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리콜라주 인 더 무비] 넷플릭스 시리즈 <더 글로리> (2)
넷플릭스의 반기독교 철학, 문제
<오징어 게임>과 <수리남> 대표
한국교회 값싼 복음 경도도 문제
상실한 참된 회개와 두려움 회복
◈기독교인과 범죄: 영화와 드라마의 단골소재가 되어가는 기독교인 비행과 범죄
<더 글로리>에 등장하는 가해자 집단의 한 사람인 이사라(김히어라 분)는 중대형 교회 목회자 자녀라는 설정을 가지고 있다.
그녀는 자신의 아버지가 목회 규모에 힘입어 획득한 재력과 명성을 악용해 학창 시절에는 가학적인 학교폭력을 일삼고, 성인이 되어서는 마약과 난잡한 남자관계에 빠져 살아간다. 또 화가로서의 재능을 활용해 자신의 작품으로 재력가들의 자금세탁과 탈세를 돕고 그로부터 큰 재정적 이익을 얻는다. 그러면서도 표면적으로는 기독교 신자로서, 목회자 자녀로서, 충실한 성가대 대원으로서의 외양을 유지하고 있다.
이런 ‘범죄자 기독교인’의 표상은 한국 미디어 업계에서 이전부터 정립되어 있었다. 하지만 최근 영화와 드라마 속 기독교인 범죄 묘사는 이전과 다른 점이 있다. 이전에는 거짓된 기독교인 혹은 기독교인 가족 구성원의 범죄에 대한 묘사가 주로 기독교의 현실을 중심 주제로 다루는 작품들에 몰려 있었다.
대표적인 작품이 신승수 감독의 <할렐루야>(1997), 그리고 이창동 감독의 <밀양>(2007)이다. 두 작품은 분위기가 크게 다르지만, 교회 내부의 위선과 부조리를 중심에 두고 서사를 전개해 나간다는 면에서는 확실한 공통점이 있다. 이처럼 기존의 기독교인 범죄 관련 묘사는 교역자와 교인들의 삶을 중심에 둔 작품들에서 주로 확인되었다.
이런 상황이 불과 몇 년 만에 크게 바뀌었다. 이제는 모든 종류의 범죄, 스릴러 장르에서 기독교인 범죄라는 소재가 등장한다. 그렇다고 기독교나 기독교 관련 이단 종파의 위선과 범죄행각을 중심 소재로 삼는 작품이 안 나오는 것도 아니다. 즉 이제는 사회 현실을 비판하고 풍자하는 많은 영화, 드라마 속에서 전방위적으로 기독교인의 위선, 비행, 범죄를 다룬다.
그 선봉에는 넷플릭스가 자리잡고 있다. 대표적인 작품이 <오징어 게임>(2021)과 <수리남>(2022)이다. <오징어 게임>의 서사는 전반적으로 기독교와 전혀 관련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여러 장면에서 기독교인들의 꼴불견과 위선을 폭로하고 있다.
<수리남>도 마찬가지다. 이 작품의 악당 전요환(황정민 분)의 모델이 된 실존인물 조봉행은 원래 사이비 기독교 집단과 아무 상관 없는, 일반 마약 밀매업자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수리남>은 사이비 기독교 집단의 범죄행각을 서사의 중심 소재 중 하나로 택해서 현실적 근거가 없는 기독교 비하에 열심을 낸다.
넷플릭스 드라마들이 전반적으로 이런 정서를 공유하다 보니, <더 글로리> 김은숙 작가 역시 이런 흐름에 한 발 담그는 모습이다. 원래 김은숙 작가의 전작들은 종교와 관련해서는 중립적 입장을 보였다.
물론 2016-2017년 흥행 대작이었던 <도깨비>에서는 한국 전통 신화를 중심 소재로 놓았던 까닭에 불교, 도교, 무속을 적극 미화하는 모습을 보였지만, 기독교 및 교회와 관련해서는 별다른 비방이나 비하의 태도를 보이지 않았다. 그리고 2018년 흥행작 <미스터 션샤인>에서는 개화기 기독교 선교사와 교회를 긍정적으로 묘사하는 모습도 보였다.
그러한 까닭에 김은숙 작가가 이번 <더 글로리>에서 보인, 기독교 및 교회에 대한 입장의 태세 전환은 눈여겨볼 만한 대목이다.
