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명혁 목사 “제가 임종 기도만 하면 하나님께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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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명혁 칼럼] 부족한 죄인에게 허락하신 은혜와 사랑과 축복 (2)

▲김명혁 목사가 오래된 자신의 성경을 펼치고 있다. ⓒ크투 DB

▲김명혁 목사가 오래된 자신의 성경을 펼치고 있다. ⓒ크투 DB

6. 신복윤 교수님

여섯째로 신복윤 교수님(1926-2016. 1. 14)을 위해 기도했을 때 3시간 30분 후에 별세하신 이야기를 합니다.

신복윤 교수님은 이종성 박사님 한철하 박사님과 함께 한국의 칼빈신학을 주도해 오신 분으로 1990년 한국 칼빈학회 회장을 역임하였습니다.

그런데 신복윤 교수님께서는 저와 윤영탁 교수 박형용 교수와 함께 총신에서 교수 사역을 하시다 1980년 10월에 총신을 떠나 합동신학교와 합신 교단을 창설하는데 주도적 역할을 하셨습니다.

총신에서는 교단과 신학교의 부정한 문제들로 인해 1980년 초부터 신학생들의 소요 사태가 일어나고 있었습니다. 결국 우리 네 교수들은 1980년 10월 도고 관광호텔로 가서 이틀 동안 유하면서 진지한 대화를 나누었습니다. 총신에서는 더 이상 올바른 교수 생활을 할 수 없으니 학교를 떠나자고 제가 제안을 했습니다.

신중하고 진지한 대화를 한 결과 제일 먼저 저의 제안에 동의하신 분이 신복윤 교수님이었습니다. 결국 우리 네 교수들은 총신 채플에서 학교를 떠나기로 했다고 선언을 하고 10월 23일에 사직서를 제출한 후 학교를 떠났습니다. 박윤선 목사님도 나중에 우리들과 합류했습니다.

1980년 11월 11일에 남서울교회에서 합신의 개교 예배를 드렸습니다. 그리고 약 1년 뒤인 1981년 9월 22일에 개혁에 뜻을 같이하는 교회들로 구성된 합신 총회가 창립되었습니다.

그런데 솔직하게 말씀 드리면 그런 과정에서 그리고 합동신학교와 합신교단을 섬기는 과정에서 저를 제일 많이 격려하시고 도우신 분이 박윤선 목사님과 함께 신복윤 교수님이었습니다. 신복윤 교수님은 언제나 신사적이었고 성품은 온유하고 겸손하셨으며 모두에게 부드럽고 따뜻하신 분이셨습니다.

제가 신복윤 목사님과 함께 사역하고 함께 교제하면서 지낼 수 있었던 것이 얼마나 큰 축복이었는지 모릅니다. 신복윤 목사님께서 마지막에 병중에 쓰러져 계실 때 달려가서 임종 기도를 드렸는데 제가 기도를 드린 다음 3시간 30분 후 별세하셨습니다. 신복윤 목사님께서 별세하신 후 제가 다음과 같은 추모의 글을 써서 발표를 했습니다.

“고 신복윤 목사님을 기리며. 하나님께서 부족한 죄인에게 분에 넘치는 은혜와 사랑과 축복을 쏟아 부어 주셨는데 그 중의 하나는 너무 귀중한 신앙의 선배님들을 저에게 부쳐 주신 일이었습니다. 순수한 믿음과 순교의 길로 걸어가신 목사님을 아버지로 따뜻한 희생적인 사랑의 길로 걸어가신 사모님을 어머니로, 이성봉 목사님과 김치선 목사님을 청소년 시절의 신앙의 멘토로, 교수와 목회자의 길을 걸어갈 때 박윤선 목사님 신복윤 목사님 한경직 목사님 정진경 목사님 등을 삶의 멘토로 부쳐 주신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과 축복은 말로 다할 수 없습니다.

합신과 합신 교단을 만들 때 저의 입장에 전적으로 동의하고 함께 해 주시고 지도해주신 분들이 바로 신복윤 목사님과 박윤선 목사님 이었습니다. “바른 신학, 바른 교회, 바른 생활” 이라는 합신과 합신 교단의 모토를 만든 사람이 바로 신복윤 교수님과 저였습니다.

신복윤 목사님은 마음이 통하는 따뜻한 분이었고 성품이 온유하고 인자한 분이었습니다. 다른 사람들에 대한 비판은 거의 하지 않았습니다. 권위주의나 까다로움은 전혀 없었습니다. 같이 있으면 편하고 좋은 분이었습니다. 외모는 너무 멋지고 부드러웠고 인격은 너무 착하고 진실했습니다.

이상하게도 제가 임종 기도를 한 후 몇 시간 또는 며칠 안에 별세하신 분들이 여덟 분 있는데(이중표, 강원용, 김준곤, 박윤선, 정진경, 신복윤 목사님들과 한도정, 이혜옥 권사님들), 그 중 한 분이 신복윤 목사님 이십니다.

