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난 속 ‘버려진 아이들’… 덕분에 우린 살아 있습니다”

송경호 기자  7twins@naver.com   |  

‘입양아 대모’ 조병국 원장 회고록, 입양아들이 영문판 펴내

▲50여 년간 입양아들과 함께한 의사 조병국 전 홀트아동복지회 부속의원장(90·가운데)의 회고록 ‘할머니 의사, 청진기를 놓다’의 영문판 출판기념회가 14일 용인 수지 열방교회에서 열렸다. 이번 행사를 주최한 ‘더 어덥티 그룹’(The Adoptee Group, TAG) 조디 길(Jodi Gill, 한국명 김지애) 대표(왼쪽)는 1976년 서울의 한 경찰서에 버려진 뒤 입양돼 미국 가정에서 자랐다. 오른쪽은 같은 입양인으로, 미국 콜로라도 출신의 사라 살란스키. ⓒ송경호 기자

▲50여 년간 입양아들과 함께한 의사 조병국 전 홀트아동복지회 부속의원장(90·가운데)의 회고록 ‘할머니 의사, 청진기를 놓다’의 영문판 출판기념회가 14일 용인 수지 열방교회에서 열렸다. 이번 행사를 주최한 ‘더 어덥티 그룹’(The Adoptee Group, TAG) 조디 길(Jodi Gill, 한국명 김지애) 대표(왼쪽)는 1976년 서울의 한 경찰서에 버려진 뒤 입양돼 미국 가정에서 자랐다. 오른쪽은 같은 입양인으로, 미국 콜로라도 출신의 사라 살란스키. ⓒ송경호 기자

우리나라가 한국전쟁을 전후해 극심한 가난에 시달리던 시절, 부모의 품을 떠나 해외로 떠난 입양아들의 삶은 ‘눈물 없이는 들을 수 없는’ 이야기다. 관련 통계가 시작된 1953년부터 최근까지 확인된 해외 입양인만 17만여 명에 이른다.

50여 년간 입양아들과 함께한 의사 조병국 원장(90)이 지난 2009년 펴낸 회고록 ‘할머니 의사, 청진기를 놓다’는, 이 가슴 아픈 역사 한가운데서 버림받은 아이들을 보듬어낸 감동 실화를 세상에 고스란히 전했다.

정년을 15년이나 넘도록 청진기를 내려놓지 못하다 2008년 75세의 나이로 홀트아동복지회 부속의원장의 자리에 물러났던 조 원장을 위해, 최근 용인 수지 열방교회(담임 안병만 목사)에서 뜻깊은 행사가 개최됐다. ‘할머니 의사…’의 영문판 ‘Before Adoption… There was Dr. Cho(입양 전, 조 원장님이 있었다)’ 출판기념회가 진행된 것이다.

이 출판기념회가 더욱 의미 있었던 이유는, 바로 생의 끈을 붙잡고 떠났던 ‘입양아’들이 직접 영문판 출판과 행사 마련을 했기 때문이다. 그래서인지 이날 행사는 당사자들과 참석자들의 눈물로 가득했다.

이 행사를 주최한 ‘더 어덥티 그룹’(The Adoptee Group, TAG)은 입양인들의 건강을 지원하기 위해 설립된 비영리단체다. ‘TAG Care’라는 주력 프로그램으로 입양인들의 건강을 돕는 전문가·상담가들을 위한 자금을 투자하고 있다. 이 그룹의 조디 길(Jodi Gill, 한국명 김지애) 대표가 바로 미국 가정에서 자란 입양아 출신이다.

출판기념회에는 그녀와 같은 입양인인 미국 콜로라도 출신의 사라 살란스키, 노르웨이 오슬로 출신의 조나스 티슬볼, 그 외에 인적자원개발부 우하영 박사, 열방교회 담임 안병만 목사, 열방교회 킹스키즈 아카데미 허순덕 원장, 킹스키즈 국제협력부장 래니, 쉐마초등학고 영어부 김예지 주임 등이 함께했다.

1974년생인 조디 길 대표는 1976년 서울의 한 경찰서에 버려졌고, 경찰은 홀트아동복지회에 그녀를 맡겼다. 비슷한 처지에 놓인 10명의 아이들이 각종 질병으로 생명을 잃었지만, 그녀는 살아서 비행기를 탔다. 노스웨스트대학교(Northwest University in Kirkland, Washington)를 나와 기독교학교를 섬기다, 미국에 유학 온 한국학생들을 돌보던 중 열방교회 쉐마초등학교와 인연을 맺었다.

전쟁 후 한국의 상황에 대한 ‘확실한 자료’
전 세계의 한국인 입양인들에게 소개되길

길 대표는 “2015년 조 원장님을 뵈었고, 길에서 버려진 아이들과 가난한 이들을 위한 원장님의 헌신과 봉사에 대해 알게 되었다. 제가 바로 그 아이들 중 한 명이었기에 매우 깊은 감명을 받았다”고 했다.

그녀는 “조 원장님의 회고록은 병원 계단이나 경찰서 앞에서 남겨진 아이들에 대한 이야기, 당시 전쟁 후에 한국의 상황에 대해 이해하고자 하는 입양아이들, 입양부모님들, 그리고 입양단체를 위한 확실한 자료”라며 “저의 단체의 미션과 같은 취지에 있는 이 책의 출간을 꼭 돕고 싶었다”고 전했다.

