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리콜라주 인 더 무비] 넷플릭스 ‘연니버스’ <정이> (2)
최근 제작 정신 전송 관련 콘텐츠,
기독교 영혼 및 내세 이해와 배치
영혼, 고유 존재와 인격 지탱 근거
원본과 복제본 정신, 완전히 달라
이번 주 박욱주 박사님의 ‘브리콜라주 인 더 무비’에서는 지난 주에 이어 <부산행>, <지옥> 연상호 감독의 넷플릭스 SF영화 <정이>를 분석합니다. 배우 故 강수연(윤서현)의 마지막 필모그래피가 된 이 영화에는 배우 김현주(윤정이)와 류경수(상훈) 등이 출연합니다. 아주 조금의 스포일러가 들어 있습니다. -편집자 주
◈정신 전송 서사의 범람: <정이>에 묘사된 정신 전송 기술과 새로운 형태의 사후 존재
넷플릭스 오리지널 영화 <정이>는 마인드 트랜스퍼, 즉 정신 전송 기술로 죽은 어머니의 인격을 재현하려는 한 컴퓨터 공학자의 이야기를 전달하고 있다.
최근 대중문화계에서 정신 전송 기술과 관련된 서사는 워낙 자주 등장해서, 이제 그리 참신하게 여겨지지도 않는다. 이런 동향은 그만큼 최근 영화, 드라마 제작자, 각본가, 감독들, 그리고 영화를 즐기는 대중이 이런 류의 서사를 선호하고 있다는 것을 말해준다.
인공지능 기술을 활용한 정신 전송 및 복제에 관련된 서사를 전달하는 작품은 전부 나열하기 힘들만큼 그 수가 많다. <공각기동대>, <채피>, <웨스트월드>, <얼터드 카본>, <레플리카>, <블랙 미러> 시리즈의 에피소드인 <블랙 뮤지엄> 등이 대표적이다.
그 외에 인공지능 기술과 무관하게 정신 전송(혹은 정신 이식)과 관련된 서사를 전달하는 작품도 있다. 뇌이식 수술을 소재로 삼는 영화 <겟 아웃>을 예로 들 수 있다.
이처럼 정신 전송이라는 소재가 여러 작품에 반복적으로 등장하는 것은 다음 두 가지 사실을 시사한다. 첫째, 이 소재가 서구 대중 인간 이해와 상상력에 어느 정도 부합해 그들에게 익숙하게 받아들여진다는 점이다. 둘째로는 과학기술에 의해 사람의 인격이 보존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줘 기독교의 영혼과 내세 개념을 대체하려는 의도가 반영돼 있다는 점이다.
한 사람의 인격이 죽은 다음에도 보존돼 다른 몸으로 이식된다는 사상은 서구 대중에게 익숙하게 다가온다. 서구 철학 기반을 다진 소크라테스와 플라톤이 환생 이론을 굳게 고수했기 때문이다.
물론 플라톤은 인간이 이 땅에 환생한 후 전생을 기억하지는 못한다고 여겼지만, 몸이 죽고 영혼이 해방되어 다시 이데아의 세계로 돌아가면 그 이전 모든 생애를 기억할 수 있다고 보았다.
이렇게 한 영혼이 존속하면서 순차적으로 다른 몸에 깃든다는 믿음은 4-5세기경 기독교 신학자들에 의해, 특히 어거스틴에 의해 맹렬한 지탄을 받았다. 그래서 기독교계에서는 전통적으로 환생 이론을 이교적 혹은 이단적이라고 판정했다. 하지만 플라톤 환생 이론의 잔재가 영지주의 등에 남아, 음지에서 계속 전해져 내려왔다.
오늘날 서구 대중문화 창작자들이 인공지능 기술로부터 정신 전송 기술을 연상하는 것은 이런 철학사적 배경을 갖고 있다. 고대 서구 사람들이 종교와 철학의 힘을 빌려 신비로운 방식으로 보다 젊고 건강하고 온전한 몸으로 갈아타려는 욕망을 표출했다면, 현대 서구 대중은 빠른 속도로 발전하고 있는 과학기술의 힘을 빌려 정신을 옮기고 보존하기를 꿈꾼다.
물론 정신 전송 기술은 아직 상상 속에만 존재하고 있다. 기술적으로 이 상상을 어떻게 실현시킬 것인지, 그 누구도 감조차 잡지 못하고 있다. 그렇지만 대중문화 콘텐츠들은 한발 앞서나가 이 기술이 현실화된 상황을 상상하고 정신의 보존과 이식이라는 바람을 대중에게 심어주고 있다.
◈정신 전송 서사의 맹점: 과학주의에 경도된 그릇된 인간 이해
이런 바람은 플라톤 철학의 환생 이론과 마찬가지로 기독교 신앙과 분명하게 대치된다. 기독교적 관점으로 볼 때, 일단 원래 몸이 죽으면 영혼도 몸에서 떠나가게 된다. 그러므로 아무리 생전의 인격이나 기억을 기술적으로 잘 패턴화, 디지털화해 보존하고 재현한다 하더라도 그것은 원래 영혼에 담긴 인격이 아니라 복제품에 불과하다.
그런데 정신 전송 기술을 소재로 삼는 대중문화 작품 대다수는 복제된 정신을 마치 정신 원본을 그대로 옮긴 것처럼 묘사한다. <공각기동대>만 보더라도 작품 초반에는 인간으로부터 복제된 정신을 가진 휴머노이드가 자신의 정체성에 혼란을 느끼지만, 작품 마지막에는 자신을 복제품이 아닌 고유한 정신으로 인정하면서 결말을 맺는다.