제가 1월 14일 오후 4시 30분경 신 목사님을 찾아 뵙고 성경 말씀 세 곳을 읽은 후 임종 기도를 드렸는데 3시간 30분 후인 8시 5분경에 별세하셨습니다. 너무너무 허전합니다. 그러나 너무너무 고맙습니다. 신복윤 목사님께서는 90평생 하나님 나라와 한국교회를 위하여 너무 많이 수고하시고 하나님 품 안에서 편히 쉬시게 되셨습니다. 사랑하고 존경하는 신복윤 목사님! 편히 쉬십시오! 조만간 반갑게 만나겠습니다!”

*제가 신복윤 목사님께서 병중에 쓰러져 계시다는 소식을 듣고 달려가서 성경 말씀 세 곳을 읽은 후 임종 기도를 드리고 나서 자녀들과 유족들에게 “제가 기도하면 혹시 곧 운명하시게 될지도 모르는데요…”라고 조심스럽게 말했더니, 따님 한 분이 “그래도 괜찮아요” 라고 대답을 했습니다. 그런데 제가 기도한지 3시간 30분 후인 8시 5분경 별세하셨습니다. 후에 유족들이 저에게 고마움을 표했습니다.

7. 한도정 권사님

일곱째로 한도정 권사님(1923-2014. 1. 20)을 위해서 기도했을 때 13시간 후에 별세하신 이야기를 합니다.

2014년 1월 21일 아산병원에서 거행된 한도정 권사님 입관 및 발인 예배에서 제가 “주 안에서 죽는 자들은 복이 있도다” 라는 제목으로 설교를 했는데 그 설교문을그대로 옮깁니다.

“한도정 권사님은 저와 함께 영안교회를 시작해서 섬겼고 강변교회를 시작해서 마지막까지 섬겼는데, 주님 사랑과 교회 사랑과 성도 사랑과 이웃 사랑에 최선을 다하면서 살았습니다. 저 한데 야단을 맞으면서 주일을 종일 거룩하게 지키며 예배를 정성껏 드렸습니다. 시간과 물질을 쏟아 바치면서 교회를 사랑으로 섬겼습니다. 성도들과 친밀하게 교제하고 사랑하는데 최선을 다했습니다.

강변교회 성도들과 한국교회의 지도자들이 청평 별장에 자주 가서 한 권사님과 친밀한 교제를 나누며 즐거워했습니다. 정진경 목사님, 방지일 목사님, 최복규 목사님, 홍순우 목사님, 손봉호 장로님, 김상복 목사님, 안만수 목사님, 박범용 목사님, 이수영 목사님, 이현정 목사님, 강승삼 목사님, 김영한 박사님, 임석순 목사님, 박삼열 목사님, 최성규 목사님, 허태성 목사님, 안만길 목사님, 박요나 목사님, 김원광 목사님, 김중석 목사님, 정중열 장로님, 주광조 장로님 들이 모두 즐거워했습니다.

사실 저는 강변교회에서 목회할 때 청평 별장을 내 집 드나들듯 교역자들과 한국교회의 지도자들을 데리고 자주 가서 즐거운 시간을 가지곤 했습니다. 한도정 권사님은 친밀한 교제와 사랑을 나누는데 많은 관심을 기울였습니다. 그래서 많은 성도들이 한도정 권사님을 좋아했고 지금 많은 성도들이 권사님의 별세를 아쉬워하고 슬퍼합니다.

한 마디 말씀을 더 드립니다. 주님 안에서 살다가 주님 안에서 죽는 것이 너무 중요합니다. 성경은 주 안에서 죽는 자들이 복이 있다고 말씀했습니다. “자금 이후로 주 안에서 죽는 자들은 복이 있도다”(계 14:13). 그리고 수고를 그치고 쉬게 되는데 저희의 행한 일이 따른다고 말씀했습니다. “저희 수고를 그치고 쉬리니 이는 저희의 행한 일이 따름이라”(계 14:13).

한도정 권사님은 주님 안에서 살다가 주님 안에서 죽으셨고 지금은 수고를 그치고 주님 안에서 쉬신다고 생각합니다. 바로 이틀 전인 지난 1월 19일 저녁 저희 부부가 한 권사님 댁을 방문해 아들 부부와 함께 예배를 드렸는데 말씀은 하지 못했지만 눈을 조금 뜨고서 반가운 반응을 보이셨습니다.

제가 권사님의 머리에 손을 얹고 간절하게 임종 기도와 같은 기도를 드리면서 십자만을 붙잡으라고 말씀 드렸습니다. 임종 기도를 드린 후 13시간 후인 20일 월요일 아침 7시경에 세상을 떠나셨습니다. 임종 기도를 받은 후 주님 품 안에서 세상을 떠나는 일은 복된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강변교회를 너무너무 귀하게 섬기시던 이혜옥 권사님도 병원에 입원했을 때인 2012년 4월 5일 제가 가서 임종 예배를 드리고 임종 기도를 했는데 4시간 후에 임종하셨습니다. 강변교회 초기 한도정 권사님이 전도해서 예수님을 믿고 전도를 너무너무 잘 하던 조춘국 집사님도 제가 기서 임종 예배와 임종 기도를 드린 다음 즉시 임종을 해서 제가 눈을 감겨드린 일이 있었습니다.

