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효상 칼럼] 조용히 천천히 제대로
얼마 전 엘레지(Elegy)의 여왕 이미자 가수의 '동백아가씨(冬柏아가씨)'란 노래를 들으며 큰 감동을 받았다.
‘헤일 수 없이 수많은 밤을 / 내 가슴 도려내는 아픔에 겨워 / 얼마나 울었던가 동백 아가씨 / 그리움에 지쳐서 울다 지쳐서 / 꽃잎은 빨갛게 멍이 들었소’라는 노래를 듣다 눈물을 적셨다.
그리운 님을 기다리는 애타는 사랑 이야기다. 차가운 바람 맞고, 하얀 눈을 맞으면서 빨갛게 피어난 동백꽃의 모습이 뜨거운 심장, 붉은 중심으로 십자가 하나 달랑 가슴에 품고 그리운 주님을 기다리는 크리스천(Christian)의 모습과 어떤 면에서 많이 닮았다고 할까.
그렇다. 사랑도, 신앙도, 산다는 것도 일종의 기다림이다. 삶을 지탱하는 것이 기다림이라고 할까나.
2023년 새 달력을 집에 걸고, 끝까지 다 못 쓸 다이어리도 준비했다. 하지만 긴 겨울의 터널을 지나는 이들 삶의 노래는 곤고(困苦)하기만 하다. 고단한 하루에 쉼표조차 찍기 버거운 날들이라고 아우성이다.
지난 한 해 버티기에도 몸과 정신의 모든 에너지를 끌어모으고도 부족했다. 마치 손발이 묶인 듯 마음이 막혔고, 내 마음도 살뜰히 살피기 어려웠다. 하지만 이렇게 추운 시대를 살아가며 추위를 견뎌내는 힘은 정작 사람과 사람의 체온이라는 것을 말이다.
공동체에서 나의 의견을 끝까지 말하기 위해 기다림은 필수적이다. 나의 의견도 다른 사람들의 그것과 똑같이 소중하므로 잘 듣고 경청하는 연습이 필수적이다.
규칙 없이 혼자 돋보이려는 것이 아닌, 규칙을 먼저 지키면 얼마든지 나의 차례가 되는 기회를 얻을 수 있다는 것을 배움이 공동체 생활의 기본이다. 나의 의견을 말하기 위해 다른 친구의 말을 먼저 막지 않는 방법을 배우고, 욕구와 기다림의 균형을 알아가는 훈련이 되었으면 좋겠다.
필자는 성공이나 목표 지향을 별로 안 좋아한다. 오히려 느림의 미학을 좋아한다. 조용히 천천히 제대로, 성장보다는 성숙을, 삶의 양보다는 질을, 속도보다는 깊이와 넓이를 채워가는 그렇게 행복한 문화공동체 만들기에 주력해 왔다.
이렇게 관계를 망치지 않기 위한 노력과 기다림은 사실 용기 부족과 망설임, 어쩌면 상대방을 위한 배려, 그리고 인내의 시간을 견디는 고통이 아니었을까. 평생을 기다리며 만족하게 살아야 하는 것이 삶이고 믿음이 아닐까.
하지만 기다리는 그 시간 하루하루가 행복이 될 수도 있다. 언제 어떻게 누굴 만나든 서로를 바로 알기 위해선 기다려야 한다는 사실이다. 언제까지 기다려야 하는지도 모르지만 언젠가는 그 기다림이 헤어짐이 되거나 행복이 될 수 있다.
인간관계도, 사랑도, 성공도 기다림에 달려 있다. 살아가면서 참 다양하고 많은 사람을 만나게 된다. 첫 인상이 좋은 사람, 목소리가 좋은 사람, 똑똑한 사람, 얼굴이 이쁜 사람, 마음이 이쁜 사람, 애교가 많은 사람, 밥 잘 사주는 사람, 돈 많은 사람, 만나면 웃음이 나오게 하는 사람, 만나면 시간이 너무 빨리 간다는 느낌이 드는 사람, 만남으로 그냥 행복한 사람 등 다 각기 다른 느낌으로 다가온다. 이렇듯 사람마다 다른 사람들이 주는 행복도 깊이도 모두 다르다.