▲이날 출판기념회에는 열방교회 담임 안병만 목사, 인적자원개발부 우하영 박사, 열방교회 킹스키즈 아카데미 허순덕 원장, 킹스키즈 국제협력부장 래니, 쉐마초등학고 영어부 김예지 주임 등이 함께했다.

▲이날 출판기념회에는 열방교회 담임 안병만 목사, 인적자원개발부 우하영 박사, 열방교회 킹스키즈 아카데미 허순덕 원장, 킹스키즈 국제협력부장 래니, 쉐마초등학고 영어부 김예지 주임 등이 함께했다.

TAG 자원봉사자이자 번역서의 편집자 사라 살란스키는 “조 원장님의 90세 생신에 맞춰 번역본이 나오게 되는 특권을 누리게 되었다”며 “조 원장님의 불우하고 힘든 상황에 있는 아이들을 돌본 인도주의적 사역에 경의를 표하고, 전 세계 한국인 입양인들이 한국 역사에 대해 조금 알아 볼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할 것”이라고 밝혔다.

다시 한 번 소회를 전한 조디 길 대표는 “한국에서 인도주의적 노력을 해 주셨기에 오늘 이 자리에 섰다. 우리는 당신이 사랑으로 돌본 아이들이 성인이 되어 가정을 이루고 세계에서 영향력 있는 사람들이 되었다”며 “어떤 입양인은 성공한 삶을 살고 어떤 이들은 슬프고 갈등을 겪고 있지만, 공통점은 우리가 살아 있다는 것이다. 제가 이 아기들 중 한 명이다”라고 했다.

그녀는 “이 회고록은 한국에 있는 부모들이 우리에게 생명을 주기 위해 내린 어려운 결정, 개선이 필요했던 정부 시스템 상황, 그리고 아기들을 향한 희망의 빛을 뿜어냈던 당신을 이해하는 데 도우미가 될 것”이라고 전했다. 이어 조 원장에게 번역본과 선물을 전달하며 감사를 표했다.

‘버려진 아이’ 아닌 ‘발견된 아이’라고 기록
“지난 세월 이야기하려면 밤을 새도 부족”

조 원장의 회고록에는 이런 대목이 나온다. “입양아들을 버려진 아이라고 기록하지 않았습니다. ‘버려진 아이’는 슬프지만 ‘발견된 아이’는 희망적입니다.”

조병국 원장은 어린 시절, 의술의 도움을 받지 못해 두 명의 동생을 잃고 한국전쟁 동안 처참하게 버려진 아이들을 보며 의과대학에 진학했다. 연세대 의대 졸업 후 서울시립아동병원 홀트아동복지회 부속의원에서 근무하며 한평생을 버려진 아이들, 아니 ‘발견된 아이들’과 함께했다.

어렵던 시절, 열악한 국내환경으로 제대로 된 치료를 받을 수 없는 아이들을 위해 노르웨이, 독일, 미국, 캐나다 등 선진국에 아이들의 수술과 치료에 필요한 의료 기부를 요청하고 다니며 ‘국제거지’라는 별명을 얻기도 했다. 1993년 정년을 맞아 홀트부속의원을 퇴임했으나, 후임자가 나오지 않아 ‘전 원장’이라는 이름으로 계속 진료를 보다가 건강상의 이유로 2008년 10월 완전히 퇴임했다.

조 원장은 “너무 가슴이 벅차다. 저는 입양을 보내기만 했는데 이렇게까지 고마워하고 영광스러운 자리를 만들어 주리라고는 상상도 못했다”고 소회를 전했다. 이어 “그때는 아기를 낳아도 젖 먹여 키울 수 없고, 굶겨 죽일 수는 없으니 우유라도 먹일 수 있을까 해서 고아원에 보냈고, 국내 입양이 어려워 해외 입양을 택할 수밖에 없었다”고 했다.

그녀는 “62년도에 7명의 아이들을 인도한 적이 있다. 뉴욕 공항에 도착해서 입양 부모님이 마중 나왔는데, 4살 아이가 나하고 떨어지지 않겠다고 아스팔트에 뒹구는 걸 보며 ‘왜 우리는 아이를 키우지 못하는가’ 하는 서글픈 마음이었다”며 “지난 이야기를 하려면 지금도 긴장되고 밤을 새워도 부족하다. 여러분들이 그 과정을 다 이해하긴 어렵겠지만, 그곳에서라도 따뜻한 사랑을 받아봤으면 하는 마음이었다”고 전했다.

안병만 목사 “눈물 많이 흘려… 한국이 헌신 이어받아야”

쉐마초등학교를 포함한 킹스키즈 아카데미를 이끌고 있는 안병만 열방교회 목사는 “원장님에 대한 책을 읽고 눈물을 많이 흘렸다. 뜻깊은 모임을 갖게 되어 저희로서도 영광”이라며 “저희 교회의 한 가정에도 입양된 아이가 있어 입양에 많은 관심을 갖게 되었고, 조디 길 대표를 통해 유학을 보냈다”고 전했다.

이어 “어려운 상황에서 고아들의 어머니로 보이지 않는 수고와 헌신을 통해 일어선 친구들이 이런 귀한 자리를 마련하니 더욱 의미가 크다”며 “조 원장님의 수고를 이어받아, 이젠 해외가 아닌 한국교회의 건강한 크리스천 가정이 입양을 통해 아이들을 믿음의 세대로 키워내야 할 때”라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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