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재를 변화시키는 ‘행복 신학’ 22] 중국인들과 함께 경험한 신적 행복
작년 7월 김해에서 선교부흥회를 인도한 적이 있다. 중국인들만 모이는 교회에서 두 번의 주일 동안 오전과 오후 각각 3시간씩 혼신의 힘을 다해 설교했다.
교인들은 한국에 일하러 왔다가 복음을 듣고 회심한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외국인 노동자로 갖은 어려움을 겪으며 힘든 생활을 하고 있었다. 중국에 있는 가족들에게 생활비를 보내며 정작 자신들은 가난에 허덕이고 있었고, 불법체류자가 되어 발각되는 즉시 추방될 위험에 있었다.
이런 교인들 앞에서 하나님 나라 복음을 어떻게 전할지 그저 막막하기만 했다. 가뜩이나 힘든 일상을 보내는 그들인데, 고난을 수반하는 천국 복음이 어떻게 들려질지 설교자로서 막중한 부담이 밀려왔다.
그럼에도 복음을 있는 그대로 선포했다. 첫날 오전에는 십자가의 복음이 무엇인지, 또 복음의 능력이 어떠한 것인지를 가감없이 증거했다. 복음의 능력을 경험하려면 성도의 고난이 필수적임을 역설했다! 복음을 믿어 고난을 면제받는 것이 아니라, 복음을 믿기 때문에 오히려 고난이 수반된다고 강조했다.
설교가 좀 어설퍼도, 통역하는 자매를 통해 성령의 은혜가 청중 가운데 부어지고 있었다. 고된 노동으로 가뜩이나 힘든 중국인들에게 고난을 강조하는 게 설교 내내 마음이 편하지 않았다. 그럼에도 성령께서 강권하시는 내적 음성에 그냥 순종해 버렸다. 십자가의 고난이 그들에게 복음의 능력으로 재현되기를 바라면서.
오후에는 성령 충만에 대해 설교했다. 성령으로 충만하여 베드로처럼 수많은 죄인들을 회심시키기도 하지만, 똑같이 성령 충만하여 스데반처럼 돌에 맞아 죽는 경우도 있다고 말했다.
그래서 성령 충만은 우리가 이루는 결과물에 있는 것이 아니라, 십자가의 복음을 말하는 열정 자체에 있다고 강조했다. 복음 전하다 대적자들이 이를 갈며 분노해도, 주께서 부으시는 성령 충만은 변함없는 것이라고 했다.
심지어 큰 박해가 일어나 성도들이 흩어져도 성령 충만할 수 있음을 말했다. 스데반의 순교로 예루살렘 성도들이 유대와 사마리아 온 땅으로 흩어지듯, 중국 성도들도 박해를 피해 흩어져 성령 충만하여 복음 증거에 헌신할 수 있음을 강조했다. 어떠한 어려움이 오더라도 절대 주눅 들지 말라고 도전했다. 성령께서 그대들을 이 시대의 마지막 증인들로 세우셨음을 분명히 믿으라고 권면했다.
이번에도 통역사의 열정 때문에 빛을 발했다. 유창한 통역을 통해 중국인들에게 하늘의 은혜가 임하고 있었다. 통역사들이 모두 중국인인데, 한국어를 정말 유창하게 알아듣고 말했다. 성령께서 통역사들의 전인격을 주장하고 계심을 생생히 느낄 수 있었다.
무엇보다 기도회 시간이 압권이었다. 성령님이 온 청중 가운데 운행하고 계셨다. 누구보다 이 교회 담임목사가 정말 열정적으로 기도했다. 주께서 이 교회에 은혜를 부어 주시는 이유를 금방 알 수 있었다.
다음 주일에는 천국 복음이 어떠한 것인지 본문에 근거해 신학적으로 설교했다. 이미 임한 천국과 장차 완성될 천국을 혼신의 힘을 다해 증거했다. 신학과 교리가 ‘불타는 논리’가 될 수 있음을 생생하게 목격했다. 천국이 어떠한지를 진심으로 말할 때 중국인들의 가슴에 불이 불고 있음을 느꼈다.
아마 그들의 고달픈 일상에 큰 위로가 되었기 때문이리라! 계속되는 노동으로 몸이 지치고 중국으로 돌아가더라도 신앙생활이 힘겨운데, 이 모든 것이 극복되는 하나님 나라가 온다는 사실이 정말 감격스러웠을 것이다. 2천 년 전 그리스도 안에 임한 천국의 실체를, 이제는 성령 안에서 교회 공동체를 통해 우리가 맛보고 있음을 역설했다.
천국 복음을 생생하게 느낀 탓인지, 설교가 마치기가 무섭게 박수 소리가 터져 나왔다. 그 순간 심히 당황스러웠지만,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박수로 받아들였다. 주께서 중국인들의 마음 속에 천국의 실체를 심겨 주셨음을 확신할 수 있었다.
중국인들의 예배 현장은 국내 교회에서는 찾아보기 힘들 정도로 열정적이다. 설교자가 어설퍼도 하나님의 말씀에 전심으로 반응하며 ‘아멘’으로 화답한다.
참으로 아이러니하지 않은가? 그들의 현실은 참으로 고달프고, 게다가 본국으로 돌아가면 위협을 무릅쓰고 신앙생활을 해야 한다. 그런데도 그들의 표정과 행동에서는 뭔가 모를 행복감이 묻어난다.
더구나 예배 때마다 ‘십자가의 전달자’를 함께 부르는데 어찌나 가슴이 먹먹해지던지…. “살아도 주를 위해 죽어도 주를 위해 / 사나 죽으나 난 주의 것 / 십자가의 능력 십자가의 소망 / 내 안에 주만 사시는 것”.
열악한 현실에서 이런 고백을 하는 그들이 내 눈에는 진짜 행복자로 보였다. 자기 상황이 고달플 때마다 주님의 십자가를 붙들고 하나님 나라를 바라보는 것이 ‘신적 행복(divine happiness)’이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네 번의 집회를 통해 주께서 정말 큰 은혜를 부어 주셨다. 특히 마지막 집회가 끝나고 현장에서 회심한 자들이 울면서 간증하는 그 모습은 평생토록 가슴에 남을 것 같다. 한국교회에서도 또다시 그러한 행복을 경험하는 자들이 많아지면 좋겠다.
권율 목사
경북대 영어영문학과(B.A.)와 고려신학대학원 목회학 석사(M.Div.)를 마치고 청년들을 위한 사역에 힘쓰고 있다. SFC(학생신앙운동) 캠퍼스 사역 경험으로 청년연합수련회와 결혼예비학교 등을 섬기고 있다.
비신자 가정에서 태어나 가정폭력 및 부모 이혼 등의 어려운 환경에서 복음으로 인생이 개혁되는 체험을 했다. 성경과 교리에 관심이 컸는데, 연애하는 중에도 계속 그 불이 꺼지지 않았다. 현재 부산 세계로병원 원목(협력)으로 섬기면서 여러 모양으로 국내선교를 감당하는 중이며, 매년 선교지(몽골, 필리핀) 신학교 강사로도 섬기고 있다.
저서는 <올인원 사도신경>, <올인원 주기도문>, <올인원 십계명>, <연애 신학> 등이 있고, 역서는 <원문을 그대로 번역한 웨스트민스터 소교리문답(영한대조)>외 3권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