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도 바울의 발자취를 찾아서 37] 바울과 요르단(2)
나바테아 왕국, 에서의 후손 에돔 왕국 망한 뒤
페트라 지역으로 이주한 유목민들이 세운 국가
아레다 왕도 바울이 자신들 방해한다 여겼을 것
다메섹에서 광주리 타고 탈출한 이유로 추측돼
갈라디아서(1장 17-18절)에는 바울이 다메섹 길에서 예수를 구주로 영접하고 나서 아라비아에 가서 3년을 거주하였던 내용이 기록되어 있다.
그러나 성경에는 바울이 3년을 보낸 곳이 넓은 아라비아 반도의 어디인지, 그리고 아라비아에서 무엇을 하였는지에 대한 구체적인 설명이 없다.
그러므로 일부 성경학자들은 바울이 갔던 아라비아가 시내(시나이)산이 있는 시내 반도의 광야라고 주장하며, 그곳에서 3년 동안 반성과 묵상, 기도를 하면서 복음 사역을 준비하였다고 한다.
이러한 주장은 갈라디아서 4장 25절에 나오는 ‘아라비아에 있는 시내산’이라는 구절을 근거로 하는지 모르겠으나. 또 다른 주장은 바울이 3년 동안 다메섹 근처에 있는 광야에서 묵상, 기도, 성경읽기를 하면서 장래에 시작할 복음전도를 준비하였다고 한다.
이를 주장하는 학자들에 의하면 모세가 이스라엘 백성을 이집트에서 인도하여 나오기 전에 40년간 시내 광야에서 시간을 보냈고 예수님도 40일간 금식기도를 하였듯이, 바울도 전도 사역을 시작하기 전에 준비기간으로서 3년을 광야에서 보냈다고 한다.
여기에 대해 일부 학자들은 바울이 3년을 보낸 곳은 오늘날 요르단의 남부 지역인 페트라를 중심으로 있었던 나바테아(Nabataea) 왕국이라고 주장한다.
나바테아 왕국은 야곱의 형인 에서의 후손이 세운 에돔 왕국이 망하자 페트라 지역에 아라비아 반도에서 이주해 온 것으로 추정되는 유목민인 나바테아인이 기원전 4-3세기에 세운 왕국이다.
이 주장을 하는 학자들은 바울이 그곳에서 물론 묵상, 기도, 성경읽기도 하였겠지만 예수의 복음을 전파하는 일을 병행하였을 것이라고 주장한다.
왜냐하면 다메섹 성에서 바울을 죽이려고 계획하던 유대인들(사도행전 9장 24절)과 아레다 왕의 방백들(고린도후서 11장 32절)로부터 바울이 제자들의 도움으로 광주리를 타고 탈출하였다는 내용이 실마리를 풀어준다고 여기고 있기 때문이다.
유대인들은 바울이 유대교를 떠나 예수의 가르침을 전도하는 것을 혐오하였다. 그리고 아레다 왕은 그리스와 로마의 신들을 숭배하는 나바테아인들의 종교를 바울이 방해한다고 생각하여 바울을 잡으려고 했던 것으로 보인다.
그러므로 유대인들과 아레다 왕 모두 바울을 다메섹에서 잡으려고 함께 협력하였던 것이라고 생각된다.
나바테아인들은 고대에 이집트, 메소포타미아, 아라비아를 다니며 교역을 하던 아라비아 대상(隊商)들이 다니던 전략적인 교역 요충지인 페트라에 도시를 건축하였고, 사업 이익을 취하기 위해 아라비아 반도에서 이주하여 온 것으로 추정된다.
역사학자들은 사막의 유목민인 나바테아인들의 조상이 아라비아 반도의 북부 지역에 있는 와디 셀한(Wadi Serhan) 지역에서 온 것으로 추축하고 있다.
당시 대상들에게는 유향, 몰약, 염색염료, 비단, 노예 등이 주요 교역 품목이었다. 페트라의 역사와 전략적인 위치를 살펴보면 왜 고대에 나바테아인들이 이곳에서 크게 번영한 사실과, 아라비아 반도와 이집트, 시리아, 그리스, 로마 그리고 동부 지중해 지역의 고대문화(종교를 포함), 문명과 더불어 이 지역의 왕성한 교역활동을 알 수 있다.
즉 페트라 지역은 기원전 수세기 동안 세계의 주요 교역로가 교차하는 지점이었다. 남쪽(아라비아 반도의 남부지역으로서 오늘날의 예멘과 오만 등)에서 오는 유향과 몰약, 그리고 동쪽에서 오는 향료가 나바테아인의 거주 지역을 통해 페트라에 집결하였다.
그리고 서쪽으로는 이집트에, 서북쪽으로는 지중해를 통해 유럽으로, 북쪽으로는 레반트(시리아, 레바논 등)로 가는 사람들도 모두 페트라를 통과하였던 것이다.
권주혁 박사
‘권박사 지구촌 TV’ 유튜브 운영
저서 <사도 바울의 발자취를 찾아서>, <여기가 이스라엘이다>, <천사같이 말 못하고 바울같지 못하나>, <메마른 땅을 종일 걸어가도> 등
성지 연구가, 국제 정치학 박사
세계 136개국 방문
영국 왕실 대영제국 훈장(OBE) 수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