텔아비브는 이스라엘의 수도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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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도 바울의 발자취를 찾아서 19] 텔아비브 (1) 바울과 소망의 언덕

20세기 유대인 손으로 처음 세운 유대인의 도시
텔아비브 이름 뜻? 소망의 언덕 또는 봄의 언덕
어떠한 희생에도 나라 세우겠다는, 불굴의 상징
1936년 팔레스타인 유대인 인구의 40%가 거주

▲상공에서 본 텔아비브.

▲상공에서 본 텔아비브.

텔아비브(Tel Aviv)는 수도 예루살렘에 이어 이스라엘에서 두 번째로 큰 도시이며, 상업 도시이다.

지난 회에서 이야기하였듯이, 바울은 소년 시절 고향인 터키의 다소에서 예루살렘에 갈 때 배를 타고 욥바 항구를 통하여 예루살렘에 도착하였고, 후일 가이사랴에서 예루살렘에 갈 때도 도중에 있는 욥바를 거쳐서 간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욥바는 바울이 출생하기 이전에 이미 세워져 있던 도시였으나, 오늘날 욥바와 연결되어 실제로 하나의 도시가 된 텔아비브는 바울이 순교하고 약 1,800년 이후에 세워진 도시이다.

그러므로 바울이 욥바를 통과하였다면 당시에 바울이 배를 타고 보았거나 예루살렘으로 이동하면서 본 오늘날의 텔아비브 지역은 황량한 모래 언덕이었을 것이다.

그렇다. 19세기 말까지 텔아비브 지역은 모래로 된 지형에 감람(올리브) 나무가 띄엄띄엄 서 있는 황량하고 을씨년스럽게 보이며 생명체가 없어 보이는 절망의 광야였다.

▲텔아비브 해변에서 아침부터 운동하는 주민들.

▲텔아비브 해변에서 아침부터 운동하는 주민들.

텔아비브는 유대인이 2천 년 동안 이어진 긴 유랑생활을 끝낼 무렵인 20세기 초, 유대인의 손으로 처음 세운 유대인의 도시이다.

서기 70년부터 약 2천 년 동안 유대인은 세계 각처에서 그곳 현지인들이 세운 도시에 얹혀서 사는 생활을 하다가, 19세기 말 시오니즘 운동이 불길같이 일어나면서 조상의 땅 팔레스타인(현재 이스라엘 지역)으로 돌아와 아랍인들에게 현금을 주고 오늘날 텔아비브가 있는 지역을 구입하였다.

이제 외국인의 억압과 핍박을 벗어나 조상의 땅에서 자유가 넘치는 유대인들만의 도시를 세워 새로운 나라를 건설하자는 각오와 결의를 가지고, 유대인들은 모래와 몇 그루 감람나무만이 자라고 있던 황무지 광야에 약 2천 년이 지난(정확하게 말하면 1,839년 만인) 1909년에 처음으로 자기들의 도시를 만든 것이다.

비록 지중해를 굽어보는 척박한 모래 언덕이지만, 유대인들에게는 이 모래 언덕이 독립을 향한 소망과 봄을 가져다 주는 언덕으로 보였으므로, 유대인은 도시의 이름을 ‘텔아비브’라고 붙였다.

▲유대인 독립투쟁 지하무장단체(하가나)가 독립 이전인 1942년부터 1948년까지 사용한 군사학교(노란색 건물).

▲유대인 독립투쟁 지하무장단체(하가나)가 독립 이전인 1942년부터 1948년까지 사용한 군사학교(노란색 건물).

텔아비브의 뜻은 ‘소망의 언덕(Hill of Hope) 또는 봄의 언덕(Hill of Spring)’이다.

당장은 모래 언덕에 불과하지만, 소망의 자유와 종교의 자유가 넘치는 자기들의 새로운 나라 이스라엘을 어떠한 희생을 치르고서라도 기어코 다시 건국하겠다는 이스라엘 민족의 불굴(不屈)의 포부와 상징이 도시 이름 안에 녹아 있는 것이다.

유럽 내 유대인들이 팔레스타인에 본격적으로 이주하기 시작한 19세기 말부터 20세기 초까지, 팔레스타인은 이슬람인 오스만 제국의 통치를 받고 있었다.

그러므로 오스만 제국은 유대인의 팔레스타인 이주를 최대한 막았고, 팔레스타인에 도착한 유대인은 아랍인으로부터 토지를 구입하지 못하게 하는 법을 만들었다.

그러나 세계적인 유대인 재벌인 로스차일드 가문의 에드몬드 로스차일드(Edmond Rothschild) 남작은 유대인 동포들을 위해 텔아비브와 갈릴리 호수에 면한 남쪽 지역에 합계 약 2억 평(서울시 면적 크기)의 토지를 구입하여 동포들이 정착할 수 있도록 도와주었다(오스만 제국 관리들에 뇌물을 주어서).

▲텔아비브 시청(왼쪽)과 제2차 세계대전 유대인 학살 희생자 기념비.

▲텔아비브 시청(왼쪽)과 제2차 세계대전 유대인 학살 희생자 기념비.

그러므로 유대인들은 텔아비브와 갈릴리 호수 주변(당시 갈릴리 호수 남부는 농사를 지을 수 없는 늪지대였음)에 정착할 수 있었다.

텔아비브는 1930년대 중반에 이미 인구 15만 명이 되면서, 유대인 사회의 중심적 도시가 되었다. 1936년 팔레스타인의 유대인 인구는 40만 명으로서 팔레스타인 전체 인구(아랍인 포함)의 30% 가깝게 되었고, 유대인 인구의 약 40%가 텔아비브에 거주하였다.

이스라엘을 방문하는 많은 우리나라 사람들은 이러한 텔아비브에 대해 거의 모르고 있으며, 국내에서 발간된 많은 이스라엘 성지순례 또는 여행관련 책자에도 이러한 텔아비브 내용을 볼 수 없다.

텔아비브는 1909년에 건설되었고 이스라엘의 수도는 예루살렘임에도 불구하고, 일부 책에는 텔아비브가 이스라엘 독립 후인 1948년에 건설되었고 텔아비브가 수도라고 잘못 쓰여 있다.

텔아비브는 근대와 현대의 감동적인 이스라엘 역사가 숨쉬는 곳이고, 1948년 이스라엘의 독립과 건국의 밑바탕이 된 도시이다.

▲권주혁 박사.

▲권주혁 박사.

권주혁 박사
‘권박사 지구촌 TV’ 유튜브 운영
저서 <사도 바울의 발자취를 찾아서>, <여기가 이스라엘이다>, <천사같이 말 못하고 바울같지 못하나>, <메마른 땅을 종일 걸어가도> 등
성지 연구가, 국제 정치학 박사
세계 136개국 방문
영국 왕실 대영제국 훈장(OBE) 수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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