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국 복음
‘복음’과 ‘천국’은 분리할 수 없다. 성경도 복음의 별명을 ‘천국 복음(마 4; 9; 24)’, ‘하나님 나라의 복음(눅4; 16)으로 명명했다. 따라서 복음을 말하면서 천국을 말하지 않을 수 없으며, 복음을 믿는다 하면서 천국을 안 믿을 수 없다.
만일 누가 복음을 믿는다 하면서 천국을 안 믿으면 이는 이율배반이다. 오늘 기독교인이라 자처하는 이들 중에 이런 사람들이 더러 있다. ‘성자 하나님이 이 땅에 사람 되어와 우리를 위해 죽으신 것(복음)’은 ‘낮고 천한 죄인을 천국으로 이끌기 위함’이었다.
“긍휼에 풍성하신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신 그 큰 사랑을 인하여 허물로 죽은 우리를 그리스도와 함께 살리셨고(너희가 은혜로 구원을 얻은 것이라) 또 함께 일으키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함께 하늘에 앉히시니(엡 2:4-6).”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에게 겨우 ‘땅의 것’ 주시려고 당신의 ‘고귀한 생명’을 희생하실 리 만무하다. 노련한 장사꾼은 결코 밑지는 장사를 안 한다. 지혜로운 상인(商人)인 그리스도는 우리에게 기껏 ‘땅의 것’ 쥐어주려 ‘천국의 재화(財貨)’를 낭비하시지 않는다.
예수님이 십자가에 죽으시고 부활하신 후 40일간 제자들에게 ‘오직 하나님 나라의 일’만을 말씀하신 것은 ‘그의 죽음·부활’과 연합했던 그들에게 ‘하나님의 나라’가 약속됐고, 또한 그것이 그들이 헌신해야 할 나라임을 시사한 것이다.
“해 받으신 후에 또한 저희(사도, 제자)에게 확실한 많은 증거로 친히 사심을 나타내사 사십 일 동안 저희에게 보이시며 하나님 나라의 일을 말씀하시니라(행 1:3)”. 한국 초대교회 전도자 최권능 목사님이 전도할 때 ‘예수 천당’이라고 외친 것은 예수님(막 1:1)이 우리에게 주시려고 한 것이 천국임을 말한 것이며, 이는 기독교 신앙의 정곡을 찌른 것이다.
◈거듭난 자의 천국
‘거듭남’과 ‘천국’은 서로 뗄 수 없다. 먼저 ‘거듭남’은 우리에게 ‘천국입성의 자격’을 갖다준다. “사람이 물과 성령으로 나지 아니하면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수 없느니라(요 3:5).”
“거기 대로가 있어 그 길을 거룩한 길이라 일컫는바 되리니 깨끗지 못한 자는 지나지 못하겠고 오직 구속함을 입은 자들을 위하여 있게 된 것이라 우매한 행인은 그 길을 범치 못할 것이며(사 35:8).”
그리고 ‘거듭남’은 이 땅에서 성도에게 ‘성령 안에서의 천국’을 경험시킨다. “하나님의 나라는 먹는 것과 마시는 것이 아니요 오직 성령 안에서 의와 평강과 희락이라(롬 14:17).”
“하나님의 나라는 볼 수 있게 임하는 것이 아니요 또 여기 있다 저기 있다고도 못하리니 하나님의 나라는 너희 안에 있느니라(눅 17:20-21)”, “내가 하나님의 성령을 힘입어 귀신을 쫓아내는 것이면 하나님의 나라가 이미 너희에게 임하였느니라(마 12:28).”
또한 ‘거듭남’은 사후(死後)에 그곳으로 올리우게 한다. “만일 땅에 있는 우리의 장막 집이 무너지면 하나님께서 지으신 집 곧 손으로 지은 것이 아니요 하늘에 있는 영원한 집이 우리에게 있는 줄 아나니(고후 5:1).”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오늘 네가 나와 함께 낙원에 있으리라 하시니라(눅 23:43).”
그리고 그 ‘거듭남의 모태’는 2천 년 전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이다. 그가 택자의 죄를 지고 십자가에 못 박히셨을 때 그들도 함께 못 박혔고, 그가 부활할 때 그들도 함께 부활했고, 그 때 그들의 거듭남이 ‘잠재적’으로 구현됐고, 직접 ‘복음으로 구원에의 부르심’을 받았을 때 그들에게 ‘실제’가 됐다.
