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명혁 목사 설교] 화해와 평화와 통일의 하나님
일시: 2022년 9월 17일 10시
장소: 통일선교 아카데미 개교 예배
본문: 에베소서 2:13-18
부족한 사람을 통일선교 아카데미 강서 캠퍼스 개교 예배에 불러 주시고 “복음 통일” 또는 “북한 교화 재건 운동”에 대한 말씀을 전하게 해 주신 조기연 목사님과 여러분들에게 감사를 드립니다.
사실 저는 1살 때부터 11살 때까지 북한의 신의주와 평양에서 살았는데, 저의 아버지 김관주 목사님이 신의주 제이교회와 평양 서문밖교회에서 목회를 하시면서 일본 통치 시대와 공산주의 통치 시대 때 자주 감옥에 붙잡혀 가시는 고난을 당하시다가 나중에는 순교를 당하셨습니다.
결국 저는 일본 통치나 공산주의 통치에서 벗어나 신앙의 자유를 누리면서 주일 성수와 예배 드림의 자유를 누리면서 살기 위해서 감옥에 계시던 아버지 김관주 목사님을 찾아가서 “저 남쪽으로 갈래요” 라고 했더니 아버지가 저를 한참 바라보시다가 “그러면 가” 라고 하셨습니다. 저를 너무너무 사랑하시던 어머니 유춘택 사모님에게 남쪽으로 가고 싶다는 고백을 했더니 어머니는 울면서 “그러면 가” 라는 말씀을 하셨습니다.
결국 저는 만 11살 때인 1948년 8월 캄캄한 밤에 38선을 뛰어 넘어 남한으로 오게 되었고, 평생 고아와 나그네로 가난과 고난과 슬픔과 아픔을 지니고 살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망극하신 은혜와 사랑과 축복으로 저는 조금도 부족함이 없는 넉넉한 삶을 평생토록 살게 되었다고 고백하고 싶습니다.
그런데 솔직하게 말씀드리면 저는 처음에는 반일, 반북, 반공주의자였고 나중에는 반 타종교, 반 무슬림주의자였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망극하신 은혜와 사랑과 축복으로 점점 바뀌어져서 친일, 친북, 친공, 친 타종교, 친 무슬림 주의자가 되었다고 고백하고 싶습니다.
저는 신앙 생활을 정성껏 하면서 존 스토트 박사님과 피터 바이어하우스 박사님과 한경직 목사님과 손양원 목사님과 교회사에 나타난 귀중한 신앙의 선배님들을 바라보면서 저의 삶의 모습이 조금씩 조금씩 바꾸어지기 시작했다고 생각합니다. 모두를 끌어안는 포용주의자가 되었다고 고백하고 싶습니다.
결국 저는 성부 성자 성령 하님께서 “긍휼과 용서와 자비와 사랑”의 하나님이시고 “화해와 평화와 통일”의 하나님이신 것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저는 다음과 같은 성경 말씀들을 귀중하게 여기게 되었습니다.
“내 영혼아 여호와를 송축하며 그 모든 은택을 잊지 말찌어다 저가 네 모든 죄악을 사하시며 네 모든 병을 고치시며 네 생명을 파멸에서 구속하시고 인자와 긍휼로 관을 씌우시며 좋은 것으로 네 소원을 만족케 하사 네 청춘으로 독수리 같이 새롭게 하시는도다”(시 103:2-5). “여호와는 자비로우시며 은혜로우시며 노하기를 더디 하시며 인자하심이 풍부하시도다”(시 103:8).