기도를 받은 후 주님 품 안에서 세상을 떠나는 일은 복된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사실 부족한 제가 기도를 드린 후 하루 후에 이틀 후에 삼일 후에 세상을 떠난 분들이 계십니다.

사도 바울은 주님을 믿고 사랑하며 섬기다가 세상을 떠난 사람들을 인해서 슬퍼하지 말고 서로 위로하면서 부활의 아침을 기다리고 권면했습니다. 우리들이 세상을 떠날 때 영혼은 하늘 집으로 올라가지만 몸에 땅에 묻혀 있다가 주님께서 재림하실 때 부활해서 하늘 집으로 올라갑니다. 사도 바울의 권면의 말씀을 읽어드리므로 말씀을 마무리합니다.

“형제들아 자는 자들에 관하여는 너희가 알지 못함을 우리가 원치 아니하노니 이는 소망 없는 다른 이와 같이 슬퍼하지 않게 하려 함이라 우리가 예수의 죽었다가 다시 사심을 믿을찐대 이와 같이 예수 안에서 자는 자들도 하나님이 저와 함께 데리고 오시리라 우리가 주의 말씀으로 너희에게 이것을 말하노니 주 강림하실 때까지 우리 살아 남아 있는 자도 자는 자보다 결단코 앞서지 못하리라 주께서 호령과 천사장의 소리와 하나님의 나팔로 친히 하늘로 좇아 강림하시리니 그리스도 안에서 죽은 자들이 먼저 일어나고 그 후에 우리 살아 남은 자도 저희와 함께 구름 속으로 끌어 올려 공중에서 주를 영접하게 하시리니 그리하여 우리가 항상 주와 함께 있으리라 그러므로 이 여러 말로 서로 위로하라”(살전 4:13-18).

한도정 권사님에게 영원한 하늘의 은혜와 축복을 채워주시고 유족들과 성도들에게 주님의 은혜와 사랑과 위로를 채워주시기를 축원합니다.”(입관 및 발인 예배 설교문)

*제가 임종 기도를 한 다음 하루 후에, 이틀 후에, 삼 일 후에, 몇 시간 후에, 별세하시는 분들이 있었는데 한도정 권사님은 제가 임종 기도를 한 다음 13시간 후에 별세하셨습니다.

8. 이혜옥 권사님

여덟째로 이혜옥 권사님(1945-2012. 4. 5)을 위해서 기도했을 때 4시간 후에 별세하신 이야기를 합니다.

저는 강변교회 권사님들을 위해서 기도할 때 한도정, 이혜옥, 백혜란, 오정석 권사님 등의 순서로 기도하곤 합니다. 이 분들이 저의 목회에 처음부터 마지막까지 순수하고 깊은 감동과 도움과 협력의 손길을 폈기 때문입니다. 언제나 새벽을 깨우면서 간절하게 기도하고 담임 목사의 마음을 알아서 거의 모든 일에 기도와 정성과 물질로 동참하는 분들이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저에게 특별한 선물로 주신 “사랑하는 사모하는 보배로운 동역자들” 입니다. 이혜옥 성도는 강변교회 초창기부터 교회에 출석하면서 착하고 선한 성품과 예의 범절을 몸에 지니고 주님과 교회를 충성스럽게 섬겼습니다. 구역장의 일을 오래했고 여전도회 회장의 일도 했습니다.

이혜옥 권사님은 2007년 1월 7일 다음과 같은 진솔한 그리고 구체적인 “헌신의 기도”문을 써서 올린 일이 있었습니다. 제가 강변교회에서 은퇴하기 만 1년 전의 일이었습니다.

“사랑하는 하나님 아버지! 지난 한 해 아버지의 크신 사랑과 은혜 가운데 지낼 수 있게 하셨음을 감사 드립니다. 사랑을 받을수록 교만해지고 나태해지는 저의 모습을 돌아보며 너무나도 죄스럽고 부끄러워 짐을 고백 드립니다. 년 초에 다짐했던 것들을 몇 분의 일도 실천하지 못한 채 한 해를 보내고 부족한 모습으로 또 다시 새해를 맞아 다시 한 번 더 마음을 다지며 직분 맡은 자로서 헌신의 기도를 드리고자 합니다.

