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꾼들 ‘사이다 발언’, 들을 땐 좋지만 일관성 전혀 없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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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효상 칼럼] 할 말은 좀 하고 사시나요?

▲한 교회 예배당 모습. ⓒ크리스천투데이 DB

▲한 교회 예배당 모습. ⓒ크리스천투데이 DB

한 해를 뒤돌아보니, 할 말을 다 못하고 살 때가 참 많았다. 살다 보니 그렇게 되더라. 자신의 의견이나 감정을 드러내는 것은 아내나 자녀에게까지도 쉽지 않다.

그만큼 마음을 전하고 표현하는 것이 어렵다. 같은 말도 어떻게 전해지느냐에 따라 반응이 천차만별이다. 할 말을 제대로 하지 못하면 역(逆)으로 바보 취급받는다.

여러 모임에 나가면 한 마디를 하시라고 종종 권유를 받는다. 말하려면 어떤 말을 해야 할지 신경쓰이고 눈치를 보게 된다. 그냥 편하게 느낀대로 말했을 때 돌아올 후환(後患)에 대해서. 분위기를 위해 덕담을 해야 하는 건지, 모임의 발전을 위한 의견을 말해야 하는 건지. 초청한 리더를 칭찬해야 하는 건지.

한국인들은 주로 말끝마다 “같아요”를 붙이는 불분명한 화법을 쓴다. 어떤 의견이나 상황에 동의한다면, 간결하게 “나도 그렇다”라고 표현해야 한다. 그런데 굳이 “그런 것 같아요”라고 말해 버린다. 본심이 드러나지 않으려 돌려 표현한다.

이는 자신의 생각을 에둘러 말하는 것이 ‘겸손’이라는 생각에서 비롯된다. 많은 사람이 해야 할 말을 못해 즉 ‘자기 주장’을 하지 못하고 속으로 끙끙 앓는다. 뒷담화로 풀기도 한다.

심지어 그런 자신을 자책하면서 타인과의 관계에서 어려움을 겪는다. 살면서 좋은 게 좋다는 이유로, 제대로 된 말을 못하는 경우가 참 많다. 앞뒤 재다 보면 오늘도 아무 말도 못하고 돌아온다.

특히 교회를 다녀보면 제대로 된 말을 못하는 경우가 참 많다. 설교자나 청중이 마찬가지다. 그냥 일방적으로 목사님의 설교만 듣고 와야 하는 것일까. 토크쇼(talk show)같은 쌍방소통의 시대는 안 오는 것인가.

조선 시대 허균(許筠, 1569-1618)이 지은 최초의 한글소설 <홍길동전(洪吉童傳)>을 읽어보면 아버지를 아버지라 부르지 못하고, 형을 형이라 부르지 못하는 자신의 처지를 고민했다는 것을 익히 알고 있다. 사회적 관습의 제약으로부터 벗어나, 언제쯤 아버지를 아버지라고, 형을 형이라고 부를 수 있었을까.

삶은 늘 그런 것인가. 아닌 것을 아니라고 말 못하는 사람, 잘못된 것을 잘못되었다고 말하지 않는 사람들이 너무 많아서, 부패한 세력들이 갈 때까지 가는 모습을 보는 것만큼 가슴 아픈 일은 없다.

정치인의 간담회라고 초대받았는데, 정치인의 일장연설만 듣고 소통도 공감도 못하고 오는 경우가 있었다. 시민으로 꼭 하고 싶은 말이 있었는데, 자기 할 말만 하고 기회를 안 줘서 제대로 된 말을 못한 경우다.

이처럼 정치를 오래 한 경우 말이 화려하고 그 때 그 때 장소에 따라 임기응변으로 말하는 실력이 탁월하다. 사람들은 ‘사이다 발언’이라고 좋아하지만, 말의 일관성은 전혀 결여되어 있다.

그런가 하면 정치 초보는 말을 시원하게 못하니, 그가 가진 진실성이나 비전을 제대로 어필하지 못해 듣는 이들을 답답하게 하곤 한다. 믿음직한 말은 미사여구(美辭麗句)를 사용하지 않아 아름답지 않고, 아름다운 말은 믿음직하지 않다는 점이다. 요즘 대선 후보가 그렇다.

