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명혁 목사 설교] 피 흘려서 세우신 예수님의 집
일시: 2022년 6월 19일
장소: 보은 창성교회
본문: 엡 1:23, 빌 2:17,18, 골 1:24
오늘 교회 창립 36년을 맞는 보은 창성교회에 진심으로 축하를 드리면서, “교회를 가장 사랑하는 귀중하고 아름다운 삶”이라는 제목으로 설교를 하려고 합니다.
제가 한평생 살아오면서 깨닫고 또 깨달은 것은 이 세상에서 가장 귀중하고 가장 아름답고 가장 축복된 삶은 하나님을 사랑하면서 살아가는 삶이고 그리고 교회를 사랑하면서 살아가는 삶이라고 생각합니다
오늘 아침에는 너무너무 귀중하고 아름다운 삶인 하나님 사랑에 대한 말씀은 잠깐 보류하고 교회 사랑에 대한 말씀을 주로 하려고 합니다.
왜 교회 사랑이 귀중하고 아름답고 축복된 삶입니까? 교회는 성자 예수님께서 피를 흘려서 세우신 예수님의 집이고 몸이기 때문입니다.
“내가 이 반석 위에 내 교회를 세우리니 음부의 권세가 이기지 못하리라”(마 16:18). “하나님이 자기 피로 사신 교회를 치게 하셨느니라”(행 20:28).
교회는 나무와 돌로 지은 집이지만, 사실은 하나님이 되시는 성자 예수님께서 피를 흘려서 사시고 세우신 집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이렇게 찬송을 부릅니다. “내 주의 나라와 주 계신 성전과 피 흘려 사신 교회를 늘 사랑합니다”(찬 246, 208).
저는 오래 전에 이 찬송을 부르면서 울고 또 운 일이 있었습니다. 제가 고등학생인가 대학생 때 대구 주암산 부흥회에 참석해서 찬송가 246장을 부르면서 울고 또 운 일이었습니다.
저는 고등학생과 대학생 시절 한국의 예레미아라고 불리시던 김치선 목사님께서 목회하시던 서울 창동교회에 다니면서 은혜를 받곤 했습니다. 김치선 목사님은 새벽마다 “성령이여 강림하사 나를 감화하시고 애통하며 회개할 맘 충만하게 합소서” 찬송을 부르시면서 눈물을 흘리며 회개의 기도를 드리시곤 했습니다.
저는 김치선 목사님께서 인도하시는 각종 예배는 물론 각종 부흥회에 쫓아 다니면서 은혜를 많이 받곤 했는데 삼각산 관악산은 물론 대구의 주암산까지 쫓아 다니면서 은혜를 받곤 했습니다.
주암산 부흥회 어느 시간에 찬송가 246장을 부르기 시작했습니다. 1절 가사는 다음과 같았습니다. “내 주의 나라와 주 계신 성전과 피 흘려 사신 교회를 늘 사랑합니다.” 저는 1절을 부르고 나서 더 이상 찬송을 부를 수가 없었습니다.
“피 흘려 사신 교회를 늘 사랑합니다”라고 찬송을 부를 때 저의 눈에서는 뜨거운 눈물이 흐르기 시작했습니다. “어떻게 하나님이신 성자 예수님께서 피를 흘려서 교회를 사셨을까?”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너무 놀랍고 너무 감사하고 너무 감격해서 뜨거운 눈물을 흘리지 않을 수가 없었습니다.
저는 또한 “늘 사랑합니다” 라는 가사에 “나는 늘 사랑하지 못하는데” 라고 생각하고 충격을 받으면서 회개의 눈물을 흘리고 또 흘렸습니다. 제가 계속 눈물을 흘리면서 우니까 옆에 있던 어른 한 사람이 “학생 무슨 슬픈 일이나 어려운 일이 있어” 라고 나에게 물었습니다. 저는 아무 대답도 하지 못하고 계속해서 울었습니다. 아마 20여 분 동안을 계속해서 울었을 것입니다.
성자 예수님께서 피 흘려 사신 귀중한 교회를 늘 사랑하여야 하겠다는 다짐을 하고 또 다짐을 하면서 울고 또 울었습니다. 저는 나중에 “하나님이 자기 피로 사신 교회”(행 20:28) 라는 말씀을 귀중하게 여기게 되었고 하나님께서 피로 사신 교회를 더욱 더 사랑하게 되었습니다.
