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효상 칼럼] 미워하는 미워하는 미워하는 마음 없이…
살다 보니 원하든, 원치 않든 나를 미워하는 사람들이 생긴다. 우리는 원하든 원치 않든 누군가에게 미움을 받고 산다. 어느 때엔 명백한 이유로, 어느 때엔 뚜렷한 이유도 없이. 물론 모든 사람에게 사랑받을 수 없다는 것을 머리로는 알지만, 마음으로 받아들이기는 참 힘들다.
다른 사람이 나를 미워하는 이유는 대체로 수준이 비슷하지 않으면 자연히 의견충돌로 갈등이 생기고, 자신의 의견이 무시당하면 자존심도 상하게 되기 때문이다.
비슷한 취향을 가진 사람들은 상대의 행동을 더 쉽게 예측할 수 있어 부담이 덜하다. 상대가 어떻게 나올지 도무지 종잡을 수 없을 때, 우리는 스트레스를 받는다. 나를 미워하는 사람도 이유가 있겠지만, 나의 편견으로 상대방을 적으로 만들지 않도록 해야 한다.
아이들이 가장 싫어하는 말은 부모들이 가장 많이 하는 말이다. 부모가 많이 쓰는 말일수록 아이들에게는 꼭 필요하며 정말 옳은 말인데도 말이다.
옳은 말인 줄 알면서도 아이들이 거부감을 느끼는 것은 부모가 아이의 입장이나 처지를 이해하고, 감정을 인정해주는 공감 능력이 결여되어서다. 아무리 좋은 말이라도 공감 능력이 없으면 아이들에게는 간섭으로 들릴 뿐이다. 옳은 말 하는 사람보다 이해해주는 사람이 좋은 것이 인지상정(人之常情)이다.
자기주장을 똑 떨어지게 하지는 않지만 내 입장을 잘 이해해주는 사람에게는 시기나 시비할 필요도 없으며 부담을 느끼지 않는다. 존경받는 어른이나 훌륭한 부모는 상대 입장이나 처지를 받아들이는 수용성(受容性), 즉 공감 능력이 남다르다는 점이 공통점이다.
자신의 의견이나 부탁을 들어주지 않는다고 비난하고 공격받을 때가 있다. 여기에 맞상대하면 이전투구(泥田鬪狗)가 된다. 우리는 자신의 말과 생각은 늘 진실이라고 습관적으로 생각해온 것을 언제까지나 지키고 싶어하며, 그 신념에 반대하는 행동이 나타나면 흥분하고 분개하게 된다. 그리고 어떤 구실로라도 그 믿음을 지키려 한다.
결국 우리의 논쟁은 자신이 생각하는 것들이나 입장을 옹호하기 위한 몸부림일 뿐이다. 상대와 의견 차이가 생기는 상황에서 우리가 제일 먼저 자연적으로 취하는 반응은 우리를 최선이 아닌 최악의 사태로 몰아갈 수도 있다. 그리고 그런 자신의 감정을 조절해야 한다.
상대를 자극하여 화나게 하는 자신이 트러블 메이커(Trouble Maker)인지 피스 메이커(Peace maker)인지를 알면, 자신의 실체를 파악할 수 있다. 한 번 엎질러진 물은 주워담을 수 없듯, 돌이킬 수 없는 관계는 원수나 적이 되지 않도록 강물처럼 흘러가게 두는 것도 한 방법이다.
세월이 가고 나이가 들면 사람이 바뀐다. 욕심은 줄고 생각은 깊어진다. 화려한 것보다는 소박한 삶이 좋고, 향기가 짙은 것보다 은은한 것이 좋다. 매사 복잡한 것보다는 단순한 게 좋아지고, 잘난 사람보다는 편안한 사람이 좋다.
사람들은 끼리끼리 논다. ‘유유상종(類類相從)’이란 말이 있다. 사람들은 비슷한 사람들끼리 어울린다는 말이다. 서로 친하게 지내는 사람들은 알고 보면 성격이나 취향, 생활환경, 버릇, 습관, 수준이나 종교적 신념 등이 일치하는 경우가 많다. 매력적인 사람은 매력적인 사람과 짝이 된다는 것이다.
“짚신도 짝이 있다”는 말처럼, 매력적인 사람만 꼭 짝이 있는 것은 아니다. 매력 없는 사람도 어딘가에 배우자가 있다. 비슷한 수준의 상대를 선택하게 된다. 이런 유사성이 호감도를 유발시키는 이유는 사람들이 자기 의견이나 행동에 같은 수준, 비슷한 사람일수록 자신의 생각을 지지해 주고 맞장구를 쳐주기 때문이다.
하지만 까닭없이 미워하고 미워하는 사람은 어떻게 해야 할까. 사회생활이나 단체생활을 하면서 모든 사람이 나의 의견이나 생각에 전적으로 동의해 줄 것을 기대하는 것은 비현실적이다. 상사가 나를 미워하면 어떻게 해야 할까? 나를 미워하는 사람이 동료나 부하직원이라면 그나마 낫다. 상사라면 우린 어떻게 해야 할까?
그가 나를 미워하는 이유를 정확히 파악해야 한다. 까닭 없이 미워하는 사람이 있다면 자신의 모습을 제3자의 시선으로 바라볼 필요가 있다. 혹시나 내가 민폐 끼치는 행동을 하지는 않았는지. 자신의 단점을 교정하는 것도 좋다.
