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명혁 목사 설교] 범사에 감사하는 것이 ‘하나님의 뜻’
일시: 2022년 11월 20일
장소: 강변교회
본문: 살전 5:16-18
제가 가장 사랑하는 강변교회에 와서 사랑하는 이수환 목사님과 강변교회 성도들 모두와 함께 예배 드리면서 추수감사주일 설교를 하게 되어 하나님께 감사를 드리고, 여러분들 모두에게 감사를 드립니다.
오늘이 추수감사주일이기 때문에 ‘범사에 감사하는 귀중하고 아름다운 삶’이라는 제목으로 설교를 하려고 합니다. 이수환 목사님 너무 좋다고 했습니다.
“범사에 감사하는 삶”이 아주 귀중하고 아름다운 삶인데 그것이 우리들을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항상 기뻐하라 쉬지 말고 기도하라 범사에 감사하라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니라”(살전 5:16-18).
다니엘은 죽음의 위기 중에서도 하루에 세 번씩 무릎을 꿇고 기도하며 성부 하나님께 감사를 드렸습니다. “다니엘이 이 조서에 어인이 찍힌 것을 알고도 자기 집에 돌아가서는 그 방의 예루살렘으로 향하여 열린 창에서 전에 행하던 대로 하루 세 번씩 무릎을 꿇고 기도하며 그 하나님께 감사하였더라”(단 6:10).
시편 100편은 “감사함으로 그 문에 들어가며 찬송함으로 그 궁정에 들어가서 그에게 감사하며 그 이름을 송축할찌어다”(시 100:4) 라고 감사의 시를 읊었습니다. 시편 136편은 “여호와께 감사하라”는 말씀을 26절에서 매절 마다 26번 반복하며 하나님께 감사를 드렸습니다.
1절과 13절과 26절을 인용합니다. “여호와께 감사하라 그는 선하시며 그 인자하심이 영원함이로다… 홍해를 가르신 이에게 감사하라 그 인자하심이 영원함이로다… 하늘의 하나님께 감사하라 그 인자하심이 영원함이로다”(시 136:1.13.26).
성자 예수님께서는 때마다 성부 하나님께 감사를 드리고 또 드렸습니다. “예수께서 눈을 들어 우러러보시고 가라사대 아버지여 내 말을 들으신 것을 감사하나이다”(요 11:41). “천지의 주재이신 아버지여 이것을 지혜롭고 슬기 있는 자들에게는 숨기시고 어린 아이들에게는 나타내심을 감사하나이다”(마 11:25).
사도 바울은 성자 예수님의 따뜻하신 부르심을 받고 회개한 다음 믿음과 사랑과 소망의 삶을 살게 되었는데 환경에 상관없이 가난과 고난과 역경과 슬픔 중에서도 항상 기뻐하고 범사에 감사하면서 사는 행복한 사람이 되었다고 생각합니다.
사도 바울은 편지를 쓰거나 기도를 할 때마다 감사하고 또 감사했는데 성도들을 향해서는 “범사에 감사하라”는 권면을 하고 또 했습니다.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에게 주신 하나님의 은혜를 인하여 내가 너희를 위하여 항상 하나님께 감사하노니”(고전 1:4). “우리가 너희 무리를 인하여 항상 하나님께 감사하고 기도할 때에 너희를 말함은 너희의 믿음의 역사와 사랑의 수고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 대한 소망의 인내를 우리 하나님 앞에서 쉬지 않고 기억함이니”(살전 1:2,3).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에게 이김을 주시는 하나님께 감사하노니”(고전 15:57). “항상 우리를 그리스도 안에서 이기게 하시고 우리로 말미암아 각처에서 그리스도를 아는 냄새를 나타내시는 하나님께 감사하노라”(고후 2:14). “말할 수 없는 그의 은사를 인하여 하나님께 감사하노라”(고후 9:15).