교회는 성자 예수님의 몸입니다.
“교회는 그의 몸이니”(엡 1:23). “그리스도의 남은 고난을 그의 몸 된 교회를 위하여 내 육체에 채우노라”(골 1:24).
교회는 보통 집이 아닙니다. 교회는 성자 예수님께서 피를 흘려서 사시고 세우신 집이고 성자 예수님의 몸입니다. 교회는 건물을 의미하는 것이 아닙니다.
교회는 회개하고 예수님을 믿고 세례를 받고 하나님의 자녀가 된 신자들이 함께 모인 모임을 의미한다고 생각합니다.
신자들이 함께 모인 교회보다 더 귀중하고 더 거룩하고 더 축복된 곳은 이 세상에 없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부활하신 성자 예수님께서 사도 베드로에게 마지막으로 부탁하신 말씀 중의 한 말씀이 “내 어린 양을 먹이라 내 양을 치라” 라는 말씀이었습니다. 여기 “내 어린 양”은 성자 예수님께서 피를 흘려서 사신 교회와 신자들을 가리킨다고 말할 수 있을 것입니다.
성자 예수님께서 피 흘려서 사신 주님의 교회와 주님의 양 무리들을 사랑으로 섬기며 치는 일보다 더 귀중하고 더 아름답고 더 축복된 일은 세상에 없을 것입니다.
결국 사도 베드로는 주님의 교회와 주님의 양 무리들을 사랑으로 섬기면서 치는 목자가 되었고 마지막에는 주님과 주님의 교회를 위하여 자기의 몸을 제물로 드리는 순교의 죽음을 죽었습니다.
사도 베드로의 가르침을 따라서 예루살렘 교회의 신자들은 교회를 자기 집보다 자기 일터보다 더 사랑했습니다.
예루살렘 교회의 신자들은 교회를 사랑하며 날마다 교회에 모이기를 힘썼다고 했습니다. “날마다 마음을 같이 하여 성전에 모이기를 힘쓰고”(행 2:46).
우리들은 지금 날마다 교회에 모이는 것을 싫어합니다. 주일 하루라도 아침부터 저녁까지 종일 교회에 있는 것을 싫어합니다. 몽둥이로 맞거나 심판을 받아 마땅한 죄를 범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예루살렘 교회의 신자들은 교회를 사랑하며 사도의 가르침을 받기를 전혀 힘썼다고 했습니다. “저희가 사도의 가르침을 받기를 전혀 힘쓰니라”(행 2:42).
예루살렘 교회의 신자들은 교회를 사랑하며 서로 교제하기를 전혀 힘썼다고 했습니다. “저희가 서로 교제하며 떡을 떼기를 전혀 힘쓰니라”(행 2:42).
예루살렘 교회의 신자들은 교회를 사랑하며 교회에 나와서 기도하기를 전혀 힘썼다고 했습니다. “저희가 기도하기를 전혀 힘쓰니라”(행 2:42).
우리들은 지금 주일 저녁 예배를 드리는 것을 힘들어 하고 새벽마다 교회에 나와서 기도하는 것을 힘들어 합니다.
예루살렘 교회 신자들은 교회를 사랑하며 사랑과 구제와 봉사에 힘썼다고 했습니다. “믿는 사람이 다 함께 있어 모든 물건을 서로 통용하고 또 재산과 소유를 팔아 각 사람의 필요를 따라 나눠 주고”(행 2:44,45).
교회를 자기 집보다 자기 직장보다 더 사랑하는 일보다 더 귀중하고 더 아름답고 더 축복된 일은 세상에 없을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교회를 너무너무 사랑했습니다.
사도 바울은 빌립보 교회와 성도들을 너무너무 사랑하며 사모했는데 저들을 위해서 자기의 피를 쏟아 제사를 드려도 자기는 기뻐하고 또 기뻐한다고 고백했습니다.
“내가 예수 그리스도의 심장으로 너희 무리를 어떻게 사모하는지 하나님이 내 증인이시니라”(빌 1:8). “만일 너희 믿음의 제물과 봉사 위에 내가 나를 관제로 드릴찌라도 나는 기뻐하고 너희 무리와 함께 기뻐하리니 이와 같이 너희도 기뻐하고 나와 함께 기뻐하라”(빌 2:17,18).
