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故 엘리자베스 2세, 겸손·온유·통합으로 영연방 지속성 보여줘”

송경호 기자  7twins@naver.com   |  

샬롬나비, 논평 통해 공과 과 평가

재위 70년간 영국은 세계 자유민주주의 성지
겸손·온유로 통합의 통치력 국가 지속성 보여
국교회 수장으로서 하나님 더 의지한 통치자
식민지 지배 사과와 후속조치 없던 건 옥의 티

▲영국 여왕 엘리자베스 2세(1926-2022). ⓒ영국 왕실 홈페이지

▲영국 여왕 엘리자베스 2세(1926-2022). ⓒ영국 왕실 홈페이지

‘샬롬을 꿈꾸는 나비행동’(대표 김영한 박사, 이하 샬롬나비)이 최근 향년 96세의 일기로 서거한 영국 엘리자베스 2세에 대한 논평을 발표하고 “재위 70년간 겸손, 온유, 통합의 상징으로 영연방 국가의 지속성 보여주었다”고 평가했다. 반면 “식민지 사과 및 후속조치가 없었던 것은 옥의 티”라고 했다.

샬롬나비는 “여왕의 재임 기간은 ‘해가 지지 않는 나라’ 영국 제국을 이끈 빅토리아 여왕 시기(1837-1901)와는 비교조차 어려울 만큼 영국의 위상이 약해진 시기였다”며 “영국이 제국의 지위를 완전히 잃은 뒤 즉위한 여왕은 68년 뒤인 2020년 1월에는 영국이 유럽연합(EU)을 공식 탈퇴함으로써 유럽 내 주도권을 프랑스와 독일에게 넘겨주는 것까지 지켜봐야 했다. 여왕은 이런 한계 속에서도 영향력과 존재감을 한껏 발휘해서 영연방을 이끌었다”고 했다.

샬롬나비는 “여왕은 현대사의 산 증인이요, 영국연방(25억명)의 정신적 지주로서 세계사에서 70년 127일(1952-2022)간 통치하며 세계인들의 사랑과 존경을 받아왔다. 이로써 여왕은 왕실 존속을 찬성하든 반대하든 영국왕실 1,000년의 역사에서 가장 긴 통치기간을 이룩한 군주가 되었다”고 했다.

이어 “56개국을 영연방 지지로 끌어모으고 70년을 통치한 최장수 군주이며, 15개 주권 국가의 군주, ‘해가 지지않는 나라’라는 빅토리아 왕조를 상기케 하는 대영제국의 추억을 회상케 한다. 모든 왕과 국왕이 국민의 사랑을 받은 것은 아닌데 여왕은 영국민들로부터 ‘마지막까지 사랑받은 군주’로 평가된다”고 했다.

샬롬나비는 ▲엘리자베스 2세의 70년 통치기간 영국은 세계 자유민주주의와 자유시장경제의 성지였다. ▲영연방국가들의 반발을 겸손과 온유로 달래며 통합의 통치력, 국가의 지속성 보여주었다. ▲여왕의 통치기간 동안 세계의 지도적 국가를 유지했다고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엘리자베스2세는 부친이 이른 사망에 갑작스레 여왕이 되어 영국 국교회의 수장으로서 신앙의 수호자요, 하나님에 더 의지한 통치자였다고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반면 ▲엘리자베스 2세는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를 발전시키고 70년간 대영제국의 후계자로서 영연방을 최장 유지하고 지켰으나 식민지 사과가 없었던 것은 옥의 티라고도 했다. 아울러 ▲영국은 웨일스 토마스선교사를 통해 복음을 전해주었고, 한국전쟁시에 군대를 보내어 자유를 지켜주었고, 한국 조선업 발전에 초석이 된 은인(恩人)의 나라이다. ▲여왕은 아들 찰스 3세(Charles III)가 국왕으로 승계하도록 하는 기반을 조성했다. 별세 이틀전 마지막 임무로 임명된 새 여성총리 트러스(Mary Liz Truss)와 내각의 역할이 기대된다고 덧붙였다. 다음은 논평 전문.

