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경섭 칼럼] 누가 죄인인가? 누가 의인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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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경섭 목사. ⓒ크투 DB

▲이경섭 목사. ⓒ크투 DB

성경이 말하는 ‘죄인’이란, 흔히 세상 사람들이 떠올리듯 ‘못된 사람, 범법자, 악인’이 아니다. ‘의인’ 역시 ‘착한 사람, 죄가 하나도 없는 사람, 도적적으로 아무 흠결이 없는 사람’이 아니다.

성경은 ‘죄인’을 대개 다음과 같이 규정한다. 첫째, ‘원죄(original sin, 原罪)를 받아 난 모든 인류(롬 5:14)’이다. “이러므로 한 사람으로 말미암아 죄가 세상에 들어오고… 이와 같이 모든 사람이 죄를 지었으므로 사망이 모든 사람에게 이르렀느니라(롬 5:12).”

이는 ‘개인의 범법(犯法)’ 여부와 상관없이, 조상 아담으로부터 죄를 유전(遺傳)받아 된 죄인이다. 사실 인류가 ‘법적(法的)으로 죄인 된 것’은 ‘자범죄(actual sin, 自犯罪)’ 이전의 이 ‘원죄’ 때문이다. 그리고 이것은 모든 ‘자범죄의 원천’이기도 하다.

둘째, “행하면 살리라(갈 3:12)”, “온갖 일을 항상 행하지 아니하는 자는 저주 아래 있는 자라(갈 3:10)”, “범죄하는 그 영혼이 죽으리라(겔 18:4)”는 율법에 저촉(抵觸)된 자가 죄인이다.

셋째, 율법을 어겼을 뿐더러, 율법을 어긴 자에게 요구하는 ‘죄삯 사망’을 지불하지 못한 자이다. 범법자(犯法者)라도 ‘죄삯 사망’을 지불하면 그는 더 이상 죄인이 아닌데, 그것을 못해서 된 죄인이다(‘죄삯 사망’은 오직 ‘그리스도의 죽음’으로만 지불된다).

이처럼 ‘죄(罪)’와 ‘죄인(罪人)’은 오직 ‘율법’으로 규정된다. (의와 의인 역시 율법으로 규정된다.) 만일 율법이 없다면 ‘죄인’을 판단할 근거가 없고, 죄인으로 정죄 받지도 않는다. 곧 ‘율법이 없으면 죄도 없다’는 말이다.

사도 바울 역시 같은 어법으로 말한다. “율법은 진노를 이루게 하나니 율법이 없는 곳에는 범함도 없느니라(롬 4:15).” 세상 형법에도 이와 유사한, ‘법률 없이 형벌도 없다’는 ‘죄형법정주의(罪刑法定主義)’가 있다.

이에 반해 계몽주의자(啓蒙主義者)들은 ‘죄’에 ‘궁극적이고 절대적인 지위’를 부여한다. 그들은 ‘죄(罪)는 죄이기에 나쁘다’는 것이다. 일견 ‘죄’를 엄중하게 보는 기독교의 가르침과 유사해 보이나, 자세히 보면 다르다.

성경도 죄를 인간에게 죽음과 비참을 갖다 준 원흉(元兇)으로 보나, 그것은 어디까지나 ‘율법과의 관계’에서이다. ‘죄’는 ‘죄를 심히 죄 되게 하는 율법(롬 7:13)’으로 말미암아 성립되기에, ‘죄’ 이전에 ‘율법’을 먼저 주목시킨다. ‘율법 없인 죄’도 없고, ‘죄 없인 율법’도 없기 때문이다.

“율법은 진노를 이루게 하나니 ‘율법이 없는 곳에는 범함도 없느니라’(롬 4:15)”, “법은 옳은 사람을 위하여 세운 것이 아니요 오직 불법한 자와 복종치 아니하는 자며 경건치 아니한 자와 죄인이며 거룩하지 아니한 자와… 기타 바른 교훈을 거스리는 자를 위함이니(딤전 1:9, 10)”.

