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명혁 목사 설교] 주일 성수, 하나님 가장 기뻐하시는 귀중한 신앙
매주 전국 작은교회를 직접 찾아가 말씀을 전하고 선물을 나눠주시는 본지 편집고문 김명혁 목사님께서 5월 1일 서울 개포동 사랑의빛교회에 설교하신 내용을 소개합니다. 김 목사님은 2016년 11월 27일 주일 사랑의빛교회를 첫 방문해, 이날 열 세번째로 설교를 전하셨습니다. -편집자 주
장소: 서울 개포동 사랑의빛교회
일시: 2022년 5월 1일
본문: 출애굽기 20:8-11, 마태복음 12:8
오늘날 대부분의 한국교회가 주일 성수를 별로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고, 점점 주일 저녁 예배를 폐지하고 주일 오후 예배로 대치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오늘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주일 성수의 귀중한 신앙’이란 제목으로 설교를 하려고 합니다. 저는 여러 가지 종류의 신앙 중에서 주일 성수의 신앙이 가장 귀중하다고 생각하는 사람입니다.
저는 하나님께서 죄인들을 구원하시는 궁극적인 목적이 하나님께 예배의 제사를 정성껏 드리는데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가장 기뻐하시는 것이 우리들로부터 예배의 제사를 받으시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로마서 1장에서 11장까지 구원의 진리를 설명한 다음 구원의 은혜를 받은 성도들에게 제일 먼저 권면한 말씀이 다음과 같았습니다. “그러므로 형제들아 내가 하나님의 모든 자비하심으로 너희를 권하노니 너희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사로 드리라 이는 너희의 드릴 영적 예배니라”(롬 12:1).
예배의 제사 그것이 구원함을 받은 성도들이 힘써야 할 첫째 일이고, 그것이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첫째 일이라고 지적했습니다. 이와 같은 사실을 성부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여러 번 말씀하셨습니다.
이스라엘을 애굽에서 구원하시는 목적이 가나안 땅에 들어가서 복을 받으며 잘 사는데 있다고 말씀하시지 않으셨습니다. 성부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애굽에서 구원하시는 목적이 하나님을 섬기는데 즉 예배의 제사를 드리는데 있다고 거듭해서 말씀하셨습니다.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너는 바로에게 가서 그에게 이르기를 여호와의 말씀에 내 백성을 보내라 그들이 나를 섬길 것이니라”(출 8:1). 여기 섬긴다는 말은 제사 드리고 예배 드린다는 말씀입니다.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아침에 일찌기 일어나 바로 앞에 서라 그가 물로 나오리니 그에게 이르기를 여호와의 말씀에 내 백성을 보내라 그들이 나를 섬길 것이니라”(출 8:20).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바로에게 들어가서 그에게 이르라 히브리 사람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말씀하시기를 내 백성을 보내라 그들이 나를 섬길 것이니라”(출 9:1).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아침에 일찌기 일어나 바로 앞에 서서 그에게 이르기를 히브리 사람의 하나님 여호와의 말씀에 내 백성을 보내라 그들이 나를 섬길 것이니라”(출 9:13). “내 백성을 보내라 그들이 나를 섬길 것이라”(출10:3).
이와 같은 말씀이 출애굽기 4장부터 계속해서 나옵니다. 출애굽의 궁극적인 목적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애굽에서 독립하여 자유를 누리는데 있다기보다는, 복 받고 잘 사는데 있다기보다는 하나님께 예배의 제사를 정성껏 드리는데 있다고 거듭 말씀하셨습니다.
그런데 예배의 제사의 중심은 구약 시대에는 안식일 성수의 예배의 제사였고, 신약 시대에는 주일 성수의 예배의 제사였습니다.
안식 후 첫날 새벽 즉 첫 주일 새벽에 부활하신 성자 예수님께서 사랑하는 제자 막달라 마리아에게 나타나서 위로와 기쁨과 사명을 부여하셨습니다. 안식 후 첫날 저녁 즉 첫 주일 저녁에 부활하신 성자 예수님께서 사랑하는 제자들에게 나타나서 위로와 기쁨과 사명과 성령을 부여하셨습니다.
