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서 ‘평화’ 설교·기도하는 목회자들 기소 위기

강혜진 기자  eileen@chtoday.co.kr   |  

최근 새 법 시행 후 실제 목회 현장서 압박감 고조

▲2021년 러시아 목회자들이 한 지역교회 건물이 몰수된 사건에 관해 의논하는 모습.   ⓒ유튜브 영상 캡쳐

▲2021년 러시아 목회자들이 한 지역교회 건물이 몰수된 사건에 관해 의논하는 모습. ⓒ유튜브 영상 캡쳐

러시아 목회자들이 우크라이나에 관해 설교하고 기도하기 전, 새 법률에 따른 위험성을 깊이 고려하게 됐다고 한국순교자의소리(VOM Korea)가 전했다.

순교자의소리에 따르면, 이번 달 러시아에서는 다음의 3가지 사례가 발생했다.

첫째, 400명 이상의 러시아 교회 및 신학교 지도자는 러시아의 한 소규모 기독교 웹사이트에 국가 차원의 회개를 촉구하는 글을 게시했다가 신속히 삭제했다.

둘째, 러시아의 한 변호사는 예배 시간에 평화를 위해 기도할 때 문제를 피하는 방법을 페이스북을 통해 러시아 교회들에 알려 주었다.

셋째, 대중에게 잘 알려진 러시아의 한 목회자는 전쟁 종식을 위해 개인적으로 기도하는 것이 기독교인의 영적 책임을 이행하는 것이라고 러시아 기독교인들에게 확신시켰다.

순교자의소리의 현숙 폴리(Hyun Sook Foley) 대표는 “러시아의 새 법률(20.3.3조)로 인해, 이제 러시아 목회자들은 러시아가 우크라이나에서 자행하고 있는 행동에 대해 공개적으로 말하기 전, 심지어 기도하기 전에도 ‘그에 따른 대가’를 생각하게 됐다. 이번 달에 발생한 이 세 가지 사례가 그런 사실을 보여 준다”고 말했다.

순교자의소리는 ‘골로스 무치니카프 꼬레야’(Голос Мучеников – Корея, 한국순교자의소리)라는 이름으로, 핍박받는 기독교인에 관한 러시아어 페이스북 페이지를 운영하고 있다. 이는 러시아어 사용권 전역에 12,000여 명의 팔로워를 보유하고 있다.

현숙 폴리 대표는 몇몇 러시아 기독교인들이 러시아가 우크라이나에서 자행하는 행동에 대한 우려와 우크라이나를 위한 기도를 순교자의소리 페이스북에 올리고 있을 뿐 아니라, 러시아 내부에서도 그러한 내용의 게시물을 서로 공유하고 있다.

그러나 지난 3월 4일 제정된 법률에 따라, 러시아 연방군의 군사 행동을 비난하는 취지의 대중적 행위는 범죄로 규정돼 있어, 이제 러시아 기독교인들이 양심에 따라 발언하는 것에 대한 위험성을 깊이 생각하게 된 것이다.

이미 성직자 한 명이 새로운 법에 따라 기소됐다. 영국BBC의 러시아어 방송에 따르면, 코스트로마에 있는 부활교회의 이오안 보르딘(Ioann Burdin) 목사가 “설교에서 반군사적 발언을 하고, 전쟁에 반대하는 온라인 청원서를 유포했다”는 혐의로 기소될 예정이다.

현숙 폴리 대표는 “더 많은 사람이 고발을 당하고 더 많은 사건이 기소되기 전까지는, 목회자와 교회에게 허용되는 것은 무엇이고 범죄로 규정되는 것이 무엇인지 확실히 알 수 없다”고 전했다.

또 러시아 목회자와 교회에 조언하는 러시아인 세르게이 추구노프 변호사는 “평화를 위한 기도조차 상황에 따라 법률 위반이 될 수 있다”고 했다. 그는 페이스북에 “최근 바뀐 법률에 의해, ‘교인들에게 평화를 위한 기도를 요청해도 되는가?’라는 질문에 답해야 하는 시대에 살게 될 줄은 꿈에도 몰랐다”며 안타까워했다.

그는 “러시아 목회자와 교회들은 ‘전쟁 반대’ 같은 문구를 게시하거나, 이를 공개적으로 선언할 경우 기소될 것을 예상해야 한다. 또 러시아 목회자들과 교회들은 이 전쟁에 관한 공식 성명을 신중하게 발표해야 한다. 교회는 평화를 위한 대규모 기도를 계획하고, 기도의 동참을 권유할 때 신중할 필요가 있다”고 페이스북 페이지에 게시했다.

그러나 러시아침례교회, 오순절교회, 신학교 지도자 400명은 이달 초, 평화를 위한 기도를 요청하는 수준을 넘어 ‘동포들께 호소합니다’라는 제목의 공개 서한을 발표했다. 상트페테르부르그의 작은 기독교 출판사 웹사이트에 잠시 게시됐다가 자발적으로 삭제된 것으로 보이는 그 호소문 전문은 아래와 같다.

“내가 어느 민족이나 국가를 뽑거나 부수거나 멸하려 할 때에 만일 내가 말한 그 민족이 그의 악에서 돌이키면 내가 그에게 내리기로 생각하였던 재앙에 대하여 뜻을 돌이키겠고”(렘 18:7-8)

친애하는 동포 여러분!

우리나라 군대가 지금 이웃 우크라이나의 도시들에 폭탄과 로켓을 투하하며, 총력적인 군사작전을 펼치고 있습니다. 기독교인으로서 우리는 현재 일어나고 있는 일을 형제 살해죄라는 중죄, 즉 형제 아벨을 살해한 가인의 죄로 간주하는 바입니다.