첫째, 모든 것이 하나님의 섭리 가운데 있음을 깨닫고 어떤 일에도 감사하며 기뻐할 수 있게 하옵소서. 둘째, 기도를 쉬는 죄를 범치말게 하옵시며 특별히 연약한 자들을 위한 중보의 기도에 더욱 힘쓰게 하옵소서. 셋째, 모든 것을 주님 앞에 내려 놓고 겸손히 무릎 꿇으며 늘 회개하게 하옵소서. 넷째, (주님의 어떠하셨음을 생각하여) 겸손하고 온유함으로 하나님을 섬기며 이웃을 섬기게 하옵시며, 주저함 없이 아낌없이 하게 하시어 부끄러울 것이 없는 일꾼 되게 하옵소서. 다섯째, 연약한 자, 어려운 자들을 돌아보며 더불어 기뻐하며 슬퍼할 수 있게 하시고 격려와 위로의 사람 되게 하옵소서.

여섯째, 성령의 세미한 음성에 귀 기울여 지체 않고 순종하게 하옵시며 세상이 감당치 못하는 믿음의 소유자 되게 하옵소서. 일곱째, 주님의 사랑하심과 용서하심의 흔적을 좇아 어머니의 넓은 가슴으로 모두를 품게 하옵소서. 여덟째, 진정으로 영혼을 사랑하는 마음 주시어 전도의 재료, 부흥의 재료 되게 하옵소서. 아홉째, 교회의 규범을 지킴은 물론이요 모든 일에 힘을 더하여 맡은 직분을 충성되이 감당하게 하옵소서. 열 번째, 나의 유익만을 생각지 말고 남의 유익을 더욱 생각하여 아름다운 분위기를 만드는 재료가 되게 하옵소서. 성령의 도우심이 없이는 하나도 이룰 수 없아오니 늘 성령 충만함을 주시옵소서.

이 모든 것이 울리는 꽹과리 소리가 되지 않고 마음의 울리는 소리가 되어 늘 저를 깨우게 해 주시옵소서. 이 부족한 것의 마음에도 기도를 주시어 뜻을 이루시고자 하시는 하나님께 감사와 찬양을 드리며 모든 것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 드립니다. 2007. 1. 7 이혜옥 권사.”

이와 같은 귀중한 “헌신의 기도”문을 쓴지 4년 후인 2011년에 이혜옥 권사님이 암에 걸리게 되어 1년 동안 고생을 하시게 되었습니다. 제가 이혜옥 권사님이 심한 병중에 계시다는 소식을 듣고 병원으로 달려갔습니다.

2012년 4월 5일 저녁이었습니다. 가족들과 강변교회 교우들 십여 명이 함께 모여서 임종 예배를 드리게 되었습니다. 제가 말씀을 전한 후 간절하게 임종 기도와 같은 기도를 드렸는데 제가 기도를 드린 다음 4시간 후에 별세하셨습니다.

이혜옥 권사님이 별세 하신지 3일 후인 2012년 4월 8일 주일 제가 강변교회에 가서 “주님 만남의 기쁨” 이란 제목으로 설교를 했는데 설교를 이렇게 시작했습니다. “오랜만에 강변교회에 와서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들과 함께 하나님께 예배 드리면서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게 되어서 너무너무 좋습니다.

그런데 이혜옥 권사님을 다시는 여기서 만나지 못하게 되어서 너무 아쉽지만 이혜옥 권사님이 주님 품으로 돌아가시기 4시간 전에 제가 강변교회 성도들과 함께 임종 예배를 드리며 마지막 가시는 길을 기도와 말씀과 찬송으로 배웅할 수 있어서 너무 감사합니다.”

*제가 임종 기도를 한 다음 하루 후에, 이틀 후에, 삼 일 후에, 몇 시간 후에, 별세하시는 분들이 있었는데 이혜옥 권사님은 제가 임종 기도를 한 다음 4시간 후에 별세하셨습니다.

9. 조춘국 집사님

아홉째로 조춘국 집사님을 위해서 기도했을 때 즉시 별세하신 이야기를 합니다.

제가 1978년 영안교회에서 8개월 간의 개척 목회사역을 마친 후 1980년 4월 강변교회를 시작하기 전 몇 달 동안 성경공부를 인도한 일이 있었습니다. 그 성경공부에 참석한 사람들 중에 한도정 집사님과 그분의 친구 되는 50대 후반의 여자 한 분이 있었습니다. 아주 단정하고 깔끔한 조춘국 이라는 분이었습니다.

기독교에 대해서는 아무 것도 아는 바가 없었습니다. 평생 불교를 믿으며 살아온 분이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런데 그녀는 성경공부를 시작하기 얼마 전부터 척추암에 걸리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딸에게 닥친 불행한 일로 인한 분노가 그녀에게 불면증과 더불어 척추암을 가져온 듯했습니다. 뼈를 깎는 고통이 그녀를 괴롭히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나 성경공부를 시작하면서 그녀는 마음의 평안을 찾기 시작했습니다. 예수님을 주님으로 받아들였고 사죄의 은혜를 체험했습니다. 칼로 찔러 죽이고 싶을 만큼 증오하던 사람에 대한 미움이 차츰 용서와 사랑의 마음으로 바뀌어졌습니다.