대영제국 이후 영 연방 시대 통치자로서 재위 70년간 겸손, 온유, 통합의 상징으로 영연방 국가의 지속성 보여주었다.
자유민주주의와 자유시장경제를 발전시켰으나 식민지 사과 및 후속조치가 없었던 것은 옥의 티다.


영국 여왕 엘리자베스 2세(1926-2022)가 2022년 9월 8일 향년 96세의 일기로 스코틀랜드 밸모랄(Balmoral)성에서 평화롭게 서거하였다. 여왕은 1926년에 4월 21일 런던 메이페이(MayFair)에서 태어나서 1952년 25세 되던 해에 아버지 조지 6세(George VI, 1895-1952)가 사망하자 왕위를 계승해서 영국 여왕에 즉위했다. 영국이 ‘대영제국 이후 시대’를 모색하는 과정에서 영욕을 함께 한 군주다. 영국 군주는 1688년 명예혁명 이후 정치적 권한을 의회에 넘겨주고 “군림하되 통치하지 않는다”는 200년 된 원칙이 확립된 상징적인 존재로 남았다. 여왕의 재임 기간은 ‘해가 지지 않는 나라’ 영국 제국을 이끈 빅토리아 여왕 시기(1837-1901)와는 비교조차 어려울 만큼 영국의 위상이 약해진 시기였다. 여왕이 즉위한 1952년은 영국이 2차 세계대전에서 승리했으나 국제 질서의 주도권이 미국에 넘어간 뒤였다. 영국이 제국의 지위를 완전히 잃은 뒤 즉위한 여왕은 68년 뒤인 2020년 1월에는 영국이 유럽연합(EU)을 공식 탈퇴함으로써 유럽 내 주도권을 프랑스와 독일에게 넘겨주는 것까지 지켜봐야 했다. 여왕은 이런 한계 속에서도 영향력과 존재감을 한껏 발휘해서 영연방을 이끌었다.

 여왕은 현대사의 산 증인이요, 영국연방(25억명)의 정신적 지주로서 세계사에서 70년 127일(1952-2022)간 통치하며 세계인들의 사랑과 존경을 받아왔다. 이로써 여왕은 왕실 존속을 찬성하든 반대하든 영국왕실 1,000년의 역사에서 가장 긴 통치기간을 이룩한 군주가 되었다. 여왕은 2차대전에 자원 입대, 2차대전을 이기고 혼란을 수습하고 국민통합으로 이끈 영국 총리 15명을 임명하고 대영제국이 해체된 시기에 전세계를 여행하고 재임 중 100개국 이상 방문하였다. 여왕은 56개국을 영연방 지지로 끌어모으고 70년을 통치한 최장수 군주이며, 15개 주권 국가의 군주, “해가 지지않는 나라”라는 빅토리아 왕조를 상기케 하는 대영제국의 추억을 회상케 한다. 모든 왕과 국왕이 국민의 사랑을 받은 것은 아닌데 여왕은 영국민들로부터 “마지막까지 사랑받은 군주”로 평가된다.

샬롬나비는 엘리자베스 여왕의 리더십을 높게 평가하며 후계자 찰스 3세가 여왕이 남긴 부드러운 통치를 잘 계승하고 세계의 자유민주주의와 평화에 이바지하기를 기원하면서 다음같이 천명하는 바이다.

▲웨스트민스터 채플에서 장례식이 엄수되고 있다. ⓒthe royal family

▲웨스트민스터 채플에서 장례식이 엄수되고 있다. ⓒthe royal family

1. 엘리자베스 2세의 70년 통치기간 영국은 세계 자유민주주의와 자유시장경제의 성지였다.

