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효상 칼럼] 고독은 죽음을 부른다
1980년대 추억이라면 서정윤 시인의 ‘홀로서기’ 시집으로 선풍적 유행을 만들었고, 가수 변진섭도 이어 노래로 ‘홀로서기’를 열창하였다. 우리 사회는 그렇게 ‘1인’, ‘홀로’의 시대를 맞았고, 지금은 ‘혼밥’시대로 접어들고 있다.
‘혼자 밥을 먹는다’는 것은 그리 즐겁거나 낭만적인 일은 아니다. 혼밥이 고독과 단절의 슬픈 상징이 되면서, 시대상을 묘사하는 단어가 되고 있다.
혼밥을 하며 탈출구가 없는 청년들은 고독하다. 지난 3월 청주 한 원룸에서 20대 청년이 홀로 생을 마감했다. 그는 직장 내에서 따돌림을 당하다 회사를 그만두고 방에서만 지냈다. 박스째로 햇반과 라면을 쌓아두고 끼니를 때우며 술을 마셨다.
아무도 찾지 않는 방에는 생활 쓰레기와 카드론 대출 4,900만 원의 만기를 알리는 우편물이 쌓였다. 그에게는 친인척도 없고 왕래하는 지인도 없었다. 청년은 세 번의 시도 끝에 스스로 삶을 등졌고, 숨진지 13일 만에 발견됐다.
고령화 사회 도래와 함께 1인 가구 증가로 가족 없이 홀로 지내다 사망하는 이른바 ‘고독사’가 늘고 있다. 청년들과 노인들의 외로운 죽음이 바로 그 '고독사'다. 과거엔 홀로 사는 노인층에서 주로 발생했으나, 중년층과 청년층에까지 크게 늘어나고 있다.
이렇게 주변의 도움의 손길을 받지 못하는 상태에서 아무도 모르게 생을 마감하게 된다. 아무도 그들의 죽음을 모른다. 고독은 죽음을 더욱 참혹하게 만든다.
1인 가구가 점점 늘어나면서 주변 마주침이 덜한 상황이다 보니, 문제가 발생했을 때 도움을 쉽게 요청하지 못한다. 평소 ‘은둔형 외톨이’로 주변과 교류가 단절되었기에, 아픈 상태에서도 도움을 청하지 못하고 숨진 뒤에도 한참 뒤 발견된다.
어떤 죽음이든 모두 안타깝지만, 꽃다운 20·30대 청년들의 고독사는 더욱 가슴 아프다. 삶을 마감한 한 30대 청년의 작은 원룸에서는 먹다 남긴 배달 음식 등 수북한 쓰레기들과 함께 150여 장의 이력서가 널브러져 있었다. 그의 인생에 단 한 번의 기회도, 찾아오는 사람도 없이 죽고 난 후 일정 기간 지나서야 발견되었다.
가족들조차 시신을 거부하는 경우도 있었다. 죽음의 순간까지 쓸쓸히 세상과 이별해야 하는 아픔을 지닌 사람들. 그들의 아픔은 어디서 온 것일까.
사회적으로 고립돼 주변과 왕래 없이 홀로 지내다가 세상을 떠나는 고독사는 가파르게 증가하고, 최근 2030 세대들의 청년 고독사까지 확산되고 있는데, 어찌 할 것인가.
청년 고독사는 대체로 높은 실업률에 코로나19 상황까지 겹치며 구직 기회가 사라지고 경제적 빈곤의 문제와 가족 관계가 붕괴되면서 ‘1인 가구’가 증가한데 기인하고 있다.
사회 구조적 문제와 관계적 단절로 부터 야기된 외로움, 무력감, 우울증 등의 증가에서 주된 원인을 찾을 수 있다. 2020년에만 약 4천 명, 즉 하루 평균 11명이 고독하게 생을 마감했고, 3년 새 청년 고독사는 62% 증가했다.
돈을 가진 일부 유명인들의 자기 과시가 삶의 정답이 돼 버리고, ‘N포 세대’, ‘수저계급론’, ‘욜로(YOLO)’로 점철되는 젊은 세대의 자포자기적 절망의 풍조가, 끊임없이 세상을 비관하게 하여 낙심과 죽음으로 내몰고 있다. 그런 슬픔과 한숨 속에서 죽은 자처럼 살아가는 이 시대 청년들에게 누가 희망을 줄 수 있는가.
