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경섭 칼럼] 그리스도인에게 ‘죽음’이란(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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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경섭 목사. ⓒ크투 DB

▲이경섭 목사. ⓒ크투 DB

◈성화의 방편인 죽음

‘죽음’은 개인이 당하는 최후의 ‘종말론적인 고난’이다. 여기서 죽음을 고난이라 했음은 ‘죽음의 찰나적인 고통’ 때문이라기보다는(세상엔 죽음보다 더한 고통이 얼마든지 있으며, 죽음이 오히려 그런 고통을 종식시킨다) 죽음을 직면할 때의 심리적 공포 곧, 죽음 후 직면하게 될 미증유의 세계에 대한 두려움 같은 것이다.

여기서 ‘죽음’을 ‘성화의 방편(the instrument of sanctification)’이라 했음은 모든 고난이 그러하듯, 그것(죽음)을 통해 자신을 덮은 허위의식을 벗고 그의 진면목을 볼 수 있게 하기 때문이다.

사고, 질병, 전쟁 등을 통해 죽음을 직면해 본 후 사람들, 사형선고를 받은 사형수들이나 시한부(時限附) 삶을 살아 본 이들이 그것을 계기로 이전과는 다른 삶의 태도를 견지하게 되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이런 점에서 죽음의 직면으로 말미암은 종말의식의 고취는 인간에게 있어 최고의 ‘성화 방편’이라 할 수 있다. 예수님도 사람들에게 사후(死後) ‘영생의 소망’과 ‘영벌의 두려움’을 고취시켜 그들의 죄 된 삶을 제어시키셨다.

“만일 네 손이나 네 발이 너를 범죄케 하거든 찍어 내버리라 불구자나 절뚝발이로 영생에 들어가는 것이 두 손과 두 발을 가지고 영원한불에 던지우는 것보다 나으니라 만일 네 눈이 너를 범죄케 하거든 빼어 내버리라 한 눈으로 영생에 들어가는 것이 두 눈을 가지고 지옥 불에 던지우는 것보다 나으니라(마 18:8-9).”

대풍작(大豐作)으로 만족과 현세주의에 도취된 부유한 농부에게 급작스럽게 도래할 수 있는 ‘죽음’을 상기시켜 그의 욕망을 절제시키기도 하셨다.

“또 내가 내 영혼에게 이르되 영혼아 여러 해 쓸 물건을 많이 쌓아 두었으니 평안히 쉬고 먹고 마시고 즐거워하자 하리라 하되 하나님은 이르시되 어리석은 자여 오늘 밤에 네 영혼을 도로 찾으리니 그러면 네 예비한 것이 뉘 것이 되겠느냐 하셨으니(눅 12:18-19).”

사도 바울 역시 부자들에게 도래할 자신의 죽음을 인식시켜 교만과 물욕에서 탈피해 ‘내세의 상급을 축적’하도록 독려한다.

“네가 이 세대에 부한 자들을 명하여 마음을 높이지 말고 정함이 없는 재물에 소망을 두지 말고 오직 우리에게 모든 것을 후히 주사 누리게 하시는 하나님께 두며 선한 일을 행하고 선한 사업에 부하고 나눠주기를 좋아하며 동정하는 자가 되게 하라 이것이 장래에 자기를 위하여 좋은 터를 쌓아 참된 생명을 취하는 것이니라(딤전 6:17).”

◈삶의 위로로서의 죽음

죽음은 ‘삶의 고통’을 종식시키는 일종의 위로이다. 진통제마저 듣지 않는 어떤 병들의 고통은 저주이다. 죽음은 그 저주스런 고통에서 인간을 건져준다(물론 이는 자살이나 안락사를 합법화하거나 용인하자는 것이 아니다. 인간의 생사는 하나님의 주권에 속한다).

위대한 믿음의 영웅 욥(Job)마저도 질병의 고통으로 인한 저주스러운 날들을 지나며 ‘숨긴 보배를 찾듯 죽음을 찾았다’고 했다.

“어찌하여 곤고한 자에게 빛을 주셨으며 마음이 번뇌한 자에게 생명을 주셨는고 이러한 자는 죽기를 바라도 오지 아니하니 그것을 구하기를 땅을 파고 숨긴 보배를 찾음보다 더하다가 무덤을 찾아 얻으면 심히 기뻐하고 즐거워하나니… 나의 앓는 소리는 물이 쏟아지는것 같구나 (욥 3:20-24).”

그리스도의 재림 직전 대 환난 때도, 악인들에게 임할 극심한 고통은 죽음이 그들에게 지복이이 될 것을 성경은 예언한다.

“그러나 그들을 죽이지는 못하게 하시고 다섯달 동안 괴롭게만 하게 하시는데 그 괴롭게 함은 전갈이 사람을 쏠 때에 괴롭게 함과 같더라 그날에는 사람들이 죽기를 구하여도 얻지 못하고 죽고 싶으나 죽음이 저희를 피하리로다(계 9:5-6).”

그런 극한 경우가 아니더라도 전반적으로 ‘고통’과 ‘슬픔’으로 점철된 죄인의 삶은 죽음을 통해 종식을 고하고 그를 안식에로 들인다.