사도 바울은 또한 고린도 교회와 성도들을 너무너무 사랑했는데 저들을 위해서 자기의 재물과 생명을 다 바쳐도 기뻐한다고 고백했습니다.
“내가 너희 영혼을 위하여 크게 기뻐함으로 재물을 허비하고 또 내 자신까지 허비하리니”(고후 12:15).
사도 바울은 또한 데살로니가 교회와 성도들을 너무너무 사랑하며 보고 싶어했는데 저들이 자기의 소망이고 기쁨이고 자랑의 면류관이고 영광이요 기쁨이라고 고백했습니다.
“형제들아 우리가 잠시 너희를 떠난 것은 얼굴이요 마음은 아니니 너희 얼굴 보기를 열정으로 더욱 힘썼노라”(살전 2:17). “우리의 소망이나 기쁨이나 자랑의 면류관이 무엇이냐 그의 강림하실 때 우리 주 예수 앞에 너희가 아니냐 너희는 우리의 영광이요 기쁨이니라”(살전 2:19,20).
사도 바울은 결국 “주님 사랑”에 미친 사람이었고 “교회 사랑”에 미친 사람이었다고 생각합니다.
결국 사도 바울은 성자 예수님께서 피를 흘려서 교회를 세우신 것처럼 순교의 피를 흘리므로 악의 중심부인 로마에 성자 예수님의 교회를 세우는 씨앗과 거름이 되었습니다.
성자 예수님께서 피 흘려서 사신 교회와 양 무리들을 사랑으로 섬기는 사랑의 제물이 되는 것보다 더 귀중하고 더 아름답고 더 축복된 일은 세상에 없을 것입니다.
한국교회 신앙의 선배님들인 길선주 목사님, 이기풍 목사님, 최권능 목사님, 주기철 목사님, 이성봉 목사님, 손양원 목사님, 한경직 목사님은 모두 자기 자신들보다 자기의 부모들과 처자들보다 성자 예수님의 교회와 양무리들을 더 사랑했습니다.
이성봉 목사님은 성자 예수님과 교회를 너무너무 사랑하고 섬기면서 사례비를 집으로 가져오는 일이 거의 없었고 불쌍한 사람들을 사랑으로 돌아보았기 때문에 자기와 가족들은 거지와 같은 가난한 삶을 살았습니다.
한경직 목사님과 장기려 박사님은 성자 예수님과 교회와 불쌍한 사람들을 너무너무 사랑하고 섬기면서 자기들은 삼무 사무 오무의 가난과 고난을 몸에 지니고 청빈하게 살았습니다.
손양원 목사님은 성자 예수님과 교회와 불쌍한 사람들을 너무너무 사랑하고 섬기면서 아니 원수와 같은 사람들까지 사랑으로 품으면서 성자 예수님 닮은 가난과 고난과 죽음을 몸에 지니는 귀중한 삶을 살다가 순교의 죽음을 죽었습니다. 손양원 목사님의 애양원 교회 사랑의 간절한 기도문 하나를 읽어드립니다.
“주여 애양원을 사랑하게 하여 주시옵소서. 주여 나로 하여금 애양원을 참으로 사랑할 수 있는 사랑을 주시옵소서. 주께서 이들을 사랑하심 같은 사랑을 주시옵소서. 오 주여, 나는 이들을 사랑하되 나의 부모와 형제와 처자보다도 더 사랑하게 하여 주시옵소서. 차라리 내 몸이 저들과 같이 추한 지경에 빠질지라도 사랑하게 하여 주시옵소서. 주여, 만약 저들이 나를 싫어하여 나를 배반할지라도 나는 여전히 저들을 참으로 사랑하여 종말까지 싫어 버리지 않게 하여 주시옵소서.
오 주여, 내가 이들을 사랑한다 하오나 인위적 사랑, 인간적 사랑이 되지 않게 하여 주시옵소서. 사람을 위하여 사랑하는 사랑이 되지 않게 하여 주시고 주를 위하여 이들을 사랑하게 하여 주시옵소서. 주보다는 더 사랑치 않게 하여 주시옵소서. 주여, 내가 또한 세상의 무슨 명예심으로 사랑하거나 말세의 무슨 상급을 위하여 사랑하는 욕망적 사랑도 되지 말게 하여 주시옵소서.