1517년 독일 Luther의 종교개혁의 영향으로 ‘모든 사람이 평등하다며 절대적 통치자인 군주제에 의문을 가지는 계몽주의 사상’이 17세기에 영국에서 태동되었다. 1628년 권리청원, 1679년 인신보호법, 1688년 영국의 명예혁명과 1689년 권리장전을 거치며 특정권리와 자유를 성문화하며 영국은 자유민주주의(Liberal Democracy)가 태동된 국가이다. 비국교도들(Non-conformists: 웨슬리John Wesley, 오웬John Owen, 번연 John Bunyan, 백스터 Richard Baxter, 윌버포스William Wilberforce, 존 뉴턴 John Newton, etc.)의 그리스도 안에서의 자유운동으로서 그 유명한 노예제도가 윌버포스(William Wilberforce)에 의해 폐기되었다.

 엘리자베스 2세는 ‘군림하되 통치하지 않는다’는 현대국가의 군주의 표상이었다. 영국 왕실은 정치에 개입하지 않는 것이 원칙이라 여왕은 중립적인 표정을 유지하는 것으로도 유명했지만 정치적으로 표현하고 싶은 메시지가 있을 땐 늘 패션으로 말했다. 2차대전에 자유민주주의를 수호하기 위해서 영국 육군에 자원 입대하여 중장비 운전을 하면서 참전하여 노블레스 오블리주(Noblesse Oblige, 귀족의 사회적 책임)를 실천했다.

 70년간의 재위기간 동안 자유민주주의 제도하에서 윈스턴 처칠을 시작으로 15명의 영국총리를 인준했고 미국의 13명의 대통령을 만났다. 여왕은 왕가 존속을 위한 클래식한 패션, 격식을 중시했다. 왕가의 전통에 따라 공식 행사에서는 늘 치마 정장을 입었고, 외출 시 모자와 장갑을 착용했으며, 중간굽의 신발과 고풍스러운 스타일의 핸드백도 빼놓지 않았다. 국가 통합의 상징적 존재라는 역할과 일반 대중의 주목을 받는 ‘유명 인사’로서의 역할을 동시에 만족시켜, 군주제 존속을 반대하는 여론을 무마하면서 영향력을 극대화한 ‘지극히 현대적인’ 인물이었다.

2. 영연방국가들의 반발을 겸손과 온유로 달래며 통합의 통치력, 국가의 지속성 보여주었다.

파이넨셜타임스지(Financial Times)는 ‘영국 여왕은 영국이 유럽대륙을 2차대전에서 구해낸 나라에서 미국의 응원단장으로 약화되어진 지난 70년간(1952-2022) “영국의 혼(Gk. Psyche, soul)”으로 영국의 자존심을 지켜왔다. 여왕은 재위기간 지속적으로 이탈해가는 영연방국가들을 한군데로 모아 유지하는 구심점이 되었다. 여왕은 영국 그 자체였다. 영국인이 갖는 ‘브리티시’(British)라는 공통의 정체성(Identity)을 스스로 표현하고 영국과 영연방의 국가의 지속성을 확인시켜주는 상징이었다.’고 전했다. 1949년에 아일랜드는 영연방에서 탈퇴한 후 아일랜드 공화국으로 완전하게 독립하였다. 여왕은 2011년 아일랜드를 방문하고 3년후 아일랜드 대통령이 영국을 방문하였다.

 하지만 과거 대영제국의 식민지주의와 노예제도의 상처로 영연방국가들의 반발과 배상요구가 매우 높아지고 있다. 영국(United Kingdom, 연합왕국: 잉글랜드, 웨일즈, 스코틀랜드와 북아일랜드)에서 스코틀랜드와 북아일랜드가 영연방에서 이탈을 원하고 있다. 불확실한 미래에 대해서 영국은 불안해하고 있다.
영국은 2차대전의 승전국이었고 그때의 여왕은 젊고 아름다웠다. 현재 ‘지금의 영국인은 누구인가? 영국은 어디로 가는 것인가?’ 라는 질문을 던지는 위기에 처한 영국의 ‘국가의 정체성’을 지킬 책무는 여왕이 별세한 후 이제 아들 찰스3세(CharlesIII)에게 놓여져 있다. 9월 19일 거행된 장례식은 2백여개 나라의 정상들을 비롯 2천 명이 참석했으며 백만명의 시민들이 애도를 표명하고 세계적으로 중계되었고 지구촌 40억 사람들이 여왕의 마지막 길을 지켜본 금세기 최대의 장례식이 되었다. 여왕 별세 후 아들 찰스 왕세자가 “평생 헌신하겠다.” 연설하고 새 왕 찰스 3세가 된 것도 여왕이 70년간 닦은 자애로운 할머니에서 군주의 위엄으로 영국민을 결집시킨 업적에 기인한다.