창 너머 마른 꽃가지 위에 하얀 서릿발이 내렸다. 창을 넘어 스며든 바람이 무심히 내 곁을 스쳐 지나간다. 내 마음에 작은 인연이 생겼다 지나간 듯 가슴 아프다. 허물을 벗고 자라는 갑각류처럼, 사람도 성장하는 순간이 가장 많이 상처받고 약해지는 시기다.
스치기만 해도 상처받을 것 같은 힘든 순간이지만, 참고 견디며 기다리면 그래도 성장할 수 있다. 어쩌면 인생은 오늘보다 나은 내일이라는 일말의 기대감, 그래도 기다림이 있기에 행복하다. 사랑을 믿기에 기다림이 있고 그 기다림이 있기에 행복인 것을 깨달을 수 있다면.
오늘도 나는 행복을 얻기 위해 기다림을 시작한다. 기다림은 시간을 필요로 한다. 편한 마음으로 기다리려면 낙심하지 말고 상처받지 말고 지치지 말아야 한다. 커피 한 잔, 차 한 잔을 나눌 수 있는 여유와 그런 기다림이 삶의 질을 풍성케 한다.
간혹 다산 선생을 기억하며 전통 차(茶)를 마시다 보면, 피어오르는 김 한 자락에도 깊은 시름이 뿌옇게 옅어지는 놀라운 위로를 받게 된다. 타인에 의한 상처로 힘들어하는 사람도, 스스로 내는 생채기에도 편하게 정좌하고 차 한 잔 하면서 소통하고 담소하다보면 금세 마음이 편하고 가벼워진다. 이처럼 차는 다양한 육신의 건강만이 아니라 정신건강에도 효능이 있다.
차만 그런가. 시 한 편, 시 한 수에도 마음이 안정된다. 요즘 청록파 조지훈 시인의 시집을 즐겨 읽는다. 남양주의 자랑 다산 선생의 뒤를 이은 조지훈 시인의 시 ‘기다림’을 낭송하며 벌써 봄을 기다린다.
‘고운 님 먼곳에 계시기에 / 내 마음 애련하오나 / 먼곳에 나마 그리운 이 있어 / 내 마음 밝아라./ 설운 세상에 눈물 많음을 / 어이 자랑 삼으리 / 먼 훗날 그때까지 님 오실 때까지 / 말없이 웃으며 사오리다/ 부질없는 목숨 진흙에 던져 / 님 오시는 길녁에 피고 져라 / 높으신 님의 모습 뵈올 양이면` / 이내 시든다 설움이야 / 어두운 밤하늘에 / 고운 별 하나’.
기약 없는 기다림이 참 고통스럽다. 찾아올 사람, 기다릴 수 있는 사람이 있다는 것만으로도 행복이다. 현재의 나의 나 된 것은 순전히 은혜다. 참고 견디고 응원하고 기다려준 이들 덕분이다. 하지만 인간은 망각의 동물이라 그런지, 자주 잊어 버린다.
지금의 겨울은 기다림의 계절이다. 설 명절이 지나고 이제 봄의 시작을 알리는 전령(傳令) 입춘(立春)이 얼마 남지 않았다. 아쉽게 지나쳐버린 것들을 기억하고 침착한 마음으로 다시 찾아올 봄날을 기다려 볼 일이다.
절망은 크고 희망은 작지만, 우리는 희망에 더 시선을 빼앗겨야 한다. 그 용기로 딛고 일어나 끝끝내 희망과 마주해야 하리라. 겨울이 가고 봄이 오는 소리가 들리지 않는가. 오랜 기다림 그 끝에 다정히 손 내밀면 이 마음 받아 줄꺼나.
기다림의 미학을 믿고 너무 서두르지 않도록 하자. 지금 무엇을 기다리든, 누군가를 기다리든, 그 기다림 끝에는 미소 짓는 일이 생기길 소망하면서 말이다.
이효상 원장
다산문화예술진흥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