다만 그리스도의 사랑의 내용에서 되는 사랑으로서 이 불쌍한 영육들만을 위한 단순한 사랑이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오 주여, 나의 남은 생이 몇 해 일지는 알 수 없으나 이 몸과 맘 주께 맡긴 그대로 이 애양원을 위하여 충심으로 사랑케 하여 주시옵소서. 아멘.”
여기 “사랑” 이란 말을 23번이나 반복해서 사용했습니다.
부족하고 또 부족한 제가 어릴 때부터 하나님의 망극하신 은혜와 사랑과 축복으로 성자 예수님과 주님의 교회를 너무너무 좋아했고 사랑했다는 이야기를 하려고 합니다.
저는 어릴 때부터 교회에 가서 종일 예배 드리는 것이 학교에 가서 공부하는 것보다 더 좋았습니다. 초등학생 때 평양에서 살면서 평양 제 오 인민학교에 다녔는데 북한에서는 주일에도 교회에 가지 못하게 했고 학교에 오라고 했습니다. 그러나 저는 2년 동안 주일 날 한 번도 학교에 가지 않고 교회에 가서 아침부터 저녁까지 종일 교회에 있으면서 예배를 드렸습니다.
결국 저는 월요일마다 학교에서 벌을 받았고 때로는 정학을 당했습니다. 그러나 저는 그것을 당연하게 생각했습니다. 그 때 저의 아버지 김관주 목사님은 신앙생활을 바로 하시다가 감옥에 붙잡혀 가서 감옥생활을 하고 계셨습니다.
결국 저는 주일을 거룩하게 지키며 교회에서 자유롭게 예배 드리기 위해서 11살 때 사랑하는 부모님과 고향을 떠나 38선을 혼자 뛰어넘어서 남쪽으로 오게 되었습니다.
감옥에 계시던 아버지를 찾아가서 주일을 바로 지키면서 신앙생활을 바로 하기 위해서 남쪽으로 가겠다고 말씀했을 때 아버지는 저를 한참 바라보시다가 “그러면 가” 라고 말씀했습니다. 저를 너무너무 사랑하시던 “나는 너 없이는 못 살아” 라고 자주 말씀하시던 어머니도 제가 남쪽으로 가겠다고 했을 때 울면서 “그러면 가” 라고 말씀했습니다.
결국 저는 캄캄한 밤에 38선을 혼자서 뛰어넘어서 남쪽으로 오게 되었습니다. 제기 11살 때인 1948년 8월이었습니다. 몇 명 어른들과 함께 38선을 넘고 있었는데 갑자기 군인들이 달려와서 서서 손을 들지 않으면 총을 쏜다고 소리를 질렀습니다.
어른들은 모두 서서 손들을 들었습니다. 저는 혼자서 남쪽을 향해 달리기 시작했습니다. 한 40여 분 동안 언덕을 넘고 파밭을 달리고 목에 차는 강을 건너서 남쪽에 도착했습니다.
제가 서울까지 오게 된 이야기는 생략합니다. 저는 한 평생을 부모님을 이별한 고아와 나그네로 가난과 고난과 슬픔과 아픔을 지니고 살았지만, 남한에 와서 주일 날 종일 교회에 가서 예배 드리며 봉사하는 것이 너무너무 좋았습니다. 저는 그 후부터 평생 주일에는 종일 교회에 있으면서 예배와 봉사와 전도에 전력을 다했습니다.
1948년부터 1950년까지는 서울에서 살면서 신앙생활을 정성껏 했고, 1950년 6.25 전쟁이 일어나 대구로 피난을 가서 3년 동안 중학생 시절을 보내면서 신앙생활을 정성껏 했는데 저는 3년 동안 새벽기도를 거의 빠지지 않았고 주일에는 종일 교회에 있으면서 아침 예배와 저녁 예배를 드렸고 봉사도 하고 전도도 했습니다.
그리고 한국의 무디 라고 불리시던 이성봉 목사님께서 인도하시는 부흥회에 12번이나 참석하면서 깊은 감동과 은혜를 받곤 했습니다. 이성봉 목사님의 안수기도를 12번이나 받았습니다.
