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 동성애 갈등 관련 칼럼에 반박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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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제주평화인권연구소 왓 상임활동가의 글을 읽고

▲2022 제주인권포럼 중 인권위에서 ‘인권기본조례 개정 표준안’에 대한 특별회의을 열고 있다. ⓒ인권위 제주출장소 페이스북

▲2022 제주인권포럼 중 인권위에서 ‘인권기본조례 개정 표준안’에 대한 특별회의을 열고 있다. ⓒ인권위 제주출장소 페이스북

‘제주평화인권연구소 왓’ 상임활동가 중 한 명이 2022년 10월 31일자 ‘제주의소리’라는 언론에 “혐오 표현을 자유롭게 말할 권리는 없다”는 제목의 글을 게시하면서, 이에 대하여 민주주의적 원칙에 입각한 토론을 하자고 초청하였다. 그 초청에 응하여 이 칼럼을 작성한다.

그 글의 첫머리는 다음과 같이 시작한다.

“혐오는 다수의 관점에서 소수자들을 배제하는 경계선을 그어 차별과 배제가 생기게 만든다. 예를 들어 누군가가 ‘저 여자가 우리 단체의 대표를 맡기에는 쫌 그렇지 않은가?’라는 말을 했다고 치자. ‘여자’라는 말은 그 단체의 속한 여성들에게는 칼이 된다. 그리고 여성은 단체의 대표가 될 수 없는 사람이라는 배타적 경계가 만들어진다. 그러므로 그러한 말은 여성혐오이자, 여성혐오 표현이 된다.”

여기서 사용된 ‘혐오, 차별, 배타적 경계, 배제’ 등의 단어는 자의적으로 재해석된 의미로 사용되며, 이후의 글에서도 논리를 제공하는 개념적 기초가 된다.

1. 이게 혐오와 차별이라고?

‘저 여자가’라는 표현은 여자라는 집단 전체를 지칭하는 것이 아니라, 특정 개인을 지칭하는 것이다. 사람이라는 단어는 남자와 여자를 모두 포함하기 때문에, 하위개념인 여자라는 명사는 상위개념인 사람보다 더 구체적이다. 따라서 ‘저 사람’이라고 표현하는 것보다 ‘저 여자’라고 표현한다면, 더 구체적인 단어를 쓴 것이기 때문에 의사소통 혼란의 가능성을 줄일 수 있게 된다.

그런데 왜 ‘저 여자’라는 말을 쓰는 것 자체로 혐오와 차별이 된다고 주장하는 건가? 한 가지 물어보자. 누군가가 ‘저 남자가’라는 표현을 쓰면, 이후에 한 말과 무관하게 그 자체로 남자에 대한 혐오이고 차별인가?

왜 특정 단어만큼은 사용 그 자체로 혐오와 차별이 되어야만 하는가? 왜 특정 단어의 사용을 금지하는가? 왜 특정 단어를 성역화하는가? 그리고 왜 금지된 단어와 성역화된 단어를 당신이 결정하는가?

혹시 언어를 지배하면 사람들의 생각을 지배할 수 있다는 사피어(Edward Sapir)와 워프(Benjamin Whorf)의 말을 믿기 때문이 아닌가? 만일 당신이 사피어-워프 가설을 알면서 이런 칼럼을 썼다면, 당신은 당신 주장처럼 민주주의자인 것이 아니라 언어의 장악을 통헤 사상의 검열을 획책하는 반민주주의자이다.

2. 구분과 차별은 다르지 않는가?

만일 ‘저 여자’가 아니라 ‘여자’라는 말을 썼다면? 이 경우 여자라는 집단 전체를 지칭한 것이 될 수는 있다. 그런데 여자가 단체의 대표라는 ‘좋은 것’을 하기에 부적합하다는 의미이므로 혐오이고 차별이란 말인가?

그렇다면 이건 어떤가? “여자가 건설 현장에서 가장 무거운 물건을 나르는 일을 맡기에는 쫌 그렇지 않은가?” 이것도 혐오이고 차별인가?

어떤 집단이든지 그 집단의 목적을 더 잘 이루기 위해서는 구성원들이 서로 다른 역할을 맡아야 한다. 이를 분업이라 한다. 분업은 전문화를 통해 규모의 경제를 달성할 수 있게 만든다. 특정 일을 더 잘하거나 더 원하는 사람에게 그 일을 맡기는 것은 차별이 아니라 합리적인 분업이 된다.