“누추함과 어리석은 말이나 희롱의 말이 마땅치 아니하니 돌이켜 감사하는 말을 하라”(엡 5:4). “범사에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항상 아버지 하나님께 감사하며 그리스도를 경외함으로 피차 복종하라”(엡 5:20,21).
“아무 것도 염려하지 말고 오직 모든 일에 기도와 간구로, 너희 구할 것을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아뢰라”(빌 4:6). “너희가 한 몸으로 부르심을 받았나니 또한 너희는 감사하는 자가 되라”(골 3:15). “범사에 감사하라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니라”(살전 5:18).
“나를 능하게 하신 그리스도 예수 우리 주께 내가 감사함은 나를 충성되이 여겨 내게 직분을 맡기심이니 내가 전에는 훼방자요 핍박자요 포행자이었으나 도리어 긍휼을 입은 것은 내가 믿지 아니할 때에 알지 못하고 행하였음이라”(딤전 1:12,13). “사망아 너의 이기는 것이 어디 있느냐 사망아 너의 쏘는 것이 어디 있느냐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에게 이김을 주시는 하나님께 감사하노니”(고전 15:55,57).
사도 바울은 자기의 약함과 궁핍과 핍박은 물론 자기의 죄성을 인해서도 하나님께 감사를 드리고 또 드리면서 기뻐하고 또 기뻐했습니다.
“내가 그리스도를 위하여 약한 것들과 능욕과 궁핍과 핍박과 곤란을 기뻐하노니 이는 내가 약할 그 때에 곧 강함이니라”(고후 12:10).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께 감사하리로다 그런즉 내 자신이 마음으로는 하나님의 법을, 육신으로는 죄의 법을 섬기노라”(롬 7:25).
사도 바울처럼 범사에 감사하면서 살고 감사에 미쳐서 산 사람도 별로 없을 것입니다.
세상에서 가장 아름답고 가장 행복한 사람은 범사에 감사할 줄 아는 사람이라고 생각합니다. 범사에 감사할 줄 아는 사람은 아름다운 사람이고 행복한 사람이고 범사에 감사할 줄 모르는 사람은 아름다움이 없는 사람이고 불행한 사람이라고 생각합니다.
감사 대신 근심, 걱정, 불평, 불만에 사로잡혀서 사는 사람은 불행하고 불쌍한 사람이라고 생각합니다. 성경은 우리 그리스도인들을 향해서 단도직입적으로 “범사에 감사하라”고 명령을 합니다. 범사에 감사하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라고 선언합니다. 범사에 감사하는 것이 그리스도인들의 당연하고 마땅한 삶이라는 말씀입니다.
감사는 감사할 줄 아는 마음을 가질 때 생깁니다. 감사할 줄 아는 마음을 가지면 모든 것이 감사합니다. 비가 오면 비가 와서 감사하고 눈이 오면 눈이 와서 감사합니다. 감사할 줄 모르는 사람은 모든 것이 불만이고 모든 것이 불평입니다. 비가 오면 비가 와서 불만이고 눈이 오면 눈이 와서 불평합니다.
감사할 줄 아는 마음이란, 모든 것이 하나님의 은혜요 모든 것이 부모님과 신앙의 선배님들의 은혜요 모든 것이 이웃과 사회의 은혜라고 생각하는 열린 마음이고 따뜻한 마음입니다. 감사할 줄 아는 열린 마음을 가진 사람은 “하나님 아버지 감사합니다 부모님 감사합니다 신앙의 선배님들 감사합니다 이웃님들 감사합니다” 이렇게 말하면서 감사하고 또 감사합니다.
사도 바울은 누추한 말이나 어리석은 말이나 희롱의 말 대신 “감사하는 말을 하라”(엡 5:4) 라고 권면을 했습니다. 감사할 줄 아는 사람은 이렇게 노래합니다. “주님이 주신 모든 것 가만히 생각할 때에 가슴이 점점 부풀어 올라, 눈부신 햇살의 아침과 황홀한 노을 빛 저녁과 찬란히 빛나는 별들의 밤하늘, 모든 것을 돌이켜 보며 곰곰이 생각할 때도 주님께 모두 감사한 것뿐”.