어느 날 자기 딸에게 해를 끼친 일로 인해 그렇게도 죽이고 싶어하던 그 원수 같은 친구를 결혼식장에서 만났습니다. 사실 그녀가 척추 암에 걸리게 된 이유 중의 하나가 그 친구에 대한 증오 때문이었습니다. 두 사람의 만남을 목격한 그들의 친구들이 긴장에 쌓여 두 사람을 주목했습니다.

그런데 놀라운 일이 일어났습니다. 그녀가 원수 같은 친구에게 가까이 다가선 것이었습니다. 그리고는 그 친구의 손을 붙잡고 자기는 그 친구를 사랑한다는 말을 서슴없이 내 뱉은 것이었습니다. 그 모습을 지켜본 사람들은 모두 놀라고 감동했습니다.

그리고 며칠 후에는 암에 걸려 고통을 당하던 보사부 차관을 지낸 분을 그녀와 제가 찾아가서 만났는데 그녀와 저의 전도로 주님을 영접하고 평안을 누리게 되었고 후에는 세례까지 받게 되었습니다. 얼마나 고마운 일인지 모릅니다.

물론 조춘국 씨가 척추암으로 인해 중환자실에서 사경을 헤매던 때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우리 모두가 하나님께 매달려 기도하던 중 그녀의 몸 속에서 검은 것들 이십여 개가 나온 후 생기를 되찾게 되었습니다. 그녀는 기쁨에 못 이겨 여기저기 뛰어다니며 전도하기 시작했습니다. 3년 동안 뛰어 다니면서 자기 친구들 대부분을 주님 앞으로 인도했습니다. 집사의 직분도 받게 되었습니다.

물론 그녀는 척추암으로 인한 극심한 고통 때문에 때로 자리에 드러눕곤 했습니다. 그런데 제가 그녀를 방문하고 그녀를 위해서 기도하면 그녀는 그렇게도 극심하게 그를 괴롭히던 고통에서 완전히 벗어나곤 했습니다. 그때마다 그녀는 저에게 이렇게 말하곤 했습니다. “목사님이 기도해 주시면 아픈 것이 다 없어져요.” 그리고 자리에서 일어나서 걸어 다니는 것이었습니다.

그의 남편은 그저 신기하다고만 했습니다. 구원의 기쁨을 체험하고 전도의 사명을 다한 후 가족들과 몇몇 성도들이 찬송을 부르고 제가 임종 기도를 드리는 가운데 조춘국 집사님은 주님 품으로 옮겨갔습니다. 그녀에게 구원의 복음을 전해 준 담임 목사인 제가 그녀의 눈을 감겨 드렸습니다. 참으로 아름다운 축복의 장면이었습니다.

척추암의 아픔과 슬픔은 조춘국 씨에게 있어서 보석이 되었다고 생각합니다. 부족한 죄인을 십자가의 복음을 전하는 하나님의 심부름꾼으로 사용하신 것을 생각하면 무한한 감사를 하나님께 드릴 수 밖에 없습니다. 조춘국 집사님 사랑합니다.

*제가 임종 기도를 한 다음 하루 후에, 이틀 후에, 삼 일 후에, 몇 시간 후에, 별세하시는 분들이 있었는데 조춘국 집사님은 제가 임종 기도를 하는 중에 별세하셨습니다.

10. 안흥규 장로님

열째로 안흥규 장로님 별세와 소천 발인예배에 대한 이야기를 합니다. 강변교회의 대표적인 장로님이었던 안흥규 장로님의 발인 예배를 분당 차병원 장례식장에서 2018.12.19. 8:45에 거행했는데 그 때 제가 한 설교를 거의 그대로 소개합니다.

오늘 우리들이 사랑하는 안흥규 장로님의 별세와 소천 발인예배를 드리면서 저는 이별의 슬픔과 아픔을 마음에 지니는 동시에 안흥규 장로님과 평생 친밀한 교제와 주님 섬김의 삶을 함께 살아온 것을 생각하면서 보람과 감사와 사랑과 존경을 마음에 지니게 됩니다.

사실 이 세상을 살아가는 인간들은 누구나 언젠가는 사랑하는 사람들을 이별하는 이별의 슬픔과 아픔을 마음에 지니게 될 수 밖에 없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사랑하는 아버지와 어머니를 11살 때 이별하는 이별의 슬픔과 아픔을 경험하게 되었고 결혼 후에는 사랑하는 어린 아들 철원이를 이별하는 이별의 슬픔과 아픔을 경험하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저에게 있어서 이별의 슬픔과 아픔은 너무나 귀중한 보석이 되었습니다. 오늘 사랑하는 남편과 아버지를 이별하는 아내와 자녀들은 이별의 슬픔과 아픔을 경험하게 되지만 오늘의 슬픔과 아픔은 조만간 보석이 될 것입니다.