신약 성경을 읽어보면 그 후부터 부활의 주님께서 주일날에 성도들에게 나타나셨고 성도들은 주일날에 함께 모여서 예배와 제사를 드렸습니다. 그러면 이제부터 "가장 귀중한 신앙은 주일 성수의 신앙” 이란 제목으로 설교를 하겠습니다.
구원함을 받은 여러분들과 저에게 있어서 가장 귀중하고 가장 아름다운 일은 주일을 거룩하게 지키면서 하나님께 예배의 제사를 정성껏 드리는 일입니다. 그 것보다 더 귀중하고 더 아름다운 일은 이 세상에 없습니다. 주일을 거룩하게 지키는 “주일 성수의 신앙”은 성경의 중심적인 신앙이고 기독교의 핵심적인 신앙입니다.
주일 성수는 하나님께 예배 드리는 것을 가장 귀중하게 여기는 신앙입니다. 앞으로 하늘에서는 구제 봉사 전도 선교 등 중요한 일들은 모두 사라지지만 성부 성자 성령 하나님께 예배 드리는 일은 영원토록 계속된다고 사도 요한이 증언했습니다.
“보좌에 앉으신 이와 어린 양에게 찬송과 존귀와 영광과 능력을 세세토록 돌릴찌어다”(계 5:13). “아멘 찬송과 영광과 지혜와 감사와 존귀와 능력과 힘이 우리 하나님께 세세토록 있을지로다 아멘”(계 7:12).
이것이 하늘에서 드려지는 영원한 안식일 예배 또는 영원한 주일 예배의 모습입니다.
저는 주일을 거룩하게 지키기 위해서 만 11살 때 고향과 아버지와 어머니를 떠나 38선을 넘어서 남한으로 왔는데 그것이 하나님께서 저에게 베푸신 망극하신 사랑과 은혜와 축복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저의 슬픔과 아픔이 가득한 한 평생을 너무 많이 축복해 주셨습니다.
청교도들도 주일을 거룩하게 지키며 하나님께 올바로 예배 드리기 위해서 유럽을 떠나 미국으로 왔는데, 하나님께서 저들의 슬픔과 아픔이 가득한 삶을 너무 많이 축복해 주셨습니다.
이제부터 "가장 귀중한 신앙은 주일 성수의 신앙”이란 제목으로 세 가지 말씀을 드리겠습니다.
1. 주일 성수에 대한 성경의 가르침
첫째, 주일 성수에 대한 성경의 가르침에 대해서 말씀 드립니다. 구약 성경은 안식일을 거룩하게 지키라고 분명하고 강하게 명령했습니다.
“안식일을 기억하여 거룩하게 지키라”(출 20:8). “안식일을 더럽히는 자는 죽일찌니”(출 31:14). “무릇 이 날에 일하는 자를 죽일찌니”(출35:2).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그 사람을 반드시 죽일찌니 온 회중이 진 밖에서 돌로 그를 칠찌니라”(민 15:35).
성부 하나님께서 안식일을 거룩하게 지키라고 명령하신 이유와 목적이 있었습니다. 그것은 인간을 복 주시기 위해서였습니다. 창 2:3을 읽습니다. “하나님이 일곱째 날을 복 주사 거룩하게 하셨으니.”
그리고 출애굽한 이스라엘 백성들을 복 주시기 위해서였습니다. “나를 사랑하고 내 계명을 지키는 자에게는 천대까지 은혜를 베푸느니라”(출 20:6). “나를 사랑하고 내 계명을 지키는 자에게는 천대까지 은혜를 베푸느니라”(신 5:10).
성부 하나님께서 출애굽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십계명을 하사하신 목적은 저들이 하나님께서 내리시는 은혜와 복을 받게 하시기 위해서였습니다.
안식일 성수의 명령은 구약시대에 그친 것이 아니고 신약시대에도 이어졌습니다. 구약의 안식일 제도는 신약의 주일을 준비하는 예표였습니다. 사실 구약의 거의 모든 제도는 신약 시대를 준비하는 예표들이었습니다. 양을 잡아서 제사 드리던 것은 십자가의 제사로 완성되었습니다.