보건복지부에 따르면 고독사로 추정되는 무연고 사망자 수는 2017년 2천 8명, 2018년 2천 447명, 2019년 2천 656명, 2020년 3천 136명, 2021년 3천 488명으로 집계됐다.
코로나19 사태 이후 더 크게 늘었다. 40세 미만 무연고 사망자 수는 2017년 63명에서 2018년 76명, 2019년 81명, 2020년 104명으로 집계됐다. 통계에서 빠진 경우를 생각하면 실제는 더 많을 것으로 추정된다.
정치권 등에 따르면 ‘고독사 예방 및 관리에 관한 법률안(고독사예방법)’이 국회 본회의를 통과해 2020년 4월부터 시행됐다. 해당 법안은 정부가 5년마다 고독사 예방 기본계획을 수립하고 실태조사, 통계작성 등을 의무화하도록 했다.
그러나 복지부는 고독사 예방에 관한 전담 부서도 아직 정하지 않은 상황이다. 나아가 복지부는 올해 고독사예방법 관련 예산으로 16억 원을 요구했으나, 이마저 감액돼 10억 원이 배정됐다.
요즘처럼 경제적·심리적으로 취약한 상태에 놓인 이들이 외로운 죽음을 맞은 적은 없었다. 혼자 사는 가구가 취업, 빈곤, 대출, 우울증 등 각종 원인으로 힘겨운 삶을 버텨내지 못하고 있다.
고통의 밑바닥에서 고통을 느끼고 그 고통을 수용한 후 필요한 것은 ‘삶의 가치 다시 찾기’다. 지금 내 삶의 고통을 회피로 해결해서 점점 더 괴로워지는 것을 경험한다면, 하던 노력을 멈추고 이제는 고통을 수용하고 고통과 절망의 늪에서 헤엄쳐 나오는 법을 배워보는 것도 좋은 방법이 될 수 있다.
또 사람이 사람다운 삶을 살아가도록 최소한의 기본을 누군가 곁에서 도와주어야 한다. 먹고, 자고, 입는 최소한의 삶의 기준을 만들기 위해선 일자리가 필수다.
거의 대부분은 취직을 해서 돈을 벌어야 인간다운 삶을 영위할 수 있는데, 일자리가 없고 취직이 안 되는 것은 정말 절망일 수 밖에 없다. 한창 일할 20대의 나이에 취업난을 겪고, 대학생라지만 어린 시절부터 학자금 대출의 늪에서 채무자의 삶을 선택할 수밖에 없는 세상이다.
심지어 ‘금수저 흙수저’를 따지고 ‘부모 찬스’로 통해 공정을 뛰어 넘어 살아가는 뉴스를 보며 큰 상실감에 의욕을 잃는다. 누군들 좋은 부모 만나 편한 세상 살아가길 바라겠지만, 모두의 삶이 그렇게 다 똑같겠는가.
하지만 꿈을 그리며 미래를 향해 나아갈 인물들이 점점 희망을 잃어가고, 이 세상의 미래가 될 청년들이 사회와 교류도 할 수 없어 세상을 등지고 떠나야만 하는 이 세상이 정말 정상적인가.
이제 우리나라는 ‘초고령 사회’다. 인구 5명 중 1명 이상이 65세 이상이라는 의미다. 이제 노년의 삶은 공통 관심사라해도 과언이 아니다. 누구나 아름다운 황혼을 꿈꾸지만 현실은 결코 녹록지 않다. 아름답지만은 않다. “오래 사시라”는 덕담이 덕담이 아니라 악담처럼 들릴지도 모른다.
“죽지 못해 산다”는 어르신 말처럼, 수시로 죽고 싶다는 생각에 시달린다. 나이가 들면 원래 다 그런다는 의사의 말이 전혀 위안이 되지 않는다. 이렇게 늘어나는 주름과 함께 우울한 감정도 쌓여만 간다.
2020년 한국보건사회연구원에서 실시한 전국노인실태조사에 따르면, 65세 이상 노인의 13.5%가 우울증상을 보였다. 주목할 점은 85세 이상 연령군의 우울증상은 24.0%로 65-69세 연령군의 3배 수준에 이른다는 것이다. 고령층 우울증상이 연령에 비례해 심각해지는 추세라고 해석할 수 있다.
홀로 사는 고령층 우울의 원인은 다양하다. 전문가들에 따르면 주요 원인으로 배우자나 친구 등 주변인 사망과 이별이다. 그로 인한 충격과 상실감을 꼽는다. 은퇴로 인해 사회생활이 줄어들고, 경제력은 예전에 비해 떨어지고 스트레스 지수는 상승하는 것이 주된 이유다.