“나 항상 이해하는 가족과 사랑하는 교회와 형제들 숨쉬며 기쁨으로 찬양하는 모습, 모두 모두 모두 주님 주신 선물들 아주 소중하고 귀중한 것 모두 감사하며 주께 찬양드리세”. “우리 모두 모두 즐겁게 손뼉 치면서 모두 신나게 춤도 추면서 아주 큰 소리로 주께 찬양해 할렐루야 할렐루야.”
이제 우리들이 세상에서 살아가면서 감사해야 할 조목들 다섯 가지를 함께 생각해 보겠습니다.
1. 사람으로 살고 있다는 사실
첫째로, 우리들이 사람으로 살고 있다는 사실 하나만 가지고도 우리들은 얼마든지 감사할 수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우리들이 창조주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음 받은 즉 신성을 지닌 사람으로 세상에서 살고 있다는 사실 하나만 가지고도 얼마든지 감사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사실 인간의 생명은 세상에서 가장 신비롭고 가장 아름답고 가장 고귀한 선물입니다. 물론 부모님이 생명을 우리들에게 전수해 주었지만 궁극적으로는 창조주 하나님께서 하나님 닮은 생명을 만들어서 우리들에게 선물로 주셨습니다.
결국 다윗은 자기 자신을 바라보면서 감사와 감격에 넘쳐서 이렇게 고백하면서 시를 읊었습니다. “나의 힘이 되신 여호와여 내가 주를 사랑하나이다”(시 18:1).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내가 부족함이 없으리로다”(시 23:1). “내가 주께 감사하옴은 나를 지으심이 신묘막측하심이라”(시 139:14).
다윗은 또한 자기를 울면서 회개할 수 있는 “회개”의 존재로 지어 주신 하나님께 감사를 드렸습니다. “내가 탄식함으로 곤핍하여 밤마다 눈물로 내 침상을 띄우며 내 요를 적시나이다”(시 6:6). 다윗은 자기를 용서하며 사랑할 수 있는 “용서”와 “사랑”의 존재로 지어주신 하나님께 감사를 드렸습니다. “나는 사랑하나 저희는 나를 대적하니 나는 기도할 뿐이라”(시 109:4).
다윗은 자기를 시와 노래로 하나님을 찬양할 수 있는 “찬양”의 존재로 지어 주신 하나님께 감사를 드렸습니다. “하늘이 하나님의 영광을 선포하고 궁창이 그 손으로 하신 일을 나타내는도다”(시 19:1).
다윗은 자기를 아버지의 집을 그리워하는 “천국 소망”의 존재로 지어주신 하나님께 감사를 드렸습니다 “나의 평생에 선하심과 인자하심이 졍녕 나를 따르리니 내가 여호와의 집에 영원히 거하리로다”(시 23:6).
우리들이 세상에서 살면서 감사해야 할 조목들 중 첫째는 내가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음 받은 신성을 지닌 사람으로 즉 “믿음”과 “회개”와 “용서”와 “사랑”과 “찬양”과 “천국 소망”을 지니고 살아갈 수 있다는 사실 하나만 가지고도 얼마든지 감사할 수 있습니다. 생명은 가장 소중하고 아름답고 신비로운 하나님의 선물이기 때문입니다.
우리들이 먹고 싶을 때 맛있게 먹을 수 있는 건강한 위와 입과 식욕이 있습니까? 그것 하나만 가지고도 일 평생 감사하고도 남을 수 있습니다. 우리들이 걸어 다니고 싶을 때 어디든지 마음대로 걸어 다닐 수 있는 건강한 다리와 발이 있습니까? 그것 하나만 가지고도 일 평생 감사하고도 남을 수 있습니다. 그리고 우리들이 회개하며 기도하고 싶을 때 회개하며 기도할 수 있고 정성껏 예배 드리고 싶을 때 정성껏 예배 드릴 수 있습니까? 그것 하나만 가지고도 일 평생 감사하고도 남을 수 있습니다.