3. 여왕의 통치기간 동안 세계의 지도적 국가를 유지했다.

영국은 국제평화와 안전유지를 위한 UN의 상임이사국(영국, 미국, 프랑스, 러시아, 중공) 중 주요핵심 국가 중 하나이다. 2차 대전을 승전으로 이끈 윈스턴 처칠 사임(1955), 런던 스모그 참사(1955)와 1956년 깨끗한 공기법 제정, 영국-프랑스, 수에즈운하 분쟁으로 이집트 침공 (2차중동전쟁/1956), 북아일랜드 분쟁(1969), 닐 암스트롱, 인류최초 달 착륙 (1969), 마가릿 대처 영국수상 취임(1979), 영국령 포클랜드전쟁 발발(1982), 영국광부 대파업(1984-1985), 영국 런던에서 뉴욕으로 향하던 팬 아메리칸 항공 103폭발(1988), 독일 베를린장벽 붕괴(1989), 걸프전 발발(1990), 소비에트 연방해체와 미-소 냉전종결(1991), 유럽연합 창설(1993), 영국, 중공에 홍콩반환(1997), 미국 세계무역센터 쌍둥이빌딩 테러공격으로 붕괴(2001), 미국-아프간전쟁 발발, 영국동맹군 참전(2001), 세계금융위기 발생(2008), 미국-아프간전쟁 종결(2014), 러시아, 우크라이나 크림반도 병합(2014), 영국 국민투표로 Brexit결정 (2016), Covid-19 Pandemic 발발(2020), 러시아, 우크라이나 침공 (2022), 등의 현대세계사의 굵직한 사건이 있을 때마다 영국은 지도적 국가를 유지해왔고 여왕은 구심력 역할을 했다.

4. 엘리자베스 2세는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를 발전시키고 70년간 대영제국의 후계자로서 영연방을 최장 유지하고 지켰으나 식민지 사과가 없었던 것은 옥의 티다.

 여왕은 2차대전 이후 영 연방국가(현, 54개)를 포함한 영국(United Kingdom)을 폐허로부터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를 통해서 국가를 재건하였던 처칠과 대처 수상 등이 정치적 업적을 이룩하는데 겸손과 온유의 통치 리더십을 보여주었다. 영연방 ‘접착제인 영국 여왕이 별세한 지금 영국이 모든 면에서 구심점을 잃고 쪼개져 나갈 위험이 커졌다.

 전세계에서 추모 물결이 이어지고 있지만, 과거 영국의 식민 지배를 당했던 인도, 아프리카 케냐, 자마이카 등 다른 가브리해 국가들에선 좀 더 복잡한 반응이 나왔다. <에이피>(AP) 통신은 여왕의 죽음을 계기로 대영제국의 식민주의와 노예제 등에 대한 비판이 다시 부각되고 있다고 전했다. 대영박물관에 보관된 약탈된 유물 등 아직 식민지의 유산이 그대로 남아 있으며 여왕은 어두운 과거를 대표하는 인물이라는 비판의 목소리가 나온 것이다. 과거 식민지 시대 청산은 내각이 해야 하는 것이긴 하지만 여왕이 영연방 70년간 재위(在位)하면서 과거 대영제국의 식민지 지배를 청산하는 사과(謝過)와 후속조치가 없었던 것은 옥의 티다.

