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민주주의와 직접 선거 제도, 절대 선(善)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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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리콜라주 인 더 무비] 영화 <킹메이커> (1)

유능한 정치인 어필 위해 편법·기만책 동원 옳은가
민주주의 절차적 근간 ‘선거’, 허실과 한계 보여줘
민중의 욕망과 편견, 선거 통해 독일 히틀러 집권
민주적 절차라는 대의명분 우상화 이면, 이익 추구

▲김대중 전 대통령의 젊은 시절 선거 참모였던 엄창록의 이야기를 다룬 영화, &lt;킹메이커&gt;.

▲김대중 전 대통령의 젊은 시절 선거 참모였던 엄창록의 이야기를 다룬 영화, <킹메이커>.

◈선거의 허실: 선거를 둘러싼 책략의 문제점

최근 개봉된 <킹메이커>는 김대중 전 대통령이 아직 젊었던 시절, 그의 국회의원 선거 및 대통령 선거 참모였던 엄창록(?-1988)의 실제 이야기를 각색한 작품이다.

최근 중요한 선거를 앞두고 총선이나 대선과 관련된 영화가 자주 개봉되는데, 이 영화도 비슷한 전략으로 흥행을 노리는 듯하다.

영화 속에서는 실존인물의 실명 대신 가명이 사용되는데, 김대중 전 대통령은 김운범(설경구 분)으로, 엄창록은 서창대(이선균 분)라는 이름으로 등장한다.

엄창록은 다양한 심리전 및 마케팅 기법을 동원해 선거 필승 전략을 내놓았던 유능한 정치 참모였다. 과거 신민당 출신 정치인들의 증언에 따르면, 유세 시 인물 사진을 붙인 피켓을 이용해 세를 과시하고 특정 후보자를 사람들의 뇌리에 각인시키는 전략을 최초로 도입한 인물이 이 엄창록이라는 인물이다.

또한 그는 상대 후보자에 대한 유권자들의 인식을 악화시키는 효과적인 네거티브 전략을 창안하는 데도 대단한 수완을 발휘했다고 한다. 그리하여 그는 김대중 전 대통령뿐만 아니라 노태우 전 대통령의 러브콜도 받았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영화 <킹메이커>는 이 엄창록이라는 책사가 실제 기획했던 선거 전략을 영화적으로 각색하고 과장해서 묘사한다. 이는 금전과 권력을 총동원하여 선거에서 유리한 고지를 점하던 박정희 대통령의 공화당을 능수능란하게 상대한 엄창록의 기발함을 돋보이게 한다.

영화 속에서 엄창록은 휘하의 인원을 공화당원으로 위장시켜 공화당에서 유권자들에게 뿌린 금전과 선물을 수거하도록 해 민심을 악화시킨 뒤, 수거한 물품을 다시 신민당이 주는 선물로 둔갑시켜 유권자들의 환심을 산다. 이 내용은 영화적으로 과장되기는 했지만, 그만큼 엄창록이라는 인물이 민의를 조작하는 데 대단한 능력을 발휘했던 인물이었음을 보여준다.

또한 <킹메이커>는 1970년 ‘40대 기수론’이 대두된 신민당 경선에서 당시 김대중 후보가 당내 라이벌인 김영삼 후보를 누르고 대선 후보가 되는 과정, 그리고 이듬해 김대중 후보가 3선에 도전하던 박정희 전 대통령과 막상막하의 대선 선거전을 치르는 과정을 보여준다.

이 과정에서 엄창록은 갖가지 효과적인 선거 전략을 동원하는데, 그 가운데는 윤리적으로 상당한 문제를 야기할 수 있는 여러 기만책이 등장한다.

가장 결정적으로는 1971년 7대 대선 레이스 당시 김대중 대선 후보의 자택에서 일어난 폭발물 테러이다. 영화는 이 사건을 실제 역사대로 잘 표현하고 있다.

다만 실제 역사에서는 이 일을 기획한 인물이 누구인지 불명확한데, 영화 속에서는 마치 엄창록이 김대중 후보를 속이면서까지 꾸며낸 일인 것처럼 서사를 풀어나가고 있다.

