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 토끼와 거북이의 재대결? ‘즐겁데이(d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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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년은 토끼의 해이다. 조선시대 고전소설 ‘별주부전’에 토끼가 주인공으로 등장한다. 토끼의 간을 먹어야 병이 낫는 용왕을 위하여 육지로 나간 별주부 곧 자라가 토끼를 용궁에 데려오는 데는 성공하지만, 토끼가 간을 빼놓고 다닌다는 말로 꾀를 부려 죽음의 위기에서 벗어나 도망친다는 내용이다. 토끼의 지혜로움을 표현했다.

그런가 하면 유명한 이솝 우화 속에도 ‘토끼와 거북이’가 등장한다. ‘토끼와 거북이가 경주를 하였다. 토끼는 달리다 보니 거북이가 하도 멀리 뒤떨어져 오기에 길가에서 한숨 잤다. 그 사이 거북이는 꾸준히 달려 결국 이기고 말았다.’

초등학교 교과서에서 늘 보아왔던 동화로 토끼는 교만함의 상징으로, 거북이는 부지런함의 대명사가 되어 왔다.

공정사회는 혼자 뛰는 사회가 아니다. 잠든 토끼를 보고 그냥 지나쳐버린 거북이는 아무리 보아도 공정하지 않다. 토끼를 깨우지 않고 지나치는 거북이는 정말 인정 없다. 성경에 나오는 선한 사마리아 사람이 생각난다. ‘토끼의 잠’은 교만함 때문이라고 주입식으로 가르치는 과거 교육은, 다른 한편으로 의식 속에 남의 불행을 딛고 승리만 하면 된다는 생각이 들게 하지는 않았을까.

토끼와 거북이는 처음부터 ‘육지의 언덕 오르기’로 승부를 겨룰 일이 아니었다. 애초에 거북이가 토끼보다 먼저 언덕을 올라야 하는 게임은 그 자체만으로 불공정하다. 토끼 역시 강물을 헤엄쳐야 하는 경기였다면 거북이에게 패배를 면하지 못했을 것이다.

자신이 가장 잘할 수 있는 경기나 재능은 누구에게나 있다. 승패에 민감하고 쉽게 결과에 승복하지 않으려는 우리 문화는 그동안 하나의 운동장에서 1등이라는 유일한 목표만을 가지고 달려온 탓도 있다. 우화에서처럼 게임 중 잠을 자거나 잠든 상대를 그냥 놔두고 승부에만 집착한 참가자 사실 모두 패배자다.

올해는 ‘토끼와 거북이’ 이야기를 시대에 맞게 이렇게 업그레이드(upgrade)하면 어떨까. 시대 변화를 읽지 못하고 성공, 출세, 목표 등 개발 성장 시대 버전(version)으로 계속 주입하기보다, 새롭게 버전을 달리해야 하지 않을까.

“거북이가 땀을 뻘뻘 흘리며 달리다 생각했다. ‘야! 정말 토끼는 대단하다. 이렇게 잘 달리기가 쉽냐! 내가 토끼의 능력도 모르고 달리기를 응했으니 내 판단 미스테이크( mistake)야. 이제 토끼의 재능을 달리 보아야겠다. 솔직히 내 패배를 깨끗이 인정하자.’

그런데 가다 보니 토끼가 잠을 자고 있었다. 거북이는 혼자 생각했다. ‘피곤해 깊이 잠든 모양이군. 모른 척 하고 지나가면 내가 이기는 게임인데’ 하고 그냥 지나치려 하였다. 하지만 다음 순간 거북의 마음 속에 이런 소리가 들렸다. ‘그것은 비겁한 행동이야. 성공이나 출세를 위해 남의 불행을 외면하고 그것을 발판으로 딛고 내가 이기는 것은 정당하지 못한 행동이야. 요행으로 이기는 것보다 깨끗한 패배가 더 옳아.’ 그리하여 거북이는 토끼를 깨웠다.

‘토끼야, 넌 왜 달리기를 하다 자니? 일어나 달려야지. 넌 참 달리기를 잘하는구나.’ 눈을 비비며 일어난 토끼는 깜짝 놀라 눈을 동그랗게 뜨고 눈물을 흘리며 말했다.

‘거북아, 넌 너무 착해. 그냥 못본 척 지나쳐도 되고, 그러면 너가 이기는데 왜 날 깨운 거니? 나는 말이야, 네가 달리기를 못한다는 것 알고 일부러 골려 먹으려고 달리기 시합을 하자고 한건데, 너는 나를 이기지 않고 깨우니 내가 너무 미안해. 내가 나빴어. 내가 진 거야.’

