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지적장애인이 10년 만에 교회에서 외친 말 ‘십자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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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재를 변화시키는 ‘행복 신학’ 20] 십자가를 품은 그들

▲ⓒPexel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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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때 섬겼던 교회에 ‘소망부’라는 장애인 부서가 있다. 20-30대 미혼으로 다양한 친구들이 함께하는 공동체이다. 매주 휠체어에 온몸이 묶여 오는 친구도 있고, 같은 질문을 계속 반복하는 친구도 있다.

또 주일마다 필자의 설교에 다른 친구들보다 최고로 ‘리액션’을 해야 직성이 풀리는 친구도 있고, 끊임없이 교사들의 연락처를 캐묻는 집요한 친구도 있다.

그 중에서도 좀 특이한 친구가 있었다. 교회에 부임한 이후로 한 번도 목소리를 들어보지 못한 자매이다. 아무리 말을 걸고 질문을 해도 대답을 하지 않는, 아니 어쩌면 대답을 못하는(?) 친구이다. 지적장애인의 여러 유형 중 하나로 보인다.

그런데 어느 주일에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1부 사도신경 설교가 끝나고 2부 순서를 진행하는 교사가 설교 퀴즈를 내고 있었다. 그때 이 친구가 뭔가 대답을 하고 싶어하는 것 같아서 앞으로 불려 나갔다. 진행하는 교사가 한 번 더 질문을 들려줬다.​

“예수님이 본디오 빌라도에게 고난을 받으시고 어디에 못 박히셨을까요? 오늘은 우리 지수가 과연 말을 할지 지켜보겠습니다.”

우리 친구들과 교사들은 웃음이 ‘빵’ 터졌다. 이번에도 선생님이 대신 대답해 줄 거라고 다들 예상하고 있었다.

지금까지 한 번도 말을 내뱉은 적이 없기 때문이다. 진행하는 교사도 지수가 말을 내뱉도록 힘써 돕고 있었다. 그 순간 지수의 입술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십… 십자가!”

​모두들 잘못 들은 줄 알고 숨을 죽이고서 또 다시 귀를 기울였다.

​“십자가!”

역시 이 친구가 직접 말을 내뱉고 있었다. 나도 내 귀를 의심하고 있었다. 지수의 입에서 또렷한 발음으로 “십자가!”라는 말이 들렸다. 진행하는 교사 말로는 ‘10년 만에’ 드디어 지수 목소리를 들었다고 한다.

​그 순간 나는 소망부의 구호가 떠올랐다.

​“십자가를 자랑하는 소망부!”

부임한 후로 한 번도 바꾸지 않은 소망부 구호이다. 우리 주님의 십자가를 자랑하는 소망부 친구들이 되자는 간절한 외침이다!

그런데 우리 친구들에게는 또 하나의 ‘십자가’가 있다. 그들의 몸에 지닌 장애라는 ‘십자가’이다. 비장애들인은 절대 가질 수 없는 십자가이다. 매주 구호를 외칠 때마다 십자가의 그런 이중적인 의미가 동시에 떠올라서, 참으로 기분이 묘했다. 그런데 우리 친구들은 십자가의 두 가지 의미를 모두 자랑하는 듯했다.

아무튼 처음으로 내뱉은 지수의 말, “십자가!”가 한동안 하루종일 나의 뇌리를 스치고 있었다. 과연 나도 말을 처음으로 다시 하게 된다면, 가장 먼저 외치고 싶은 그 한 마디가 무엇일까? 나중에 주님을 직접 대면했을 때 “율이 네가 가장 자랑스러워하는 그 한 마디를 들려줄래?”라고 물으신다면, 과연 나는 “십자가!”를 외칠 마음의 준비가 되어 있을까?

필자는 소망부 친구들과 매주 예배를 드리면서 참 많은 것을 배웠다. 주께서 이들의 마음 속에 십자가를 살아 있는 신앙고백으로 새겨 두신 사실을 자주 깨닫는다. 성경과 교리 지식은 비장애인보다 턱없이 부족하지만, 이 친구들의 존재 내면에 심겨 있는 ‘신지식(cognitio Dei)’이 참으로 심오함을 자주 깨닫는다.

최근 필자의 사무실에 그때 드 소망부가 단체로 방문했을 때 정말 감격스러웠다. 사임하고 떠나간 교역자를 기억하고 아마 십자가의 사랑을 못 잊어 찾아온 거라고 믿었다.

10평 남짓한 공간에 20명의 친구들과 교사들이 비좁게 앉아서 이전의 구호를 다시 한 번 되새기는 시간을 가졌다. 천국 가족의 모습이 이런 게 아닐까 싶다.

장애인과 비장애인, 그리고 다른 어떤 모습을 가진 자라도 오직 주님의 십자가 사랑 하나로 함께하는 그곳이 바로 천국이다! 정말로 십자가를 자랑하는 교회 공동체가 심히 그리운 요즘이다.

▲강의 후 기도하고 있는 권율 목사.

▲강의 후 기도하고 있는 권율 목사.

권율 목사

경북대 영어영문학과(B.A.)와 고려신학대학원 목회학 석사(M.Div.)를 마치고 청년들을 위한 사역에 힘쓰고 있다. SFC(학생신앙운동) 캠퍼스 사역 경험으로 청년연합수련회와 결혼예비학교 등을 섬기고 있다.

비신자 가정에서 태어나 가정폭력 및 부모 이혼 등의 어려운 환경에서 복음으로 인생이 개혁되는 체험을 했다. 성경과 교리에 관심이 컸는데, 연애하는 중에도 계속 그 불이 꺼지지 않았다. 현재 부산 세계로병원 원목(협력)으로 섬기면서 여러 모양으로 국내선교를 감당하는 중이며, 매년 선교지(몽골, 필리핀) 신학교 강사로도 섬기고 있다.

저서는 <올인원 사도신경>, <올인원 주기도문>, <올인원 십계명>, <연애 신학> 등이 있고, 역서는 <원문을 그대로 번역한 웨스트민스터 소교리문답(영한대조)>외 3권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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