구약의 성전은 신약의 교회로 완성되었습니다. 구약의 할례는 신약의 세례로 완성되었습니다. 구약의 안식일 제도는 신약의 주일로 완성되었습니다. 구약의 안식일 제도는 구약 시대에 잠깐 동안 주어진 제도가 아니라 대대로 영원히 지킬 제도라고 성부 하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너희는 나의 안식일을 지키라 이는 나와 너희 사이에 너희 대대의 표징이니 나는 너희를 거룩하게 하는 여호와인줄 너희로 알게 함이라”(출 31:13). “그것으로 대대로 영원한 언약을 삼을 것이니 이는 나와 이스라엘 자손 사이에 영원한 표징이며”(출 31:16,17).
성자 예수님께서는 자신이 안식일의 완성자이시고 주인이시라고 말씀했습니다. “인자는 안식일의 주인이니라”(마 12:8).
그런데 주일 성수를 무시하고 등한시하는 사람들은 안식일을 거룩하게 지키라는 명령은 구약의 명령이기 때문에 신약 시대에 사는 사람들은 안식일을 지킬 필요가 없다고 말합니다. 그리고 신약시대에 와서는 모든 날이 주의 날이기 때문에 반드시 주일을 거룩하게 지킬 필요가 없다고 말합니다.
주 5일 근무 제도가 실현되고 있는 지금 일요일 대신 금요일 오후나 저녁에 모여서 예배를 드려도 상관이 없다고 말합니다. 이와 같이 말하는 사람들은 하나님의 섭리와 의도를 알지 못하는 무식하고 무식한 사람들이고 무례하고 무례한 사람들이고 하나님의 섭리와 의도를 거역하는 반역자들이라고 생각합니다.
부활하신 성자 예님께서 제자들에게 나타나신 날들은 신약의 안식 후 첫 날인 주일날들이었습니다. 부활의 주님께서 안식 후 첫 날인 주일날 새벽에 막달라 마리아와 여인들에게 나타나셨고 저녁에는 제자들에게 나타나셨고 그 다음 둘째 주일날에는 제자들에게 또 다시 나타나셨습니다.
“안식 후 첫날이 되려는 미명에 막달라 마리아와 다른 마리아가 무덤을 보려고 왔더니”(마 28:1). “예수께서 마리아야 하시거늘 마리아가 돌이켜 히브리 말로 랍오니여 하니 예수께서 이르시되 나를 만지지 말라 내가 아직 아버지께로 올라가지 못하였노라 너는 내 형제들에게 가서 이르되 내가 내 아버지 곧 너희 아버지, 내 하나님 곧 너희 하나님께로 올라간다 하라 하신대(요 20:16,17).
“예수께서 저희를 만나 가라사대 평안하뇨 하시거늘 여자들이 나아가 그 발을 붙잡고 경배하니”(마 28:9). “안식 후 첫날 저녁때에 제자들이 유대인들을 두려워하여 모인 곳에 문들을 닫았더니 예수께서 오사 가운데 서서 가라사대 너희에게 평강이 있을찌어다 이 말씀을 하시고 손과 옆구리를 보이시니 제자들이 주를 보고 기뻐하더라 예수께서 또 가라사대 너희에게 평강이 있을찌어다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 같이 나도 너희를 보내노라 이 말씀을 하시고 저희를 향하사 숨을 내쉬며 가라사대 성령을 받으라 너희가 뉘 죄든지 사하면 사하여질 것이요 뉘 죄든지 그대로 두면 그대로 있으리라 하시니라”(요 20:19-23).
“여드레를 지나서 제자들이 다시 집안에 있을 때에 도마도 함께 있고 문들이 닫혔는데 예수께서 오사 가운데 서서 가라사대 너희에게 평강이 있을찌어다 하시고”(요 20:26).
