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편, 대표적인 한국의 오순절주의 교단인 하나님의성회는 1960년대에 조용기 목사를 중심으로 비약적인 발전을 하다가, 1970년대부터는 장로교, 감리교 그리고 성결교회와 함께 한국의 대표적인 교단으로 성장하게 되었다. 오순절교단의 성장에 따라 한국교회의 방언에 대한 인식도 점차 긍정적으로 변해왔는데, 이런 변화의 중심에는 전 세계에서 최대의 단일교회로 소개된 바 있는 하나님의성회 소속 여의도순복음중앙교회가 미국 하나님의성회의 전통에 따라 방언에 대한 강조를 오순절신앙의 본질적인 요소 가운데 하나로 규정하고 있는 이유도 있다.
한국 신학계에서의 성령론 논쟁은 주로 오순절 성령 강림의 단회성과 지속성 여부의 관점에서 이루어져 왔다. 방언에 대한 부정적 비판을 위해 신학적 기반을 제공한 것은 워필드(B. B. Warfield), 개핀(Richard Gaffin) 그리고 후케마(Anthony Hoekema) 등의 저술을 중심으로 한 주로 정통 개혁주의 성령론의 영향이었다. 그러자 1980년대에는 박형룡의 노선을 따라 국내 신학자 중에 신성종, 김해연 등이 성령 은사의 중단성에 입각한 정통 개혁주의 성령론의 입장에서 방언에 대한 비판에 나섰다.
그런가 하면 한국교회 대부흥운동의 성령론, 즉 근대 개혁파 성령운동의 노선에 서있던 차영배, 안영복 등은 자기들의 성령세례론 입장이 방언을 동반한 오순절주의와는 전혀 다르다는 것을 변증하고, 또 다른 한편으로는 자기들의 노선이 근대 개혁파 성령운동과 초기 한국교회 부흥운동의 성령론 전통을 충실히 따른 것임을 역설하게 되었다.
전술한 바와 같이, 개혁주의 내에서 중생과 성령세례를 구분하는 경향은 근대 개혁파 성령운동의 산물이다. 그러나 근대 개혁파 성령운동은 방언을 성령 받은 일차적인 증거로 보는 전통 오순절주의 성령론과는 구별된다. 오히려 20세기 초 전통 오순절주의의 태동보다도 훨씬 앞선 전통을 지닌 19세기 개혁파 자체적인 성령운동의 전통이다. 그러므로 1980년대 한국교회 성령론 논쟁 당시에서, 중생 이후의 은혜의 단계를 말한다고 해서 무조건 오순절파라고 단정한 것은 오순절주의에 대한 너무 막연한 시각이었다고 생각된다.
예를 들어서 김길성은 다음과 같이 말했다; “차영배 교수나 안영복 교수의 잘못을 지적하면, 오순절과 똑같이 중생 이후에 은사를 받는 어떤 순간이 있다는 것이다. 그렇게 주장하면 오순절파이다. 물론 차영배 교수가 한국교회가 하나님 앞에 회개하고 열정을 가져야 한다고 말하는 그 열정은 인정한다. 그러나 그분의 오순절적인 요소에는 동의하지 않는다.” (김길성, “우리 시대를 위한 개혁주의 구원론”) 그리고 또 다른 저술에서 김길성은 안 교수의 견해는 전통적인 개혁파 교회의 구속역사적인 관점보다는, 구원 순서의 관점에서 오순절 사건을 조명해 본 오순절 입장을 수용했다고 하는 점에서 문제점이 지적될 수 있다고 하였다.
그러나 사실을 말하자면 이인한이나 차영배나 안영복의 노선은 오순절주의하고는 다르다. 전통 오순절주의 성령론의 특징인 성령세례 받은 첫 표적으로서의 방언에 대한 언급이 그들에게서는 강조되고 있지 않다. 또 그들이 추종한 개혁파 전통의 무디(D. L. Moody)나 토레이(R. A. Torrey)를 오순절파라고 말할 수도 없지 않은가?
그렇다면 이인한이나 차영배나 안영복 등은 단지 근대 개혁파 성령운동과 또 이를 계승한 초대 한국교회 성령운동의 전통에 충실했던 것으로서, 오순절주의라고 단정할 근거는 없는 것이다. 이처럼, 중생과 성령세례를 구분하는 경향을 무조건 ‘오순절파’라고 보는 시각은 무리가 있는 것이기에 시정되어야 한다.
1980년대에 들어서면서 한국교회 내에서는 마침내 성령론에 관한 신학적인 격돌이 야기되었다. 성령론의 교리적 노선에 따라 삼파전 양상을 띠게 되었는데, 그 첫째는 오순절운동이고, 둘째는 장로교회 계통의 성령운동이고, 그리고 셋째는 성결파 계통의 성령운동이었다. 이 중에서 이 시대를 가장 특징 지워 준 것은 오순절운동이며, 나머지 두 가지 성령론은 오순절운동에 대한 반동(反動)으로서 한국 신학계에 정식으로 떠오르게 된 것이다.
오순절 성령운동에 대한 신학적 경계의 필요성을 느낀 신학자들과 교계 지도자들이 장로교를 중심으로 활발한 성령론 논쟁을 벌이게 되었다. 장로교회에서는 사실 이러한 문제가 야기되기 전까지는 성령론에 있어서 큰 강조를 하지 않고 있었다. 이는 장로교회가 신조로 사용하고 있는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 속에 성령론에 관한 항목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사실은 정통적 장로교회가 성령에 대해 많은 관심을 기울이지 않았다는 점과 연계된다는 점을 보아서도 알 수 있다. (김명용, “성령운동, 그 바람직한 균형은”)
그러나 일단 성령론 확립의 필요성을 일깨움 받게 된 장로교 신학자들은 성령론을 전개하되, 초자연적인 성령의 나타남이라든지 성령 은사의 계속성 등을 철저히 배제하는 노선을 적용하게 되었다. 그 이유는 오순절운동에서 비롯되는 극단적인 양상들을 막아 보고자 하는 데 있었고, 또 한편으로는 미국의 옛 프린스톤의 핫지(Charles Hodge)나 워필드(B. B. Warfield)와 같은 신학자들이 성령의 은사의 중단성(中斷性)을 주장했던 것과 신학적인 연관성을 지니고 있었기 때문이기도 했다. 그래서 장로교회의 성령운동은 주로 회개와 중생 그리고 성화(聖化)와 관련시켜 전개되었다.
그런가 하면 성결파 계통의 성령운동은 웨슬리(John Wesley)의 구원론의 특징인 성결 체험을 강조하는 성령론이었다. 웨슬리에 의하면 ‘완전한 사랑’(Perfect Love) 또는 ‘그리스도인의 완전’(Christian Perfection)이라는 말로 성결의 단계를 설명하였다. 성결파의 부흥강사들은 그들의 집회 때에 ‘성령세례’, ‘불세례’, ‘온전한 성결’ 그리고 ‘성령을 받으라’ 등의 용어를 사용하여 중생(重生) 이후에 다가오는 순간적인 성결의 은혜를 표현하였다. 여기서 말하는 ‘순간적 성결’이란 신자가 온전히 헌신하여 오직 그리스도의 영(靈)에 의해 다스림을 받는 상태를 순간적인 믿음으로 획득하는 것을 말한다. 그리고 이 순간적 성결의 입문과정을 통해서 신자는 ‘지속적 성결’의 과정으로 나아간다는 것이다.
배본철 교수(성결대학교 역사신학/성령의 삶 코스 대표)
유튜브 : 배본철 www.youtube.com/user/bonjourba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