지인이 코로나19 확진자가 되었는데, 같이 있던 밀접 접촉자들이 다수 있어 그분들에게 “코로나 검사를 받고 검사 결과를 카톡(KakaoTalk)으로 올려 달라”고 했더니, 다들 노발대발이다. 전체가 조심하자고, 더 이상 확산을 막자고 한 말인데, 물론 본인도 다른 데서 감염돼서 억울하겠지만 감염 증상을 가지고 다른 사람들을 만나는 것은 정말 잘못이다.

이럴 경우 “본의아니게 이렇게 돼서 죄송합니다” 하는 사과의 말 한 마디와 함께 검사 결과가 전제되어야 하는데, 돌아온 대답은 “위로는 못해줄 망정 상처에 소금 뿌리냐”는 것이었다.

검사를 회피하는 밀접 접촉자에게 검사를 받도록 독촉하기 위해 “본의 아니게 타인에게 민폐가 될 수 있고, 피해를 발생시킬 경우 피해를 보상해야 할 수도 있음을 인지해야 한다”고 말했더니 더 발끈하였다.

코로나로 인하여 그 장소는 최소 한 주간 문을 닫았고, 여러 사람들이 역학조사와 추운 날씨에 두세 시간 걸려 검사를 받게 되었다. ‘나는 백신을 맞아 괜찮을 것’이라고 안일하게 대처하면 안 됐다. 코로나19 확진자가 된 건 안타깝지만 공동체를 위해 사후처리가 너무 개인적 편의주의로 가면 안 되기 때문이다.

할 말은 좀 하고 살자. 의식적으로라도 침묵의 방조자적 삶을 거부하자. 개인이 소통 회피가 공동체를 무너뜨린다. 이럴 때 아무도 말하지 않고 그냥 덮고 넘어간다면, 어떻게 될 것인가.

건강하고 투명한 사회를 만들기 위해서라도 부드럽고 따뜻하게 말하든, 온유하고 다정하게 말하든, 거칠고 까칠하게 말하든,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 고함을 치든, 자신의 의견을 당당하게 표현하고 말하는 사람이 필요하다. 마스크를 썼다고, 말까지 하지 말라는 것은 아니다. 말하고 살자.

사실 필자도 소심한 성격 탓일까, 어찌보면 ‘침묵의 방조자’로 산다. 틀린 것에 대해 “아니요”라고 말하기 보단, 침묵하는 경우가 있다. 사실 “그것은 아니다”라고 말한 뒤 그 내용이 잘못되었다면 정중하게 사과하거나 용서를 비는 한이 있어도, 나에겐 말할 권리가 있다. 책임을 요구하면 책임질 각오로 말이다. 책임지기 싫어 침묵하고 방조하거나 회피하는 비겁한 삶을 살면 안 될 것 같은 나이다.

그래서 젊어서부터 20여년 이상을 열심히 발언했다. 각종 회의에 참여할 때마다 열심히 듣고, 생각하고, 그 생각을 표현하고 발언하려고 노력했다. 때로 흐린 판단력 때문에 지적도 받고 비난을 듣기도 했다. 그럴 때는 거침없이 사과하고 싹싹 용서를 빌었다.

지금 돌이켜보면 정말 잘했다는 자부심이 든다. 그렇게라도 하지 않았다면, 지금쯤은 더 최악의 상황이 되지 않았을까 싶다. 그들의 경륜, 선배, 임원, 자리, 완장을 이유로 명백한 오류를 범하거나 잘못 행동할 때는 발언권을 얻어 말했다. 개인의 자리나 이권에 득(得)보려는 사심이 애당초 없었기 때문이었다.

각종 모임에서 회의가 빈번하게 진행된다. 이 회(會)를 운영하려면 회의 때마다 겸양지덕을 가지고 경청하는 것만이 미덕(美德)처럼 여겨진다.

그런데 의도된 정치꾼, 조직적으로 세력화된, 소위 ‘꾼’들이 짜고 자리를 차지하고, 회(會)를 좌지우지(左之右之)하고, 재정을 마음대로 집행하거나 사적으로 운영하는 경우가 많다. 좋을 수 있는 분위기를 리더의 잘못된 처신으로 망치는 경우가 허다하다.

흔히 ‘절이 싫으면 중이 떠나야 한다’고 말한다. 그래서 연합하는 공동체(共同體)를 만들기보다 혼자 생각만으로 모든 일들을 진행하는 친목회(親睦會)로 전락시키고, 소위 ‘나를 따르라’는 리더의 경우 황당하기 그지없다.