안식 후 첫날인 주일날에 부활하신 성자 예수님께서 계속해서 제자들에게 나타나신 사실에는 깊은 의미가 포함되어 있었습니다. 안식일의 주인이신 성자 예수님께서 창조와 구속의 사역을 완성하시고 부활하신 날을 새로운 안식과 예배의 날로 제정하신 것이었습니다.
보혜사 성령님이 강림하신 날도 주일날이었습니다. “오순절 날이 이미 이르매”(행 2:1) 라고 했는데 “오순절은 유월절 이후 50일째 되는 날에 지키는 절기였는데 유월절 이후 안식일 이튿날부터 세었다” 라고 박윤선 목사님이 설명을 했습니다. 보혜사 성령님께서 강림하신 날은 안식일 이튿날인 주일날이었습니다. 결국 주일날 예루살렘 교회가 탄생했습니다.
사도 바울도 안식 후 첫날인 주일날 저녁에 함께 모인 성도들과 예배를 드리고 말씀을 전하고 성찬식을 거행했다고 했습니다. “안식 후 첫날에 우리가 떡을 떼려 하여 모였더니”(행 20:7).
부활의 주님께서 밧모섬에 유배되어 있던 사도 요한에게 나타나신 날도 주일날이었습니다. “주의 날에 내가 성령에 감동하여 내 뒤에서 나는 나팔 소리 같은 큰 음성을 들으니”(계 1:10).
신약 성경은 한 걸음 더 나아가 신약의 주일은 영원한 천국의 안식일을 예표하는 것이라고 지적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두려워할찌니 그의 안식에 들어갈 약속이 남아 있을찌라도 너희 중에 혹 미치지 못할 자가 있을까 함이라”(히 4:1).
이렇게 볼 때 구약과 신약 성경이 가르치는 안식일과 주일은 성부 성자 성령 하나님의 구원 역사의 중요한 틀이라고 생각합니다.
안식일과 주일은 하나님의 구원 역사의 중요한 틀입니다. 구약 시대에는 안식일을 통해서 죄인들을 구원하시며 축복하셨고, 신약 시대에는 주일을 통해서 죄인들을 구원하시며 축복하신다는 말씀입니다. 그리고 앞으로 하늘에서는 영원한 안식일을 누리게 될 것이라고 말씀했습니다.
그러므로 구약의 안식일과 신약의 주일은 영원한 하늘의 안식일을 가리키는 예표입니다.
2. 주일 성수에 대한 교회사의 가르침
둘째, 주일 성수에 대한 교회사의 가르침에 대해서 말씀 드립니다. 기독교의 역사는 주일을 거룩하게 지킬 것을 분명하고 강하게 가르칩니다.
초대교회 교부들은 모두 안식일을 지키지 말고 주일을 지키라고 가르쳤습니다. 2세기경의 문서인 디다케는 이렇게 가르쳤습니다. “주일은 특별한 날이므로 함께 모여 죄를 고백하고 떡을 떼며 감사를 드릴 것이다.”
이그나시우스는 이렇게 가르쳤습니다. “이제는 우리가 안식일을 지키지 않고 주의 날을 지키며 살고 있는데 이는 그 날에 우리들의 생명이 빛을 발했기 때문이다.”
2세기 변증가 저스틴은 이렇게 가르쳤습니다. “일요일이라고 부르는 날에 사람들이 한 곳에 모였는데 이 때에 사도들과 선지자들의 글이 읽혀졌다. 일요일은 하나님이 어둠을 변케 하여 이 세상을 창조하신 첫째 날이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죽음 가운데서 부활하신 날이기 때문이다.”
로마의 콘스탄틴 황제는 321년 칙령을 내려 일요일에는 휴식할 것을 명했습니다. “모든 법관들과 도시의 시민들과 상업에 종사하는 자들은 영예스러운 날인 일요일에는 휴식을 취할 것이니라.”
장로교회의 신앙고백서인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서(1647년 제정)가 주일에 대해서 어떻게 가르쳤는지를 살펴보겠습니다. 조금 길지만 아주 중요하기 때문에 그대로 인용합니다.
