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리콜라주 인 더 무비] 넷플릭스 시리즈 <더 글로리> (1)
폭력 얼룩진 학교현장 고발 복수극
처절함, 시청자에 카타르시스 선사
부모들과 교육자들 무관심이 문제
부모, 신앙과 지식 교육 과제 남아
이번 박욱주 교수님의 ‘브리콜라주 인 더 무비’에서는 넷플릭스 시리즈 <더 글로리>를 분석합니다. 학교폭력 피해자의 복수를 다루는 이 시리즈에는 피해자 문동은(송혜교, 정지소), 피해자의 조력자로 주여정(이도현)과 강현남(염혜란), 제3자 하도영(정성일), 가해자 박연진(임지연, 신예은), 대형교회 목사 딸 이사라(김히어라, 배강희), 전재준(박성훈, 송병근), 손명오(김건우, 서우혁), 최혜정(차주영, 송지우) 등이 출연합니다. 현재 절반이 공개됐으며, 3월쯤 시즌2가 공개됩니다. -편집자 주
◈학교폭력과 사적제재: 한미일 각국에서 제작된 학교폭력 복수극
<더 글로리>는 지독한 학교폭력으로 인생의 밑바닥을 경험한 주인공 문동은(송혜교 분)이 18년에 걸친 치밀한 준비를 통해 가해자들에게 처절한 응징과 복수를 감행하는 서사를 주된 줄거리로 삼는 작품이다. 서사의 치밀함이나 연출의 긴장감 측면에서 큰 호평을 받고 있지만, 선과 악을 명확하게 구분짓기 위해 등장인물들의 캐릭터가 부자연스럽게 과장된 점은 작품성 측면에서 볼 때 다소 아쉬운 면이 있다.
학교폭력 피해자나 피해자 가족이 해결사의 도움을 받거나 스스로 징벌자로 변모해 사적 제재를 가하는 서사는 한때 일본의 소설과 만화, 드라마 등에서 자주 볼 수 있었다. 드라마 <원한해결사무소 리부트>(2009)의 에피소드 1편과 2편, 영화 <고백>(2010), 만화 <복수교실>(2013-2016) 등이 대표적이다.
일본에서 이런 유형의 서사가 2010년대 초반 인기를 끌자, 비슷한 서사의 작품들이 국내에서도 발표되기 시작했다. 연상호 감독의 저예산 애니메이션 <돼지의 왕>(2010)을 필두로 웹툰 포털 레진코믹스에서 연재된 <소년이여>(2014-2015), 네이버 웹툰의 <약한영웅>(2018-현재), 애니메이션 원작을 드라마로 옮긴 OCN의 <돼지의 왕>, 그리고 얼마 전 공개된 넷플릭스 오리지널 드라마 <더 글로리> 등이 인기를 얻고 있다.
위에 언급한 작품들이 인기를 얻는 이유는 한 가지, 가해자들로 인해 바닥까지 떨어진 인생을 무기 삼아 그야말로 내일은 없는 듯 자신의 삶 전체를 잔혹한 복수 하나에 담는 처절함이 관객 혹은 시청자들에게 커다란 카타르시스를 주기 때문이다.
주인공이 가해자에서 복수의 화신으로 돌변한다 해서, 그 삶에 평안과 위로가 돌아오지는 않는다. 하지만 그 어둡고 암울한 정서를 원동력 삼아 나오는 계략과 폭력은 대단한 힘을 갖는다. 이 힘으로 주인공은 가해자들 또한 자신과 같이 나락으로 떨어뜨린다.
어느 나라, 어느 사회든 의무교육이 시행되는 곳에는 학교폭력 문제가 있다. 미국도 언론에서 ‘스쿨 불링’(school bullying) 문제가 자주 거론되고 관련 사건사고도 간간이 일어난다. 대표적으로 2007년 한국인들을 충격에 빠뜨렸던 버지니아 공대 총기 난사 사건의 주범 조승희 역시, 미국에서 중고등학교 시절 지속되는 학교폭력에 시달렸던 것으로 알려졌다.