“이제는 전에 멀리 있던 너희가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그리스도의 피로 가까와졌느니라 그는 우리의 화평이신지라 둘로 하나를 만드사 중간에 막힌 담을 허시고 원수 된 것 곧 의문에 속한 계명의 율법을 자기 육체로 폐하셨으니 이는 이 둘로 자기의 안에서 한 새 사람을 지어 화평하게 하시고 또 십자가로 이 둘을 한 몸으로 하나님과 화목하게 하려 하심이라 원수 된 것을 십자가로 소멸하시고 또 오셔서 먼데 있는 너희에게 평안을 전하고 가까운데 있는 자들에게 평안을 전하셨으니 이는 저로 말미암아 우리 둘이 한 성령 안에서 아버지께 나아감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엡 2:13-18). “하늘에 있는 것이나땅에 있는 것이 다 그리스도 안에서 통일되게 하려 하심이라”(엡 1:10).
성자 예수님께서야말로 “긍휼과 용서와 자비와 사랑”의 하나님이시고, “화해와 평화와 통일”의 하나님이시라고 생각합니다.
“또 네 이웃을 사랑하고 네 원수를 미워하라 하였다는 것을 너희가 들었으나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 원수를 사랑하며 너희를 핍박하는 자를 위하여 기도하라 이같이 한즉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의 아들이 되리니 이는 하나님이 그 해를 악인과 선인에게 비취게 하시며 비를 의로운 자와 불의한 자에게 내리우심이니라 너희가 너희를 사랑하는 자를 사랑하면 무슨 상이 있으리요 세리도 이같이 아니하느냐 또 너희가 너희 형제에게만 문안하면 남보다 더 하는 것이 무엇이냐 이방인들도 이같이 아니하느냐 그러므로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의 온전하심과 같이 너희도 온전하라”(마 5:43-48).
성자 예수님께서는 십자가에 달려서 대속의 피를 흘리시고 죽으심으로 우리들에게 죄 사함과 함께 구원을 가져다 주셨고 그리고 “화해와 평화와 통일”을 가져다 주셨다고 말씀했습니다.
“예수여 당신의 나라에 임하실 때에 나를 생각하소서 하니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오늘 네가 나와 함께 낙언에 있으리라 하시니라”(눅 23:42,43).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행 1:8).
“땅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 라는 말씀은 구원이 예루살렘에 머무는 것이 아니고 온 세상에 미친다는 말씀이라고 생각합니다. 성자 예수님께서는 궁극적으로는 “화해와 평화와 통일”의 하나님이셨다고 생각합니다. 정치적인 통일이 아니고 경제 통일이 아니고 군사 통일이 아닌, “복음 통일”과 “평화 통일”을 이루게 하셨다는 말씀이라고 생각합니다.
제가 오래 전에 “화해와 평화와 통일을 염원하며” 라는 제목의 글을 써서 기독교보에 보낸 일이 있는데 그 내용을 거의 그대로 인용하려고 합니다.
지금 한국교회의 가장 심각한 문제는 십자가 복음에 전념하는 대신 “세속화”와 “인간화”와 “분열”과 “분쟁”으로 치닫고 있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예수님께서는 “의인”을 부르러 오시지 않고 “죄인”을 부르러 오셨다고 말씀하셨는데, 지금 한국교회 지도자들은 “죄인 의식” 대신 “의인 의식”을 지니고 자기의 입장과 다른 신학과 교파와 단체들을 적대시하며 정죄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지금 한국교회에 시급하게 요구되는 것은 야곱이 에서의 목을 끌어안고 울었던 것처럼,요셉이 형들을 끌어안고 울었던 것처럼, 자기와 신학적이고 교파적인 입장이 다른 적대시하고 정죄하던 상대방을 끌어안고 울면서 “화해와 평화와 하나됨”을 이루는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여야로 좌우로 갈라져서 싸우던 상대방을 이해하고 끌어 안는 “화해와 평화와 하나됨”을 이룰 수 있게 되기를 바랍니다. 나만 옳다는 독선이나 내가 승리했다는 의식을 버리고 상대방을 짓밟는 것이 아닌 끌어 안고 “하나”되는 길로 나아가게 되기를 간절히 바라고 소원합니다.