“하나님을 예배하기 위하여 시간을 따로 구별하여 바쳐야 한다는 것은 자연 법칙에 속하는 일인데, 하나님께서는 그의 말씀 가운데 모든 세대의 모든 사람을 묶는 적극적이고 영속적인 도덕적 계명을 주시므로 일곱 날 중 하루를 안식일로 정하여 자기를 위하여 거룩하게 지키도록 제정하셨다.
이 날이 창세로부터 그리스도의 부활의 때까지는 일 주일의 마지막 날이었는데 그리스도의 부활의 때로부터는 일 주일의 첫날로 바뀌게 된 것이다. 성경에서는 이 날을 주일이라고 부르는데 이 날은 세상 끝날 까지 그리스도인들의 안식일로 지키도록 된 것이다.
이 날에는 그들의 세속적 직업과 오락에 대한 일이나 말이나 생각으로부터 온 종일 쉬어야 할 뿐 아니라 공적 내지 사적 예배 행사와 자선의 의무를 수행하는데 모든 시간을 바쳐야 한다.”
미국 교회의 아버지라고 할 수 있는 조나단 에드워즈도 주일 성수를 강조했고 미국교회의 대표적인 신학자인 찰스 핫지도 주일 성수를 강조했습니다. 찰스 핫지는 주일 성수를 무시할 때 가정과 사회는 타락할 수 밖에 없다고 경고했습니다.
이제 우리 한국 장로교회가 따르는 대한예수교장로회 헌법 예배 모범은 주일 성수의 원리를 다음과 같이 규정하고 있습니다.
“주일을 기념하는 것은 사람의 당연한 의무이니 미리 육신의 모든 사업을 정돈하고 속히 준비하여 성경에 가르친 대로 그 날을 거룩히 함에 구애가 없게 하라. 이 날은 주일인즉 종일토록 거룩히 지킬지니 공동회집으로나 예배하는 일에 씀이 옳으며 종일토록 거룩히 안식하고 위급한 일밖에 모든 사무와 육신적 쾌락의 일을 폐지할지니 세상 염려와 속된 말도 금함이 옳다.”
여기 “종일토록” 이라고 분명하게 지적했는데 요사이는 주일 저녁 예배를 폐지하고 오후 예배로 대치하는 교회들이 많은데 이것은 “종일토록” 안식일과 주일을 거룩하게 지키라는 성경의 가르침을 위배하는 불법이라고 생각합니다.
지금은 주일도 인간 중심적으로 가볍게 잘못 지키고 있습니다.
1920년대 한국교회에 큰 부흥 운동을 일으켰던 김익두 목사님은 “주일을 거룩히 지키자” 라는 제목의 설교에서 다음과 같이 말했습니다.
“주일은 하나님의 날로 정했습니다. 이 날은 하나님의 날이요 거룩한 날이 되어서 구약시대에는 일하는 사람은 다 때려 죽이라고 하였습니다. 주일 범한 사람들은 구약시대 같으면 다 때려 죽일 사람들입니다. 지금은 때려 죽이지는 않지만 죄는 죄입니다.”
저는 성경의 가르침과 교회사의 가르침을 무시하고 즉 기독교의 역사적 전통을 무시하고 현대적 유행에 영합하며 주일 성수를 무시하는 목사들은 무서운 죄를 범하는 못된 죄인들이라고 생각합니다.
3. 주일 성수에 대한 저의 간증
셋째, 주일 성수에 대한 저의 간증의 이야기를 합니다.
저는 주일을 거룩하게 성수하기 위해서 고향과 가정을 떠나 만 11살 때 38선을 넘어서 혼자서 남한으로 내려왔습니다.
제가 만 11살 때 하나님을 바로 믿고 주일을 거룩하게 지키기 위한 단 한 가지 이유와 목적 때문에, 사랑하는 어머니와 동생들과 감옥에 계시는 아버지를 북에 남겨두고, 고향과 집을 떠나 혼자서 남쪽을 향해 달려갈 수 있었던 것은 아무리 생각해도 대단한 일이었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평양에서 초등학교를 다니면서 주일날 학교에 나오지 않는다는 이유로 학교에서 수 없는 비판과 훈계와 처벌을 받았습니다. 제가 다니던 평양 제5인민학교에서 2년 동안 월요일마다 벌을 받곤 했습니다. 그러나 신앙의 선배들과 선생님들의 가르침을 따라서, 저는 한 번도 주일을 범한 일이 없었습니다.