고등학생과 대학생 시절에는 서울로 돌아와서 한국의 예레미아 라고 불리시던 김치선 목사님께서 목회하시던 창동교회에 다녔는데, 주일 아침과 저녁과 수요일 저녁은 물론 새벽기도회도 빠지지 않았고 교회에 나와서 예배와 기도를 드리면서 신앙생활을 열심히 했고 교사의 일과 봉사의 일과 전도의 일을 열심히 했습니다.
김치선 목사님께서 새벽마다 우시면서 회개의 메시지를 전하셨고 그리고 2만 8천여 동네에 기서 우물을 파게 해 달라고 간절하게 기도하시곤 했습니다.
저는 서울고등학교 3학년 학생일 때 김치선 목사님의 기도와 말씀에 순종해서 왕십리 들판에 나가서 토요일과 주일 찬송을 부르고 전도하면서 어린이들과 어른들을 모아놓고 예배를 드리기 시작했습니다. 고3 때는 공부에 전념하는데 저는 전도와 목회에 전념했습니다. 그런데도 서울대학교 문리대에 합격을 했습니다.
천막을 사다가 교회를 세우고 2년 동안 개척 목회를 했습니다. 나중에는 어린이들 60 여명과 어른들 40 여명이 교회에 나왔습니다. 얼마나 감사한 일이었는지 모릅니다. 부족한 제가 교회 사랑에 전념하게 된 것은 하나님께서 저에게 베푸신 크신 은혜와 사랑과 축복이었다고 생각합니다.
제가 12년 동안 미국에서 유학 공부를 한 후 귀국해서는 후암교회에서 5년 동안 교육 목사의 사역을 정성을 다해서 했고, 압구정동 영안교회에서 1년 동안 개척 목회를 정성을 다해서 했고, 그 후에는 청담동과 도곡동에 강변교회를 개척해서 28년 동안 목회를 하면서 교회를 정성을 다해서 열심히 섬겼습니다.
저는 강변교회에서 목회하면서 부족하지만 저의 사랑과 정성을 다 쏟아 부었습니다. 집도 바치고 재물도 바치고 10여 년 동안의 사례비도 받지 않고 교회에 바쳤습니다. 시간도 바쳤습니다.
저는 28년 동안 목회하면서 새벽기도에 빠지는 일은 없었고 주일 날에는 집에 가지 않고 종일 교회에 있었습니다. 교회가 좋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어린이들과 새 신자들과 성도들과 교역자들을 진심으로 사랑했습니다. 아주 아주 행복한 목회였습니다.
하나님께서 부족한 저에게 베푸신 망극하신 은혜와 축복이었다고 생각합니다. 지금도 부족하지만 은퇴 후 지난 14년 이상 동안 전국에 흩어져 있는 주님께서 피 흘려서 사신 주님의 작은 교회들을 주로 돌아보고 있는데 너무너무 감사하고 너무너무 기쁜 일입니다. 너무너무 행복합니다.
성자 예수님께서 피 흘려서 사시고 세우신 주님의 교회와 양 무리들을 사랑으로 섬기는 일보다 그리고 주님의 교회와 양 무리들을 위해서 시간과 정성을 드리는 제물 되는 삶을 사는 일보다 더 귀중하고 더 아름다운 일은 세상에 없을 것입니다.
그런 귀중한 일을 사도 베드로와 사도 바울이 했고 토마스 선교사와 언더우드 선교사와 아펜셀라 선교사가 했고 주기철 목사님과 손양원 목사님이 하셨습니다.
이제 말씀을 마무리 합니다. 하나님께서 부족한 저와 여러분들을 불쌍히 여기시고 사랑하시고 도와주셔서 우리들도 우리 신앙의 선배님들을 따라서 우리들 자신보다 우리들의 집보다 우리들의 일터보다 우리들의 재산보다 우리들의 부귀나 영화보다 그리고 우리들의 생명보다 “주님 사랑”과 “교회 사랑”에 미쳐서 살다가 미쳐서 죽게 하시기를 바라고 소원합니다.