이런 ‘율법의 원천적 지위’ 때문에 성경은 ‘율법을 궁극적인 원수(엡 2:15)’로 명명했다. 따라서 그리스도인은 죄를 해결할 때 ‘죄 자체’와 씨름하는 것보다 ‘죄를 죄 되게 하는 율법’과 더 씨름한다. 오직 그가 죄와 씨름할 때는 자신의 성화(sanctification, 聖化)를 도모할 때이다.

‘율법적 해결’ 없이 ‘죄와의 씨름’만 하고선 ‘근본적인 죄의 해결’은 없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이것이 ‘죄’를 ‘궁극’과 ‘절대’로 보는 계몽주의자들과의 근본적인 차이다.

그리스도가 우리를 위해 자기 목숨을 대속물로 주신 일차적인 목적도 우리가 ‘원죄’와 ‘자범죄’로 말미암아 율법으로부터 요구받은 ‘죄삯 사망(롬 6:23)’을 지불해 우리에게서 그것(율법)을 폐하기 위함이었다.

“그는 새 언약의 중보니 이는 ‘첫 언약 때에 범한 죄’를 속하려고 죽으사 부르심을 입은 자로 하여금 영원한 기업의 약속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히 9:15)”, “원수 된 것 곧 의문에 속한 ‘계명의 율법’을 자기 육체로 폐하셨으니(엡 2:15)”.

사도 바울이 ‘사망이 죄를 표적’으로 삼고, ‘죄의 권능은 율법’이라고 한 것은 율법이 ‘죄의 삯을 사망(롬 6:23)’으로 규정하고, ‘죄를 죄’로 규정하기 때문이다. “사망아 너의 이기는 것이 어디 있느냐 ‘사망아 너의 쏘는 것’이 어디 있느냐 사망의 쏘는 것은 죄요 ‘죄의 권능은 율법’이라(고전 15:55-56)”.

만일 ‘율법’이 없었다면 ‘죄를 죄로 규정하는 것’도, ‘죄삯 사망’도 없었고, 나아가 ‘심판’도 없었다는 말이다. ‘성경적 죄의 해결 방식’은 ‘죄와의 씨름’을 통해서가 아닌 ‘율법의 해결’을 통해서이다.

‘한 번 엎질러진 물’은 다시 쓸어담을 수 없듯, 한 번 죄로 더럽혀진 인간은 결코 무죄한 상태로 돌이킬 수 없다. 비유컨대 한번 정조를 잃은 여성은 다신 그것을 회복할 수 없는 것과 같다. 성경이 죄에 대한 이러한 인간의 한계를 “구스인이 그 피부를, 표범이 그 반점을 변할 수 있느뇨(렘 13:23)”라고 표현했다.

성경에서 ‘죄를 깨끗이 씻는다’거나, ‘피와 같이 붉고 먹과 같이 검은 죄’를 ‘양털과 흰 눈 같이 깨끗케 한다’는 말씀은 인간을 ‘죄 없던 무흠의 상태(狀態)로 원상복귀시킨다’는 뜻이 아니다.

그리스도의 구속을 입어 ‘죄 사함과 죄를 가리우심을 받고, 죄를 인정치 아니하심을 받아(롬 4:7-8)’ 죄가 전혀 없는 것처럼 간주해 준다는 뜻이다.

“일한 것이 없이 하나님께 의로 여기심을 받는 사람의 행복에 대하여 다윗의 말한바 그 불법을 사하심을 받고 그 죄를 가리우심을 받는 자는 복이 있고 주께서 그 죄를 인정치 아니하실 사람은 복이 있도다 함과 같으니라(롬 4:6-8)”.

그러나 그리스도로 말미암은 이 ‘죄의 구속’은 무죄했던 ‘아담의 의(義)’에 비할 수 없는 ‘완전한 하나님의 의(롬 3:21)’이다.