결국 평양 제5인민학교를 5학년에 졸업하고 중학교 입학시험을 치른 후 주일을 거룩하게 지키기 위해서 중학교에 가는 것을 포기하고 38선을 넘어 혼자서 남한으로 내려왔습니다.
아버지와 어머니에게 주일을 바로 지키기 위해서 남한으로 가겠다고 말했을 때 그러면 가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감옥에 계시던 아버지께서는 그러면 너만이라도 가서 믿음을 지키라고 말씀했고 나 없이는 못 산다고 하시면서 나를 너무너무 사랑하시던 어머니도 그러면 가라고 마음으로 우시면서 말씀했습니다.
1948년 8월 캄캄한 어느 날 밤 38선을 넘을 때 우리는 모두 국경을 경비하는 인민군인들에게 붙잡혔습니다. 서지 않으면 총을 쏜다고 위협했습니다. 같이 오던 어른들은 모두 섰습니다. 그러나 저는 설 수 없었습니다. 남쪽으로 가는 분명한 이유와 목적이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아이는 저 혼자였는데 저는 서지 않고 그대로 남쪽을 향해 어둠 속으로 달리기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조금도 무섭지가 않았습니다. 언덕을 넘고 파 밭을 달리고 목에 차는 강을 건너며 30여 분 동안 달려서 남쪽에 도착했습니다.
어느 초가집에 들어갔습니다. 그곳에서 청년 한 사람을 만났습니다. 어디로 가냐고 물었습니다. 내가 서울로 간다고 하니까 그 청년이 저를 기차에 태워서 서울까지 데려다 주었습니다. 저는 그 청년을 천사라고 생각합니다.
서울에서는 수년 전에 먼저 와 계시던 이모님을 만났습니다. 이모님 댁에서 새로운 삶을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밤에는 어머니와 아버지가 보고 싶어서 남몰래 눈물을 흘리면서 울었지만, 주일을 거룩하게 지키며 신앙생활을 마음껏 할 수 있어서 얼마나 좋았는지 모릅니다.
그 이후부터 한평생 하나님께서는 부족한 것이 너무 많은 저의 삶을 너무나 많이 축복해 주셨습니다. 출20장에서 약속하신 대로 저에게 은혜와 축복들을 많이 내려 주셨습니다. “나를 사랑하고 내 계명을 지키는 자에게는 천대까지 은혜를 베푸느니라”(출 20:6).
마음껏 공부하게 하셨고 마음껏 예배 드리며 주님과 교회를 섬기게 하셨고 마음껏 이곳 저곳으로 달려가며 사랑과 도움의 손길을 펴게 하셨습니다.
주일 성수는 저의 일관된 신앙과 삶의 원리가 되었습니다. 주일 성수는 저에게 있어서 생명과 같은 일이었습니다. 그런데 12년 동안 미국에서 공부하고 1974년 가을에 귀국했는데 주일 성수 문제에 부딪혔습니다.
1975년 말경 주민등록 갱신을 일요일에 하라는 통보가 시달되었습니다. 저는 그와 같은 정부 방침에 반대하면서 크리스챤신문 11월 29일 호에 다음과 같은 글을 실었습니다.
“나는 주민등록 갱신을 일요일에 하도록 배정되었다는 통보를 받았다. 이것이 많은 사람들에게 아무런 문제도 되지 않겠지만 나에게는 그렇지가 않았다. 교회의 교육 목사요 신학 대학의 강사이기 때문에 보다는 나 개인의 과거 때문이라고 생각되어진다. … 벌금 낼 각오를 하고 주민등록 갱신을 일요일에 하지 않기로 마음 먹었다.”
그런데 박정희 군사 정부는 교회를 장악하려는 나머지 주일에 국가고시는 물론 학도군사훈련까지 실시했습니다.
