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은 율법과 결별하고 그리스도의 아내가 됐는가?
◈전 남편 율법의 죽음
성경은 ‘그리스도인은 율법에 대해 죽임을 당했다(you died to the law)’고 말한다. “그러므로 내 형제들아 너희도 그리스도의 몸으로 말미암아 율법에 대하여 죽임을 당하였으니(롬 7:4).”
이는 그가 ‘그리스도의 죽음과 연합하여(갈 2:10)’ 율법의 요구인 ‘죄삯 사망’을 지불했기에, ‘율법이 그에게 더 이상 요구할 것이 없게 됐기’ 때문이다.
환언하면 ‘그에게 율법이 죽었으므로(the law died to him), 더 이상 그가 율법 아래 있지 않다(He are not under law, 갈 5:18)’는 말이다.
나아가 ‘율법’을 ‘남편’에 빗대어, 남편이 죽으면 아내가 그에게서 놓여나듯, 죄인이 율법에 대해 죽으면 율법에서 놓여난다고 했다. “남편 있는 여인이 그 남편 생전에는 법으로 그에게 매인바 되나 만일 그 남편이 죽으면 남편의 법에서 벗어났느니라(롬 7:2).”
곧 아내가 남편 생전엔 그에게 매여 있지만 남편이 죽으면 그에게서 놓여나듯, 죄인이 그리스도의 죽음과 연합해 ‘죄삯 사망(롬 6:23)’을 갚으면 율법에서 놓여난다는 뜻이다.
그리고 ‘남편의 죽음’으로 아내가 그에게서 놓여나면 그는 다른 남자에게 시집을 가도 음부(an adulteress, 淫婦)가 안 되듯, 죄인이 그리스도의 죽음과 연합하여 율법에 대해 죽으면 율법에서 자유해도 죄인이 되지 않는다는 말이다.
반면 그리스도의 죽음과 연합하지 않아 율법에 대해 죽지 않은(율법에 매인) 자는 율법에서 자유할 수 없다. 율법에 매여 있으면서 율법에서 자유하려는 것은 남편 있는 여자가 다른 남자에게 가는 것과 같다.
“남편 있는 여인이 그 남편 생전에는 법으로 그에게 매인바 되나 만일 그 남편이 죽으면 남편의 법에서 벗어났느니라 그러므로 만일 그 남편 생전에 다른 남자에게 가면 음부라 이르되 남편이 죽으면 그 법에서 자유케 되나니 다른 남자에게 갈찌라도 음부가 되지 아니하느니라(롬 7:2-3).”
이어 결론과도 같은 말씀을 준다. “너희는 율법이 사람의 살 동안만 그를 주관하는 줄 알지 못하느냐(롬 7:1).” ‘죄인이 그리스도의 죽음과 연합하기 전’곧, 그가 율법 아래 있을 때만 율법이 그를 주관하고, ‘그리스도의 죽음과 연합해 그에게서 율법의 요구가 이뤄지면 율법이 그를 더 이상 주관하지 못한다는 뜻이다. 곧 ‘율법에서의 해방(롬 8:2)’을 선포해 준 것이다.
그런데 예수를 믿는다면서도 여전히 율법과 결별하지 못한 채 둘(예수와 율법) 사이를 왕래하는 이들이 있다. 예상보다 이런 이들이 많다. 성경은 이들을 두 남편을 둔 ‘음부(an adulteress, 淫婦)에 비유했다(롬 7:3).
이즈음 ‘전(前) 남편 율법과의 사별(死別)이 먼저인가’, ‘새(新) 남편 그리스도와의 연합이 먼저인가’라는 질문이 자연스럽게 따라 나온다.
실제 부부간의 예나 논리적 순서를 쫓는다면, ‘전 남편 율법’과의 사별 후 ‘새 남편 예수 그리스도’와 연합하지만, 실제론 새 남편 그리스도와 연합한 후 전남편 율법과 사별한다.
그리스도와 연합하지 않은 한 율법에 대해 죽지 못하기 때문이다. 이는 ‘믿고 중생하느냐, 중생 후 믿느냐’의 논쟁과 유사하다.
◈열매 맺는 원리
죄인이 전 남편 율법에게 매여 있었을 땐, 아무 결실(結實)이 없었을 뿐더러 오히려 ‘사망의 열매’만 맺었었다(롬 7:5). 율법은 죄인을 향해 끊임없이 ‘죄삯 사망’을 요구하기에 ‘이만하면 됐다’가 없으며, 이것이 그를 만년 결핍자(萬年 缺乏者)로 만들어, 아무 열매도 맺지 못하게 한다.
