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리스찬북뉴스 칼럼] 잊을 수 없는 결혼식
미국에서 9.11이 터졌을 때, 나는 LA에서 담임 목회를 하고 있었다. 당시 지금도 잊을 수 없는 결혼식 주례를 한 적이 있다. 신부는 3개월 시한부 인생을 선고받은 암환자였다.
결혼 후 허니문을 즐겨야 할 부부에게 남은 시간은 3개월 밖에 되지 않은 상태였다. 그런 신부와 결혼하는 신랑의 모습은 너무도 장엄하고 숙연했다.
아주 감동적이면서도 참 가슴 아픈 결혼식으로 기억하고 있다. 그날 뭐라 설교하고 권면했는지는 생각이 나질 않는다.
마치 장례식처럼 무겁고도 장렬했던 분위기였던 것으로만 기억한다. 결혼식 주례 후 논문을 마치느라 교회를 사임하고 학문의 고향인 시카고로 이사했기에, 이후의 얘긴 듣지 못했다.
주례자인 내게 많은 걸 생각하게 해준 결혼식이었다. 나 같으면 생명이 3개월 밖에 남지 않은 암환자와 그렇게 당당히 결혼할 수 있을까? 신부가 죽으면 3개월 만에 혼자 남게 되고, 다시 결혼하더라도 재혼으로 불리한 상황에 놓이게 될 수밖에 없다.
그럼에도 여자에 대한 남자의 사랑이 얼마나 컸기에 그럴 수 있었던 건지 이해할 수 없었고, 그저 존경스러웠을 따름이었다.
오늘 페이스북에서 이들의 이야기와는 전혀 다른, 분위기의 재미있는 결혼식 영상을 하나 보았다. 주례자는 유머가 출중한 분이었다. 신랑 신부 맞절을 하는 순서에 “사랑하는 만큼 고개를 숙여주세요”라고 두 사람에게 주문했다.
그러자 신랑 신부는 서로를 마주 보고 절을 한다. 그런데 신부가 신랑보다 더 고개를 아래로 숙이는 것이었다. 그 모습을 쳐다본 신랑은 아예 땅바닥에 코를 박은 채 엎드려버렸다.
순간 하객들로부터 웃음이 쏟아졌다. “사랑하는 만큼 고개를 숙이라” 했으니, 신부한테 질 순 없었으리라. 그렇다고 새 양복을 입은 채로 땅바닥에 엎드릴 줄은 미처 몰랐다.
그 모습을 지켜본 하객들의 마음이 얼마나 흐뭇했을까?
무엇보다 결혼식 날의 주인공인 신부의 마음은 얼마나 행복했을까 생각해 보았다. 결혼식 날 그처럼 서로 사랑하고 아끼는 애틋한 마음이 없는 신랑 신부가 있을까? 문제는 세월이 지나면서 결혼식 때 가졌고 맹세했던 사랑의 마음이 식어진다는 것이다.
오랜만에 결혼식 주례를 부탁받았다. 친구 목사님의 딸이 결혼을 하는데, 사위 될 사람이 네덜란드 사람이라 영어와 우리말로 주례를 해야 한대서 내게 요청을 했다.
10여 년 전 시카고의 지인 장로님 아들의 결혼식이 한국에서 열려 주례한 이후로 모처럼 맡은 결혼식 주례다. 오늘 하루종일 학생들이 제출한 페이퍼를 읽으면서, 결혼식 주례 준비를 했다.
최고의 관건은 결혼식 설교를 어떤 내용으로 할 것인가였다. 영어와 우리말로 번갈아 설교를 해야 하기에, 길게 할 순 없다. 어떻게 짧은 메시지를 전할까 고심에 고심을 거듭했다.
결혼식 설교를 진행할 때마다 써먹는 필수 코스가 하나 있다. 신랑 신부에게 윙크를 시키는 것이다. 결혼식에 웬 윙크란 말인가라고 생각하겠지만, 웃음과 함께 평생 지울 수 없는 깊은 교훈을 주는 나만의 전매특허인 퍼포먼스다.
편지로 알게 돼 사랑을 주고받던 청춘 남녀가 결혼하기로 작정하고 처음으로 만나 대면하게 되었다. 자매는 설레는 가슴을 안고 형제를 만나기 위해 약속 장소에 나갔다. 그러나 형제를 만난 자매는 그 자리에서 큰 충격을 받고 말았다.
남자가 눈을 하나 못 쓰는 애꾸눈이었던 것이다. 화가 난 자매가 소리쳤다. “나는 당신이 이런 사람인 줄 몰랐어요. 어떻게 그렇게 중요한 약점을 감추고 나하고 결혼하려고 했어요? 나는 당신같이 뻔뻔스런 사람과는 절대로 결혼할 수 없어요. 당신이 애꾸눈이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당신이 나를 속였다는 사실을 결코 용납할 수 없어요.”
그때 형제도 화를 버럭 내면서 이렇게 대들었다.
“아니 이보시오. 내가 언제 당신을 속였다고 그러시오. 나는 당신을 속인 적이 없어요. 첫 번째 편지를 보낼 때 당신이 보내준 사진을 보고 내가 한 눈에 반했다고 쓰지 않았소?”
벤자민 프랭클린이 이런 얘기를 했다. “결혼 전에는 두 눈을 뜨시오. 그러나 결혼 후에는 한 눈을 감으시오.” 결혼 전에는 두 눈을 부릅뜨고 정말 이 사람이 내 평생 반려자로 부족함이 없는가를 신중하게 따져서 선택해야 하지만, 일단 결혼한 후에는 상대방의 단점에는 무조건 눈감고 오로지 장점에만 눈뜨라는 의미일 것이다.
그런데 우리는 이를 거꾸로 적용하며 살 때가 참 많다. 결혼 전에는 두 눈을 부릅뜨고 내 짝인가를 세밀하게 잘 살펴야 하는데, 결혼할 땐 감정에 휩쓸려 막 결정했다가 결혼하고 나서는 두 눈을 부릅뜨고 상대방의 단점만 보게 되니 그게 큰 문제라는 것이다. 결혼 생활의 비극이 바로 여기에 있다.
윙크의 진정한 의미가 뭔지 알겠는가? “내가 당신과 결혼한 후에는 나는 당신의 장점에만 눈을 뜨고 단점에는 한 눈을 살짝 감고 살겠습니다!”하는 약속이다.
그런 의미에서 설교를 하는 중에 신랑 신부 두 사람이 서로 마주보고 살짝 윙크하게 주문한다. 그러면 두 사람은 물론, 이 모습을 지켜보는 하객들로부터 폭소가 쏟아지고 분위기도 좋아지고, 뜻깊은 교훈도 가슴에 새기게 된다.
오늘 페이스북에서 보았던 ‘사랑하는 만큼 고개를 숙이라!’는 영상 속 그 퍼포먼스도 꽤 구미가 당겨온다. 결혼식 주례 시 꼭 써먹어봐야겠다 마음 먹어본다.
아무리 그래도 여전히 가슴에 깊은 감동과 눈물어린 아픔의 의미로 남아 있는 건 역시 LA에서 진행했던 3개월 시한부 신부와 신랑의 결혼식이다. 말로만 하는 사랑이 아닌, 희생적이고 숭고한 사랑의 결정체 말이다. 아, 오늘 따라 그 사랑이 절실히 그립다.
신성욱
크리스찬북뉴스 편집고문
아세아연합신학대학교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