저는 정부 정책을 비판하면서 1977년 11월 14일 한국교회 지도적 인물 46명에게 주일 성수에 대한 앙게이트를 보낸 일이 있었습니다. 대부분의 응답은 정부정책에 반대하는 내용이었습니다.
결국 저는 정부의 미움을 사게 되었고 1977년 11월 20일 아침 남산 중앙정보부의 지하실로 붙잡혀 가서 밤 늦게까지 다음날 이른 새벽까지 극심한 심문을 받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저는 단 한 번도 불안하거나 두려워한 일이 없었습니다. 오히려 심문하는 두 사람을 책망하기도 했고 충고하기도 하고 권면하기도 했습니다.
주일 성수를 침해하는 것은 너무너무 어리석은 일이라고 충고했습니다. 반공을 제대로 하려면 하나님을 바로 믿어야 한다고 충고하기도 했습니다.
잠시 쉬는 동안 내가 글을 쓰고 있으니까 무슨 글을 쓰냐고 물었습니다. 다음 주일 설교를 준비한다고 했더니 한 사람이 기가 막힌 듯이 “당신, 도대체 정신이 있는 거요?” 라고 소리를 질렀습니다. 여기 한 번 들어오면 언제 나갈지 모르는데 다음 주일 설교 준비를 한다니 말이 되는 것이냐는 것이었습니다.
저는 이렇게 말을 했습니다. “내가 나가고 안 나가는 것은 당신들의 소관이 아니니 걱정할 필요가 없고 당신들은 다음 주일 후암교회에 와서 내 설교를 들어야 합니다.” 그날 밤 자정이 훨씬 지나서야 잠을 잘 수 있었습니다. 책상 두 개만 있는 유리창도 없는 지하실 방이었습니다.
저는 책상을 간이 침대로 삼고 이불도 없이 그 위에서 단잠을 잤습니다. 아침이 되었을 때 집으로 가라는 것이었습니다. 저는 데려올 때는 좋은 차를 태워주었으면 가라고 할 때도 좋은 차를 태워줘야 하지 않느냐고 말을 했습니다. 결국 한 사람이 나가서 지나가는 좋은 차 하나를 세우고 저에게 그 차를 타고 가라고 했습니다. 아주 유익하고 재미 있는 경험이었습니다.
모두가 망극하신 하나님의 은혜요 모두가 하나님의 도우심이었습니다. 저는 분명히 압니다. 하나님께서는 저의 죄와 허물과 잘못을 모두 아시면서도 저를 많이 축복하신 이유 두 가지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하나는 주일을 거룩하게 지키기 위해서 고향과 가족을 떠난 저의 주일 성수 신앙과, 또 하나는 신앙의 절개를 지키다가 죽임을 당한 저의 아버지의 순교 신앙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한 가지 이야기를 더 합니다. 제가 강변교회에서 목회할 때 한 20여 년 전에 여 집사님들 십여 명이 주일날 오후 비행기를 타고 여행을 갔다가 두 주 후 주일날 오후 비행기를 타고 서울로 돌아온 일이 있었습니다.
저는 교회 앞에서 공적으로 주일을 범한 십 여명 여 집사님들을 치리 즉 징계했습니다. 두 달 동안 교회 안에서 아무 일도 하지 못하게 했습니다. 집사의 일도 교사의 일도 성가대의 일도 하지 못하게 했습니다.
저들은 강하게 반발했습니다. 교회를 떠나겠다는 사람들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저는 조금도 개의치 않았습니다. 결국 아무도 교회를 떠나지 않았습니다. 두 달 후 모두 저에게 와서 무릎을 꿇고 잘못했다고 했습니다.
한 번은 장로님 한 분이 주일날 군에 간 아들을 면회하러 갔습니다. 저는 그 장로님도 치리하며 두 달 동안 아무 것도 하지 못하게 했습니다. 요사이는 주일을 범해도 못 본척 해야 교인들이 많이 모인다고 말하는 목회자들도 있습니다. 참으로 서글픈 일이고 벌을 받아 마땅한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주일 성수는 세상 끝날까지 지속되어야 하는 가장 귀중한 신앙입니다. 하나님께서 가장 기뻐하시는 것이 하루를 구별하여 거룩하게 지키는 주일 성수이고 예배의 제사이기 때문입니다. 이곳이 주일 성수를 가장 귀중하게 여기는 아름다운 교회가 되고, 하나님께서 가장 기뻐하시는 귀중한 교회가 되기를 진심으로 바랍니다.