우리들 모두 죄인들이지만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 받은 고귀한 신성을 지닌 존재라는 사실 하나만 가지고도 일 평생 감사하고 또 감사하고도 남을 수 있습니다.
2.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달리신 사실
둘째로, 성자 예수님께서 세상에 오셔서 우리 죄인들을 사랑하시고 우리들을 위해 십자가에 달려서 죽으셨다는 사실 하나만 가지고도 우리들은 일 평생 영원토록 감사하고 또 감사할 수 있습니다.
성자 예수님께서 우리 대신 십자가에 달려서 죽으심으로 우리들을 구원하시고 그리고 하나님께서 사용하시는 하나님의 심부름꾼들로 삼으셨다는 사실 하나만 가지고도 우리들은 평생 영원토록 감사하고 찬양할 수밖에 없다고 생각합니다.
부족한 저를 하나님의 심부름꾼으로 삼으시고 사용하시는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이 너무 커서 날마다 여러 번씩 감사를 드리고 또 드립니다.
사도 바울은 자기를 찾아와서 만나 주시고 구원해 주신 성자 예수님 때문에 그리고 자기를 구원하셨을 뿐 아니라 자기를 주님께서 사용하시는 주님의 일꾼으로 삼으시고 자기에게 사도의 직분을 맡기신 것을 인해서 평생토록 감사하고 또 감사했다고 생각합니다. “그리스도 예수 우리 주께 내가 감사함은 나를 충성되이 여겨 내게 직분을 맡기심이니"(딤전 1:12).
성자 예수님께서 우리들을 찾아와서 만나 주시고 구원해 주시고 그리고 우리들을 하나님께서 사용하시는 귀중한 심부름꾼들로 삼으신 사랑과 축복을 인해서 영원토록 감사하고 찬양할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다시 말씀드리지만 성자 예수님께서 우리들을 지옥의 저주에서 구원하신 우리들의 구세주이시고 우리들을 하나님께서 사용하시는 귀중한 심부름꾼으로 사용하시고 계시는 사실 하나만 가지고도 영원토록 고맙고 감사하며 기뻐하고 찬양하여야 할 것입니다.
3. 교회가 있다는 사실
셋째로 하나님의 집인 아름다운 교회가 세상에 있다는 사실 하나만 가지고도 우리들은 얼마든지 감사할 수 있습니다.
교회는 성자 예수님께서 흘리신 피로 사신 예수님의 몸인데 어머니의 품과 같은 따뜻한 곳입니다 교회 안에 들어오면 어머니의 따스함이 있습니다.
교회의 품 안에 들어오면 사죄의 은혜와 치유의 은혜가 주어집니다. 하늘의 위로와 축복이 주어집니다. 격려와 용기의 말씀이 주어집니다. 성도들과의 친밀한 사랑의 교제가 주어집니다.
그래서 시편 기자는 주의 집에 거하는 자가 복이 있다라고 노래했습니다. “주의 집에 거하는 자가 복이 있나이다”(시 84:4).
성부 하나님께서는 성전 즉 교회를 지어서 드리는 솔로몬에게 다음과 같은 놀라운 은혜와 축복의 말씀을 하셨습니다. “내 이름으로 일컫는 내 백성이 그 악한 길에서 떠나 스스로 겸비하고 기도하여 내 얼굴을 구하면 내가 하늘에서 듣고 그 죄를 사하고 그 땅을 고칠찌라 이곳에서 하는 기도에 내가 눈을 들고 귀를 기울이리니 이는 내가 이미 이 전을 택하고 거룩하게하여 내 이름으로 여기 영영히 있게 하였음이라 내 눈과 내 마음이 항상 여기 있으리라”(대하 7:14-16).