여기서 이 영화의 주제의식이 가장 명확하게 드러나는데, 연출을 맡은 변성현 감독이 인터뷰에서 밝힌 것처럼 영화 <킹메이커>는 유능하고 양심적인 정치인을 대중에게 어필하기 위해 편법과 기만책을 동원하는 것이 과연 옳은 일인지 관객에게 질문하고 있다.

▲영화 속 김대중 전 대통령의 선거 유세 장면. 가명인 김운범(설경구 분)으로 등장한다.

▲영화 속 김대중 전 대통령의 선거 유세 장면. 가명인 김운범(설경구 분)으로 등장한다.

◈선거의 불완전성: 민주주의 근본 이념을 위협하는 선거 절차의 한계

사실 이 질문은 선거를 통해 지도자를 뽑는 민주정의 가장 근본적인 한계를 지적하고 있다.

직접민주주의든 대의민주주의든 간에 민주주의 정치체제의 가장 중요한 근간은 국민의 의향이고, 이 의향을 확인하는 절차가 선거이다.

그런데 선거는 결코 완벽한 방편이라고 말할 수 없다. 선거의 기본 원리와 이상은 국민의 뜻을 온전히 반영하는 데 있지만, 현실에서의 선거는 여러 변수와 책략 때문에 국민의 뜻을 제대로 반영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때로는 선거가 절차적으로 온전하게 치러지더라도 그 선거를 치르는 국민들의 욕망, 편견, 그리고 정보비대칭으로 인해 적절치 않은 지도자들이 선출되는 경우도 다반사다.

가장 극단적인 사례가 1933년 독일 바이마르 공화국의 총선, 그리고 1934년 독일 국민투표이다. 1933년의 총선에서는 나치당이 독일 제1당이 되었고, 이듬해 국민투표에서는 히틀러가 대통령과 총리 직을 합친 총통으로 등극하게 되었다.

이는 민중의 욕망과 편견이 선거를 통해 어떤 부작용을 낳을 수 있는지 가장 여실하게 보여주는 사건이었다.

그만큼 민주주의란 불완전하고 무너지기 쉬운 정치 체제이다. 이는 사회민주주의나 인민민주주의 뿐만 아니라 자유민주주의에도 해당되는 사실이다. 때문에 우리 대한민국을 비롯해 세계 각처의 자유민주주의 국가들은 자라나는 세대를 대상으로 거의 세뇌에 가까우리만치 철저하게 민주주의 이념과 그 절차에 대해 교육시킨다.

이런 교육은 국민의 정당한 권리 행사를 원활하게 하는 순기능을 갖는다. 하지만 이 순기능도 엄창록 같은 유능한 정치참모들의 술수나 편견에 휩싸인 군중심리 앞에서는 쉽게 무력해진다.

▲&lt;킹메이커&gt; 속 선거 전략가 엄창록(이선균 분).

▲<킹메이커> 속 선거 전략가 엄창록(이선균 분).

미국은 전 세계에서 자유민주주의 체제를 가장 오래 고수한 국가이다. 그만큼 대통령 및 의회 의원 선거를 수도 없이 치렀고, 그에 대한 노하우 또한 그 어느 나라보다 많이 갖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미국 선거 역사 속에는 다수결의 원칙을 제대로 지킬 수 없었던 선거 사례가 다수 존재한다. 간접선거 선거인단을 우선 뽑는 특이한 선거 방식으로 인해, 국민들의 득표를 더 많이 한 이들이 선거인단 선거에서 패배하는 경우도 많았다.

물론 이는 각 주가 하나의 국가 자격을 갖는 미국의 연합국가 체계 때문이기도 하지만, 분명한 사실은 민주주의 정치체제라는 것이 결코 완성된 것이 아니라 아직도 실험 중이고 보완이 필요하다는 점이다. 즉 자유민주주의라고 해서 결코 절대적 가치, 절대선이 될 수 없다는 것이다.

자유민주주의의 기본 이념인 천부인권과 기회의 평등은 분명 인류 역사상 가장 발전된 이념의 하나이고, 성경적으로도 타당한 면이 많다.

