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성욱 교수의 Engagement] 강소교회의 5가지 특징
강소교회가 지녀야 할 특징
1. 한 영혼을 우주보다 귀히 여기라
2. 복음에 대한 깊은 이해를 가지라
3. 복음 실천에 강한 교회가 되어라
4. 유기적·선교적 교회로 무장하라
5. 밝고 행복한 종말 맞이 기대하라
한국교회는 1960-80년대 세계교회 역사상 전무후무한 성장을 구가했다. 하지만 한국교회의 압축성장 이면에는 신학적 혼란과 도덕적 부패라는 독버섯이 기생하고 있었다.
그 결과 1990년대로 들어오면서 한국교회의 성장은 주춤하기 시작했다. 급기야 2000년대로 넘어오면서 한국교회는 수량적인 하락의 길을 걷기 시작했다. 게다가 지난 정권이 자행한 교회에 대한 핍박과 지난 3년간 지속되어온 코로나 팬데믹은 한국교회의 침체와 쇠락을 부채질했다.
한국교회의 수량적 쇠퇴보다 더 심각한 문제는 한국교회의 전체적인 질적 파행과 퇴락이다. 가장 심각한 문제는 한국교회 내에 ‘가짜 복음’이 편만하다는 것이다. 한국교회를 병들게 하고 있는 가짜 복음들 중에는 기복주의, 율법주의, 방종주의가 있다. 그리고 이런 왜곡된 복음들의 기초 위에서 신비주의, 영지주의, 권위주의 같은 잘못된 영적 풍토가 확산되고 있다.
또한 자질과 자격이 부족한 목회자들의 양산은 여러가지 심각한 문제들을 초래하고 있다. 안수받은 목회자들의 과반수가 교육부의 정식 인가를 받지 못한 무인가 신학교 출신이라는 사실은 정말 안타깝지 않을 수 없다. 심지어 교육부 정식 인가를 받은 신학교 출신 목회자들 중에도 혀를 내두를 수 밖에 없는 부도덕과 몰상식을 드러내는 사람들이 많다.
많은 뜻 있는 사람들은 질문한다. 한국교회의 미래는 있는가? 한국교회의 희망은 과연 무엇인가? 지난 140여 년 간의 한국교회사를 분석해 볼 때, 필자는 강소교회론과 강소목회론이 한국교회의 가장 유력한 희망이요, 미래를 위한 대안이라고 주장하고 싶다.
강소교회론이란 ‘작지만 (복음과 실천에) 강한 교회’를 지향하자는 주장이다. 강소목회론이란 ‘작지만 강한 교회’를 전심을 다하여 목회하자는 주장이다.
최근 여러가지 통계 조사에 따르면, 한국교회의 70% 정도가 교인 100명 이하의 작은교회라고 한다. 교인 50명 이하로 잡을 경우 80% 이상이다. 결국 교회의 절대 다수가 수량적으로 작은 교회이다.
100명 이상의 중형교회, 500명 이상의 대형교회는 극소수이다. 강소교회론에 의하면 이러한 현실을 그대로 인정하는 것이 희망의 시작이다. 강소목회론에 의하면 목회자의 70-80%가 평생 100명 이하의 작은교회에서 목회할 수 밖에 없는 현실을 그대로 수용하는 것이 밝은 미래를 닦는 길이다.
한 단계 더 들어가 보자. 강소교회론은 수량적으로 작은 교회이지만, 복음에 강한 교회를 추구하자는 것이다. 수량적으로 작은 교회라 해서, 질적으로도 저급한 교회로 남아서는 안 된다. 강소교회란 수량적으로 20-50명 정도의 소규모 교회이지만, 참된 복음을 깊이 이해함에 있어서는 크고 강한 교회를 의미한다. 복음의 이해에만 강한 것이 아니라, 복음의 실천에도 강한 교회를 뜻한다.
그런 의미에서 하나님의 관점과 인간의 관점은 완전히 다를 수 밖에 없다. 성경은 수량적으로 50명인 교회가 1만 명인 교회보다, 질적으로 그리고 성숙도에 있어 더 강한 교회가 될 수 있다고 가르친다. 반면 인간은 그런 일이란 결코 일어날 수 없거나 일어나서도 안 된다고 본다. 우리가 성경의 관점을 따라야 한다는 것은 자명하다.
그렇다면 실제적으로 규모는 작지만 복음의 이해와 실천에 강한 ‘강소교회’가 지녀야 할 특징들은 무엇인가?
첫째, 한 영혼을 온 우주보다 귀하게 여기는 주님의 마음을 가져야 한다.
성도가 천 명이 넘고 만 명이 넘어가면, (물론 다 그런 것은 아니지만) 한 영혼의 가치에 대해 무감각해지기 쉽다. 심지어 어떤 이들은 성도 1만 명이 넘는 교회에 다니는 한 성도의 가치가, 성도 수 30명 정도의 교회에 다니는 한 성도의 가치보다 크다는 터무니없는 생각을 하기도 한다. 잃어버린 한 영혼, 다시 찾아야할 한 영혼을 귀하게 여기는 주님의 마음을 가진 교회가 진정한 의미의 ‘강소교회’다.
둘째, “모든 믿는 자에게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능력(롬 1:16)”인 복음에 대한 깊은 이해를 가져야 한다.
복음은 죄와 사망과 마귀의 노예 상태에 있는 죄인을 오직 예수님의 은혜와 그리스도에 대한 믿음으로 구원하시고 하나님 나라를 유업으로 주신다는 큰 기쁨의 좋은 소식이다. 복음이 가져다 주는 구원은 영원한 죄사함과 칭의, 새로운 사람으로 거듭남, 예수 그리스도와의 연합과 영적 결혼, 하나님의 아들과 딸이 되는 특권, 성령의 내주와 충만과 교통, 완전한 자유와 해방, 영원한 하나님 나라의 상속, 그리스도의 형상을 본받음, 열매있는 사명자의 삶 등 다양한 복과 혜택을 담고 있는 종합선물세트와 같다. 이 진리에 대한 이해가 날마다 새로워지고 깊어져야 한다.