이 땅에 성부 하나님의 눈과 귀와 마음이 향하고 계시는 교회, 성자 예수님께서 흘리신 피로 사신 주님의 몸된 교회, 그리고 보혜사 성령님께서 임재하셔서 세우시는 성령님의 전인 교회가 있다는 사실이 얼마나 귀중하고 얼마나 감사한 일인지 모릅니다. 그래서 우리는 이렇게 찬송을 부릅니다. “내 주의 나라와 주 계신 성전과 피 흘려 사신 교회를 늘 사랑합니다”(찬 246).
저는 고등학생일 때 대구 주암산에서 열린 김치선 목사님께서 인도하시는 부흥회에 참석했는데 어느 시간에 이 찬송을 부르다가 “피 흘려 사신 교회를 늘 사랑합니다” 라는 가사에 너무나 깊은 감동과 충격을 받고 울고 또 울고 또 울고 또 운 일이 있었습니다.
4. 자연 만물이 선물로 주어진 사실
넷째로, 자연 만물이 우리들에게 선물로 주어졌다는 사실만 가지고도 우리들은 얼마든지 감사할 수 있습니다.
우리들은 눈부신 햇살의 아침과 황홀한 노을 빛 저녁과 찬란히 빛나는 별들의 밤하늘을 바라볼 때 하나님께 감사를 드리고 또 드리게 됩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늘과 땅과 해와 달과 별들을 바라보면서 이렇게 감사의 노래를 불렀습니다.
“지혜로 하늘을 지으신 이에게 감사하라 땅을 물위에 펴신 이에게 감사하라 큰 빛들을 지으신 이에게 감사하라 해로 낮을 주관케 하신 이에게 감사하라 달과 별들로 밤을 주관케 하신 이에게 감사하라”(시 136:5-9).
저는 산을 바라보면 그렇게 기분이 좋습니다. 바다를 바라보아도 기분이 좋습니다. 하늘을 바라보아도 기분이 좋습니다. 그래서 시가 흘러나오고 노래가 흘러나오고 감사가 흘러나옵니다. 여름 산은 여름 산 대로 좋고 가을 산은 가을 산대로 좋고, 겨울 산은 겨울 산대로 좋습니다.
지금으로부터 39년 전인 1983년 여름 제가 알프스 산의 절경에 도취되어 이런 글을 쓴 일이 있었습니다. “제네바 호수를 거슬러 올라가며 좌우에 펼쳐지는 그림과 같은 아름다운 경치에 마음과 정신을 몽땅 빼앗기고 있었습니다. 몽트뢰 라는 곳에서 기차를 타고 알프스의 산속을 거슬러 올라갔습니다. 계속해서 펼쳐지는 경치의 아름다움에 나는 완전히 도취되고 있었습니다.
하늘을 찌를 듯이 꿋꿋하고 빽빽하게 높이 솟아 오른 침엽수들의 부요함과 벼랑 밑으로 부서지며 흘러내리는 폭포수들의 강직함과 깨끗함! 새파란 잔디 언덕 위에 띄엄띄엄 그려져 있는 검붉은 색깔의 나무 집들과 그 사이에서 한가로웁게 풀을 뜯는 젖소들의 평화로운 모습! 나는 점점 정신을 잃고 있었습니다. 아름다움이 지나치니 가슴에 탄식과 아픔을 느낀다. 창조의 신비와 아름다움에 영혼의 노래가 울려 퍼집니다.”
아름다운 자연 만물이 선물로 주어졌다는 사실만 가지고도 우리들은 얼마든지 감사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들은 이렇게 찬양합니다 “온 천하 만물 우러러 다 주를 찬양하여라 할렐루야 할렐루야 저 금빛 나는 밝은 해 저 은빛 나는 밝은 달 하나님을 찬양하라 할렐루야 할렐루야 할렐루야”(찬 33장).