그래서 미국에서도 학교폭력에 관한 대중문화 콘텐츠가 간간이 제작된다. 고전작으로는 1976년작 영화 <캐리>가 있고, 최근 작품으로 넷플릭스 오리지널 드라마 <루머의 루머의 루머>(2017-2020)가 있다. 이 작품은 미국 외딴 소도시 고등학교에서 벌어지는 학교폭력과 그에 관련된 뒷이야기를 전한다.
◈학교폭력과 교권붕괴: 학교폭력을 조장하는 부모들과 교사들의 무관심
그런데 자기 권리의 방어 노력을 존중하는 미국의 경우 학교폭력에 대한 사적 제재를 처리하는 법원의 정서가 한국이나 일본과는 크게 다른 편이다. 학교폭력 피해자가 참다 못해 가해자에게 흉기를 휘두르는 일은 미국에서도 있었고 한국에서도 있었다.
미국에서는 2012년 플로리다의 15세 학생이 지속된 폭력에 견디다 못해 가해자를 흉기로 12차례 찔러 살해한 사건이 발생했다. 그러나 카운티 법원은 가해자의 학교폭력이 장기간에 걸쳐 벌어진 일임을 감안해 ‘스탠드 유어 그라운드’ 법(Stand Your Ground Laws, 신체나 생명에 위협을 느낄 경우 자신을 방어할 권리를 보장하는 법)을 적용해 정당방위를 인정, 무죄를 선언했다.
한국에서는 2016년 매우 비슷한 사건이 원주 한 중학교에서 발생했다. 이 사건에서 평소 학교폭력에 시달리던 피해자는 가해자를 여러 차례 흉기로 찔렀으나, 가해자는 병원에서 치료를 받고 목숨을 건졌다. 그리고 피해자는 법원에서 유죄 판결을 받고 소년원에 장기 송치되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결국 한국과 일본은 물론이고 교육 시스템상 선진국으로 알려진 미국도 학교폭력 문제를 온전히 방지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이는 의무교육 및 공교육 시스템에 필히 수반되는 어두운 일면이다. 이에 많은 학교폭력 방지책들이 고안되었지만, 막상 교육 현장에서 이런 지침들이 제대로 지켜지지 않는 경우가 다반사이다.
특히 교육계는 타 집단에 비해 도덕적 우위에 있어야 한다는 강박관념 같은 것이 있어, 학교폭력 사례가 발생하면 이를 드러내서 해결하려 하기보다 ‘좋은 게 좋은 것이라는’ 식으로 덮고 넘어가려는 성향이 강하다.
결국 학교폭력을 제대로 방지하지 못하는 이유는 단 하나, 부모들과 교육자들의 무관심이다. 아이들의 미래를 위한다는 구실로 자녀들을 학교와 학원에 방치하는 까닭에 아직 사회성을 갖추지 못한 어린이들과 청소년들이 교육 현장에서 이리저리 미성숙한 인간관계를 맺고, 일부는 가해자와 피해자로 나뉘어 비극을 양산한다.
그리고 이런 현상은 교육계의 권위가 떨어지면 떨어질수록 더 심화된다. 한국의 산업화 시기(1960-1970년대)를 되돌아보자. 당시는 교권이 대단히 강력해서 나름 학교폭력을 방지하는 억제력으로 작용했다.
당시 교권이 강력했던 이유는 군사부일체(君師父一體)라는 유교적 윤리지침이 아직 한국인들의 정신 속에 살아있던데다, 학교 교육이 아니고서는 대학 입학에 필요한 지식을 얻을 방편이 별로 없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스승을 높이 받드는 전통적인 유교적 윤리지침이 퇴색되어 가는데다 학원과 인터넷 강의 등 대학 입학에 필요한 지식을 습득할 방편이 학교 외에도 수없이 존재하는 현 상황에서는 교사들이 학교폭력에 적극 대처할 수 있는 충분한 권위나 권한을 갖지 못할뿐더러, 교육계와 학부모들 역시 학교 교사들에게 그런 역할을 기대하지 않는다. 그래서 오로지 학교폭력 피해자와 그 가족들의 억울함과 고통만 배가되는 상황이 자주 발생한다.