저는 또한 안흥규 장로님과 평생 친밀한 교제와 주님 섬김의 삶을 함께 살아온 것을 생각하면서 보람과 감사와 사랑과 존경을 마음에 지니게 됩니다. 저는 고등학생과 대학생 때 김치선 목사님을 너무너무 좋아하고 존경하고 사랑했는데 김치선 목사님의 말씀을 듣지 않으면 영혼이 살 수 없을 것 같았습니다.

김치선 목사님은 매일 새벽마다 울면서 회개의 기도를 드렸고, 2만 8천 여 동네에 우물을 파게 해 달라고 간절하게 기도를 드리셨습니다. 저는 고등학교 3학년 학생일 때 무조건 왕십리로 달려갔습니다. 왕십리 들판에 우물을 파기 위해서였습니다. 토요일과 주일 왕십리 들판에 나가서 서울고등학교 학생의 교복을 입고 찬송을 부르면서 설교를 했습니다. 아이들이 모여들기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그곳에서 한양공고를 다니던 안흥규 라는 학생을 우연히 만났습니다. 그래서 함께 전도하고 함께 예배 드리기 시작했습니다. 저는 대학생이 되어서도 서울대학교 학생의 교복을 입고 열심히 전도를 계속했습니다. 아이들뿐 아니라 어른들도 모이기 시작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천막을 구해다가 천막을 치고 「한양제일교회」 라는 교회 간판을 달았습니다. 아이들 60여 명과 어른들 40여 명이 모였습니다. 고등학생과 대학생이 시작한 개척교회였습니다.

그때 저와 같이 사역하던 안흥규 학생은 나중에 제가 강변교회를 개척해서 목회할 때 저와 함께 사역을 하게 되었습니다. 1979년 11월 4일 주일 현대아파트에서 강변교회 설립예배를 드렸는데 거기에는 박윤선 목사님과 사모님이 오셨고 한도정 집사님과 안흥규씨 부부와 김재열 전도사 부부 등 장년 22명 어린이 4명이 참석을 했습니다.

안흥규 씨는 후에 강변교회의 장로님이 되었고 한도정 집사님은 후에 강변교회 권사님이 되었는데 두 사람은 저에게 있어서 너무나 귀중한 협력자요 동역자가 되었습니다. 사람의 마음은 조석 변이라고 했지만 안흥규 장로님과 한도정 권사님은 평생토록 일편단심으로 주님과 교회를 충성스럽게 섬기면서 저에게는 많은 위로와 격려와 사랑과 도움의 손길을 펴오게 되었습니다. 안흥규 장로님은 나중에 건축위원장이 되어서 강변교회를 건축하는 귀중한 사역을 하셨습니다.

믿음과 사랑과 섬김의 사람 안흥규 장로님을 남편으로 또는 아버지로 모시고 살아온 아내와 자녀들은 남편과 아버지에 대한 이별의 슬픔과 아픔을 마음에 지니는 동시에 평생 친밀한 교제와 주님 섬김의 삶을 함께 살아온 것을 생각하면서 보람과 감사와 사랑과 존경을 마음에 지니게 될 것입니다.

안흥규 장로님의 아내와 자녀들은 남편과 아버지에 대한 감사와 사랑과 존경을 평생토록 마음에 지니며 살아가게 될 것입니다. 안흥규 장로님이 최근에 세 번 수술을 했는데 첫 번째 수술을 하고 나서는 아내에게 “예수님이 지금 어디 계셔?” 라는 말을 했다고 합니다. 그래서 아내 조원자 권사님이 “예수님이 지금 당신 옆에 계시지.” 라고 대답을 했다고 합니다.

두 번째 수술을 하고 나서는 아내에게 “하나님이 지금 저 위에 계셔” 라는 말을 했다고 합니다. 그래서 아내 조원자 권사님이 “그렇다” 라고 대답을 했다고 합니다 세 번째 수술을 하고 나서는 침대에서 내려오려고 했다고 합니다. 그래서 아내 조원자 권사님이 “왜 침대에서 내려오려고 하느냐?” 라고 물었더니 “교회에 가려고 침대에서 내려오려고 한다” 라고 대답을 했다고 합니다.

얼마나 귀중하고 아름다운 대화인지 모릅니다. 안흥규 장로님은 죽을 병에 걸려서 수술을 받으면서도 오직 예수님과 오직 하나님과 오직 교회에 미치다시피 집중하고 계셨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안흥규 장로님이 몸이 많이 아프시다는 말을 듣고 빨리 찾아가서 기도를 해 드리고 싶었지만 찾아가지 않았습니다. 병중에 있는 사람들을 찾아가서 제가 기도를 드리면 몇 시간 후에 또는 며칠 후에 별세하는 사람들이 많았기 때문이었습니다.