◈죄인이 의인 되는 원리

‘죄인(sinner)’의 개념을 어떻게 갖느냐에 따라 ‘의인 됨(be righteous person)’의 개념도 달라진다. ‘죄인’을 도덕적으로 착하지 못한 사람으로 규정하는 율법주의적 신앙인은 ‘의인 됨’도 같은 관점에서 생각하려고 한다.

곧 그리스도를 ‘죄의 구속자’인 동시에 죄인을 대신한 ‘의행자(the righteous worker, 義行者)’로도 믿어, 그리스도로부터 그의 ‘구속(救贖)’과 함께 그의 ‘의행’도 전가받으려 한다.

반면 복음신앙인들은 그리스도를 죄인을 대신해 율법의 요구인 ‘죄삯 사망’을 지불하신 ‘대속자(代贖者)’로 믿어, 오직 ‘그의 의로운 죽음’을 전가 받는다고 주장한다.

그들은 ‘그리스도의 죽음’이 율법의 요구를 완전히 충족시켰기에 더 이상 율법으로부터 ‘율법적 의행’을 요구받지 않는다고 믿기 때문이다. 그들은 율법주의 신앙인들이 주장하듯 ‘그리스도의 대속의 의(義)’와 ‘그리스도의 행위적 의’를 요구받는다면 그것은 ‘이중 과세(double taxation, 二重課稅)’라고 믿는다.

물론 전자(율법주의 신앙인들)는 ‘이제까지 율법을 어긴 죄’는 ‘그리스도의 죽음’으로 대속하고, ‘앞으로 그들이 지켜야 할 율법’은 ‘그리스도의 의행(義行)’으로 대신하는 것이라는 논거를 펴지만, 이 역시 여전히 ‘이중과세’이다.

‘그리스도의 피’는 과거의 범법(犯法)과 미래에 파생될 범법까지 다 포함하여 단번에 영원히 대속했으므로, 더 이상 ‘구원을 위한 율법 준수의 의무’를 지지 않기 때문이다.

“염소와 송아지의 피로 아니하고 오직 자기 피로 영원한 속죄를 이루사 단번에 성소에 들어 가셨느니라(히 9:12)”, “이 뜻을 좇아 예수 그리스도의 몸을 단번에 드리심으로 말미암아 우리가 거룩함을 얻었노라… 오직 그리스도는 죄를 위하여 한 영원한 제사를 드리시고 하나님 우편에 앉으사(히 10:10-12)”.

“이제 자기를 단번에 제사로 드려 죄를 없게 하시려고 세상 끝에 나타나셨느니라… 이와 같이 그리스도도 많은 사람의 죄를 담당하시려고 단번에 드리신바 되셨고(히 9:26, 28)”.

‘죄인이 죄인 됨’도, ‘죄인이 의인 됨’도 계몽주의자들이나 율법주의자들이 주장하듯, ‘우리 내면의 착함이나 도덕성’에 의해서가 아닌, ‘그리스도의 구속을 입어 율법을 성취했느냐, 못했느냐’에 의해 결정된다.

‘우리 내면의 착함이나 도덕성’은 오직 우리 자신의 성화(sanctification, 聖化)를 위해 요구받는 덕목이다.

“너희 원수를 사랑하며 너희를 핍박하는 자를 위하여 기도하라 이같이 한즉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의 아들이 되리니(너희 아버지의 아들답게 되리니)’ 이는 하나님이 그 해를 악인과 선인에게 비취게 하시며 비를 의로운 자와 불의한 자에게 내리우심이니라(마 24:44-45)”. 할렐루야!

이경섭 목사(인천반석교회,개혁신학포럼 대표, https://blog.naver.com/PostList.nhn?blogId=byterian ) 저·역서: <이신칭의, 값싼 은혜가 아닙니다(CLC)>, <개혁주의 신학과 신앙(CLC)>, <개혁주의 영성체험(도서출판 예루살렘)>, <현대 칭의론 논쟁(CLC, 공저)>, <개혁주의 교육학(CLC)>, <신학의 역사(CLC)>, <기독교신학 묵상집(CLC, 근간)>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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