여성과 남성은 생리학적 특성의 차이 때문에 매우 다른 심리적 욕구를 가진다. 따라서 남성과 여성은 하고 싶어하는 역할의 종류가 다른 경우가 많다. 또한 해부학적 차이 역시 뚜렷하기 때문에 잘 할 수 있는 역할 역시 다를 수 있다. 이러한 명백한 차이 때문에 역할의 종류에 따라서는 성별이 절대적인 기준이 되어야 할 때도 있다.

판단의 기준이 합리적인 것은 구분이고, 비합리적인 경우만 차별이다. 따라서 당신이 예로 든 저 말 자체로는 차별인지 여부를 판단할 수 없으며, 저렇게 말한 이유를 듣고 나서야 그것이 합당한 근거가 있는 것인지를 판단할 수 있게 된다.

부당한 차별인지 타당한 구분인지를 듣기도 전에 특정 단어를 특정 맥락에서 사용했다는 이유만으로 혐오와 차별이라 규정한다면, 이야말로 말하는 자에 대한 명예훼손과 모욕이며, 당신이 좋아하는 말로는 혐오와 차별이요, 인권 침해이다.

3. 여성은 사회계급인가? 개인이 아닌가?

대한민국 헌법 제11조 2항에 따르면, 우리나라에는 어떤 사회계급도 인정되지 않는다. 그런데도 당신은 우리 사회에 계급이 존재하는 것처럼 말한다.

우리 헌법에 따르면, 우리 국민 모두는 자유와 권리를 가진 존엄한 개인으로서만 존재하며, 어떤 개인이 여자라면 그는 단지 태어나 보니 여자가 된 것뿐이다. 당신의 이름이 태어나 보니 ‘신강협’이 된 것처럼 말이다.

한 ‘개인’으로서의 여성은 결코 계급이 아니다. 그런데도, 당신은 ‘저 여자가’라는 개인을 지칭한 표현을 여자라는 전체 ‘집단’을 지칭한 것처럼 해석한다. 왜인가? 당신은 혹시 모든 개인을 특정 사회계급의 일원으로 보는 것이 아닌가?

현실 자체는 객관적이지만, 현실에 대한 인식은 결코 객관적이지 않다. 개인의 경험적 배경과 사상적 신념은 내면에 ‘인식의 틀(perceptual framework)’을 형성하고, 결국 개별 사안에 대한 주관적 해석에 영향을 미친다.

당신이 대체 어떤 경험과 사상적 배경을 가졌기에, ‘저 여자가’라는 표현을 여자라는 ‘집단’으로 해석했는지, 그 ‘인식의 틀’은 무엇인지 정말 궁금하다.

4. 단어를 정확히 사용해야

‘혐오’라는 단어를 사전적 의미에 맞게 사용하기 바란다. 당신이 함께 사용한 ‘혐오’와 ‘차별’이라는 두 단어는 사전적으로 매우 다른 의미를 가진다. 사랑과 애정, 두려움과 공포라는 유사한 단어들이 함께 쓰이는 것처럼 쓰일 수 있는 단어가 결코 아니라는 것이다.

사랑하면서 애정을 갖지 않기 힘들고, 두려우면서 공포를 느끼지 않는 것은 힘들지만, 혐오하면서 차별하지 않는 것은 충분히 가능하며, 차별하면서 혐오하지 않는 것 역시 얼마든지 가능하다.

당신은 “저 여자가 우리 단체의 대표를 맡기에는 쫌 그렇지 않은가”라는 말만으로, 그 사유를 듣기도 전에 ‘배제하는 경계선’을 그은 것이라고 해석하고 ‘여성혐오’라고 우긴다. 여성에게 조금이라도 불리하다고 생각하는 모든 언행은 여성혐오인가? 그렇다면 당신은 사전적 의미와는 매우 다르게 ‘혐오’라는 단어를 사용하고 있는 것이다.

사실 이는 당신만의 문제가 아니다. 우리 사회에서 혐오라는 단어는 이미 매우 오염되어 있다. 심지어 남자가 여자를 좋아해서 스토킹하다가 거절당하자 살해한 신당역 사건마저, 여성혐오의 전형적인 예라고 믿는 사람이 많다(한겨레, 2022년 9월 17일자).

당신이 만일 이 기사를 쓴 기자에게 공감한다면 한 가지 물어보자. 그 남자가 단순히 여자라는 이유로 피해자를 죽였는가? 길을 가다가 여자라는 이유만으로 소위 ‘묻지마 살인’을 한 것이라면, 이는 여성혐오가 맞다.

하지만 신당역 살인이 여성 ‘혐오’의 예가 되려면, 범인이 피해자를 스토킹하지 말았어야 했다. 혐오하는, 즉 ‘몹시 싫어하여 꺼리는(네이버 사전: 혐오)’ 존재를 스토킹하는 것은, 정상적인 사람이라면 결코 할 수 없는 일이기 때문이다.