병중에 있던 신복윤 목사님을 찾아가서 기도를 했을 때 3시간 30분 후에 별세하셨습니다. 한도정 권사님을 찾아가서 기도를 했을 때 13시간 30분 후에 별세하셨습니다. 이혜옥 권사님을 찾아가서 기도를 했을 때 4시간 후에 별세하셨습니다. 조춘국 집사님을 찾아가서 기도를 했을 때 즉시 별세하셨습니다. 이중표 목사님을 찾아가서 기도를 했을 때 하루 후에 별세하셨습니다 강원용 목사님을 찾아가서 기도를 했을 때 이틀 후에 별세하셨습니다. 김준곤 목사님을 찾아가서 기도를 했을 때 삼일 후에 별세하셨습니다. 박윤선 목사님을 찾아가서 며칠 동안 매일 기도를 했을 때 하루 후에 별세하셨습니다. 정진경 목사님을 위해서 아침에 기도를 했을 때 그 날 저녁에 별세하셨습니다.

그래서 저의 신학교 제자들이 저를 가리켜 “저승 사자” 라고 하면서 아플 때 저한테 기도를 받으면 안 된다는 말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병 중에 있는 안흥규 장로님을 일찍 찾아가지 않고 기다리다가 이틀 전인 12월 17일 분당 차병원의 담당 의사의 특별 허락을 받고 낮 12시 15분에 찾아가서 안흥규 장로님의 머리에 손을 얹고 조원자 권사님과 함께 다음과 같이 기도를 드렸습니다.

“우리들의 생사 화복을 주장하시는 하나님 아버지, 안 장로님의 생사화복을 하나님께서 주장하시옵소서. 우리들의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 되시는 예수님, 안 장로님의 길과 진리와 생명이 되시옵소서. 예수님의 피 묻은 손으로 안 장로님의 몸과 마음과 영혼을 만져주시옵소서. 성부 하나님의 품에 안 장로님을 안아주시옵소서. 어두움의 세력 죄악의 세력 사탄 마귀의 세력을 나사렛 예수님의 이름으로 물리쳐 주시옵소서!”

이틀 전인 12월 17일 낮 12시 15분에 찾아가서 안흥규 장로님의 머리에 손을 얹고 기도를 드렸는데 3시간 후인 3시 15분경에 별세하셨다는 소식을 조원자 권사님으로부터 들었습니다. 이별의 슬픔과 아픔을 지니면서도 마지막 기도를 드린 후 별세하시게 되어서 얼마나 고맙고 감사한 일인지 모릅니다.

한 말씀 더 드리려고 합니다. 저는 사랑하는 아버지와 어머니와 어린 아들을 이별하는 슬픔과 아픔을 몸과 마음에 지니고 한 평생을 살아왔지만 그 슬픔과 아픔이 보석이 되었다는 이야기 세 가지를 하려고 합니다.

첫째는 슬픔과 아픔의 극치인 십자가로, 십자가로 가까이 가게 되었습니다. 둘째는 슬픔과 아픔을 당하는 수 많은 사람들에게로, 수 많은 사람들에게로, 가까이 가게 되었습니다. 셋째는 사랑하는 아버지와 어머니와 어린 아들이 먼저 간 천국을 사모하고 또 사모하게 되었습니다.

제가 사랑하는 아버지와 어머니와 어린 아들이 먼저 간 천국을 사모하고 또 사모하면서 십수 년 전에 “주님 앞에 섰을 때의 나의 모습”이라는 제목의 글을 쓴 일이 있었는데 그 글을 그대로 인용하려고 합니다. 안흥규 장로님의 아내와 자녀들도 천국을 사모하면서 살게 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주님 앞에 섰을 때의 나의 모습” 저는 얼마 전에 자동차를 운전하고 가면서 이런 생각을 해 보았습니다. 내가 앞으로 아버지 집으로 올라가서 주님 앞에 섰을 때 나의 모습이 어떠할까? 기뻐 뛰는 모습일까? 소리 지르며 감사와 찬양을 드리는 모습일까? 아니라고 생각했습니다. 소리 없이 흐느끼며 뜨거운 눈물을 흘리는 그런 모습일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죄송하고 부끄럽고 고마워서 뜨거운 눈물을 흘리며 흐느껴 우는 그런 모습일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한평생 사는 동안 주님 위해서 산다고 떠들었지만 사실은 불순종과 정욕과 위선과 교만으로 가득했던 것을 되돌아 보면서 얼굴도 들 수 없고 입도 열수 없어서 그저 고개를 떨구고 흐느껴 우는 그런 모습일 것이라고 생각해 보았습니다. 그런데 어째서 나를 주님의 입에서 토해 내지 않으시고 한 평생 붙드시며 사용하셨을까!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너무 부끄럽고 너무 죄송하고 너무 고마워서 뜨거운 눈물을 흘리면서 흐느껴 우는 그런 모습이 주님 앞에 섰을 때의 나의 모습일 것이라고 생각해 보았습니다. 마치 누가복음 7장에 나오는 죄인인 한 여인이 눈물을 쏟으면서 그 눈물로 주님의 발을 적셨듯이 나도 그런 모습을 지니게 될 것이라고 생각해 보았습니다.