그러나 이를 실현시키기 위한 방편 또한 중요하다. 때로는 이 방편이 어그러져 원래의 목적을 크게 훼손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미국 국민들도 이 점을 분명하게 인지하고 있다. 미국에서 <하우스 오브 카드>(2013-2018) 같은 작품이 제작되어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던 것도, 미국 국민들이 민주주의에 대해서 갖고 있는 큰 기대와 깊은 우려를 동시에 반영하는 증거라고 볼 수 있다.

▲미국 민주주의와 선거 절차의 한계를 여실하게 드러낸 넷플릭스 오리지널 TV 시리즈, &lt;하우스 오브 카드&gt;.

▲미국 민주주의와 선거 절차의 한계를 여실하게 드러낸 넷플릭스 오리지널 TV 시리즈, <하우스 오브 카드>.

이런 의미로 볼 때 <킹메이커>처럼 민주주의의 허실을 보여주는 영화는 여러 모로 유의미한 메시지를 전달한다. 특히 이 작품은 실화를 바탕으로 하고 있기에 더욱 그러하다.

감독이 의도했든 의도하지 않았든, <킹메이커>는 민주주의가 모든 사상, 신념, 그리고 종교적 믿음을 뛰어넘어 거의 지고선처럼 추앙되는 오늘날 대한민국의 세태에 일침을 가하고 있다.

민주주의의 목표와 기본이념은 사회적으로도 그렇고 신앙생활에도 유익한 면이 많다. 그러나 민주주의의 절차는 여러 모로 불완전하고 때로는 사회에 해악을 끼치는 경우도 많다.

<킹메이커>는 이 절차 안에 배태된 문제들을 끄집어낸다. 이런 비판의식은 민주적 절차라는 대의명분을 우상화하면서 실제로는 자기 이익을 취하는 데 여념이 없는 여러 영악한 정치 지도자들이 난립하는 오늘날 우리 한국 사회의 정치적-사회적 실태를 반성할 기회를 제공한다.

박욱주 박사(연세대 연합신학대학원 겸임교수)

연세대학교에서 신학을 전공했으며, 동 대학원에서 조직신학 석사 학위(Th.M.)와 종교철학 박사 학위(Ph.D.)를, 침례신학대학교에서 목회신학 박사(교회사) 학위(Th.D.)를 받았다. 현재 서울에서 목회자로 섬기는 가운데 연세대 연합신학대학원 겸임교수로 재직하고 있으며, 기독교와 문화의 관계를 신학사 및 철학사의 맥락 안에서 조명하는 강의를 하는 중이다.

필자는 오늘날 포스트모던 문화가 일상이 된 현실에서 교회가 보존해온 복음의 역사적 유산들을 현실적 삶의 경험 속에서 현상학과 해석학의 관점으로 재평가하고, 이로부터 적실한 기독교적 존재 이해를 획득하려는 연구에 전념하고 있다.

최근 집필한 논문으로는 ‘종교경험의 가능근거인 표상을 향한 정향성(Conversio ad Phantasma) 연구’, ‘상상력, 다의성, 그리스도교 신앙’, ‘선험적 상상력과 그리스도교 신앙’, ‘그리스도교적 삶의 경험과 케리그마에 대한 후설-하이데거의 현상학적 이해방법’ 등이 있다.

브리콜라주 인 더 무비(Bricolage in the Movie)란

브리콜라주(bricolage)란 프랑스어로 ‘여러가지 일에 손대기’라는 의미를 갖고 있다. 이 용어는 특정한 예술기법을 가리키는 용어로 자주 사용된다.

브리콜라주 기법의 쉬운 예를 들어보자. 내가 중·고등학교에 다니던 학창시절에는 두꺼운 골판지로 필통을 직접 만든 뒤, 그 위에 각자의 관심사를 이루는 온갖 조각 사진들(날렵한 스포츠카, 미인 여배우, 스타 스포츠 선수 등)을 덧붙여 사용하는 유행이 있었다. 1990년대에 학창시절을 보냈다면 쉽게 공감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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