성부 성자 성령 하나님께서는 “긍휼과 용서와 자비와 사랑”을 지니시고 죄인들을 구원하시는 “구원”의 하나님이시지만 궁극적으로는 “화해와 평화와 통일”을 가져다 주시는 “화해와 평화와 통일”의 하나님 이시라고 생각합니다. “화해와 평화와 통일”은 하나님의 궁극적인 뜻과 비전입니다. 성경의 목표이며 역사의 완성 점입니다. 부수적인 것도 아니고 선택적인 것도 아닙니다. 본질적인 것이고 필수적인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사람들이 연합하여 하나 되는 선하고 아름다운 모습과 자연 만물이 모두 하나가 되어 하나님을 찬양하는 멋지고 아름다운 모습을 오래전에 보여주셨습니다.
“형제가 연합하여 동거함이 어찌 그리 선하고 아름다운고”(시 133:1). “해와 달아 찬양하며 광명한 별들아 찬양할 찌어다 산들과 모든 작은 산과 과목과 모든 백향목이며 짐승과 모든 가축과 기는 것과 나는 새며 다 여호와의 이름을 찬양할찌어다”(시 148:3,9,10,13).
성부 성자 성령 하나님께서는 지금도 구원받은 모든 사람들이 인종과 계급과 종교와 이념과 신학과 교파와 교단을 초월해서 그리스도 예수님 안에서 모두에게 “긍휼과 용서와 자비와 사랑”을 베풀고 모두와 “화해와 평화와 통일”을 이루면서 아름답게 살라고 분부하십니다. 사도 바울은 “화해”와 “하나됨”이 하나님이 뜻이라고 지적했습니다.
“저가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를 자기와 화목하게 하시고 또 우리에게 화목하게 하는 직책을 주셨으니 이는 하나님께서 그리스도 안에 계시사 세상을 자기와 화목하게 하시며 화목하게 하는 말씀을 우리에게 부탁하셨느니라”(고후 5:18,19). “오래 참음으로 사랑 가운데서 서로 용납하고 평안의 매는 줄로 성령의 하나 되게 하신 것을 힘써 지키라”(엡 4:2,3).
지금 한국 교회와 사회와 정치 안에 시급하게 요청되는 것은 화려한 예배나 정통 진리의 선포나 대중적인 행사 이전에 서로 붙잡고 울면서 “화해와 평화와 통일”을 이루는, 즉 성자 예수님과 성 프랜시스와 손양원 목사님과 한경직 목사님을 닮은 삶을 사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교회가 먼저 낮은 자세와 온유 겸손한 자세를 지니고 “화해와 평화와 통일”을 이루는 삶을 살 때, 양극으로 치닫고 있는 우리 사회와 정치도 “화해와 평화와 통일”을 이루고저 하는 자극과 감동을 받게 될 것입니다. 그러면 적대적으로 치닫고 있는 동서와 남북의 “화해와 평화와 통일”도 조만간 이루어질 것입니다.
양극으로 갈라졌던 교회와 정치가 서로를 이해하고 끌어안고 포용하는 하나되는 길로 달려가게 되기를 간절히 바라고 소원합니다. 세계가 놀라고 북한이 놀라고 하나님께서도 놀라시는 “화해와 평화와 통일”을 이루는 길로 달려가게 되기를 간절히 바라고 소원하며 축원합니다.
이기적이고 정욕적이고 비판적이고 배타적이고 위선적이고 독선적인 우리들이 십자가를 바라보고 또 바라보면, 십자가의 정신을 몸에 지니고 사신 스데반 집사와 성 프랜시스와 손양원 목사님과 한경직 목사님과 장기려 박사님과 같은 신앙의 선배님들을 바라보고 또 바라보면, 우리들도 “긍휼과 용서와 자비와 사랑”의 흔적과 함께 “화해와 평화와 통일”의 흔적을 몸과 마음과 영혼에 조금씩 아주 조금씩 지니고 나타내면서 살 수 있게 된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부족하고 또 부족한 죄인이지만 날마다 이렇게 중얼거립니다. “하나님 아버지, 저는 아무 자격이 없는 죄인 중의 괴수이지만, 주님과 누군가를 위해서 제물 되는 삶을 살다가 제물 되는 죽음을 죽기를 소원합니다. 북한 동포들을 위해서 그리고 남북의 “화해와 평화와 통일”을 이루기 위해서 혹시 제가 제물 되는 삶을 살다가 제물 되는 죽음을 죽을 수는 없습니까?