저는 또 하나의 나의 모습을 그려 보았습니다. 아브라함과 모세와 다윗 그리고 길선주 목사님 주기철 목사님 손양원 목사님 이성봉 목사님 김치선 목사님 박윤선 목사님 한경직 목사님 등 신앙의 선배님들 앞에 무릎을 끓고 감사와 존경과 사랑을 표시하고 또 표시하는 나의 모습을 그려 보았습니다.

내가 지옥의 형벌에 떨어지지 않고 아버지 집으로 올라오게 된 것은 첫째는 하나님의 무한하신 긍휼과 자비와 은혜와 사랑 때문이지만 둘째는 신앙의 선배님들이 나의 몸과 영혼에 심어준 회개와 믿음과 눈물과 사랑의 씨앗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저는 또 하나의 나의 모습을 그려 보았습니다. 나를 세상에서 가장 슬프고도 아름답게 사랑하시던 어머니를 붙잡고 뜨거운 사랑의 눈물을 흘리는 그런 모습입니다. “손이라도 한번 꽉 쥐어보고 싶다” 라고 말씀하시던 어머니에게 두 손과 두 팔과 온 몸을 안겨드리면서 뜨거운 사랑의 눈물을 흘리는 그런 모습입니다. 그리고 옆에서 빙그레 웃으시면서 나를 바라보시는 나의 아버지 품에 힘껏 안겨드리는 모습입니다.

믿음의 길 충성의 길 순교의 길을 몸으로 보여주신 나의 아버지 품에 힘껏 안겨서 사랑과 존경과 고마움을 속삭여 드리는 모습입니다. 그리고 내가 너무나 슬프고도 아프게 사랑하던 어린 아들 철원이를 품에 안고 너무너무 보고 싶었다고 속삭이는 모습입니다.

저는 또 하나의 나의 모습을 그려 보았습니다. 사랑하는 나의 가족들과 친족들과 성도들을 만나서 너무너무 반가워하는 행복한 나의 모습입니다. 나의 부족한 전도와 목회와 선교를 통해 주님을 알게 되고 믿게 되고 사랑하게 되고 섬기게 된 수 많은 성도들! 부족한 나에게 눈물과 기도와 사랑을 쏟아 바친 수많은 성도들!

강변의 성도들을 비롯한 지구 곳 곳에 흩어져 살다가 하나님의 은혜로 하늘 집으로 올라와서 다시 만나게 된 수 많은 성도들을 만나서 너무너무 반가워 하는 행복한 나의 모습을 그려 보았습니다. 저는 너무너무 부끄러워 뜨거운 눈물을 흘리며 흐느껴 울다가 너무너무 반갑고 너무너무 고마워서 소리 내어 웃으면서 행복해 할 것입니다.

그리고 영원토록 성부 성자 성령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과 긍휼과 자비와 지혜와 권능과 위대하심을 무릎을 꿇고 두 손 높이 들어 찬양하고 또 찬양하고 또 찬양할 것입니다.』(2008년 8월 31일 밤)

이제 안흥규 장로님 별세와 소천 발인예배 설교를 마무리합니다. 저에게 있어 안흥규 장로님은 너무너무 귀중하고 아름다운 분이셨습니다. 저와 친밀한 교제를 나누신 가까운 분이셨고 주님과 교회를 함께 사랑으로 섬기신 너무너무 귀중하고 아름다운 분이셨습니다.

저는 오늘 이별의 슬픔과 아픔을 마음에 지니는 동시에 보람과 감사와 사랑과 존경을 마음에 지니게 됩니다. 한흥규 장로님의 육신은 주님 재림의 때를 기다리면서 땅에 묻히게 되지만 영혼은 하나님 품 안에서 평안과 기쁨과 즐거움과 감사를 누리면서 앞서간 성도들과 함께 성부 성자 성령 하나님을 영원토록 찬양할 것입니다. 유족들과 성도들 모두에게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과 위로와 평안과 기쁨과 축복이 영원토록 함께 하시기를 축원합니다.

11. 나가는 말

이것으로 막가파 김명혁 목사가 저승사자가 된 이야기를 마무리합니다.

부족한 죄인에게 허락하신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과 축복이 얼마나 귀중하고 놀랍고 고맙고 감사한 일인지 모릅니다. 간단하게 한 마디만 더 드립니다.

저는 지난 23년 동안 매달 한 번씩 종교인 모임에 참석하고 있는데, 불교의 법륜 스님이 저보고 모임을 시작하기 전에 기도를 하라고 해서 기도를 하면 모두들 좋아하면서 아멘 아멘 이라고 화답을 합니다.

그런데 법륜 스님이 이런 말을 하곤 합니다. “저는 목사님 기도를 받아서 저승에 빨리 갈 것 같습니다.” 그리고 최근에는 이런 말도 합니다. ”저는 목사님 기도를 받아서 천국에 갈 수도 있을 것입니다.” 너무너무 고맙고 감사한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김명혁 목사
강변교회 원로
한국복음주의협의회 명예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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