그러자 거북이는 고개를 흔들며 ‘토끼야, 넌 정말 잘 달려. 내가 너의 실력을 모르고 만만하게 본거지. 내가 어리석게 생각하고 무조건 이길 줄 알았던 거지. 네가 속인 게 아니라 내가 상대의 재능을 얕보고 몰랐던 거야. 나는 너를 못 이겨. 자 달려가 우승의 트로피를 가져. 너는 정말 재능 있는 선수야.’

거북이는 토끼의 등을 떠밀었다. 그러나 토끼는 ‘아니야, 너가 이겼어. 나는 경기중 잤으니 사실 졌어. 네가 이긴 거야.’

토끼와 거북이는 서로 자기가 졌다며, 둘은 나란히 손잡고 결승점에 도달했다. 마침내 둘 다 공동우승으로 이겼다. 둘은 평생 좋은 친구가 되었다.”

이렇게 새로 이야기를 바꿔쓰면 어떨까. 교육이 그렇고 문화가 그렇다. 가장 행복한 일은 우리가 생활 속에서 사람과 사람을 잇고, 사람과 지역을, 예술과 문화와 생활을 이어 아름다운 경주를 통해 함께 사는 관계의 방법을 찾고 배우고 익히는 일이다.

토끼의 잠, 남의 실수가 나의 승리가 되기를 바라는 사회는 분명 건강한 사회가 아니다. 그런 승리가 결코 자랑스런 승리나 영광이 될 수 없다.

혼자 즐겁고 혼자 열심히 뛴다고 행복한 사회가 만들어지는 것은 아니다. 사회는 두 사람이 다리를 묶고 뛰는 2인 3각 게임이다. 서로 함께 노력해야 얻을 수 있다.

어느 사회든 공동체의 건강한 미래를 위해 경쟁이 아닌 함께 같이 사는 지혜를 교육하고, 그런 문화와 공동체를 만들어 가려 노력해야 한다. 그래야 다음 세대와 환경이 바뀌어, 바다나 강에서 토끼와 거북이가 경주를 하더라도 토끼가 쓰라린 패배의 경험을 맛보지 않을 것이다.

인생이라는 경주에서도 마찬가지다. 육지의 산도 있지만, 바다나 강물도 있다. 강물을 만나면 토끼는 거북이의 등에 의지해야 한다. 아마 거북이가 토끼를 등에 태우고 둘이 함께 결승점으로 들어가는 장면은 얼마나 멋지고 신나는 일이지 않을까.

인류학자들의 학설에 따르면, 호모 사피엔스(Homo sapiens)가 현재 인간이 된 이유를 타인의 마음을 읽을 수 있는 능력에서 찾는다. 이들은 ‘적자생존’의 통념에 반기를 들며, 최후의 생존자는 친화력이 좋은 다정한 자였다고 말한다.

우리의 근원이 다정함에 있는데, 왜 세계는 문빗장을 걸어 잠그고 폐쇄적 증오와 혐오, 차별로 뒤덮였을까? 이 문제에 대해 이들이 제시하는 해결책 또한 교류와 협력이 기반이 된 오픈(open)된 친화력이다. 우리는 더 많은 적을 정복했기 때문이 아니라, 마음을 열고 더 많은 친구를 받아들이고 만듦으로써 살아남았기 때문이다.

공동체에서도 마찬가지다. 스스로 마음의 벽을 쌓고 문턱을 높이면 혼자가 될 수 밖에 없다. 서로의 개성에 맞는 노력이 뒷받침될 때 성숙한 관계가 이뤄지는 것이 세상의 이치다.

꼭 사랑해서 함께하는 것만이 아니라, 앞으로 더 사랑하려고 함께 하는 것이다. 이제는 모두가 함께 즐기고 함께 승자가 되어야 할 세상이다. 편 가르기, 편 먹고 싸우기 그만하자. 그건 권력을 주야로 묵상하는 정치꾼들이나 할 일이다.

지금 우리에게는 다정함을 기반으로 함께 뛰는 훈련, 경주가 필요하다. 시민을 행복하게 하기 위해 상생하는 윈윈 게임(Win-Win Game)이 될 수만 있다면, 겨루기는 승패를 떠나 모두에게 참된 기쁨과 새로운 기회, 희망이 될 수 있다.

토끼와 거북이가 함께하면 ‘즐겁데이(day)’다. 승패보다는 경기 자체가 우리 사회의 공동체를 건강하게 만들고 이웃을 신뢰하고 협력하게 하는 일에 얼마나 소중한가에 깊은 관심을 두고, 우리 사회는 다함께 같이 승리하는 사회로 가야 하지 않을까.

▲이효상 목사.

▲이효상 목사.

이효상 원장
시인, 작가, 칼럼니스트,
다산문화예술진흥원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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