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제운동(temperance movement)은 18세기 이래 미국에서 음주와 성적 방탕에 대해 경고하는 크리스천들의 운동이었다. 필자로서 흥미있었던 바는 18세기 미국 절제운동의 지도자 중의 한 사람은 미국 정신의학의 아버지인 벤자민 러쉬(Benjamin Rush)였다는 것이다. 절제운동은 주로 금주운동으로 진행되었다. 당시 남자들은 현재의 남자들보다 3배 이상의 술을 마셨다고 하며, 가정내 폭력과 불륜의 원인이었다.
절제운동가들은, 죄에 반대하듯 흑인 노예제도를 반대했고, 술에도 반대했다. 그들은 이런 기독교적 운동으로 국가의 가난과 타락과 범죄를 막아줄 것으로 보았다. 절제캠페인은 점차 여성들에 의해 주도되면서 금주 외에도 성적 도덕도 주장하였다. 당시 최대의 영향력을 가졌던 여성단체는 1873년에 결성된 여성기독교절제연맹(the Women’s Christian Temperance Union; WCTU)이었다. 그 여성들은 술을 실직, 질병, 매춘, 가난, 여성과 아이들에 대한 폭력 등의 원인으로 믿었다. 그리고 그들은 투표권이라는 여성운동도 하였다. (우리나라에서는 조선기독교여자절제회가 1923년 9월 홍에스더 등에 의하여 조직되었다. 현재 대한기독교여자절제회이다.)
19세기의 기독교 2차 및 3차 대각성 부흥운동과 더불어 절제운동은 미국을 금주법(Prohibition)의 시대로 인도하였다. 대각성 부흥운동에 영향을 받은 보수적 복음주의적 내지 경건주의적 프로테스탄트들, 특히 침례교, 감리교, 장로교 등은 음주와 살롱 문화를 반대하며 금주법을 지지하였다. 반면 전례적(liturgical) 교회들, 즉 카톨릭교회, 감독파교회(Episcopal), 독일 루터교 등은 정부가 도덕성을 통제하는 것에 반대하는 의미에서, 그리고 성찬식에 포도주 사용을 범죄시한다는 점에서 금주법에 반대하였다.
금주법은 주마다 다른 시기에 제정되었지만, 1919년에 헌법화됨으로 미국 전역으로 시행되었다. 이후 13년간의 금주법 시대는, 경찰력으로 금주라는 도덕을 강제하게 됨으로 빚어진, 독특한 문화를 만들어 내었다. 금주법 시대에 비밀리에 비합법적으로 술을 파는 “술집”(joints 또는 speakeasies라 불렀다), 지하클럽, 약국을 가장한 술집 등등이 유행하였다. 당시 일차성혁명의 성문란과 음주문화는 금주법으로 막기에 역부족이었다. 또한 술의 공급을 마피아 같은 조직폭력배들이 장악함으로 폭력과 매춘이라는 범죄 문제가 증가하였다. 또한 정체를 알 수 없는 밀주는 사람들의 건강을 해쳤다.
그런 술집들과 바, 비밀캬바레 등은 젊은이들이 보기에 은밀하고 비밀스러우며 매력적이고 흥분되는 곳이 되었다. 술과 성적 만남을 즐기려는 젊은이들이 모여들었다. 전에는 남자들만 술집에 출입하였는데, 이제는 젊은 여성들이 들어가, 남자들과 같이 술을 마시면서 시시덕거리고 춤을 추었다. 당시 “신여성”(New Woman), 또는 플레퍼걸이라 불리던 젊은 여성들은 부모로부터 독립적이었다. 그들은 19세기 빅토리아시대의 억압에서 벗어나 성적 쾌락 추구행동이 활발하였다. 미국의 경우 1929년 싱글 여성들의 절반이 직업을 가졌었다. 그들은 자기들의 즐거움을 위해 쓸 돈이 있었다. 그들의 의상, 화장법, 행동스타일 등이 구세대와 달랐고 성문제에서도 자유로웠다.
젊은 남녀가 만나는 방식이 바뀌었다. 이전에는 남녀의 만남은 결혼을 전제로 미래의 남편이나 아내를 만나는 구혼(courtship-결혼에 이르는 과정)이라는 긴 과정이었다. 그런 만남에는 어른(샤프롱)이 동석하였다. 그런 구애가 이제 둘만의 데이트(date)로 바뀌었다. 데이트는 남녀 둘만의 사적인 밀회였다. 둘이 만나 술집에서 술을 마시거나 춤을 추었고, 외진 곳이나 자동차 안에서 성적 행위를 하였다. 새로이 발명된 문명의 기기인 자동차, 전화, 레코드플레이어 등이 당시 데이트 관행의 발달에 도움을 주었다.
현재 헐리우드 영화들은 20년대의 재즈시대, 찰스턴 댄스, 소란스런 파티문화를 동경하는 듯 묘사하고 있다. 그러나 그 실제 결말은 씁쓸하였다. 특히 플레퍼걸들은 삶의 대가를 치렀다. 대표격인 스콧 피츠제럴드의 부인이었던 댄서이자 작가였던 젤다는 20년대 말 정신병에 걸려 남은 인생을 정신병원에서 보냈다. 작가 피츠제럴드도 평생 술에 쩔어 살았다. 그는 20년대를 “역사상 가장 비싼 섹스파티(orgy)”라 불렀다.
1933년 금주시대가 끝나면서 술집의 밤 문화는 끝나 밖으로 나왔다. 그러나 이때는 대공황이라는 엄청난 사태가 벌어지고 있었다. 또다시 성문화가 바뀌게 된다.
술과 성적 쾌락추구와 죄와 벌은 항상 상호 연결된다는 것은, 개인의 역사나 사회의 역사가 증명한다. 술이, 실직, 질병, 매춘, 가난, 여성과 아이들에 대한 폭력 등의 원인인 것은 틀림없다. 역사적으로, 이런 사실을 알고 최선을 다해 막으려 한 사람들은 결국 크리스천들이었다.
민성길 한국성과학연구협회 회장(연세의대 명예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