회원들의 참여가 줄어들고 행사에는 회원들의 의견 개진이 전혀 없게 된다. 혼자 장황하게 설명하지만, 본인만이 알고 있는 것이다. 공유(共有)하거나 함께한다는 생각이 전혀 없다. 그럼 계획한 행사가 제대로 되겠는가. 사적인 욕심이 연합을 망친다.

어느 조직이든 사람들이 모여드는 리더가 있는가 하면, 사람들이 떠나가는 리더가 있다. 단체든 기관이든 희망을 가진 회원들의 기대를 져 버리지 말아야 한다.

공(公)적인 것을 사(私)적으로 만드는 것에 대하여 “아니요”, “잘못된 것입니다”라고 말하지 못하는 위원이나 임원은 그 모임에서 결정된 모든 잘못에 책임을 져야 한다. 그 책임은 회원들 앞에서뿐 아니다. 역사 앞에서, 하나님 앞에서까지 책임을 져야 한다.

냉정하게 발언하고, 정당한 의견을 피력하고 표현하는 역할의 상당 부분은 깨어있는 리더들이 해야 할 몫이다. 서로 짜고 치는 것에 익숙해지면 그 책임을 고스란히 자신들이 져야 한다는 것에 대한 두렵고 떨림이 있어야 한다.

철저히 마스크를 썼지 않은가? 얼굴 표정은 가릴 수 있으니 회의에서 차분하고 당당하게 할 말을 좀 하는 이들이 많아져서, 부패의 행진이 계속되지 않기를 바란다. 모임이나 회의에서 발언권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발언을 하지 못하는 눈치꾼들이 없어지길 바래본다.

명백하게 잘못된 것에 대해서도 지연, 학연, 혈연, 지역, 지위의 연(緣) 등을 이유로 침묵한다면, 실상은 그 패역에 능동적으로 동참한 셈이다. 패거리들이 저지르는 악(惡)은 침묵(沈黙)을 먹고 자란다.

예전엔 침묵이 미덕인 줄 알았다. ‘침묵이 금’이라 하지만, 때로는 더럽고 추하고 비겁한 짓이다. 이 시대엔 ‘미움받을 용기’가 필요하다. 말하려면, 자신의 말의 수준을 높여야 한다.

무심히 내뱉은 말이 자신과 가정과 사회를 어렵게 하지 않는다면, 무엇인가를 말하기 전에 최대한 객관성을 유지하고 개인적 사감(私感)이나 이권(利權) 때문에 말하지 않는다면, 말해야 한다.

살아가면서 말과 혀를 조심하면 ‘범사형통’을 넘어 ‘만사형통’이다. 창조적인 일을 하려면 늘 대화하고 말해야 한다. 자신의 생각을 넘어 타인과 대화하며 경청해야 한다.

오스틴(J. L. Austin)은 인간의 언어 형태를 세 가지로 분류했다. 첫째로 단순히 소리내어 말하는 발음(發音) 행위, 둘째로 소리 안에 의미를 포함한 발의(發意) 행위, 셋째로 듣는 사람으로 하여금 어떤 행동을 하게 만드는 발동(發動) 행위가 있다는 것이다.

우리가 사용하는 언어(言語)의 대부분은 듣는 사람으로 하여금 무엇인가 하게 하는 발동 언어이다. 그러므로 말이 어떤 방향으로, 어떤 파급효과를 가져올 것인지 생각하며 말하는 지혜가 필요하다.

인생에 기회가 안 오는 것이 아니라, 기회가 늘 오고 있지만 수용성 부족이나 감사하지 못해 그 기회를 말이나 행동으로 잡지 못하고 차버리는 경우도 허다하다. 자기 결정권과 주체성을 가지고 움직이지 않으면 늘 누군가에게 지배당하는 삶을 살게 된다.

생각하지 않으면 주어진 환경에 지배당하고, 생각하며 살면 삶을 지배할 수 있는 힘이 생긴다. 오늘 하루도 생각하며 할 말을 하는 하루로 살아보심이 어떠하실지.

▲이효상 교회건강연구원장.

▲이효상 교회건강연구원장.

이효상 원장
시인, 칼럼니스트, 서지학자
다산문화예술진흥원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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