5. 가난과 고난과 역경 속에서도 감사할 수 있다는 사실
다섯째로, 불쌍한 사람들에게 사랑과 도움의 손길을 펴면서 가난과 고난과 역경을 당하면서도 우리들은 얼마든지 감사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을 믿고 의지하는 사람들은 가난과 고난과 역경을 인해서도 감사를 드리게 됩니다. 시편 기자는 이렇게 고백했습니다. “고난 당한 것이 내게 유익이라 이로 인하여 내가 주의 율례를 배우게 되었나이다”(시 119:71). 성자 예수님께서는 다음과 같은 귀중한 말씀을 하셨습니다. “너희가 돌이켜 어린 아이들가 같이 되지 아니하면 결단코 천국에 둘어가지 못하리라 그러므로 누구든지 이 어린 아이와 같이 자기를 낮추는 자는 천국에서 큰 자니라”(마 18:3,4).
사도 바울은 그리스도 예수 우리 주님께서 자기에게 십자가의 복음을 전하며 십자가의 길로 걸어가는 사도의 직분을 맡겨주신 일을 인해 주님께 감사를 드렸습니다. “나를 능하게 하신 그리스도 예수 우리 주께 내가 감사함은 나를 충성되이 여겨 내게 직분을 맡기심이니”(딤전 1:12).
사도 바울은 예수 그리스도를 위해서 당하는 가난과 고난과 핍박과 박해중에서도 옥중에서도 오히려 즐거워하고 찬미하며 감사했습니다. “밤중쯤 되어 바울과 실라가 기도하고 하나님을 찬미하매”(행 16:25).
“우리가 환난 중에도 즐거워하나니 이는 환난은 인내를, 인내는 연단을, 연단은 소망을 이루는 줄 앎이로다"(롬 5:3,4). “그러므로 내가 그리스도를 위하여 약한 것들과 능욕과 궁핍과 핍박과 곤란을 기뻐하노니 이는 내가 약할 그 때에 곧 강함이니라”(고후 12:10).
사도 바울은 자기가 예수 그리스도를 위해서 당하는 모든 수고와 고난과 핍박과 박해의 리스트를 길게 나열하기도 했습니다. 아마 자기와 같은 핍박자와 포행자가 예수 그리스도를 위해서 가난과 고난과 핍박과 박해를 당한 것이 너무 너무 고맙고 감사한 일이었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내가 수고를 넘치도록 하고 옥에 갇히기도 더 많이 하고 매도 수없이 맞고 여러 번 죽을 뻔 하였으니 유대인들에게 사십에 하나 감한 매를 다섯 번 맞았으며 세 번 태장으로 맞고 한번 돌로 맞고 세 번 파선 하는데 일주야를 깊음에서 지냈으며 여러 번 여행에 강의 위험과 강도의 위험과 동족의 위험과 이방인의 위험과 시내의 위험과 광야의 위험과 바다의 위험과 거짓 형제 중의 위험을 당하고 또 수고하며 애쓰고 여러 번 자지 못하고 주리며 목마르고 여러 번 굶고 춥고 헐벗었노라
이 외의 일은 고사하고 오히려 날마다 내 속에 눌리는 일이 있으니 곧 모든 교회를 위하여 염려하는 것이라 누가 약하면 내가 약하지 아니하며 누가 실족하게 되면 내가 애타하지 않더냐 내가 부득불 자랑할찐대 나의 약한 것을 자랑하리라 주 예수의 아버지 영원히 찬송할 하나님이 나의 거짓말 아니하는 줄을 아시느니라 다메섹에서 아레다 왕의 방백이 나를 잡으려고 다메섹 성을 지킬쌔 내가 광주리를 타고 들창문으로 성벽을 내려가 그 손에서 벗어났노라”(고후 11:23-33).
사실 성자 예수님을 위해 가난과 고난과 수고와 핍박과 박해를 당할 수 있는 것보다 더 귀중하고 보배롭고 고맙고 감사한 것은 아무 것도 없다고 생각합니다. 스데반 집사와 폴리캅 감독과 토마스 선교사와 주기철 목사님과 손양원 목사님께서 주님을 위해서 그리고 누군가를 위해서 가난과 고난과 수고와 핍박과 박해를 당하면서 기뻐하고 즐거워하고 감사하고 또 감사했다고 생각합니다.