“주님 사랑”과 “교회 사랑”을 위한 제물 되는 삶을 살게 하시고 제물 되는 죽음을 죽게 하시기를 간절히 바라고 소원합니다. 제가 2017년 12월 28일 밤 들어 누어 자면서 쓰게 된 “나의 마지막 소원과 기도” 라는 제목의 글을 거의 그대로 인용하므로 오늘 말씀을 마무리 하려고 합니다.
『제가 얼마 전에 밤에 들어 누어 자면서 “나의 마지막 소원과 기도”가 무엇인가를 깊이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다가 그것은 성부 성자 성령 하나님께 미쳐서 살다가 미쳐서 죽게 되는 것이라고 생각하면서 그것을 다짐하고 또 다짐하게 되었습니다.
부족하고 또 부족한 죄인인 저도 사도 바울처럼 세상의 유익하던 모든 것을 배설물로 여기면서 즉 나의 지식과 나의 업적과 나의 명예 등 내가 귀중하게 여기던 모든 것을 배설물로 여기면서 모두 내어버리고 그리고 가난과 고난을 몸에 지니시고 오직 나 위해서 사시다가 십자가에 달려서 죽으신 성자 예수님의 사랑에 미치고, 나 대신 독생자 예수님을 십자가에 달서 죽게 내어버리신 성부 하나님의 사랑에 미치고, 나의 연약함을 도우시고 나 위해서 탄식하시면서 기도해주시는 성령 하나님의 사랑에 미쳐서 살 수는 없을까? 이것이 제가 가슴에 지니게 된 “나의 간절한 소원과 기도” 였습니다.
사실 저는 저도 모르는 가운데 나 자신의 지식과 나 자신의 업적과 나 자신의 명예에 치우쳐서 스스로 속아넘어가면서 위선과 독선을 지니고 살아오고 있다는 사실을 발견하고 처절한 고민을 하나님 앞에 토로하게 되었습니다.
“내가 한 평생 목회의 일도 잘 했는데, 내가 한 평생 교수의 일도 잘 했는데, 내가 한 평생 선교의 일도 잘 했는데, 내가 한 평생 섬김의 일도 잘 했는데, 내가 한 평생 구제의 일도 잘 했는데, 나는 지금도 은퇴 후 작은 교회들을 주일마다 방문하면서 순회 목회의 일도 잘 하고 있는데, 나만한 사람도 별로 많지 않을 텐데.”
저는 이와 같은 위선과 독선 의식에 사로잡혀서 살아오고 있다는 사실을 발견하고 처절한 고민을 하나님 앞에서 토로할 수 밖에 없게 되었습니다. “하나님 아버지, 저는 위선과 독선으로 가득한 죄인 중의 괴수입니다. 하나님 아버지 저를 몽둥이로 쳐 주시옵소서.
신앙의 선배님들 이야기는 너무 많이 하는데, 스데반 집사님과 폴리캅 감독과 성 프랜시스와 주기철 목사님과 손양원 목사님과 이성봉 목사님과 한경직 목사님과 장기려 박사님 이야기는 너무 많이 하는데, 신앙의 선배님들을 닮는 일은 전혀 하지 않고 있습니다. 이 위선자를 몽둥이로 쳐 주시옵소서.
손양원 목사님께서 주님 사랑에 미치시고, 나환자 사랑에 미치시고, 애양원 교회 사랑에 미치시고 원수 사랑에 미치시고, 순교 사랑에 미치시고, 천국 사모에 미쳐서 사시다가 죽으셨는데, 부족하고 또 부족한 저도 조금이라도 아주 조금이라도 성부 성자 성령 하나님의 사랑에 미치고, 나환자 사랑에 미치고, 교회 사랑에 미치고 원수 사랑에 미치고 천국 사모에 미쳐서 살다가 죽게 하시옵소서!
하나님 아버지 저를 불쌍히 여기시고 앞서 가신 신앙의 선배님들이 사시다가 죽으신, ‘미친’ 삶과 ‘미친’ 죽음을 조금이라도 아주 조금이라도 살다가 죽게 하시옵소서! 성자 예수님의 이름으로 성령 하나님을 의지하면서 성부 하나님께 간절히 기도 드립니다. 아멘!”(2017.12. 28 밤)』
김명혁 목사
강변교회 원로
한국복음주의협의회 명예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