죄인은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과 연합해 율법에 대해 죽임을 당한 후에라야 비로소 무엇을 결실하기 시작한다.
“그러므로 내 형제들아 너희도 그리스도의 몸으로 말미암아 율법에 대하여 죽임을 당하였으니 이는 다른 이 곧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나신 이에게 가서 우리로 하나님을 위하여 열매를 맺히게 하려 함이니라 우리가 육신에 있을 때에는 율법으로 말미암는 죄의 정욕이 우리 지체 중에 역사하여 우리로 사망을 위하여 열매를 맺게 하였더니 이제는 우리가 얽매였던 것에 대하여 죽었으므로 율법에서 벗어났으니(롬 7:4-5).”
이 결실은 ‘연합의 원리(요 15:4)’와 ‘경제의 원리’에 기반(basis)한다. 예수님이 “내 안에 거하라 나도 너희 안에 거하리라 가지가 포도나무에 붙어 있지 아니하면 절로 과실을 맺을 수 없음 같이 너희도 내 안에 있지 아니하면 그러하리라(요 15:4)”고 하신 것은 결실이 ‘일(works)의 결과’가 아닌 ‘연합(union)의 결과’임을 말씀하신 것이다.
‘경제의 원리(원래 ‘경제’라는 ‘economy’에는 ‘구원(saving)’ 개념이 함의돼 있다)’라 함은 죄인이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과의 연합’으로 ‘죄삯 사망’을 지불하니(더 이상 율법의 요구를 받지 않으니) 잉여(剩餘)가 생겨 ‘결실(fruits)’이 가능해 진 것이다.
그를 ‘만년 결핍자’로 만드는 ‘율법의 요구’에서 벗어나게 해 쌓는 쪽 쪽 그대로 축적이 되게 하는 것이다.
반면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과 연합하지 않아 끝없이 ‘다오 다오(give! give, 잠 30:15)’하는 율법의 요구아래 있는 자는 ‘밑 없는 구덩이(bottomless pit, 陰府)’ 같아 ‘만년 결핍자(萬年缺乏者)’로 남는다.
또한 ‘결실’은 ‘율법의 해방’으로 말미암은 ‘성령의 부어짐(the anointing of The Holy Spirit)’과도 유관하다.
그리스도인이 맺는 열매를 ‘성령의 열매(the fruit of the Spirit, 갈 5:22)라 함도 ‘율법’과 ‘성령’과 ‘열매’의 유관성 때문이다.
‘열매’는 식물의 자양분이 충분할 때 맺히듯, 그리스도인이 맺는 열매 역시 그가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과 연합하여 ‘결핍을 낳는 율법의 요구에서 해방’돼 ‘잉여(surplus)’와 ‘성령의 부어짐(the anointing of The Holy Spirit)’이 있을 때 가능하다. ‘결핍(deficiency)을 낳는 율법 아래 있으면 ‘잉여’도 ‘성령의 부음’도 없을뿐더러 ‘결실’도 불가능하다.
‘충만(充滿)의 영’이신 성령은 ‘결핍의 원인자(原因者)인 율법’의 지배아래 있는 자에겐 절대로 부어지지 않으며(갈 3:2), 응당 그 열매도 없다. 따라서 ‘자신을 율법에서 해방시키는 그리스도’를 부인하는 율법주의자들에게 ‘성령’도, ‘그것의 열매’도 없는 것은 당연하다.
사도 유다(Jude)가 거짓 교사들을 향해 ‘열매 없고, 성령 없는 자들’이라 한 것은 그들이 그리스도의 죽음과 연합하지 않아 율법에서 해방되지 못한 자들이기 때문이다.
“물 없는 구름이요 죽고 또 죽어 뿌리까지 뽑힌 열매 없는 가을 나무요… 육에 속한 자며 성령은 없는 자니라(유 1:12, 20).” 할렐루야!
이경섭 목사(인천반석교회,개혁신학포럼 대표, https://blog.naver.com/PostList.nhn?blogId=byterian ) 저·역서: <이신칭의, 값싼 은혜가 아닙니다(CLC)>, <개혁주의 신학과 신앙(CLC)>, <개혁주의 영성체험(도서출판 예루살렘)>, <현대 칭의론 논쟁(CLC, 공저)>, <개혁주의 교육학(CLC)>, <신학의 역사(CLC)>, <기독교신학 묵상집(CLC, 근간)> 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