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CC와 마르크스주의 3] 샬롬과 하나님의 선교
3. WCC의 유토피아적 종말관
공산주의자들은 ‘공산당 선언문’의 지령대로 모든 계급을 타파하여 계급이 없고 국가도 없는 무산계급 사회를 구축하려는 목적으로, 모든 무산층 계급을 국경 없이 하나로 일치하여 단결해 나가고 있다.
그들의 목적은 차별과 착취와 불공평이 없는 새로운 구조를 세우는 일이고, 구시대적인 모든 ‘착취자들’과 그러한 구조로 굳어진 지배자들과 가정과 국가와 경제적 사회적 구조를 모두 유혈혁명을 통해 파멸시키고, 국가가 없는 신 세계를 만들고자 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이러한 유토피아는 ‘나라’라 하지 않고 ‘사회’라 한다. 오늘날 공산주의 국가들은 와해되었거나 열악한 상태로 남아 있을지라도, 공산주의 사상은 계속 확산되고 있다.
마르크스주의는 기독교 분파인 개신교, 가톨릭, 정교회가 다 연합한 세계교회협의회(WCC)를 장악하여 그 속에 공산주의 사상을 확산시켜 나가고 있다. 2013년 제10차 부산 총회는 140여 개국 349개 교단의 참여와 세계 5억여 명 회원이라는 막대한 숫자를 보유하고 있다. 그러나 WCC는 개인이 아닌 교단 회원제여서, WCC 내부에는 상당수의 복음주의자들도 포함돼 있다.
WCC와 공산주의 이념과의 관계는 점진적으로 발전하였다. 1948년 창립총회에서는 회원들이 공산주의와 민주주의 어느 쪽도 지지하지 않았다.
이 총회는 한편으로 경제적 정의를 강조하고 혁명을 완수하면 자동적으로 자유가 도래한다고 했던 거짓 약속에 대하여 공산주의를 비판하고, 다른 한편으로 자유를 강조하며 자유로운 기업의 부산물로서 정의가 이루어진다고 했던 민주주의의 거짓 약속도 비판했다.
WCC는 이 두 이념을 근간으로 오히려 집단적 탐욕과 잔인성이 굳어짐으로 인한 사회악이 출현하게 되어, 개인의 도덕성과 책임성이 감소된 결과가 초래되었다고 하였다. 또한 공산주의는 인간 평등과 세계 동포주의를 지지하는 것으로 인식되고, 기아와 불안을 피할 수 있어 보이는 매력을 무기로, 식민지 주민을 위한 지원을 선언하여 제3 세계에 큰 호응을 불러 일으켰다.
반면 기독교인들은 자본주의의 혜택을 누리며 노동자들의 간청에 무관심하고, 교회의 호소력은 발휘되지 않았다고 하였다. 그러므로 교회는 사회를 위한 내적 갱신이 필요하고, 세상에서 실의에 빠진 사람들과 하나가 되어야 한다고 하였다. 그리고 복음을 ‘인간의 총체적 삶을 위한 복음’의 의미로 해석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1948년 창립총회 보고서는 이처럼 1960년 이후 이슈가 될 ‘총체적 선교(wholistic mission)’의 기초를 놓았고, 교회의 사회윤리에 대한 심각한 반성을 보였다. 그때는 러시아 정교회가 WCC에 가입되지 않았을 때인지라, 이념(Ideologie)에 대한 특별한 호감이나 적개심은 표명되지 않았다.
그러나 1961년 제3차 WCC 뉴델리 총회 때부터 WCC는 자본주의만 일방적으로 비판하며, 마르크스주의적 이념과 일치하는 ‘새 사회, 새 인간’을 창조하려는 유토피아 신학을 확고히 수립하였다. 1952년 제5차 에큐메니칼 세계선교협의회(IMC)에서 하나님의 선교(Missio Dei)라는 새로운 선교관이 세워졌다.