“자금 이후로 주 안에서 죽는 자들은 복이 있도다 하시매 성령이 가라사대 그러하다 저희 수고를 그치고 쉬리니 이는 저희의 행한 일이 따름이라 하시더라(계 1:13).”

“하나님이 저희와 함께 거하시리니 저희는 하나님의 백성이 되고 하나님은 친히 저희와 함께 계셔서 모든 눈물을 그 눈에서 씻기시매 다시 사망이 없고 애통하는 것이나 곡하는 것이나 아픈 것이 다시 있지 아니하리니 처음 것들이 다 지나갔음이러라(계 21:3-3).”

다른 차원의 ‘죽음의 위로’도 있다. 생전에 오매불망하던 그리스도를 죽음을 통해 직접 대면하게 된다.

“이러므로 우리가 항상 담대하여 몸에 거할 때에는 주와 따로 거하는 줄을 아노니… 우리가 담대하여 원하는 바는 차라리 몸을 떠나 주와 함께 거하는 그것이라(고후 5:6,8)”. “나는 의로운 중에 주의 얼굴을 보리니 깰 때에 주의 형상으로 만족하리이다(시 17:15).”

또한 믿음으로 말미암아 삼위일체 하나님, 영생, 천국 같은 ‘진리 지식’이 확연해지는 것도 죽음이 갖다 주는 위로이다.

“우리가 이제는 거울로 보는것 같이 희미하나 그 때에는 얼굴과 얼굴을 대하여 볼 것이요 이제는 내가 부분적으로 아나 그 때에는 주께서 나를 아신 것 같이 내가 온전히 알리라(고전 13:12).”

무엇보다 가장 큰 위로는 더 이상 죄의 미혹을 받거나 마귀의 꾀임을 보는 일도, 원치 않던 범죄로 인해 탄식할 일도 없게 된다는 점일 것이다.

◈구원의 확신 속에서 맞는 죽음

죽음은 사람의 운명을 영생·영벌로 결정짓는 갈림길이다. 그러나 이미 구원받은 그리스도인에게 죽음은 그것을 넘어 그의 믿음을 담금질하는 시금석(touchstone, 試金石)이 된다. 그는 ‘구원의 확신’ 속에서 담대히 죽음을 맞든지, 그렇지 못하든지 함으로 자신의 ‘믿음의 정도(the levels of faith)’를 드러낸다.

물론 ‘죽음의 공포’는 신·불신을 막론하고 인류에게 본능적이고 보편적이기에 그것을 아주 떨쳐버릴 순 없다. 그러나 그리스도인은 죽음의 이유와 목적과 사후(死後)에 펼쳐질 일들을 알기에 막연하거나 절망적인 두려움 같은 것은 없다.

무엇보다 그는 자신의 삶도, 죽음도 은혜에 의존돼 있음을 안다. 평생 그가 ‘자신의 삶’을 ‘은혜’에 의존시켰듯, 마지막 ‘자신의 죽음’도 ‘은혜’에 의존시킨다. 그리스도가 그의 일생을 ‘은혜로 용납’해 주셨기에, 그의 죽음도 ‘은혜로 경륜’해 주실 것을 믿기 때문이다.

우리가 즐겨 부르는 “내가 천성 바라보고 가까이 왔으니 아버지의 영광 집에 가 쉴 맘 있도다 나는 부족하여도 영접하실 터이니 영광 나라 계신 임금 우리 구주 예수라(찬 545장)”는 찬송시는 우리 모두의 동일한 고백이다.

구원을 은혜가 아닌 ‘자기 의행(義行)’에 의존시킨 ‘율법주의 구원관’을 가진 이들에겐 이런 확신이 불가능하다. 자신이 ‘시원찮게 믿었다’고 생각하는 사람도 ‘열심히 믿었다’고 자부하는 사람도 모두 구원의 확신이 요원하다.

이는 율법은 ‘밑 없는 무저갱(the Abyss)’처럼 인간의 모든 의(義)를 불랙홀(Black hole)처럼 빨아들여 늘 ‘모자란다 모자란다’라고만 선포하기 때문이다. 죄인에게 있어 율법은 ‘이만하면 됐다’가 없다. ‘율법의 마침’은 오직 그리스도께만 있다(롬 10:4).

마틴 로이드 존스 목사(Martin Lloyd-Jones, 1899-1981)의 후임자로 웨스트민스터 채플(Westminste chapel)의 강단을 20년간 맡았던 R. T. 켄달(Robert Tillman Kendall, 1935년 7월 13일- ) 박사가 ‘율법적 구원관을 가졌던 일부 청교도들은 평생에 한 번도 구원의 확신을 가져보지 못했던 것 같다’고 평가한 것은 적절하다. 할렐루야!

이경섭 목사(인천반석교회,개혁신학포럼 대표, https://blog.naver.com/PostList.nhn?blogId=byterian ) 저·역서: <이신칭의, 값싼 은혜가 아닙니다(CLC)>, <개혁주의 신학과 신앙(CLC)>, <개혁주의 영성체험(도서출판 예루살렘)>, <현대 칭의론 논쟁(CLC, 공저)>, <개혁주의 교육학(CLC)>, <신학의 역사(CLC)>, <기독교신학 묵상집(CLC, 근간)>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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