의 지파들이 여호와의 이름에 감사하려고 전례대로 예루살렘에 올라갑니다. 이스라엘의 모든 지파들이 줄지어 하나님께 감사하려고 모입니다.
이스라엘은 전국적으로 일년에 세 번 예루살렘에 올라가 일주일간 예배를 드립니다. 그들은 유월절에는 출애굽을 감사하고, 오순절에는 율법을 주신 것을 감사하고, 초막절에는 40년 광야 생활에 함께 하신 하나님께 감사합니다.
세 절기 모두 곡식을 주신 하나님께 감사합니다. 보리를 주고 밀을 주고 포도와 올리브를 주신 하나님께 감사합니다.
3. 하나님이 공의로 다스리십니다
“거기에 심판의 보좌를 두셨으니 곧 다윗의 집의 보좌로다(5절)”.
모세는 왕과 제사장, 선지자의 직분을 갖고 있었습니다. 뒤에 와서는 직분이 분리됩니다. 왕과 선지자와 제사장이 분리됩니다.
성전 안에 제사장이 있고 옆에 왕궁이 있습니다. 왕은 삼권을 가지고 있습니다. 왕에게 문제를 가지고 가면 왕이 판단합니다. 성전에서 예배할 뿐 아니라 왕이 판단하는 것을 듣습니다.
그처럼 예루살렘에는 세상을 심판하는 하나님의 보좌가 있습니다. 다윗의 집의 왕좌가 있습니다.
하나님이 왕이 되어 이스라엘을 다스립니다. 그곳에서 하나님은 정의로 세계 만민을 다스립니다.
이스라엘은 정의로 세계를 다스리시는 하나님께 감사의 예배를 드립니다. 이스라엘은 예루살렘에 올라가 왕이 되신 하나님께 감사를 드립니다.
하나님은 왕이 되어서 이스라엘을 구원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왕이 되어, 풍성한 추수를 하셨습니다.
우리는 교회에 가서 하나님께 감사드려야 합니다. 나를 구원하시고 풍성하게 축복하신 하나님께 감사 예배를 드려야 합니다.
온 세계를 하나님의 말씀대로 정확하게 통치하시는 하나님께 감사의 예배를 드려야 합니다.
4. 예루살렘을 위하여 평안을 구해야 합니다
“예루살렘을 위하여 평안을 구하라(6a)”.
예루살렘을 위하여 평안을 구해야합니다. 예루살렘 성은 마음의 고향입니다. 예루살렘은 평화의 성입니다. 평화의 왕 하나님이 그곳에 계심으로 그곳에는 평화가 있습니다.
외적은 끊임없이 예루살렘을 파괴하고자 합니다. 사단은 하나님을 대적하고 예루살렘을 대적합니다. 하나님께서 예루살렘을 외적의 침략에서 지켜 주시도록 구해야 합니다.
예루살렘은 교회입니다. 지금도 사단은 교회를 무너뜨리기 위해서 끊임없이 공격합니다. 교회를 분열시키고 오염시킵니다. 세속주의 영지주의 율법주의로 공격합니다.
우리는 이런 공격에서 천국 복음, 성육신의 복음, 은혜의 복음을 지켜야 합니다. 우리는 하나님이 교회를 사단으로부터 지켜주시도록 기도해야 합니다.
분열되지 않고 평화롭게 되도록 기도해야 합니다. 세상의 음란 문화와 쾌락 문화에서 보호해 주시도록 기도해야 합니다.
5. 예루살렘을 사랑하는 자는 형통하리로다
“예루살렘을 사랑하는 자는 형통하리로다 네 성 안에는 평안이 있고 네 궁중에는 형통함이 있을지어다(6b, 7)”.
하나님은 예루살렘을 사랑하는 자에게 형통함을 주시기를 원하십니다. 예루살렘을 사랑하는 자는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요. 하나님의 교회를 사랑하는 자입니다.
하나님은 자신을 사랑하는 자에게 천대까지 복을 주신다고 약속하였습니다. 그러므로 이들에게 형통함을 주시기를 원하십니다. 예루살렘 성 안에 하나님이 계심으로 평안을 주시기 원하십니다. 예루살렘 궁중에는 형통함이 있기를 원하십니다.
우리는 하나님을 사랑하고 교회를 사랑해야 합니다. 그러면 하나님이 함께 하셔서 요셉과 같이, 여호수아와 같이 형통하게 하십니다. 그 삶에 평안을 주십니다. 하나님은 하나님을 사랑하고 교회를 사랑하는 자들이 잘 되기를 원하십니다.
이스라엘 사람들은 집을 지을 때 성전을 향하여 창문을 냅니다. 창을 열고 기도합니다. 자신의 집보다는 교회의 것이 더 좋아야 합니다. 하나님께 제일 좋은 것으로 드려야 합니다. 하나님 아버지가 좋은 것을 먼저 입어야, 아들이 좋은 것을 다음에 입습니다.
청교도들이 미국에 가서 먼저 교회를 짓고 다음에 학교를 짓고, 마지막으로 자신의 집을 지었다고 합니다. 이렇게 하나님을 사랑하고 교회를 사랑하는 자에게 복을 주십니다.
6. 예루살렘을 사랑하는 자에게 복을 구합니다
“내가 내 형제와 친구를 위하여 이제 말하리니 네 가운데에 평안이 있을지어다 여호와 우리 하나님의 집을 위하여 내가 너를 위하여 복을 구하리로다(8-9절)”.
시인은 자신의 형제와 친구를 위하여 복을 구합니다. 다시 한 번 예루살렘에 평안이 있기를 기도합니다. 여호와 우리 하나님의 성전을 위하여 복 주시도록 기도합니다.
예루살렘을 위하여 복 주시도록 기도합니다. 예루살렘을 사랑하는 자에게 복을 주시도록 기도합니다. 하나님은 교회를 사랑하는 자에게 복 주시기를 원하십니다.
예수님은 자신을 삼킬 정도로, 주의 전을 사모하였습니다. 하나님은 예수님에게 넘치도록 복을 주셨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을 사랑해야 합니다. 교회를 사랑해야 합니다. 하나님은 교회에 평안을 원하시고, 교회에 나오는 사람들에게 평안을 원하시고, 교회를 사랑하는 자에게 축복을 원하십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소원입니다. 하나님은 하나님과 교회를 사랑하는 자에게 평안 주시기를 원하십니다.
오요한 목사
천안 UBF
성경 66권 유튜브 강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