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어령의 회심, 한국의 인문학이 통째로 교회에 들어온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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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기고] 이어령, 추모의 글

암이라는 원수 친구 삼아, 끝까지 버리지 않고 동행
지성과 신앙의 경지 오른 자만이 실행할 수 있는 일
회심 후 고백, 유한한 인생의 덧없음 깨닫기 충분해
신앙 가진 계기, 십자가 통한 죽음 새롭게 발견해서

▲이어령 교수. ⓒ소강석 목사 페이스북

▲이어령 교수. ⓒ소강석 목사 페이스북

코끝이 찡합니다. 예견한 일임에도 슬픔이 묻어나옵니다. 이어령 님이 돌아갔습니다. 하늘로 갔습니다. 하나님이 부르시어 순종하고 따라갔습니다.

마지막 가는 길에 원치 않은 암이라는 원수를 친구 삼아 끝까지 버리지 않고 동행하였습니다. 웬만하면 몸을 찢어서라도 배척하고 항암치료로 떼어버릴 수 있을 터인데, 그마저 친구로 삼았으니 아마 지성과 신앙의 경지에 오른 자만이 실행할 수 있는 일일 것입니다. 다행히 가족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편히 가셨다니 안도가 됩니다.

님은 이 땅에서 정말 출중하게 살았습니다. 그의 경력은 범인(凡人)이 눈에 담기엔 너무나 다양하고 초월적입니다.

님은 먼저 문학가였습니다. 약관 22세의 나이에 발표한 ‘우상의 파괴’(1956)는 그의 등단작이자 천재성을 유감없이 보여준 걸작이며, 나아가 기존 문단의 권위적 문화에 대한 도전장이었습니다.

무엇보다 필자의 대학 시절 캠퍼스 의자 위의 독서를 가능하게 해준 ‘장군의 수염’(1960)은 독재자의 전형과 본질에 대해 눈을 뜨게 해주었습니다. 이 외에 주옥같은 그의 작품들, ‘흙 속에 저 바람 속에’(1960), ‘축소지향의 일본인’(1984), ‘생각을 바꾸면 미래가 달라진다’(1997), ‘디지로그’(2006), 최근 작품인 ‘메멘토 모리’(2022)를 비롯하여 특별히 어린아이들을 위해 펴낸 ‘생각의 날개를 달자’(2005)도 기억될 만한 작품입니다.

이렇게 평생에 걸쳐 약 130여 권의 저술을 남겨 두신 것은 님이 얼마나 생을 진지하게 성찰하고 숙고한 사람이었는가를 가늠케 합니다.

또 님은 언론인이자 대학교수였습니다. 거의 30년간 국문학 관련 교수를 역임하며, 국어 문학의 새로운 창달에 헌신하였습니다.

그의 문학적인 창작성이 돋보인 두 개의 사례가 있습니다. 하나는 일본어 ‘노견’을 ‘갓길’로 바꾼 것과, 88올림픽 개회식 때 굴렁쇠를 등장시킨 일입니다. 이것만으로도 그의 천재성이 번뜩이는 장면입니다.

또 님은 한국일보를 비롯한 5개 신문사에서 논설위원을 역임하였고, 파리 특파원까지 지냈습니다. 이런 화려한 경력을 인정받아 1990년에는 노태우 정부의 초대 문화부 장관을 역임하기도 하였습니다.

그러나 이어령 님을 특별히 추모하는 이유는, 그의 회심 때문입니다. 2007년 어느 날 아침에 들려온 그의 세례 소식은 제 눈을 의심케 하는 것이었습니다.

저는 그날을 기억하기 위해, 제 일기장에 ‘한국의 인문학이 통째로 교회 안으로 걸어들어왔다’고 썼습니다. 그럼에도 솔직히 저는 개인적으로 그의 회심을 100% 확신하지는 못하였습니다.