어떤 정치적 이익이나 목표도 무고한 시민의 죽음을 정당화할 수 없습니다. 노인과 여자, 아이들이 죽어가고 있습니다. 양쪽 군인들도 죽어가고 있고 도시와 기반 시설이 파괴되고 있습니다. 포탄과 폭탄은 군사 목표물뿐 아니라 병원과 민간 건물과 주택을 파괴하고 있습니다. 많은 사람이 난민이 되었고 전쟁 지역은 인간적인 삶을 유지하기 위한 기본적인 공급조차 불가능한 상황입니다.

이러한 유혈 사태 외에도, 러시아가 주권 국가인 우크라이나를 침략했다는 사실은 우크라이나 국민의 자결권의 자유를 침해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러시아 정부는 우리 두 나라의 국민들 사이에 증오의 씨앗을 뿌리고 있습니다. 이 씨앗은 다음 세대에서는 소외와 적대감으로 자라날 것입니다. 이 전쟁은 우크라이나 뿐만 아니라 러시아, 즉 러시아 국민, 경제, 도덕성, 미래를 파괴하고 있습니다.

성경은 “악에서 손을 떼고 평화의 길을 구하라”(시 34:14)고 촉구하며, “악을 뿌리는 자는 재앙을 거두리니”(잠 22:8)라고 경고합니다. 영적 가치를 진정으로 의지하고자 한다면, "네 칼을 도로 칼집에 꽂으라 칼을 가지는 자는 다 칼로 망하느니라”(마 26:52)는 말씀을 청종하는 것이 정말로 중요합니다. 또 성경은 “악한 일에 관한 징벌이 속히 실행되지 아니하므로 인생들이 악을 행하는 데에 마음이 담대하도다”(전 8:11)라고 말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판단은 공정하고 피할 길이 없습니다.

지금은 우리 각자가 옳은 말을 해야 할 때입니다. 하나님의 징벌을 피하고 우리나라의 멸망을 막을 수 있는 기회가 아직 우리에게 남아 있습니다. 우리는 우리나라가 저지른 일을 회개해야 합니다. 우선은 하나님 앞에서, 그 다음에는 우크라이나 국민 앞에서 회개해야 합니다. 거짓말과 증오를 버려야 합니다. 이 무의미한 유혈 사태를 중단할 것을 우리나라 당국자들에게 요청하는 바입니다!

러시아의 복음주의 교회 목회자들

이제 어떤 러시아어 웹사이트에서도 이 편지를 찾아볼 수 없겠지만, 순교자의소리에서 러시아어로 된 이 편지를 한국어와 중국어, 영어로 번역하여 널리 확산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폴리 현숙 대표는 “우리가 이 편지를 퍼뜨리는 이유는 특정한 정치적 견해를 옹호하려고가 아니라, 러시아 기독교인 형제·자매의 목소리가 침묵 속에 묻히는 것을 막기 위해서”라고 강조했다. 

그녀는 그러나 “현재로서는 침묵도 러시아 교회의 신실한 증언의 일부다. 교회가 취할 수 있는 침묵에는 두 종류가 있다. 하나는 두려움에서 오는 침묵으로, 이것은 죄다. 다른 하나는 침묵의 기도로, 이것은 교회의 사역에 필수적이다. 대중에게 잘 알려진 러시아의 한 목회자는 러시아의 개신교 신자가 워낙 소수이므로 시위 행진이나 공개 성명을 통해 러시아가 우크라이나에서 자행하는 행위를 변화시킬 가능성은 없겠지만, 침묵의 기도로 하나님께 호소하는 그 성도들의 힘을 과소평가해서는 안 될 것이라는 내용의 글을 이번 달 자신의 페이스북에 올렸다. 그 목회자는 ‘하나님은 전쟁을 중단시킬 수 있다. 그래서 우리는 하나님께 부르짖는다’고 말했다. 세상의 그 어떤 법률도 성도의 기도를 막지 못한다”고 했다. 

순교자의소리는 이 전쟁이 벌어지고 있는 동안, 우크라이나와 폴란드와 몰도바 교회에 긴급 재정 지원금을 계속 보내고 있다. 이 교회들은 우크라이나 국내의 기독교인들과 기독교인 피난민들의 물질적·영적 필요를 채워주기 위해 사역하고 있다.

현숙 폴리 대표는 그러나 기독교인들이 침묵당하거나 핍박받는 곳 어디에서나 신실한 증인의 사명을 감당할 수 있도록 준비시켜 주는 것이 순교자의소리가 오랫동안 지속해 온 주된 사역이라도 강조했다.

그녀는 “우리는 러시아 기독교인들이 지하 기독교인으로서 신실한 증인의 사명을 감당하도록 돕는다. 순교자의소리는 60여 년 전에 바로 그렇게 시작되었다. 전 세계 15국에 있는 순교자의소리의 창립자인 루마니아의 리처드 웜브란트(Richard Wurmbrand) 목사는 성경과 쪽복음을 밀반입하여, 자신의 나라에 점령군으로 온 러시아 병사들에게 나눠주었다. 요즈음은 정말 여러 가지 면에서 우리 순교자의소리가 초창기 시절로 돌아간 것 같다. 우리는 웜브란트 목사님이 순교자의 소리를 처음 시작했을 때보다 책, 웹사이트, SNS에 훨씬 더 많은 러시아어로 된 양육 자료들을 보유하고 있다. 하지만 변하지 않은 사실 한 가지는, 러시아 기독교인들이 예수님의 신실한 증인이 되기 위해 아직도 모든 위험을 기꺼이 감수하고 있다는 사실”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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