김은숙 작가는 한국 영상콘텐츠 시장의 대세와 흐름을 볼 줄 아는 인물이다. 그런 역량있는 작가가 자신의 드라마 속에서 기독교인 범죄를 적극적으로 묘사하기 시작했다. 이것은 현재의 영상콘텐츠 업계에서 기독교인의 도덕적 약점을 물고 늘어지는 일이 대중의 호응을 얻는 데 많은 도움이 된다는 점을 시사한다.
◈한국교회와 범죄: 값싼 복음에 경도된 한국교회의 도덕적 퇴락
한국의 영화, 드라마 업계에서 이처럼 기독교인의 위선과 범죄를 묘사하고 비하, 희화화하는 일이 일상화된 데는 두 가지 요인이 존재한다. 첫째는 기독교적 가르침과 가치를 구시대적 억압들의 근원지로 여기는 넷플릭스의 영상제작 철학이다.
넷플릭스는 애초 기발함과 창의성을 무기로 삼는, 마이너하면서도 작품성 있는 영화를 추천해 보내주는 서비스로 시작했다. 그런데 미국 영상콘텐츠 시장에서 기발함이란 서구의 전통적 가치를 이리저리 흔들고 무너뜨리는 것을 뜻했고, 이는 곧 서구 전통문화의 상당한 부분을 차지하는 기독교적 가르침과 문화에 대한 저항으로 이어졌다.
현재는 이 넷플릭스가 거대한 자본을 가지고 한국에 들어와 제작시장의 주요 투자자로 자리잡은 상황이기에 넷플릭스를 통해 제작되는 거의 모든 작품에는 그 비중이 크든 작든 간에 기본적으로 반기독교적 메시지나 뉘앙스가 포함된다.
그래서 미국에서 공개된 넷플릭스 작품들 가운데는 기독교인이 범죄를 저지르거나 말거나 상관없이 기독교 신앙의 논리와 적실성 자체를 비판하는 장면들이 빈번하게 목격된다.
한국 영화, 드라마에서 기독교인 범죄가 단골소재가 된 두 번째 요인은 당연하게도 실제 한국 기독교인들에 의해 벌어진 비행과 범죄 사례들이다.
한국에서 제작된 넷플릭스 작품들은 미국 현지에서 제작된 넷플릭스 작품들과는 달리, 기독교인들의 위선과 범죄 행각을 비판하는 데 많은 공을 들인다.
여기에는 교회들과 기독교인들의 책임이 분명히 존재한다. 무엇보다 교세의 빠른 성장을 위해 ‘값싼 구원’을 염가판매하듯 남발해온 한국교회의 비복음적 행태가 가장 큰 문제다.
한국전쟁 발발 이후 한국교회는 미국 기독교계의 원조를 받아 국내의 가난하고 피폐해진 대중들을 대상으로 복음을 전했다. 이 과정에서 다수의 목회자들이 전쟁이 없고 배고픔이 없는 안락한 삶에 대한 한국인들의 열망을 복음을 명분삼아 정당화하는 데 앞장서 왔다.
신변의 안전과 풍요로움이 복음의 핵심 메시지와 무조건 대치되는 것은 아니지만, 현세의 복락은 그 정도가 일정 수치를 넘는 경우 반드시 신앙의 퇴락으로 이어진다.
일제강점기 시절, 나라 잃은 설움과 고통을 회개와 기도를 통해 극복하려 했던 기독교계 전반의 정서는 한국전쟁 이후 현세의 복락을 향한 열망 추구로 방향이 전환되었다. 당시 이 흐름에 적극 동참한 교회들이 중대형 교회로 성장했고 현재 한국 교계의 구심점을 이루고 있다.
<더 글로리>의 사라라는 캐릭터에 대한 묘사는 바로 이런 한국교회의 현대사를 잘 반영하고 있다. 예수를 믿으면 ‘모든 죄가 사해지고 만사가 형통해지는’ 무조건적이고 무제한적인 은혜를 받을 수 있다는 잘못된 메시지, 소위 기복신앙과 번영신학의 폐단이 사라라는 캐릭터를 통해 잘 드러난다.
학창시절 자신이 수없이 폭력을 가했던 피해자 문동은(송혜교 분)을 앞에 두고 “난 천국 갈 수 있거든. 난 너한테 한 짓 다 회개하고 구원 받았어”라고 조롱하듯 말하는 대사는, 무조건적 속죄와 현세에서의 만사형통을 부르짖던 한국교회의 왜곡된 복음이해가 만들어낸 기괴하고 기형적인 생각이다.