예수님이 승천하시면서 “내가 너희를 위하여 처소를 예비하러 가노니 가서 너희를 위하여 처소를 예비하면 내가 다시 와서 너희를 내게로 영접하여 나 있는 곳에 너희도 있게 하리라(요 14:2-3)”고 한 것은 ‘구속과 거듭남’에 대한 일종의 비사(figures of speech, 比辭)였다.
‘처소를 예비하러 간다’는 예수님이 그 때 비로소 천국을 마련하려고 승천한다는 말이 아니다. 우리에게 천국 입성의 자격(거듭남)을 갖춰주려고 ‘십자가 구속을 이루려 가신다’는 뜻이다.
“사람이 물과 성령으로 나지 아니하면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수 없느니라(요 3:5)”는 말씀 역시 단지 미래의 천국 입성자의 자격에 한(限)하여 말한 것이 아니다. 금세(今世)에 이 땅에서 그리스도의 구속을 입어 천국에 올려진(거듭난) 사람만 사후(死後)에 천국에 들어간다는 말이다.
또 ‘거듭난 성도가 죽어 천국에 들어가는 것’은, ‘이미 그가 올려진 곳으로 올리우는 것’이고, ‘이미 그에게 와 있는 천국’에 들어가는 것이다.
◈예수 천국
성도가 천국을 갈망하는 것은 그곳이 단지 ‘죽음, 슬픔, 눈물, 아픔이 없는 곳(계 21:4)’이라는 이유 때문만은 아니다. 그 보다 더 큰 이유가 있다. 이는 그곳에 그들의 구주 예수 그리스도가 계시기 때문이다.
많은 성경 구절들이 천국을 그렇게 묘사했다. “우리가 담대하여 원하는 바는 차라리 몸을 떠나 주와 함께 거하는 그것이라(고후 5:8)”. “너희를 위하여 처소를 예비하면 내가 다시 와서 너희를 내게로 영접하여 나 있는 곳에 너희도 있게 하리라(요 14:2-3).”
“그 후에 우리 살아남은 자도 저희와 함께 구름 속으로 끌어 올려 공중에서 주를 영접하게 하시리니 그리하여 우리가 항상 주와 함께 있으리라(살전 4:17).”
‘그리스도인이 천국에 간다’는 말은 단지 ‘현세’에서 ‘내세’에로의 ‘공간적 이동’만을 뜻하는 것이 아니고, ‘하나님께로 간다’ 혹은 ‘예수 그리스도께로 간다’는 ‘인격적인 의미’를 함의한다.
예수님도 자기가 세상을 떠나 천국에 가는 것을 ‘아버지께로 간다’, ‘아버지 집으로 간다’고 하셨다. “내가 아버지께로 나와서 세상에 왔고 다시 세상을 떠나 아버지께로 가노라(요 16:28)”, “내 아버지 집에 거할 곳이 많도다(요 14:2-3)”.
최권능 목사님이 전도할 때 ‘예수 천당’이라고 한 것이나 이성봉 목사님이 “예수 없는 천국도 싫고요, 예수있는 지옥도 나는 싫지 않아요”라고 노래한 것은 그들이 천국에 ‘공간적인 의미’보단 ‘예수님이 계신 곳’이라는 인격적인 의미’를 더 크게 부여한 때문으로 본다.
어떤 사람들이 비난하듯, 천국은 세상에서 도망치려는 염세주의자들의 도피처가 아닌, 예수 그리스도를 사랑하는 이들이 그와 함께 있는 곳이다.
그리고 ‘천국’은 사람이 그곳에 입성할 때 비로소 처음 경험되는 것이 아니며, 예수 그리스도가 그 안에 내주하시므로 이미 세상에서 경험됐다. 그리고 그 경험을 근거로 그들이 그곳을 갈망하는 것이다.
비유컨대 의를 맛본 자가 의에 주리고 목말라하는 것(마 5:6)과 같다. 그를 한 번도 만난 경험 없는 미(未) 중생자는 천국이 얼마나 좋은 걸 모르기에, 그곳을 갈망하지 않는다. 그리스도가 그 안에 내주하심으로 ‘심령천국’을 경험한 자는 그리스도가 계신 ‘하늘 천국’을 사모한다. 할렐루야!
이경섭 목사(인천반석교회, 개혁신학포럼 대표, https://blog.naver.com/PostList.nhn?blogId=byterian ) 저·역서: <이신칭의, 값싼 은혜가 아닙니다(CLC)>, <개혁주의 신학과 신앙(CLC)>, <개혁주의 영성체험(도서출판 예루살렘)>, <현대 칭의론 논쟁(CLC, 공저)>, <개혁주의 교육학(CLC)>, <신학의 역사(CLC)>, <기독교신학 묵상집(CLC, 근간)> 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