우리 신앙의 선배님들은 극심한 질병의 고난과 절망 중에서도 귀중하고 아름다운 감사를 하나님께 드리면서 그리고 십자가의 주님을 생생하게 증거하면서 너무 너무 귀중하고 아름답게 살았고 살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송명희 시인은 제 사무실 근처에 살고 있는데 몸을 제대로 움직이지도 못하고 말을 제대로 하지도 못하는 극심한 질병의 고통을 몸에 지니고 살면서도 하나님께 온 몸으로 소리 지르며 감사하고 찬양합니다.
“나 가진 재물 없으나 나 남이 가진 지식 없으나 나 남에게 있는 건강 있지 않으나 나 남이 없는 것 있으니 나 남이 못 본 것을 보았고 나 남이 듣지 못한 음성 들었고 나 남이 받지 못한 사랑 받았고 나 남이 모르는 것 깨달았네 공평하신 하니님이 나 남이 가진 것 나 없지만 공평하신 하나님이 나 남이 없는 것 갖게 하셨네.”
얼마나 귀중하고 보배로운 감사의 고백인지 모릅니다. 송명희 시인은 최근에 다음과 같은 아주 귀중한 내용의 시를 써서 아픈 것도 감사하다고 발표했습니다.
“아픈 것도 감사합니다. 아파서 돈에 대한 욕심이 더 없어져 주변을 더 돌아보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병이 길고 깊으면 살교 싶은 생각보다 죽음이 두렵지 않아 감사합니다. 삶에 대한 애착이 없어서 비굴하지 않아 감사합니다. 마음이 세상에 없으니 세상보다 천국을 보고 땅에 연연하기보다 하늘 볼 수 있어 감사합니다.
하나님만 의지하고 있습니다. 나면서부터 의사들이 죽는다고 하는 말을 수십 번 들어 별로 생각 안 하고 있습니다. 내가 병원 믿고 살았으면 벌써 세상에 없었을 것입니다. 살면 기회고 죽으면 천국이라 감사합니다. 코로나 온 것 같은데 나아가고 있습니다. 기도해 주세요.”
찬송가의 여왕이라고 불리는 패니 크로스비는 평생 아무 것도 보지 못하는 맹인으로 살았습니다. 그러나 패니 크로스비는 이 세상에서 제일 많은 찬송가를 쓴 찬송가의 여왕이 되었습니다.
패니 크로비는 평생 맹인으로 95세까지 수 많은 찬송시를 쓰면서 감사하면서 행복하게 살았습니다. 패니 크로스비가 92회 생일을 맞았을 때 그의 생일을 축하하는 사람들에게 이렇게 말을 했습니다. “이 세상에 나보다 더 행복한 사람이 있으면 내게 데려오세요. 그 사람과 악수하고 싶어요.”
패니 크로스비의 가슴과 찬송가에는 주님을 향한 감사와 사랑과 찬송으로 가득합니다. 패니 크로스비는 다시 태어나도 맹인으로 태어나기를 바란다는 놀라운 고백을 하기도 했습니다. 그가 천국에 이르러 그의 눈으로 제일 먼저 보기를 원하는 것이 주님의 얼굴이기 때문이라고 설명까지 했습니다.
조니 에릭슨은 예쁘고 장래가 촉망되던 소녀였는데 다이빙을 하다가 머리를 부딪혀서 전신 마비가 되었습니다. 처음에는 하나님도 자신도 모두를 원망했습니다. 그러나 차츰 “고난과 슬픔과 아픔”이 보석으로 바뀌어졌습니다.
조니 에릭슨은 전신 마비로 인한 불구의 몸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하나님께 감사와 영광을 돌리면서 아름답게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리고 수많은 장애인들에게 위로와 용기를 심어 주는 장애인들의 천사로 살아가고 있습니다.
