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재를 변화시키는 ‘행복 신학’ 35] ‘생수의 강’은 다시 흐른다!
날씨가 건조한 몽골에서는 강이 정말 소중하다. 현지인들은 특히 톨강(Tuul Gol River)을 신성하게 여긴다고 한다. 몽골 헨티 산맥에서 발원해 총 길이가 819km에 달하며, 보통 10월 하순부터 5월 초순까지는 얼어붙어 있다. 얼마 전 필자가 방문한 때는 10월 초라서 다행히 물이 흐르고 있었다.
현지인들이 ‘생명의 강’이라고 여기지만, 사실 6-7개월은 꽁꽁 얼어있는 상태이다. 몽골은 겨울에 영하 30-40도까지 떨어지며, 낮 최고기온이 영하 20도에 머무르는 경우도 많다. 한국 사람들에게는 상상을 초월하는 추위이다.
필자가 몇 년 전 1월에 테릴지에 갔을 때 얼마나 추웠는지, 그때 얼어붙어 있던 톨강이 아직도 생생하게 기억난다. 생명의 흔적이라고는 전혀 찾아볼 수 없었다.
그럼에도 톨강은 다시 흐르고 있었다. 좀처럼 다시 흐를 것 같지 않았던 얼어붙은 그 강도, 때가 되니 생명을 싹틔우게 하는 물줄기가 되어 건조한 몽골 땅을 적시고 있었다.
하나님 은혜도 이와 같지 않을까? 우리는 코로나 시국이라는 얼어붙은 강을 아직도 직면하고 있다. 올 겨울 확진자가 다시 급증하는 추세다. 이에 따라 교회의 영적 분위기도 여전히 빙하기 상태이다.
지난해 코로나가 조금 수그러들 때 잠시 영적 해빙기가 찾아오는 듯 했지만, 전반적으로는 여전히 얼어붙어 있다. 한국교회는 여러 측면에서 아직도 영적 빙하기에 있다.
무엇보다 하나님 나라와 복음의 가치보다는 특정 이념이나 정치 진영에 매몰되어, 어느 한쪽이 없어져야 할 집단처럼 여긴다. 자기가 생각하는 특정 정당이나 자신의 신념이 무너지면, 마치 하나님 나라와 교회가 파멸되는 것처럼 흥분한다.
심지어 자신의 신념을 지키기 위해서라면 세상 사람들보다 더 추잡한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상대편 진영을 공격하기도 한다. 성도로서 갖추어야 할 기본 상식과 덕목조차 찾아볼 수 없다.
어느 정당을 지지하든, 자신이 그리스도인이라면 하나님 나라와 복음을 최우선시해야 한다. 우리는 특정 정당을 자유롭게 지지하되, 복음의 가치를 담아내는 범위 안에서만 ‘상대적으로’ 지지할 뿐이다.
복음과 이념을 혼동하는 것은 결국 하나님 나라에 대한 몰이해에서 비롯된다. 성경이 말하는 하나님 나라는 우리가 죽어서 영혼이 들어가는 그곳(낙원)을 포함하여, 훨씬 더 포괄적인 개념이다.
예수께서 장차 이 땅에 재림하시어 완성하시는 곳인데, 지구를 중심으로 온 우주가 하나님의 영광으로 충만해지는 새 하늘과 새 땅의 상태다. 이러한 상태를 성경은 하나님 나라 또는 천국이라 말하고 있으며, 장차 우리도 영광스러운 부활의 몸으로 삼위일체 하나님과 영원토록 거하게 되는 처소이다.
그러한 하나님 나라(천국)는 하나님께서 십자가의 방식으로 현재 이루어가고 계신다. 그 어떠한 경우라도 폭력과 선동의 방식으로는 불가능하며, 세상이 볼 때 정말 미련해 보이는 십자가와 부활의 복음으로만 가능하다.
십자가의 복음을 받아들이는 자들이 하나님의 통치를 자기 삶 속에 구현해내는 방식으로, 하나님 나라는 지금도 계속 확장되고 있다. 자신의 정치적 성향과 삶의 철학은 복음의 가치와 부합되는 부분에서만 하나님 나라에 기여할 뿐이다.
이러한 시각을 가지지 않으면 특정 사상이나 이념에 매몰되어, 그것이 곧 하나님 나라의 복음이라고 착각하면서 자신과 생각이 다른 사람들을 적대시하게 된다.
하나님 나라를 오해하는 ‘전통’은 우리에게만 있는 것이 아니다. 예수께서 승천하시기 직전에 제자들이 던진 질문에도 있다. “그들이 모였을 때에 예수께 여쭈어 이르되 주께서 이스라엘 나라를 회복하심이 이 때니이까 하니(행 1:6).”
이 구절을 헬라어 원문대로 번역하면 “주께서 그 나라를 이스라엘로 회복시켜 주시는 때가 지금입니까?”라는 말이다. 즉 제자들은 하나님 나라(천국)가 이스라엘 땅에 이루어진다고 이해하고 있다. 어떤 의미에서 그들은 자신들이 무너지면 마치 하나님 나라가 패망할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이것은 오해이다!
주님은 이스라엘 회복의 때와 시기는 아버지의 권한이기 때문에 너희가 알 바 아니라고 하시면서(1:7), 다만 성령님이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아 땅 끝까지 이르러 복음의 증인이 되라고 말씀하신다(1:8).
곰곰이 생각해 보면, 주께서 제자들의 질문에 정확하게 답변하신 것이다. 왜냐하면 하나님 나라의 회복이 비록 그들이 생각하는 방식으로 이루어지는 건 아니지만, 그 나라의 회복은 성령의 권능을 받아 땅끝까지 복음을 전하는 일로 이루어진다는 말씀이기 때문이다.
오늘 우리도 주님의 동일한 지상명령을 받았다. 저마다 하나님 나라와 교회의 회복을 부르짖지만, 그 방법은 우리가 대한민국을 포함하여 땅 끝까지 복음을 전하는 일임을 기억해야 한다. 더 이상 복음과 이념을 혼동하여 서로를 미워하지 말고, 이웃을 향해 복음적 삶이 무엇인지 제대로 보여줘야 한다.
정말 그렇게 한다면 하나님께서 ‘생수의 강’을 반드시 다시 흐르게 하실 것이다. 그냥 흐르는 수준을 넘어 그동안 얼어붙었던 교회들을 역동적으로 소생시킬 것이다.
극심한 영적 결빙과 메마름은 위로부터 임하는 부흥의 전조 현상일지도 모른다. 영적 기근에 허덕이는 교회들을 오직 하나님의 능력으로만 부흥시킬 수 있음을 다시 한 번 경험하고 싶지 않은가?
권율 목사
경북대 영어영문학과(B.A.)와 고려신학대학원 목회학 석사(M.Div.)를 마치고 선교지원 사역에 힘쓰고 있다. 『연애 신학』 저자로서 청년들을 위한 연애코칭과 상담도 자주 진행한다.
비신자 가정에서 태어나 가정폭력 및 부모 이혼 등의 어려운 환경에서 복음으로 인생이 개혁되는 체험을 했다. 현재 부산 세계로병원 원목으로 재직하면서 선교지(몽골, 필리핀) 신학교 강사(외래교수)로 섬기며, 김해 푸른숲교회 협동목사로도 섬기고 있다.
저서는 『올인원 사도신경』, 『올인원 주기도문』, 『올인원 십계명』, 『연애 신학』 등이 있고, 역서는 『원문을 그대로 번역한 웨스트민스터 소교리문답』, A Theology of Dating: The Partial Shadow of Marriage(『연애 신학』 영문판)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