단체생활이 그렇다. 자기 주장을 잘하는 것과 남의 말을 잘 들어주는 것 중 어떤 것이 더 어려울까? 듣는 것이야 그냥 가만히 있으면 되니, 말을 잘하는 것이 당연히 어렵다. 하지만 실상은 말을 잘하는 것보다 제대로 듣는 것이 훨씬 더 어렵다.
간혹 말이 안되는 소리나 주장을 펼치는 사람이 종종 있다. 상대방의 말을 차분히 경청한다는 것은 소리를 듣는 것뿐 아니라 상대의 내면적인 감정과 비언어적 의사소통 단서들까지 총체적으로 이해하면서 듣는 것이다.
부모와 자녀 사이에도 정당하고 솔직한 의견 차이나 이견이 있을 수 있다. 하지만 우리는 불쾌감을 주지 않으면서 해법의 길을 모색하는 지혜가 있어야 한다. 우리는 모든 문제를 같은 시각으로 바라보지 않고 다양하게 바라봄으로써, 함께 살아갈 수 있는 길과 방법을 배워야 한다.
미워하는 미워하는 미워하는 마음없이, 사람을 진심으로 사랑하려 한다면 마음 문을 열어야 한다. 대화를 통해 먼저 상대의 말에 귀를 기울이고, 틀어진 부분은 무엇인지 살펴야 한다. 틀어진 마음으로 자기 주장만 한다면 관계의 장애물만 생기게 할 뿐이다.
아무리 좋은 친구나 부부도 자기 입장에서 이야기하기에 갈등으로 인해 미워하고 원수가 된다. 사랑 없는 비난은 본인의 의도와 상관없이 상대를 죽인다. 서로의 다른 점과 간격의 차이를 이해하고 수용하고 극복하지 못하면 관계는 엉망이 된다.
대부분은 편견을 갖고 있거나 생각이 한쪽으로 치우쳐 있다. 상대방이 나와 다름을 인정해야 한다. 가치관과 성향이 다르다면, 이해의 징검다리를 만들도록 노력하라. 상대방의 말을 다 들어본 다음 그 사람의 생각 가운데 공감하고 동의할 수 있는 부분들을 찾아보라.
같은 사건이라도 센스있고 현명한 사람이라면 희극이 되게 하고, 사람이 어리석으면 비극을 만들기도 한다. 하지만 이 모든 것이 상호 협력과 조화 내에서 이루어진다. 해결이 문제에 초점을 맞춘다면, 화해는 관계에 초점을 맞춘다. 우리가 화해에 초점을 맞출 때, 문제는 그 중요성을 잃고 무의미하게 사라져 버린다.
미워하고 미워하는 마음이 없다면 나를 슬프게 하는 것은 멀리하고, 나의 기쁨을 나눌 수 있는 공동체는 관계에 달려 있다. 사람은 집단에 속할 수밖에 없는데, 나와 집단이 함께 성장해 나가야 한다. 집단의 역량이 커지면 개인의 역량도 커진다.
그러기에 좋은 집단에 들어가서 성장을 도모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개인의 가치를 실현하기 때문이다. 새로운 모임, 새로운 장소, 새로운 시도들은 삶을 바꿀 수 있는 좋은 기회다. 인생길이 혼자 갈 수 있는 것이 아니라 함께 가야 할 길이다.
사람을 사랑하기에 사람이 보배인 것은 맞지만, 바로 그 사람이 때로는 변화와 성장의 또 다른 독이 되기도 한다. 새로운 사람, 새로운 시각, 새로운 발상이나 상상력을 막는다. 발전과 진보의 장애가 된다. 고슴도치의 경우가 그렇다.
추운 겨울에 너무 추워 보듬고 지내려 하지만 가시로 인하여 서로에게 상처를 주고, 밀착하지만 그럴수록 더 피를 철철 흘리게 하는 결과를 가져온다. 상처의 적정 거리를 찾아내려는 구성원들의 노력이 있어야 하는 이유다. 최적화된 거리찾기가 관계를 오래가게 한다. 그러하기에 힘을 합쳐 더 좋은 집단으로 만들려는 노력이 선행되어야 함께하는 즐거움을 누릴 수 있다.
미워하고 미워하는 마음을 넘어, 관계를 회복해야 할 사람이 있는가? 좋은 인연은 기다림이겠지만, 그렇다고 시간을 따지지도 않는다. 지금 당장 그 사람과 이야기하라. 그리고 전화를 들고 그 과정을 시작하라. 관계를 회복하는 데는 마음을 여는 시간과 노력에 달려 있다.
사람의 마음을 얻는다는 것은 참 어려운 일이다. 모든 사람을 사랑하고 모든 사람에게 인정받으려면 스스로 마음을 열고 한 걸음 한 걸음 더 다가가야 한다. 사람은 누구나 인연이 있다. 모두가 떠날지라도, 나를 찾아오는 사람은 반드시 있다. 만남은 그토록 기다린 인연인데 기왕지사 함께라면 더욱 더 많은 꽃을 피울 수 있다.
‘내가 세상에 나올 때 사랑을 주고 오라는 작은 음성 하나 들었지’로 시작하는 심수봉의 ‘백만송이 장미’라는 노래를 듣는다. ‘미워하는 미워하는 미워하는 마음없이/ 아낌없이 아낌없이 사랑을 주기만 할 때/ 백만송이 백만송이 백만송이 꽃은 피고/ 그립고 아름다운 내 별나라로 갈 수 있다네’라는 가사를 곱씹으며….
이효상 원장
다산문화예술진흥원
작가, 시인, 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