5. 엘리자베스2세는 부친이 이른 사망에 갑작스레 여왕이 되어 영국 국교회의 수장으로서 신앙의 수호자요, 하나님에 더 의지한 통치자였다.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은 하나님을 신뢰했던 사람이었다. 여왕은 영국 국교회의 수장으로서 그 역할에 충실했으며 재위 기간 공적인 활동에서도 신앙을 나타냈다. 여왕은 ‘신앙의 수호자’로 종교적 책임을 다해 왔다. 여왕 사후엔 식민 지배 잔재를 청산하고 더 근본적인 기독교 정신에 따라 새 시대를 열어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여왕은 생전에 자신의 신앙을 자주 언급했다. 여왕은 1952년 성탄 메시지를 전하면서 국민에게 이듬해 열리는 자신의 대관식을 위해 기도를 부탁했다. 여왕은 “여러분의 종교가 무엇이든지 저를 위해 기도해주시기를 요청하고 싶습니다”며 “하나님께서 지혜를 주시고 국가를 위한 엄숙한 약속을 실행하도록 힘을 주시기를 기도해 주십시요. 인생 모든 날에 하나님을 신실하게 섬길 수 있도록 기도해주십시오”고 말했다. 세인트앤드루대 신학대학원 이안 브래들리 교수는 Christianity Today와의 인터뷰에서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은 20세기와 21세기, 근대성과 포스트모더니티를 이으며 자신이 견뎌낸 공적, 사적 폭풍 속에서 하나님에 대한 개인적 믿음과 그리스도에 대한 믿음을 그녀의 닻으로 여겼다”며 “마지막까지 충실하게 살면서 자신에게 맡겨진 사람들을 섬겼다”고 평가했다. 여왕과 60여년간 신앙적 동지의 교제를 나눈 빌리 그레이엄 목사는 자서전 『Just As I Am』에 1955년 3월 21일부터 시작된 스코틀랜드 전도 대회가 끝난 다음 주에 윈저궁에서 말씀을 전해달라는 초청을 받았다고 적었다. 그레이엄은 "영국에서 엘리자베스 2세 여왕만큼 우리에게 다정한 사람은 없다"고 적었고. 성경에 대한 여왕의 사랑, 그리고 기독교 신앙의 강력함과 깊이를 증명했다.

▲김영한 박사(기독교학술원 원장, 샬롬나비 상임대표, 숭실대 기독교학대학원 설립원장).

▲김영한 박사(기독교학술원 원장, 샬롬나비 상임대표, 숭실대 기독교학대학원 설립원장).

6. 영국은 웨일스 토마스선교사를 통해 복음을 전해주었고, 한국전쟁시에 군대를 보내어 자유를 지켜주었고, 한국 조선업 발전에 초석이 된 은인(恩人)의 나라이다.

 영국은 1883년 조선과 국교를 맺었다. 영국은 1866년 웨일즈사람 토마스(Robert Jermain Thomas,1839-1866)선교사의 대동강 가에서 거룩한 순교로 영적 유산을 남겼다. 당시 영국은 전세계 기독교와 자유민주주의 성지였다. 더욱이 영국은 6.25전쟁때 영국군이 총 56,000명을 파견했고 1,078명이 전사했고 2,764명이 부상당했고 179명이 실종되고 978명이 포로가 되어 총 4,909명의 인명피해를 입었다. 이중 889명이 부산 유엔군 묘지에 안장되어 있다. 영연방 국가인 캐나다 380명, 호주 281명, 뉴질랜드 32명, 남아프리카공화국 11명 합치면 1501명이 안장되어 있다. 전후에도 1957년까지 사단급 병력을 주둔시키며 한국의 안보를 지켜주었다. 한국의 공산화를 막고 자유민주주의의 수호를 위해서 영연방국가들과 함께 참여해서 한국과는 자유민주주의를 위한 혈맹관계(A Blood Alliance Relationship of the Liberty Democracy)라고 할 수 있다. 여왕은 1996년 70세에 한국을 방문하였다.

