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재를 변화시키는 ‘행복 신학’ 34] 한 생명을 떠나보내며
간암 말기로 고통받는 지역 주민이 있었다. 예수님을 모르는 비신자다. 아직 30대 중반인데도 온몸에 암세포가 퍼져 더 이상 손쓸 수 없는 상태였다.
지인들은 그 청년이 정말 착하게 살아왔다고 증언한다. 부친의 알코올 중독으로 어릴 때부터 이혼 가정이 되어 버렸고, 가정을 떠나 할머니 밑에서 자랐다. 성인이 된 후로는 본인이 할머니를 부양하다 작년에 할머니까지 소천하셨다.
그 후로 인생의 공허함이 한없이 밀려오기 시작했다. 아버지는 술에 절어 아들이 뭐하는지도 모르고, 친인척들은 조카가 어떤 상황인지 또 몸 상태가 얼마나 안 좋은지 별 관심이 없어 보였다.
그 청년은 필자의 집에서 정말 가까운 거리에 살고 있었다. 소개해 준 지인과 아내와 함께 찾아가 보니, 청년은 그냥 누운 채로 지내고 있었다. 병원에서 더 이상 불가능하다는 말을 듣고 낡은 오피스텔에서 체념하며 마지막을 기다리는 중이었다. 몰골을 살펴보니 살이 극심하게 빠지고 복수가 가득 차 있었다.
그 순간 필자는 예전 소천하신 부친의 모습이 떠올랐다. 거의 같은 몰골을 하고서 인생의 마지막을 기다리던 당신의 모습이 묘하게 겹쳐 보이기 시작했다. 14년간 병상생활을 하며 온 가족을 힘들게 했던 당신의 그 모습이 필자의 기억 저편에서 소환되고 있었다.
그래서인지 지금 눈앞에 누워 있는 청년을 향해 두 가지 상반된 감정이 표출되기 시작했다. 한없이 불쌍하게 느껴지면서도, 마음 한편에서는 뭔가 모를 답답함과 짜증이 밀려오고 있었다.
한없이 불쌍하게 느껴지는 건 생명에 대한 경외감 때문일 것이고, 뭔가 모를 답답함과 짜증이 밀려오는 건 주변 사람들에게 막중한 부담감을 본인 의도와는 무관하게 떠넘기기 때문일 게다. 이게 어떤 감정인지는 가족 중 누군가 오랜 세월 동안 아픈 채로 지내봐야 알 수 있다.
아니나다를까, 청년의 옆에서 24시간 간호하는 여인이 있었다. 누워서 꼼짝 못하는 청년의 대소변을 다 받아내고, 뻣뻣해지는 몸을 마시지로 풀어주며, 혹시나 호흡이 멈추지 않을까 밤새도록 노심초사하는 그의 여자친구이다. 요즘 같은 세상에 가족도 돌보지 않는 남자친구를 마지막까지 지키고 있는 이런 경우가 또 있을까.
아무튼 필자는 원목의 본능이 발동되어, 안타까운 심정으로 잠시 복음을 나누고 간절히 기도했다. 무엇보다 살려는 의지를 회복시켜 달라고 기도했다. 다윗의 자손 예수님을 바디매오처럼 부르짖게 해달라고 기도했다. “다윗의 자손 예수여,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
청년은 호흡이 정말 힘겨웠지만, 필자를 따라 다윗의 자손 예수님을 부르기 시작했다.
며칠 후 필자가 원목으로 섬기는 병원으로 청년을 이송했다. 주일 환우예배에 청년의 그녀가 참석해 생전 처음으로 십자가와 부활의 복음을 듣게 되었다.
예배를 마치고 병실로 찾아가 힘겨워하는 청년에게도 말씀을 들려주고 함께 기도했다. 다급한 상황이라 정면돌파해야 한다는 마음이 들어, 요한복음 11장 25-26절을 들려주었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겠고, 무릇 살아서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죽지 아니하리니 이것을 네가 믿느냐?”
원목으로서 필자의 소원은 단 하나다. 시간이 얼마 남지 않은 그가 예수님을 믿고 부활의 생명을 얻는 것이다.
며칠 후 아내와 함께 다시 청년이 있는 곳으로 갔다. 병원에서는 더 이상 해줄 수 있는 게 없어, 다시 집에 와 있었다. 여전히 누워 있었고 거동은 불가능했다.
자신의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사실을 인지해서 그런지, 절망적인 말을 하며 심지어 안락사를 원한다고 했다. 청년의 보호자와 한동안 대화를 나누고 필자는 기도하기 시작했다.
“하나님께 간절히 기도합니다. 성령으로 안수하셔서 일으켜 세워 주옵소서! 온몸에 퍼진 암세포를 모두 소멸시켜 주옵소서! 무엇보다 예수님을 믿고 천국 소망을 품게 하옵소서.”
그 후 며칠이 흘러 주일이 되었다. 청년이 임종했다는 연락을 받았다. 필자는 주일 사역을 마치고 늦은 저녁 창원 장례식장으로 갔다. 누구보다 청년을 옆에서 간호했던 여인이 괴로워하고 있었다.
그녀는 전 남편의 가정폭력 때문에 이혼하고 그와 새 인생을 살아보겠다고 마음을 맞추고 있던 상황이었다. 그러다 이런 일을 당하니 그 심정이 오죽하겠는가.
아무쪼록 청년은 이제 모든 인생이 가야 하는 곳으로 갔다. 최근까지 심방 때마다 복음을 전하고 기도했지만, 그 영혼에 복음의 생명이 심겨졌는지는 하나님만 아실 것이다.
개인적인 친분은 없지만 한 생명을 떠나보내는 것이 쉽지가 않다. 그래서인지 더 이상 고통도 사망도 없는 완전한 하나님 나라가 그리워진다. 주께서 다시 오셔서 온 세상을 새롭게 하시고 충만한 생명력으로 우리를 회복시켜 주실 그날이 마음에 사무치도록 그리워진다.
권율 목사
경북대 영어영문학과(B.A.)와 고려신학대학원 목회학 석사(M.Div.)를 마치고 선교지원 사역에 힘쓰고 있다. 『연애 신학』 저자로서 청년들을 위한 연애코칭과 상담도 자주 진행한다.
비신자 가정에서 태어나 가정폭력 및 부모 이혼 등의 어려운 환경에서 복음으로 인생이 개혁되는 체험을 했다. 현재 부산 세계로병원 원목으로 재직하면서 선교지(몽골, 필리핀) 신학교 강사(외래교수)로 섬기며, 김해 푸른숲교회 협동목사로도 섬기고 있다.
저서는 『올인원 사도신경』, 『올인원 주기도문』, 『올인원 십계명』, 『연애 신학』 등이 있고, 역서는 『원문을 그대로 번역한 웨스트민스터 소교리문답』, A Theology of Dating: The Partial Shadow of Marriage(『연애 신학』 영문판)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