1949-1952년 제네바 WCC 총회 총무였던 네덜란드 선교신학자 요한네스 호켄다이크(J. C. Hoekendijk)가 만인구원관과, 현세적 구원, 비신앙인의 구원을 포괄하여 마르크스주의적 경향을 뚜렷이 제시하였다.
하나님의 선교 신학의 상징적 인물인 호켄다이크는 구속사와 세속사의 이중 역사관을 버리고, 일원론적 역사관을 주장하였다.
구스타프 바르넥(Gustav Warneck)은 비기독교인에게로 가서 교회를 조직하고 세우는 행위를 선교라고 했는데, 호켄다이크는 이러한 선교관을 비판하며, 기독교 지역과 비기독교 지역, 신자와 불신자의 지역으로 따로 나누고 신앙인이 그 경계선을 넘어서 비신앙인들에게 가는 것으로 생각하는 선교관을 비판하였다.
하나님은 전체 피조물과 교제하기를 원하시며, 하나님의 최종 목표는 교회가 아니라고 주장하고, 교회는 다만 세상의 ‘한 조각’이며, 세상에 부과된 ‘하나의 첨가물(postscript)’일 뿐이라고 하였다.
호켄다이크가 주장한 오직 하나의 세속 역사는 하나님께서 이 세상에서 이루시는 샬롬(Shalom)의 역사이며, 이 세속적인 샬롬의 나라가 바로 하나님 나라라는 것이다. 그는 하나님의 보좌가 있는 ‘하나님 나라’에 관하여는 전혀 흥미가 없었다. 대신 하나님 나라를 이 땅 위에 세워야 할 유토피아로 대체한 것이다.
그는 이 샬롬이 ‘마음의 평화’를 말하는 것이 아니라고 주장한다. 또 샬롬이 인간의 내적 본질과 관계된 것이 아니라, 사회적이자 인간관계의 사건이라고 한다.
원래 유토피아주의자들에게는 하나님 나라라는 개념이 없는데, 호켄다이크는 기독교적 하나님 나라 개념에 유토피아적 샬롬의 사회를 혼합하였다. 그는 기독교의 ‘평안(Shalom)’을 공산주의 이념으로 해석한 혼합주의자이다.
호켄다이크는 이 샬롬이란 ‘교회의 모습(Statur)과 신분(Status)’을 다 도말하고, 세상 사람과 똑같이 되는 것이라며, 그 성경적 근거로 빌립보서 2장 5절 이하 말씀으로 ‘종의 형태를 입은 메시야의 삶’을 제시한다.
재물에 부유한 교회는 세상과 동료 의식을 가지고 하나님의 선교에 참여하기 위해 자신의 전 소유를 바칠 준비가 되어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호켄다이크의 사상은 모든 부르주아를 타도하고, 교회 안에서는 모든 교회의 모습과 신분을 폐지하는 마르크스주의 사상에 흠뻑 젖어 있었다.
죄 없으신 예수 그리스도는 이사야의 예언과 같이 이 땅에 오셔서 우리를 대신하여 무서운 사형수로 정죄받으시고 우리의 흉악한 죗값을 치르셨으며, 우리를 죄로부터와 하나님의 심판으로부터 해방해 주신 최대의 의인이시다(이사야 53장).
그럼에도 불구하고 호켄다이크는 예수 그리스도의 섬김과 희생을 백안시하고, 성경 구절을 마르크스주의적 혁명이론으로 해석하여, 예수 그리스도의 섬김처럼 ‘교회의 모습(Statur)과 신분(Status)’을 다 사멸시켜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그는 ‘사도들과 선지자들의 터 위에’ 세운 전통적인 교회의 신앙과 신조들을 다 파괴하려는 혼합주의 신학자이다.
위와 대조적으로 예수께서는 요한복음 14장 27절을 통하여, 하나님이 주시는 진정한 마음의 평안 ‘에이레네(ẻιρήνη)’에 관해 말씀하셨다.