결론: 주일 성수는 기독교의 핵심적인 신앙
이제 말씀을 맺습니다. 주일 성수의 신앙은 성경의 중심적인 신앙이고 기독교의 핵심적인 신앙입니다. 가장 귀중한 신앙은 주일 성수의 신앙입니다. 이것이 우리 선배님들이 가르치고 물려준 신앙의 유산입니다.
주일 성수의 신앙은 주일을 종일 거룩하게 지키며 하나님께 정성껏 예배 드리는 것을 가장 귀중하게 여기는 신앙입니다. 앞으로 하늘에서는 구제 봉사 전도 선교 등 중요한 일들이 모두 사라지지만, 성부 성자 성령 하나님께 드리는 예배만이 영원토록 계속될 것입니다.
저는 주일을 거룩하게 지키기 위해서 만 11살 때 고향과 아버지와 어머니를 떠나 38선을 뛰어 넘어서 남한을 왔는데, 하나님께서 저의 슬픔과 아픔이 가득한 한 평생을 너무 많이 축복해 주셨습니다.
청교도들도 주일을 거룩하게 지키며 하나님께 바로 예배 드리기 위해서 유럽을 떠나 미국으로 왔는데, 하나님께서 저들의 슬픔과 아픔이 가득한 삶을 너무 많이 축복해 주셨습니다.
주일을 거룩하게 지키면 우리들의 삶이 변화됩니다. 우리들의 삶이 하나님께서 내려주시는 은혜와 축복으로 가득하게 됩니다. 주일을 되는대로 지키면 우리들의 삶이 되는 대로 뒤죽박죽 하게 됩니다. 하나님의 은혜와 축복에서 멀어집니다.
오늘날 한국교회가 새벽 기도와 주일 예배 대신 프로그램과 행사에 치중하는 것은 세속화와 타락의 증거입니다. 주일 대신 토요일이나 금요일에 예배를 드린다고 하는 사람들은 모두 정신 나간 사람들이고 귀신들린 사람들입니다.
주일날 오전 예배만 드리고 저녁 예배를 드리지 않으면 하나님의 계명을 절반만 지키는 것이 될 것입니다. 속아 넘어가지 말기 바랍니다. 세상이 뒤집어져도 주일 성수의 특권을 빼앗기지 마시기 바랍니다.
104세에 돌아가신 방지일 목사님께서 주일 성수가 해이해지는 것을 아쉬워하시면서 저에게 조용히 이런 말씀을 하셨습니다.
“전에는 주일 아침 예배나 저녁 예배에 참석하는 신자들의 숫자가 거의 같았는데 언제부터인가 절반으로 줄어든 것은 문제야요. 그리고 주일 아침에 예배 보고 교인들이 헌금 낸 돈으로 점심 먹고 오후 예배 보고 집으로 가니 참 문제야요. 우리 영등포교회도 오후 예배로 바꾸자는 말이 나오는데 방 목사 죽은 다음에 바꾸자고 해요, 나 참!”
여러분들은 주일을 범하므로 하나님의 징계와 심판을 받지 마시기를 바랍니다. 여러분들은 모두 주일을 거룩하게 지키므로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와 축복을 받으시기를 바랍니다. “나를 사랑하고 내 계명을 지키는 자에게는 천대까지 은혜를 베푸느니라.”
가장 귀중한 신앙은 주일 성수의 신앙입니다. 이 신앙을 죽을 때까지 귀중하게 지키시기를 바랍니다. 하나님의 긍휼과 용서와 자비와 사랑과 은혜와 축복이 사랑의 빛 교회 성도 여러분들에게 충만 하시기를 간절히 바라고 소원하며 축원합니다.
김명혁 목사
강변교회 원로
한국복음주의협의회 명예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