하나님 아버지, 저를 불쌍히 여기시고 우리 민족을 불쌍히 여겨 주시옵소서!” “주여, 순교자들이 흘린 피 소리를 들으시고 우리 모두에게 긍휼과 용서와 자비와 사랑과 은혜를 베풀어 주시옵소서! 주여, 우리들을 화해의 도구들로 써 주시옵소서! 주여, 우리들을 평화의 도구들로 써 주시옵소서! 주여, 우리들을 통일의 도구들로 써 주시옵소서!”
성자 예수님의 사랑을 가장 많이 받은 사도 요한은 성자 예수님의 재림으로 이 세상과 우주의 역사가 “화해와 평화와 하나됨”을 이루게 될 것이라는 비전을 지니고 다음과 같이 서술했습니다.
“이후에 내가 보니 각 나라와 족속과 백성과 방언에서 아무라도 능히 셀 수 없는 큰 무리가 흰 옷을 입고 손에 종려가지를 들고 보좌 앞과 어린 양 앞에 서서 큰 소리로 외쳐 가로되 구원하심이 보좌에 앉으신 우리 하나님과 어린 양에게 있도다 하니 모든 천사가 보좌와 장로들과 네 생물의 주위에 섰다가 보좌 앞에 엎드려 얼굴을 대고 하나님께 경배하여 가로되 아멘 찬송과 영광과 존귀와 영광과 지혜와 힘이 우리 하나님께 세세토록 있을지어다 아멘.”
계시록 7장 말씀인데 마지막 날에 온 우주가 하나 되어서 하나님께 찬양하는 모습을 너무 귀중하게 묘사했다고 생각합니다.
지금 우리 한국 교회와 사회에 필요한 것은 이와 같은 하나님의 뜻인 "화해와 평화와 통일”을 이루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물론 예배가 귀중하지만 화려한 예배에 치우치거나 정통 진리 선포에 치중하기 전에 서로 붙잡고 울면서 화해와 평화와 통일”을 이루는 일을 우리 한국 교회가 가장 먼저 해야 하지 않을까 라고 생각합니다.
성부 성자 성령 하나님께서 부족한 우리들에게 긍휼과 용서와 자비와 사랑과 은혜와 축복을 베풀어 주셔서 하나님의 궁극적인 뜻인 “화해와 평화와 통일”을 이루는 일에 최선을 다하기 하시기를 간절히 바라고 소원합니다. 온 세상과 우주의 “화해와 평화와 통일”이 이루어질 것을 바라본 사도 요한의 미래관을 다시 인용함으로 “화해와 평화와 통일의 하나님” 이라는 제목의 말씀을 마무리 합니다.
“이후에 내가 보니 각 나라와 족속과 백성과 방언에서 아무라도 능히 셀 수 없는 큰 무리가 흰 옷을 입고 손에 종려가지를 들고 보좌 앞과 어린 양 앞에 서서 큰 소리로 외쳐 가로되 구원하심이 보좌에 앉으신 우리 하나님과 어린 양에게 있도다 하니 모든 천사가 보좌와 장로들과 네 생물의 주위에 섰다가 보좌 앞에 엎드려 얼굴을 대고 하나님께 경배하여 가로되 아멘 찬송과 영광과 존귀와 영광과 지혜와 힘이 우리 하나님께 세세토록 있을지어다 아멘.”
김명혁 목사
강변교회 원로
한국복음주의협의회 명예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