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0년대를 지나면서 페미니스트들 사이에 점차 이데올로기에서의 차이가 나타나기 시작하였다. 즉 급진 페미니즘(radical feminism), 막시스트 페미니즘(marxist feminism), 사회주의 페미니즘(socialistic feminism) 등이 등장하였다. 이 기간에 주류인 제1파 페미니즘(first wave feminism) 또는 자유주의 페미니즘(liberal feminism)의 후예들은 여성의 투표권에 따르는 책임과 의무에 대해 여성들을 계몽하는 일에 집중하고 있었다.
급진적 페미니스트들의 생각은 다음과 같았다: 여성은 역사적으로 최초의 피지배 집단이며, 여성에 대한 차별과 억압은 모든 사회에 존재하는 보편적인 현상이었다. 여성 억압으로 여성에게 극심한 고통이 야기되었으나 무시되어 왔다. 여성의 투표권이나 재산권, 교육권 등, 공적인 법과 제도의 결함을 개혁하는 것만으로는 뿌리 깊은 여성억압을 해결할 수 없다. 따라서 가부장제를 개혁하여야 한다. 가부장제가 보다 깊은, 가장 오래된, 보다 보편적인 억압, 내지 “전역사적 현상”(transhistorical phenomenon)으로 모든 억압의 원형 내지 표본이다, 따라서 여성억압은 정치적으로 제거되어야 한다, 등등.
이러한 생각에 따라 급진 페미니스트들은 선거권과 평등 실현을 넘어 다른 사회적 분야에서 가부장제와 남성우월주의를 반대하는 사회정치운동을 시작하였다. 그들은 과거 피지배자였던 집단으로서, 이제 남성 우위(male supremacy)를 제거하고 대신 여성우월주의를 성취하려 하였다. 여성의 지배자로서 권력과 여성의 생식권을 주장하였다. 급진 페미니스트들은 기존 사회체제를 뒤집고 재건설해야 한다는 페미니스트 혁명까지 거론하였다. 대표적 사상가 Shulamith Firestone은 남성 우선권을 제거할 뿐만 아니라, 아예 성 구분(sex distinction) 자체를 제거하자 또는 이성애적 원리, 즉 heterosexuality를 무효화시키자고 주장하였다. 그들이 보기에 인간의 해부학적 성기의 차이는 더 이상 문화적으로 아무 문제가 안된다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는 제2파 페미니스트들 중 대표적인 베티 프리단은 온건한 편이었다. 그녀는 사회가 남성적인 것만큼 여성적인 것에 가치를 높이 부여하면 (여성성을 간직한 채 인간적으로) 여성도 남성과 동등하게 될 수 있다고 보았다. 동시에 여성들은 공적 세계에 완전히 참여하게 되면 현존하는 (어머니로서 그리고 가정 주부로서의) 사적 세계를 파괴할 수 있으므로 전반적으로 참정권 획득이 적절하다고 보았다. 그러나 래디컬 페미니즘은 “가장 사적인 것이 가장 정치적인 것”이라고 주장하였다.
60년대 래디컬 페미니즘은 현실적으로 다음과 같은 활동을 하였다: ① 여성이라면 누구나 겪어야 했던 그러나 누구에게도 말할 수 없었던 생리, 강간, 임신, 낙태, 데이트폭력, 가정폭력 등이 사회적으로 터부시되는 것을 반대하고 공개적인 정치적인 문제로 공론화하였다. ② 실질적 평등 전략을 주장하였는데, 즉 모성보호와 같은 보호입법이나 여성채용목표제 , 여성고용할당제 , 양성평등채용목표제 등 적극적 우대조치(affirmative action) 같은 것이다. ③ 폭력 등 여성이 받은 피해에 대한 지원과 보상(여성의 피신처를 개설 등)을 추진하였다. ④ 여성에 대한 교육(여성학 프로그램을 대학에 개설함 등)을 지원하였다.
페미니즘과 다른 사회적 이슈와 상호 교차하는 경우(intersectionality)에 대한 연구가 활발하게 일어났다. 예를 들어 계급에서의 여성, 노동자 여성, 인종(흑인, 인디언, 등)에 따른 여성, 성소수자 여성, 이민자 여성, 기타 주변화된(marginalized) 여성, 전문직 또는 정치인 여성 등과 관련된 페미니즘이다(흑인 성소수자로서 노동자 여성은 삼중 교차의 경우라 할 수 있다).
이와 관련하여 성정치(sex politics) 내지 정치적 올바름(political correctness. PC)이라는 개념이 등장하였다. 특히 PC는 사회의 특정 집단, 예를 들어 성별, 인종, 문화권, 성적 지향 등 사회적 약자에게 차별하지 말뿐 아니라 오히려 우선권을 주어야 한다는 것이다.
일부 페미니스트들은 정치적으로 레즈비어니즘을 옹호하였다. 즉 이들은 가부장제의 이성애와 남성중심의 연애와 혼인을 반대하며 여성간의 성애를 옹호하였다. 그리하여 페미니즘과 동성애 운동은 상호 자극하면서 발달하였다. 나아가 모든 섹슈얼리티를 긍정적으로 보는 일부 페미니스트들은 동성애 뿐 아니라 자기성애, 포르노, 매춘, 사도매조히즘 등을 옹호하기도 한다.
이런 일로 인해 1970-1980년대 초 페미니스트들 사이에 갈등과 논쟁이 일어났다. 특히 포르노와 매춘을 옹호하느냐 반대하느냐에 따라 심각한 논쟁이 생겨났다. 이를 feminist sex wars라 한다. 트랜스여성을 페미니즘 운동에 포함시키느냐에 대한 논쟁도 생겨났다. 소위 ‘트랜스젠더를 배제하는 급진적 여성주의자’(Trans-Exclusionary Radical Feminist; 약칭 TERF)들은 트랜스여성을 여성으로 보지 않을 뿐 아니라 차별하고 혐오하고 배척한다.
이런 저런 분열로 제이파 페미니즘은 1990년 전후하여 끝났다는 평가를 받는다. 그 이후 페미니즘운동은 1990년대에 제3파 페미니즘, 그리고 2010년대 제4파 페미니즘 운동으로 진화하였다.
이 모든 페미니즘의 생각들에 대해 크리스천이라면 동의할 수 없다. 그 이유는 급진 페미니즘은 전통적 성도덕을 거부할 뿐 아니라, 결혼과 모성과 가족체제를 거부하고, 남자들에 대한 권력투쟁(power struggle)을 선언하고, 이성애를 무효화하려 하기 때문이다.
민성길 한국성과학연구협회 회장(연세의대 명예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