 한국의 근대화 시기인 1971년 영국 Barclays 은행은 현대중공업 조선소 건설에 4,300만달러를 제공했고 1975년 영국인 던칸(William Jack Duncan)은 현대 조선소에 광범위한 조선기술을 전수하여 한국조선업발전에 초석이 된 은인의 나라이다. 지금의 한국의 조선업은 세계수주 물량의 90%를 담당하는 명실상부한 세계최강의 선박산업(무역화물선, 여객선, 쇄빙선, 군수물자선 포함)의 중심국가가 됐다.

 영국 여왕은 1999년 73번째 생일인 4월 21일에 한국의 유교정신문화의 수도인 안동의 하회마을을 방문하였다. 서애 유성룡(선조때 영의정)의 후손들이 사는 집(풍산 류씨 문중의 고택 충효당)의 방으로 들어가기 전에 그녀의 하이힐을 벗는 모습은 한국문화를 존중하는 겸손과 온유한 행동으로 큰 화제를 불러 일으켰다. 이는 다름의 장벽을 뛰어넘어 모두를 하나로 묶을 수 있는 힘은 겸손과 온유의 리더십으로 한-영간의 깊은 우호관계는 찰스왕시기에도 이어질 위대한 유산으로 여겨진다.

 2020년 Covid-19이 세계적으로 발생했을 때도 여왕은 ‘우리 모두의 삶에 거대한 변화를 가져온 혼돈의 시기이다. 어떤 사람들은 슬픔이 있었고 많은 이들에게 경제적 어려움이닥쳤으나 후세는 우리 세대가 아주 강인했다고 말할 것입니다.’고 어려움과 고난에 빠져 있는 영국국민(영연방포함)들에게 격려를 통해서 통합의 리더십을 보여주었다.

7. 여왕은 아들 찰스 3세(Charles III)가 국왕으로 승계하도록 하는 기반을 조성했다. 별세 이틀전 마지막 임무로 임명된 새 여성총리 트러스(Mary Liz Truss)와 내각의 역할이 기대된다.

 기록적인 64년간 즉위를 기다려오던 왕세자 찰스는 어머니이자 엘리자베스II 여왕이 9월 8일 서거하자 즉시 찰스3세 왕이 되었다. 이는 선왕이 사망하는 순간 다음 번 왕위계승자가 즉 시 왕이 되는 전통에 따른 것이다. ‘왕은 결코 죽지 않는다.’(The King never dies)라는 말은 군주가 사망해도 정부는 이음새 없이 지속된다는 것이다. 2022년 초 유고브(YouGov) 설문조사에 따르면 영국인 62%가 ‘왕실을 유지해야 한다’는 데 동의했다. 영국인들은 왕실이라는 존재를 영국의 정체성으로 여기면서, "왕실의 폐지를 곧 자랑스러운 영국 역사의 종말"이라고 느낀다고 한다. 그런데, 세자빈(世子嬪) 다이애너와의 이혼으로 민심을 잃은 찰스가 새 국왕으로서 어떤 리더십을 보일지 기대와 함께 우려되기도 한다.

 2022년 9월 6일 별세 이틀전 여왕은 밸모랄성에서 트러스를 세번째 여성 총리로 임명함으로써 국정을 위한 여왕의 임무를 다했다. 하지만 현재 총리 트러스의 지지율은 낮다(‘12%가 좋다, 52%가 나쁘다’). 2016년 유럽연합(EU)에서 영국 탈퇴(Brexit)는 국내외의 정치와 경제, 안보 외교에서 안정을 보장해줄 수 있는가? 여왕 별세, 찰스 왕의 즉위 후 영국과 영연방을 이끄는 트러스 새 총리의 역할은 매우 중요하다. 트러스 새 총리와 내각은 찰스 3세가 영국과 영연방을 안정적으로 이끄는 역할을 다하도록 그의 통치력에 맞추는 정치력을 발휘해야 한다. 여왕이 남긴 영국과 영연방의 미래에 하나님의 은혜가 있기를 기대한다.

2022년 9월 26일
샬롬을 꿈꾸는 나비행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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