“평안을 너희에게 끼치노니 곧 나의 평안(ẻιρήνη)을 너희에게 주노라 내가 너희에게 주는 것은 세상이 주는 것과 같지 아니하리라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도 말고 두려워 하지도 말라(요 14:27)”.
이 구절은 예수께서 십자가를 지시기 바로 전날 두려워하는 제자들에게 친히 하신 말씀이다. 이는 예수께서 부활 승천하신 후 바로 보내주시기로 거듭 약속하셨던 그 성령을 받으면, 이러한 평안을 얻게 된다는 말씀이다.
하나님 자신의 영인 성령은 예수 그리스도의 대속적 죽음을 통해 속죄를 받은 영혼들에게 보내주시는 하나님의 선물 성령이며, 이 평안(에이레네)은 성령이 임하심으로 나타나는 열매이다.
“그러나 내가 너희에게 실상을 말하노니 내가 떠나가는 것이 너희에게 유익이라 내가 떠나가지 아니하면 보혜사(성령)가 너희에게로 오지 아니할 것이요 내가 가면 그를 너희에게로 보내리니(요 16:7)”.
“오직 성령의 열매는 사랑과 희락과 화평과 오래 참음과 자비와 양선과 충성과 온유와 절제니 이같은 것을 금지할 법이 없느니라(갈 5:22-23)”.
마르크스주의와 혼합주의 신학자들은 유대인들이 이 세상에서 추구하던 정치, 사회, 경제와 생활 환경적인 평화, ‘샬롬’이라는 단어를 택하여 마르크스주의자들과 함께 이 땅 위에 유토피아적 평화(샬롬) 세계를 건설하려는 것이다.
그러나 참되고 영원한 성경적인 평화는 현재적으로 성령을 받은 사람이 누리는 것이고, 정치, 사회, 경제 등 모든 측면의 평화는 예수께서 살아 있는 자와 죽은 자를 심판하러 재림하실 때 임하는 새 하늘과 새 땅에서 누리게 되는 완전한 평화이다.
히브리어 ‘샬롬’의 뜻은 ‘전부, 온전한, 안전한, 평온한’의 뜻이 있다. 이 샬롬은 현세를 사는 무신론자, 살인자, 부모를 공경하지 않는 자, 간음하는 자, 남색하는 자, 착취하는 자, 도둑질하는 자, 속이는 자, 빼앗는 자가 가득한 이 세상에서는 이루어질 수 없는 평화다.
율법폐지론자들이 주장하는 무정부주의, 모든 부르주아 계급과 전통 문화와 윤리 도덕을 다 파괴하려는 무법적 아나키즘과 마르크스주의가 어찌 진정한 평화를 맛볼 수 있겠는가?
무신론적 마르크스주의 사상적 범위가 점점 확대됨으로써 세상에 유토피아가 세워지는 것이 아니다. 지금까지 이상사회(Utopia)는 이루어진 적이 없다.
그러나 오히려 성경 말씀에 예언된 바와 같이, 이 땅에는 한편으로 천국 복음이 모든 민족에게 전파되고, 그로 인해 성도들이 환란과 핍박을 당하고, 다른 한편으로는 불법자들과 우상 숭배자들의 땅에 재앙과 재해와 하나님의 심판이 다가오는 것이다(롬 1:17-32, 마 24:14; 29-36, 계 20:11-15). 그리고 결국에는 회개하지 않는 불신자들은 하나님의 심판대 앞에 서게 된다.
마르크스와 엥겔스의 ‘공산당 선언문’이 공산주의를 유령이라고 선언한 반면, 하나님의 영은 마귀나 유령처럼 돌연히 나타나 사람을 놀라게 하고 무섭게 하는 영이 아니라 항상 선지자에게 미리 예언하시고 그것을 이루시는 하나님이다.
“주 여호와께서는 자기의 비밀을 그 종 선지자들에게 보이지 아니하시고는 결코 행하심이 없으시리라(암 3:7)”. <계속>
이동주
바이어하우스학회 회장
전 아세아연합신학대학교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