개인의 건강 상태도 우울증에 영향을 끼친다. 신체와 정신 기능이 저하된 노인의 경우 그렇지 않은 노인보다 우울증상 수준이 높은 것으로 나타난다. 신체나 정신 기능 저하는 자체로도 문제지만 사회활동 축소를 발생시키기에, 노인의 우울 증상을 더 악화시키는 경향이 있다.
사람들이 지닌 우울은 고독사로 나타난다. 가족, 친척 등 주변 사람들과 단절된 채 홀로 사는 사람이 홀로 죽음을 맞고, 시간이 지난 뒤에 발견되는 것을 의미한다.
통계청 2020년 인구주택총조사 결과를 보면 65세 이상 가구원 784만 6천 명 가운데 1인 가구는 166만 1천 명으로 21.2%를 차지한다. 65세 이상 인구 5명 중 1명이 가족 없이 홀로 살고 있다는 의미다. 게다가 홀로 사는 고령 1인 가구 비중이 점차 늘어나는 추세다.
특히 80세 이상 고령자 1인 가구의 비중이 증가할 것으로 예상돼 고독사가 더욱 우려되는 상황이다. 사각지대에 놓인 이들에게 복지 커뮤니티케어가 시급하고 필요한 이유이다. 통계청 관계자는 “고령자 1인 가구는 계속 증가해 2037년 현재의 2배 수준인 335만 1천 가구, 2047년에는 405만 1천 가구에 이를 것”으로 전망했다.
우리나라의 경우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 노인 자살률 1위라는 오명을 갖고 있다. OECD 평균 기준보다 두 배 이상 높다. 2년 전 통계청 조사에 의하면 우리나라 인구 중 80세 이상이 가장 높은 자살률을 보였다. 독거노인 가구가 다른 가구보다 높은 자살률을 보였다는 점이다.
정부나 지자체가 행정적 노력을 기울이지만, AI 서비스보다 중요한 것은 고령층 고독사와 자살이라는 비극을 막기 위해 혼밥족들과 관계를 이어주는 돌봄의 장이 필요하다.
부천시 성골로에서 성만교회를 섬기며 목회를 은혜롭게 하는 친구 이찬용 목사가 지역 내 경제적 형편이 어려운 어르신들을 섬기기 위해 저렴한 가격에 식사를 할 수 있는 ‘행복한 식당’을 개업했다.
특히 ‘행복한 식당’은 어르신들을 섬기는 데 목적으로 두고 차별화된 가격 정책을 세운 점이 이목을 집중시켰다. 75세 이상 어르신의 경우 1,000원만 내면 정성 들여 만든 한 끼 식사를 맛볼 수 있다. 60-74세 가격은 7,000원, 60세 미만 손님은 받지 않는 것이 특징이다.
주변 상권과 상생을 위한 정책으로 경제적 여력이 있는 손님들은 주변 상가 식당을 이용하도록 하는 취지다. 역시 생각이 앞서간다. 이 참에 필자도 ‘아름다운 식탁’을 만들어 주방장이나 해볼까하는 생각이 든다.
노년층이나 홀로족의 보다 나은 삶을 위한 지역사회 단위 커뮤니티 케어(Community Care) 구축은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지역의 행정복지센터나 사회보장협의회, 희망케어가 다 감당하지 못하는 사각지대에 징검다리를 놓는 관계성에 누군가 나서야 하지 않겠는가. 우리 지역 커뮤니티 케어에 관심과 애정을 갖자.
삶이란 것이 그렇다. 참 허무하다. 인연이 닿아 이 세상에 왔다가 인연이 다 되어서 홀로 남겨지고, 홀로 떠나게 되는 세상. 그렇게 미련도 후회도 부끄러움도 없이 한순간 왔다가 사라지는 바람처럼 떠나가는 것이 인생이 아닐까.
여관이나 좁은 셋방에서 아무도 모르게 임종을 맞이한 이웃들의 마지막을 챙길 수 있도록 제도적 지원이 필요하다. 소리 없이 우는 사람들의 마음을 느낄 수 있는 사람이 되어보자. 그리고 못다한 그들의 말을 천천히 들어줄 넓은 가슴을 가진 ‘어른’이 되어보자. 우리는 ‘홀로’를 통해 ‘홀로서기’ 아닌 ‘함께서기’를 지금 고민하고 생각하게 된다.
이효상 원장
시인, 수필가, 다산문화예술진흥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