이런 흐름은 이후 정신 전송을 소재로 삼는 작품들의 서사 공식으로 자리잡게 된다. <채피>, <웨스트월드>, <얼터드 카본>, <레플리카> 모두 결말부에서 복제, 이식된 정신을 원본과 같은 격을 가진 인격으로 인정하게 된다.
영화 <정이>도 비슷한 서사 공식을 따른다. 작품 중반까지 휴머노이드에 복제된 어머니 윤정이(김현주 분)의 정신은 단지 시뮬레이션에 불과한 것으로 묘사된다.
하지만 마지막 결말 장면에서 복제된 정신을 가진 휴머노이드는 정이의 딸 윤서현(강수연 분)을 알아보고 원래 어머니의 인격이 돌아온 것처럼 행동한다.
이처럼 근래 제작되고 있는 정신 전송 관련 영화와 드라마는 모두 다른 몸(혹은 로봇)에 장착된 정신의 복사판을 원래 정신을 그대로 이식한 것처럼 묘사한다. 이런 서사는 기독교의 영혼 및 내세이해에 크게 대치되는 생각을 반영하고 있다.
전통적으로 교회가 가르친 영혼이라는 것은 따지고 보면 인간 뇌신경계 속 전기, 화학신호에 불과하며, 이 신호를 그대로 본따 패턴화할 수 있다면 그것이 곧 불사(不死)의 삶이라는 생각이 <정이>를 비롯한 정신 전송 소재 작품의 서사에 함축되어 있다.
이런 생각은 영혼을 단순히 뇌신경계의 물리적 작용 이상의 것, 즉 하나님의 생기(生氣)로 믿는 기독교 신앙과는 상충된다.
기독교 신앙의 관점에서 영혼은 각 사람의 고유한 존재와 인격을 지탱하는 근거로, 결코 복제될 수 없다. 그러나 최근 정신 전송을 다루는 대중문화 콘텐츠는 이러한 믿음에 정면 대치되는 메시지를 대중에게 전달하는 데 열중한다.
인공지능 기술로 복제된 정신이 곧 원본의 존속이라는 생각은 단지 기독교 신앙의 관점에서뿐 아니라 현대 실존철학과 포스트모던 인간 이해 관점으로 보더라도 적절하지 않다.
각 개인의 삶의 고유성과 대체불가능성을 주장하는 실존철학, 그리고 이 실존철학적 신념에 기반해 타자성과 다양성을 존중하는 포스트모던 인간관은 애초 죽음 너머 인간 인격의 존속이라는 생각을 부정한다.
게다가 실존철학과 포스트모더니즘은 인격이 단지 신체의 물리적 작용으로만 이루어진 폐쇄된 의식이 아니라, 세계 및 타인과의 관계로 이루어진 네트워크의 총체라고 믿는다. 다시 말해 한 개인에게 걸려 있는 여러 관계의 그물망이 그 사람의 인격을 다채롭게 구성하고 있다는 것이다.
만일 그렇다면 정신 전송 기술이라는 것이 혹 가능해진다고 할 때, 원본의 정신이 원래 신체를 통해 맺고 있던 세계 및 타인과의 관계는 복제된 정신이 새롭게 맺는 주위 세계와의 관계와 그 본모습이 크게 달라지므로, 원본의 정신과 복제된 정신은 결국 서로 완전히 다른 인격으로 간주되어야 한다.
이처럼 <정이>를 비롯해 근래 자주 발표되는 정신 전송 서사 작품들 속에 담긴 메시지, 즉 기술에 힘입어 복제된 정신이 진화를 통해 원래의 인격과 정신을 세상에 복귀시킨다는 메시지는 기독교적으로 보든 아니면 현대철학의 관점으로 보든, 어느 편으로도 적실하지 않은 과학만능주의적 공상에 불과한 것으로 판명된다. <계속>
박욱주 박사(연세대 연합신학대학원 겸임교수)
연세대학교에서 신학을 전공했으며, 동 대학원에서 조직신학 석사 학위(Th.M.)와 종교철학 박사 학위(Ph.D.)를, 침례신학대학교에서 목회신학 박사(교회사) 학위(Th.D.)를 받았다. 현재 서울에서 목회자로 섬기는 가운데 연세대 연합신학대학원 겸임교수로 재직하고 있으며, 기독교와 문화의 관계를 신학사 및 철학사의 맥락 안에서 조명하는 강의를 하는 중이다.
필자는 오늘날 포스트모던 문화가 일상이 된 현실에서 교회가 보존해온 복음의 역사적 유산들을 현실적 삶의 경험 속에서 현상학과 해석학의 관점으로 재평가하고, 이로부터 적실한 기독교적 존재 이해를 획득하려는 연구에 전념하고 있다.
최근 집필한 논문으로는 ‘종교경험의 가능근거인 표상을 향한 정향성(Conversio ad Phantasma) 연구’, ‘상상력, 다의성, 그리스도교 신앙’, ‘선험적 상상력과 그리스도교 신앙’, ‘그리스도교적 삶의 경험과 케리그마에 대한 후설-하이데거의 현상학적 이해방법’ 등이 있다.
브리콜라주 인 더 무비(Bricolage in the Movie)란
브리콜라주(bricolage)란 프랑스어로 ‘여러가지 일에 손대기’라는 의미를 갖고 있다. 이 용어는 특정한 예술기법을 가리키는 용어로 자주 사용된다.
브리콜라주 기법의 쉬운 예를 들어보자. 내가 중·고등학교에 다니던 학창시절에는 두꺼운 골판지로 필통을 직접 만든 뒤, 그 위에 각자의 관심사를 이루는 온갖 조각 사진들(날렵한 스포츠카, 미인 여배우, 스타 스포츠 선수 등)을 덧붙여 사용하는 유행이 있었다. 1990년대에 학창시절을 보냈다면 쉽게 공감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