기독교인 부모들 입장에서는 자녀들의 양육에 있어 이 점을 관심있게 지켜봐야 한다. 학생 전체로 볼 때 학교폭력 피해자의 수는 소수지만, 그 소수에 자신의 자녀가 포함될 가능성이 상존하기 때문이다. 특히 자녀가 학교폭력에 피해를 입는 입장이어도 큰 문제겠지만, 가해자 편에 서는 경우 더 큰 문제가 발생한다.
<더 글로리>는 분명 이 문제를 지적하고 있다. 드라마의 가해자 집단에는 대형교회 목회자의 딸 이사라(김히어라 분)가 속해 있는데, 고등학생 당시 주인공 문동은에게 물리적 폭력을 가하고도 아무런 가책을 느끼지 못하는데다, 나이가 들어서는 마약에 알코올에 빠져 사는 막장 행태를 보인다.
기독교 목회자 자녀에 대한 이 자극적 묘사는 한국 드라마 작가들과 감독들 전반에 퍼져 있는 반기독교 정서를 반영하는 것이지만, 기독교인 자녀들이 학교폭력의 피해자나 가해자가 될 수 있는 현실에 대한 경각심을 일깨워준다는 점에서는 지켜볼 만한 여지가 존재한다.
현재의 공교육 현장은 과거 부모 세대들이 경험했던 것과 분위기가 크게 다르다. 교권은 약해졌고 학생들의 생활 자율권은 커졌으며, 이에 따라 학교폭력이 발생해도 제대로 대응하지 못하는 사례가 크게 늘고 있다.
이제 예전처럼 학교가 아이들을 보내놓으면 그저 믿고 맡길 수 있는 곳이라 보기 어렵다. 부유층이나 사회지도층 인사들이 어떻게든 자녀들을 특목고나 자사고 등에 입학시키려는 이유도 이런 실태를 잘 알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신앙과 지식 양편 모두를 자녀들에게 교육시켜야 하는 기독교인 학부모들 입장에서는 이런 현실이 큰 고민거리가 아닐 수 없다. 세속의 학교 교육 시스템에 자녀들의 삶을 맡겨놓는 것은 한편으로는 편리하지만, 자칫 무책임한 방임이 되어 자녀의 심성을 돌보지 못하는 결과로 다가올 수 있다. <계속>
박욱주 박사(연세대 연합신학대학원 겸임교수)
연세대학교에서 신학을 전공했으며, 동 대학원에서 조직신학 석사 학위(Th.M.)와 종교철학 박사 학위(Ph.D.)를, 침례신학대학교에서 목회신학 박사(교회사) 학위(Th.D.)를 받았다. 현재 서울에서 목회자로 섬기는 가운데 연세대 연합신학대학원 겸임교수로 재직하고 있으며, 기독교와 문화의 관계를 신학사 및 철학사의 맥락 안에서 조명하는 강의를 하는 중이다.
필자는 오늘날 포스트모던 문화가 일상이 된 현실에서 교회가 보존해온 복음의 역사적 유산들을 현실적 삶의 경험 속에서 현상학과 해석학의 관점으로 재평가하고, 이로부터 적실한 기독교적 존재 이해를 획득하려는 연구에 전념하고 있다.
최근 집필한 논문으로는 ‘종교경험의 가능근거인 표상을 향한 정향성(Conversio ad Phantasma) 연구’, ‘상상력, 다의성, 그리스도교 신앙’, ‘선험적 상상력과 그리스도교 신앙’, ‘그리스도교적 삶의 경험과 케리그마에 대한 후설-하이데거의 현상학적 이해방법’ 등이 있다.
브리콜라주 인 더 무비(Bricolage in the Movie)란
브리콜라주(bricolage)란 프랑스어로 ‘여러가지 일에 손대기’라는 의미를 갖고 있다. 이 용어는 특정한 예술기법을 가리키는 용어로 자주 사용된다.
브리콜라주 기법의 쉬운 예를 들어보자. 내가 중·고등학교에 다니던 학창시절에는 두꺼운 골판지로 필통을 직접 만든 뒤, 그 위에 각자의 관심사를 이루는 온갖 조각 사진들(날렵한 스포츠카, 미인 여배우, 스타 스포츠 선수 등)을 덧붙여 사용하는 유행이 있었다. 1990년대에 학창시절을 보냈다면 쉽게 공감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