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도 바울의 발자취를 찾아서 21] 바울과 돌레마이(1)
이스라엘에서 욥바와 함께 가장 오래된 항구
돌레마이, 바울 당시 이스라엘 북부 주요 항구
바울, 제3차 전도여행 당시 돌레마이 항구 들러
구약에선 악고로 불려… 알렉산더 이후 새 이름
로마는 ‘아코’로 부르기도, 중세까지는 ‘아크레’
‘소망의 언덕’이라는 뜻을 가진 이스라엘 제2의 도시 텔아비브에서 해안을 따라 북쪽으로 가이사랴를 지나 계속 올라가면, 이스라엘에서 가장 큰 항구인 하이파가 나온다.
하이파 항구를 지키듯이 항구를 내려다보는 갈멜산은 엘리야 선지자가 바알을 섬기는 선지자 450명과 아세라를 섬기는 선지자 400명과 싸워서 이긴 곳이다(구약 성경 열왕기상 18장).
그러므로 갈멜산에는 우상을 섬기는 선지자들을 진멸하려는 듯 오른손에 칼을 쥔 엘리야의 동상도 있고, 엘리야가 살았다는 바위 동굴도 있고, 산정에 있는 수도원 지하실에는 엘리야의 시신이 묻혀 있다고 알려져 있다.
갈멜산 산정에서는 하이파 항구가 한 눈에 다 들어오며, 항구 북쪽 바닷가를 따라서 또 다른 항구가 멀리 보이는데 이곳이 돌레마이(Ptolemais)이다.
이 항구는 구약 성경에도 이름이 나올 정도로 욥바와 함께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항구 가운데 하나이다. 돌레마이 항구가 있는 지역은 가나안 땅에 이스라엘 백성을 이끌고 들어온 여호수아가 아셀 지파 자손에게 배분해 준 지역이다(여호수아 19장 24-31절).
바울은 이 항구를 제3차 전도여행 때 들렀다. 오늘날은 하이파가 이스라엘에서 가장 큰 항구이지만, 바울 당시에는 돌레마이가 이스라엘 북부의 주요 항구였다.
바울이 이 항구 도시를 방문하기 오래 전부터 돌레마이는 지중해 무역의 주요한 항구였고 항구 주변은 산업지역으로서 유리 세공업과 염색 산업이 발달하였었다.
구약 성경 사사기 1장 31절에는 “아셀이 악고 거민과 시돈 거민과…”라는 구절이 나온다. 즉 구약 시대에는 이 항구를 악고(Accho)라고 불렀다. 그 후 사도 바울이 이곳을 방문하였을 때에는 돌레마이라고 불렀다.
이집트의 마지막 왕조인 프톨레마이오스의 발음이 신약 성경에는 돌레마이라고 기록되어 있는데, 알렉산드로스 대왕이 기원전 332년에 이 지역을 정복한 이후 악고 항구에는 프톨레마이오스(돌레마이)라는 새로운 이름이 붙었다.
원래 이름은 ‘페니키아의 프톨레마이오스(Ptolemais in Phoenicia)’이나, 줄여서 프톨레마이오스라고 부른 것이다.
그 후 로마가 기원전 37년에 이곳을 정복한 후에는 아코(Akko)라는 원래 이름도 병행하여 사용하였다. 고대 그리스인은 이곳에서 병을 고치는 약초가 나온다고 해서, 이 항구를 아케(Ake)라고 불렀다. 아케는 그리스어로 ‘병을 치료한다’는 뜻이다.
이런 배경에서인지 십자군 시대와 중세에는 아크레(Acre)라고 불렀다. 오늘날에는 아코(Akko 또는 Acco) 또는 아크레(Acre 또는 Akre)라고도 부르나, Akko가 공식적으로 사용되고 있다.
로마 제국은 아코를 점령하고 이 항구를 통해 로마군을 팔레스타인(당시 팔레스타인은 오늘날의 이스라엘, 요르단, 시리아 등지를 모두 포함한 지역이었다) 전역에 배치하여 유대인 반란자들을 진압하였다. 그리고 로마는 이곳에서 안디옥(오늘날 터키의 안타키아)을 연결하는 포장도로도 만들었다.
엘리야 선지자가 바알과 아세라 선지자들과 싸워 이긴 갈멜산 바로 밑에 있는 하이파 시내에서 북쪽으로 25km(직선거리는 15km) 떨어져 있는 아코는 원래 페니키아(오늘날의 레바논)인들이 만든 항구 도시이다.
권주혁 박사
‘권박사 지구촌 TV’ 유튜브 운영
저서 <사도 바울의 발자취를 찾아서>, <여기가 이스라엘이다>, <천사같이 말 못하고 바울같지 못하나>, <메마른 땅을 종일 걸어가도> 등
성지 연구가, 국제 정치학 박사
세계 136개국 방문
영국 왕실 대영제국 훈장(OBE) 수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