제가 1988년 미국 휫튼 대학에서 39살 난 조니 에릭슨의 손을 붙잡고 인사를 나누었을 때 저는 그녀에게서 천사의 모습을 볼 수 있었습니다. 에릭슨은 빌리 그래함 목사님의 전도 집회에 참석하여 고난 가운데서 역사 하시는 하나님의 사랑과 능력을 간증하곤 했습니다.
에릭슨은 그의 자서전 「죠니」에서 “지금의 불구의 삶을 어느 무엇과도 바꾸지 않겠다” 라고 고백하기도 했습니다. 제가 1996년 7월 암스테르담에서 조니 에릭슨을 다시 만나 그녀의 손을 붙잡고 인사를 나누었을 때 그녀는 여전히 천사의 모습을 지니고 있었습니다.
닉 부이치치는 두 팔도 두 다리도 없지만 얼굴에 환한 웃음을 지니고 감사하며 행복하게 살아가고 있습니다. 제가 수년 전에 닉 부이치치를 대구에서 만났는데 그의 얼굴에는 행복이 가득했고 기쁨이 가득했습니다. 닉 부이치치는 세계 곳곳을 찾아 다니면서 절망 중에서 살아가는 수많은 사람들에게 십자가의 복음을 전하며 소망과 용기를 불어넣는 소망과 행복의 천사로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수많은 사람들에게 주님이 주신 기쁨과 위로를 전할 수 있어 너무 감사합니다” “나 역시 많은 사람들이 들려주는 역경 스토리를 통해 많은 은혜를 받습니다.” 너무너무 귀중하고 보배로운 고백이라고 생각합니다. 닉 부이치치는 극심한 고난을 통해서 주님의 사랑과 은혜를 온 세상에 전파하는 너무 귀중한 선교사가 되었다고 생각합니다.
사도 바울은 육체의 가시인 질병을 몸에 지니고 있으면서도 기뻐하며 감사했습니다. 한경직 목사님도 평생 폐 결핵 등 여러 가지 육체의 질병을 몸에 지니고 약하고 힘들게 살았지만 그런 질병과 약함 때문에 오히려 예수님 닮은 귀중한 삶을 살게 되었습니다. 범사에 감사하면서 살아가는 삶보다 더 귀중하고 더 보배롭고 더 아름다운 삶은 없다고 생각합니다.
“항상 기뻐하라 쉬지 말고 기도하라 범사에 감사하라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니라”(살전 5:16-18).
범사에 감사하는 것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합니다. 기도가 응답되게 만듭니다. 감사는 기도의 날개와 같습니다. “너희 구할 것을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아뢰라”(빌 4:6). “기도에 감사하므로 깨어 있으라”(골 4:2).
이제 말씀을 마무리합니다. 감사는 우리들의 얼굴과 인격을 아름답고 행복하게 만듭니다. 감사는 사람들을 기분 좋게 만듭니다. 어떻게 살아야 하겠습니까? 근심 걱정 불평 불만하면서 살아야 하겠습니까?
아닙니다. 항상 기뻐하면서 살고 쉬지 말고 기도하면서 살고 범사에 감사하면서 살아야 하겠습니다. 이것이 십자가의 복음을 지니고 살아가는 그리스도인들의 삶의 방식이고 모습이라고 생각합니다.
항상 기뻐하고 쉬지 말고 기도하고 범사에 감사하면서 살아가는 저와 여러분들이 다 되시기를 간절히 바라고 소원합니다. 특히 “범사에 감사하는 귀중하고 아름다운 삶”을 살아가는 저와 여러분들이 다 되시기를 간절히 바라고 소원합니다.
이수환 목사님과 강변교회 성도들 모두가 어려운 환경 중에서도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과 축복으로 항상 기뻐하면서 살고 쉬지 말고 기도하면서 살고 범사에 감사하면서 살아가는 가장 귀중하고 가장 아름답고 가장 행복한 삶을 살아가는 귀중한 목회자들과 성도들이 다 되시기를 간절히 바라고 소원하며 축원합니다.
김명혁 목사
강변교회 원로
한국복음주의협의회 명예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