이 대사는 <밀양>의 아동납치 및 살해범인 박도섭(조영진 분)의 대사와 동일한 맥락에서 이해될 수 있다. 이 천인공노할 범죄자가 자신이 유괴살해한 아이의 어머니 앞에서 “하나님이 이 죄많은 놈한테 손 내밀어 주시고 제 죄를 용서해 주셨습니다”라고 감격스레 말하는 장면은 한국교회에 널리 배포된 기형적인 값싼 은혜의 표본과도 같은 모습이다.
참된 회개와 두려움을 상실한 기독교인들의 왜곡된 심성 묘사에 대해 한국 기독교인들 모두 자신있게 반박할 수 있을까. <더 글로리>의 사라는 목회자 자녀이자 표면적 기독교인이다.
그런 그녀가 학교폭력의 가해자로 등장하는 것, 저항이 힘든 약자를 고문하는 범죄자로 등장하는 것이 현실적으로도 가능성 있는 일이라는 사실이 참으로 안타깝다.
2020년 발생한 정인이 사건 가해자는 기독교인 부부였고 두 사람 모두 목회자 자녀였으며, 주변에 신실한 교인으로 알려져 있었다. 이런 현실 사례가 존재하고, 그에 대한 교회의 처절한 회개와 자정 노력이 존재하지 않는 한, 한국 영상콘텐츠 업계에서 한국교회와 기독교인들은 계속해서 동네북 취급을 받을 것이다.
기독교의 가르침과 문화적 영향력 자체에 대한 넷플릭스의 조직적 반감에 대해서는 경계를 해야겠지만, 영화와 드라마 속에서 기독교인 비판과 비하의 빌미를 제공하는 기독교인의 비행과 범죄에 대해서는 교회와 교인들 편에서 스스로 엄중한 경계심을 가져야 한다.
교회 내외부에서 벌어지는 교역자와 교인들의 여러 비행과 범죄들을 “덕이 되지 않는다”는 이유로 은폐하고 무마시키는 태도가 지속되는 한, 복음과 용서에 대한 비틀린 의식은 교회 내부에 계속 독초로 뿌리내릴 것이다.
박욱주 박사(연세대 연합신학대학원 겸임교수)
연세대학교에서 신학을 전공했으며, 동 대학원에서 조직신학 석사 학위(Th.M.)와 종교철학 박사 학위(Ph.D.)를, 침례신학대학교에서 목회신학 박사(교회사) 학위(Th.D.)를 받았다. 현재 서울에서 목회자로 섬기는 가운데 연세대 연합신학대학원 겸임교수로 재직하고 있으며, 기독교와 문화의 관계를 신학사 및 철학사의 맥락 안에서 조명하는 강의를 하는 중이다.
필자는 오늘날 포스트모던 문화가 일상이 된 현실에서 교회가 보존해온 복음의 역사적 유산들을 현실적 삶의 경험 속에서 현상학과 해석학의 관점으로 재평가하고, 이로부터 적실한 기독교적 존재 이해를 획득하려는 연구에 전념하고 있다.
최근 집필한 논문으로는 ‘종교경험의 가능근거인 표상을 향한 정향성(Conversio ad Phantasma) 연구’, ‘상상력, 다의성, 그리스도교 신앙’, ‘선험적 상상력과 그리스도교 신앙’, ‘그리스도교적 삶의 경험과 케리그마에 대한 후설-하이데거의 현상학적 이해방법’ 등이 있다.
브리콜라주 인 더 무비(Bricolage in the Movie)란
브리콜라주(bricolage)란 프랑스어로 ‘여러가지 일에 손대기’라는 의미를 갖고 있다. 이 용어는 특정한 예술기법을 가리키는 용어로 자주 사용된다.
브리콜라주 기법의 쉬운 예를 들어보자. 내가 중·고등학교에 다니던 학창시절에는 두꺼운 골판지로 필통을 직접 만든 뒤, 그 위에 각자의 관심사를 이루는 온갖 조각 사진들(날렵한 스포츠카, 미인 여배우, 스타 스포츠 선수 등)을 덧붙여 사용하는 유행이 있었다. 1990년대에 학창시절을 보냈다면 쉽게 공감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