당신이 사용하는 ‘소수자’라는 단어도 나에게는 “쫌 그렇다.” 당신은 분명 여성을 ‘소수자’라고 표현하였다. 그런데 2022년 기준 우리나라 전체 인구 성비를 보면, 여성을 100으로 보았을 때 남성의 비율은 99.8이다. 숫자로 보면 여성이 남성보다 4만 7,377명이나 더 많다. 그런데 왜 여성이 소수자인가? 오히려 남성이 소수자가 아닌가?

5. 혹시???

필자도 사회과학 공부를 조금 한 사람이라서 이런 식의 사고방식이 낯설지만은 않다. 일반인도 이름을 한 번쯤 들어봤을 법한 어떤 학자는 사회 전체가 계급으로 나누어진다고 말하였다. 그가 말하길 사회 내에는 다양한 계급들이 존재하는데, 힘이 강한 계급이 힘이 약한 계급을 억압한다고 하였다. 이것이 그가 가진 ‘인식의 틀’이었다.

확신할 수는 없지만, 묻고 싶다. 혹시 당신이 말한 ‘소수자’라는 단어는 ‘수가 적은 사람들’이 아니라, 이 학자가 말한 ‘억압당하는 계급’을 지칭하는 것인가? 혹시 그래서 당신은 모든 여성이 개인이 아닌 ‘소수자 계급’의 일원으로만 존재한다고 믿는 것인가?

혹시 당신이 ‘혐오’라는 말을 썼을 때 ‘몹시 싫어하여 꺼림’이라는 사전적 의미가 아니라, 이 학자가 말한 ‘억압’이라는 단어를 의미했던 것은 아닌가? 이 학자가 아니라면, 당신의 단어 사용을 이해할 수 있는 다른 방법이 내게는 없으며, ‘혐오’와 ‘차별’이 동일한 의미로 함께 사용될 수 있는 다른 경우를 나로서는 생각해내기 힘들다.

필자의 이 글에 반론을 펼치고 싶다면, 이 질문들에 꼭 답한 후 글을 시작해 주길 바란다. 당신의 생각이 나의 생각과 너무 달라서, 당신의 머리 속에 있는 ‘인식의 틀’이 무엇인지 정말 궁금하다. 몇 가지 단어에 대한 단순한 오해라면 시정함으로써 합의점을 찾을 수 있겠지만, 인식의 틀 자체가 너무나도 다르다면 당신이 말한 민주주의에 입각한 토론은 불가능한 것이기 때문이다. 만일 가능하다면, 필자가 말한 ‘어떤 학자’가 누구인지도 스스로 말해주면 정말 고마울 것 같다.

자유민주주의자인 필자는 당신이 무엇을 믿든 존중하지만, 당신의 자의적 단어 재정의만큼은 몹시 불편하다. 언어는 당신 혼자만의 것이 결코 아니기 때문이다. 특히 구분과 차별을 동일시하는 것만큼은 반드시 시정하기 바란다. 이것은 나뿐 아니라, 이성이 있는 대다수의 사람이 하는 합당한 구분을 ‘차별’이라고 매도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당신의 이름이 ‘신강협’이라고 차별을 받지 않는 것처럼, 여자라는 이유만으로도 차별을 받지 않는다. 단지 ‘구분’될 뿐이다. 당신이 이씨 종친회에 가입할 수 없는 것이 차별이 아닌 구분인 것처럼, 여자가 남자 화장실을 사용할 수 없는 것 역시 차별이 아닌 구분이다.

누가 만일 여자라는 이유만으로 구분이 아닌 ‘차별’을 받는다면, 필자 역시 당신의 인권운동에 동참할 의사가 있음을 밝힌다. 자유민주주의자인 필자로서도 이는 참을 수 없는 일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사회적 합의 없이 특정 단어의 사용을 금지하고 기존 단어의 의미를 왜곡시켜 당신과 생각을 달리 하는 사람들에게까지 당신이 가진 ‘인식의 틀’을 강요하는 당신의 행위만큼은, 우리 자유민주주의자들에 대한 ‘혐오’요 ‘차별’임을 명심하기 바란다.

우리 사회는 당신의 그 무도한 행위를 더는 묵과할 수 없는 지경까지 이르렀다. 그래서 더 이상 좌시하지 않을 것이다. 당신이 진정 자유민주주의자라면, 필자의 이러한 결의가 당신에 대한 개인적인 감정 때문이 아님을 이해할 것이다.

이형우
한남대 행정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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