셋째, 복음에 대한 깊은 이해와 더불어, 복음을 실천함에 있어서 강한 교회가 되어야 한다.
복음의 실천에 있어 강한 교회란 복음적인 풍토와 분위기가 지배하는 교회를 뜻한다. 정죄와 판단, 비난과 배제가 아닌, 용서와 분별, 격려와 수용이 교회의 지배적인 풍토가 되어야 한다. 그리고 이웃들을 향한 전도와 사랑과 섬김에 있어 자발성과 적극성과 열정이 지배하는 교회가 되어야 한다. 이런 교회가 복음에 강한 교회다.
넷째, 유기적 교회론(organic ecclesiology)과 선교적 교회론(missional ecclesiology)으로 무장해야 한다.
유기적 교회론이란 교회를 제도화된 조직체로 보기 전에, 살아있는 생명체로 보는 관점이다. 교회는 예수 그리스도의 몸이다. 유기적 교회란 예수님의 몸을 이룬 지체들이 서로 끈끈하게 연결되고, 막힘 없는 소통을 누리며, 함께 긴밀하게 연합하여, 머리 되신 예수님의 뜻에 수종드는 역동적인 공동체를 의미한다.
각 지체의 분량과 은사를 따라 섬기며, 오로지 교회의 머리되신 주님의 명령에 순종하는 것을 최고의 가치로 인식하는 살아있는 공동체를 의미한다. 건물이나 회의나 직분이나 관료화된 행정 중심의 교회가 아닌, 그리스도의 생명의 흐름과 인격적 교통과 사귐을 중시하는 교회다. 그야말로 사도 시대 가정 교회들이 보여준 바로 그 교회의 모습을 지향하는 교회다.
선교적 교회론이란 선교가 교회가 수행하는 여러 사역들 중 하나가 아니라, 교회의 존재적 본질이며 목적이라는 관점이다. 교회는 창조와 타락과 구속과 완성이라는 구속사의 전 과정을 통해 이뤄지는 ‘하나님의 선교(missio Dei)’에 참여하도록 부름받았고, 세상으로 파송되었다.
그러므로 교회의 모든 사역들은 본질상 ‘선교적’이다. 예배, 교육, 훈련, 변증, 교제, 복음전도, 섬김, 봉사, 구제 등 교회의 모든 사역들은 하나님의 선교에 동참하는 과정이자 기회이다.
선교적 교회론은 결국 만인 선교사론으로 확대된다. 전문 선교훈련을 받고 선교단체의 파송을 받아 풀타임으로 사역을 감당하는 사람들만이 선교사가 아니라, 일상 속에서 하나님 나라와 뜻을 추구하며 살아가는 모든 그리스도인들이 예수님의 파송을 받은 선교사라는 것이다. 예수님은 모든 개개인 그리스도인들을 그들의 삶터와 지역사회와 전세계로 파송하신 것이다.
마지막으로 강소교회는 ‘종말론적 교회론’(eschatological ecclesiology)으로 무장한 교회다. 예수님의 초림으로 하나님 나라는 이 땅에 도래했다. 이미 도래한 하나님의 나라는 현재 확장 중이며, 예수님의 재림으로 완성될 것이다. 이것이 신약 종말론의 기본 골격이다.
중요한 것은 예수님의 재림과 하나님 나라 완성의 여러가지 징조들에 대해 주님이 직접 언급하셨다는 사실이다. 그 마지막 징조에 대해 주님은 “이 천국 복음이 모든 민족에게 증언되기 위하여 온 세상에 전파되리니 그제야 끝이 오리라(마 24:14)”고 말씀하셨다. 세계 선교가 완성되면 주님이 다시 오신다는 말씀이다.
지금 많은 선교학자들은 세계 선교 완성이 머지 않아 이뤄질 것이라고 보고 있다. 어떤 이들은 한 세대, 또 다른 이들은 두 세대 정도 걸릴 것이라고 예측한다. 주님이 다시 오시는 그 날과 시는 아무도 알 수 없고, 또 정하려고 해서도 안 된다. 그러나 세계 선교의 완성이라는 기준으로 볼 때, 진정 우리는 주님 재림 직전의 시기를 살아가고 있다.
강소교회는 이런 종말론적 의식으로 무장한 교회다. 그리고 우리에게 다가오는 종말은 우리의 영적인 신랑되신 주님께서 자신의 신부인 교회를 맞이하여 혼인잔치(계 19:1-10)를 벌이는 날임을 인식하는 교회다.
따라서 우리의 종말은 두렵고, 어두운 종말이 아닌, 밝고 행복한 종말(딛 2:13)임을 기억하고 자신을 거룩한 신부로 단장하며, 간절히 신랑의 오심을 기다리는 교회다.
필자는 한국교회가 나아가야 할 방향이 강소교회론이라고 확신한다. 규모는 작지만 복음의 이해와 실천에서 강한 교회가 한국교회의 미래가 되어야 한다. 그렇게 될 때 한국교회는 세상의 빛으로 소금으로 드러나게 될 것이며, 희망찬 미래를 열어주는 진리와 사랑의 공동체가 될 것이다.
부디 삼위일체 하나님께서 한국교회를 긍휼히 여기시고, 무수한 강소교회들을 일으켜 주시길 간절히 기도한다.
정성욱 교수(美 덴버신학교 조직신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