많은 세계의 석학들을 비롯한 지성적 리더들이 섣부른 회심을 발표했다가, 되레 주님과 기독교회에 욕만 듣게 한 결과들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럼에도 제가 님을 이 자리에서 추모하는 까닭은, 단 한 권의 책이 저에게 많은 감동과 영감을 선사했기 때문입니다. 그것이 바로 지난 2010에 발표된 ‘지성에서 영성으로’라는 작품입니다.

저는 이 책의 내용을 꼼꼼히 읽으며 두고두고 되씹고 그의 인간됨과 회심과 새로운 세계 안에서의 님을 발견하고 찾을 수 있었습니다. 님은 딸의 암 투병과 실명 위기 속에서 생애 처음으로 절대자를 향한 간절한 기도를 올리게 됩니다.

“내 딸에게 빛을 거두지 않으신다면, 내 남은 생은 당신을 위해 봉사하겠다”고 서원함으로 신앙에 눈을 뜹니다. 실제로 기도의 덕분인지 딸의 눈을 실명의 위기로 빠트렸던 망막박리 증세가 사라지는 체험을 하고, 얼마 있지 않아 전격적으로 세례를 받았습니다.

그의 회심은 한국의 문단을 비롯한 세계의 지성들을 경악케 하는 사건이 되었습니다. 이후 님은 각계각층으로부터 비난과 조롱을 받아야 했습니다. 심지어 어떤 이는 님이 “지성을 버리고 신령함을 택했다”고 비하했고, 많은 동료는 님이 “망령이 들었다”는 소리까지 해댔습니다.

그러나 새로 발견한 영적 세계는 님을 흥분시키기에 족하였습니다. 님은 돌아온 탕자와 같은 심정으로 제2의 인생을 살았습니다. 님은 회심한 사람만이 행할 수 있는, 자신의 약점을 비롯한 내면의 속 깊은 이야기들을 진솔하게 여기에 담았습니다.

진리의 세계에 대한 님의 새로운 인식은 유한한 인생의 덧없음을 고백하기에 충분한 깨달음이었습니다. 님은 자신이 신앙을 갖게 된 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죽으심을 바라보면서 죽음에 대한 새로운 발견 때문이라 고백하였습니다.

그것은 ‘죽는다는 걸 생각하며 살라’라는 뜻의 라틴어 ‘메멘토 모리’로 압축됩니다. 그럼에도 님은 자신의 깨달음을 감히 ’신학‘이라 말하지 않고, 단지 ’시학‘일 뿐이라며 겸손했습니다.

점점 신학과 기독교 교리와 한국교회의 형편에 대한 지식과 정보가 늘어나자, 님은 조국 교회를 향해서도 아낌없는 조언과 충고를 마다하지 않았습니다.

100주년기념교회에서 가졌던 이재철 목사와의 대담은 님의 입장에서 한국교회에 대한 애정과 선견적 충고로서, 이 땅의 모든 사역자가 경청해야 할 지침이었습니다. 님은 한국교회가 근본적으로 인문학적 배경에 더 충실해야 한다고 보았습니다.

저에게도 조금의 지성이 있다면, 저는 틀림없이 님의 영향을 받은 사람입니다. 그의 풍성한 지식의 양과 한계 없는 상상력, 놀라운 추리력과 논리력, 그리고 지칠 줄 모르는 입담은 저에게 선망의 대상이 되고도 남았습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님에게 진심으로 회심을 축하해 주었습니다. 님은 회심과 함께 거듭남을 체험한 분으로 확신합니다.

이제 님은 반드시 주님 품에 안기어, 주님 오시는 그날까지 가장 좋은 안식을 누릴 것이라 믿습니다. 님을 오랫동안 추모할 것입니다. 감사합니다.

▲최더함 박사. ⓒ크투 DB

▲최더함 박사. ⓒ크투 DB

최더함 박사(Th.D.)
바로선개혁교회 담임목사
개혁신학포럼 책임전문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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