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듭남(regeneration, 重生)’은 사람이 ‘다시 태어나는 것’과 같은 ‘존재의 변환(conversion of existence)’이다. 이는 인격 수양이나 훈련으로 만들어지는 ‘개과천선(改過遷善)’이나 율법주의자들의 자력적인 ‘점진 구원(progressive salvation)’과는 전혀 다른, 근본적인 ‘종자의 변환(conversion of seed)’이다. 그리고 이는 전적으로 하나님의 주권 하에 있다.
이 ‘거듭남’을 사도 요한은 “혈통으로나 육정으로나 사람의 뜻으로 나지 아니하고 오직 ‘하나님께로서 남’(요 1:12-13)”으로, 사도 바울은 “썩을 혈과 육이 썩지 아니할 것을 입음(고전 15:49-53)”으로 의 정의(定意)했다.
따라서 “사람이 물과 성령으로 나지 아니하면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수 없느니라 육으로 난 것은 육이요 성령으로 난 것은 영이니(요 3:5-6)”라는 말은 ‘아담으로부터 난 육(育)의 사람 그대로는 하나님나라에 못 들어 가고 물과 성령으로 거듭나 존재의 변환을 이룬 자만 그 나라에 들어간다’는 말이다.
◈아들로 거듭남
‘거듭남’, 곧 ‘존재의 변환’은 더 정확하게는 ‘죄인에서 하나님 아들로의 변환’이다. ‘물과 성령으로 거듭났다(요 3:5)’는 말은 ‘죄 씻음을 받아 그의 아들의 영(the Spirit of his Son)이 부어졌다(갈 4:6)’는 뜻이다. 그리고 이렇게 하나님의 아들로 거듭난 자가 ‘하나님나라’에 들어간다.
사람들은 대개 ‘하나님 나라’를 부조리(irrationality, 不條理)가 없는 ‘이상적인 통치(perfect rule)가 이뤄지는 나라’ 혹은 그들이 흔히 꿈꾸는 ‘이상향(utopia, 理想鄕)’으로 생각하는데, 사실 ‘하나님 나라’는 하나님의 1인 통치가 이뤄지는 ‘하나님의 왕국(the kingdom of God, 시 104:13; 146:10)’이다.
그리고 그 왕국의 구성원들은 ‘그의 아들들’이며, 하나님은 죄인들을 물과 성령으로 거듭나게 하여 그의 왕국의 아들로 삼으셨다. 성경이 ‘하나님 나라(the kingdom of God)’를 ‘아버지의 나라(Father's kingdom)’, ‘그의 사랑의 아들의 나라(the kingdom of His beloved Son)’으로 지칭한 것도 그 나라가 ‘가족적(familial)’인 것임을 말한 것이다.
“그 때에 의인들은 ‘자기 아버지 나라’에서 해와 같이 빛나리라(마 13:43)”, “적은 무리여 무서워 말라 너희 아버지께서 그 나라를 너희에게 주시기를 기뻐하시느니라(눅 12:32)”, “그가 우리를 흑암의 권세에서 건져내사 그의 사랑의 ‘아들의 나라’로 옮기셨으니(골 1:13)”.
또 ‘하나님 나라’를 ‘상속자(heirs)인 아들’이 받는 ‘유업(inheritance)’으로 표현한 것도 ‘하나님 나라’가 ‘하나님과 그의 아들의 나라’임을 말해 준다. “그러므로 네가 이 후로는 종이 아니요 아들이니 아들이면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유업을 이을 자니라(갈 4:7).”
결론적으로 ‘거듭남’은 ‘하나님 왕국의 상속자인 아들에로의 ’존재적(存在的) 변환’이며, ‘사람이 거듭나지 않으면 하나님 나라에 못 들어 간다’는 말은 ‘죄인에서 하나님의 아들에로의 종자적(種子的) 변환 없인 그가 하나님의 왕국에 못 들어 간다’는 뜻이다.
◈‘거듭남’ 외에 달리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수 있는 길은 없다
‘거듭남으로 하나님 나라에 들어간다’는 것은 ‘그 나라의 입성’이 ‘은사(恩賜)’이고 인간의 노력이나 공로완 무관하다는 뜻이다. 이미 말했듯, 이는 ‘거듭남’이 전적 ‘하나님의 주권’에 속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하나님 나라의 입성’이 ‘은사(恩賜)’임을 무색하게 만드는, 예컨대 ‘합당한 자격’이나 ‘인간의 노력’이 있어야 들어가는 것처럼 서술된 성경 구절들이 있다. 다음 몇 구절이 그 대표적인 것들이다.
“세례 요한의 때부터 지금까지 천국은 침노를 당하나니 침노하는 자는 빼앗느니라(마 11:12)”. 천국을 자기의 용맹과 실력으로 침노하여 빼앗는다는 말이 아니다. ‘천국 입성’을 값없이 주어지는 ‘하나님의 은사’로 알고 ‘믿음으로 그 나라를 침노하여 얻는다’는 뜻이다.
그 적나라한 예가 ‘십자가에 달린 강도’이다. 그는 흉악한 범죄자로 십자가 처형을 받았지만 운명하기 직전 믿음으로 “예수여 당신의 나라에 임하실 때에 나를 생각하소서(눅 23:42)”라며 천국을 침노했고(violer), 예수님으로부터 “오늘 네가 나와 함께 낙원에 있으리라(눅 23:43)”는 ‘천국 입성’의 약속을 받았다.
‘자기 의(義)로 천국에 들어간다’고 믿는 율법주의자들에게 이 강도의 ‘하나님 나라 침노’는 어처구니없는 일이었을 게 분명하다. 이에 반해 그들은 ‘믿음’이 아닌 ‘자기 행위(롬 9:32)’로 천국을 침노했고 그 결과 그들은 천국에 들어가질 못했다(마 23:13).
“천국은 마치 밭에 감추인 보화와 같으니 사람이 이를 발견한 후 숨겨 두고 기뻐하여 돌아가서 자기의 소유를 다 팔아 그 밭을 샀느니라(마 13:44)”. 마치 ‘천국은 대가를 지불하여 얻는다’는 말처럼 들리나 그렇지 않다.
‘자기의 소유를 다 팔았다’는 말은 ‘사전(원인)적 의미’보다는 ‘사후(결과)적 의미’이다. 곧 ‘은사로 얻은 천국을 자기의 전(全) 소유보다 낫게 여긴다’는 뜻이다. 다시 말하면 ‘믿음으로 천국을 소유한 사람’이 그것(천국)을 자신의 전 재산보다 소중히 여기고, 그 나라에 헌신하며 그 나라에 보물 쌓는 일에 몰두한다는 말이다.
유사한 어법이 마태복음 5장 39-44절에도 나타난다. “네 오른편 뺨을 치거든 왼편도 돌려 대며 너를 송사하여 속옷을 가지고자 하는 자에게 겉옷까지도 가지게 하며… 너로 억지로 오리를 가게 하거든 그 사람과 십리를 동행하고 네게 구하는 자에게 주며 네게 꾸고자 하는 자에게 거절하지 말라… 너희 원수를 사랑하며 너희를 핍박하는 자를 위하여 기도하라 이같이 한즉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의 아들이 되리니”.
이는 ‘앞부분의 선행(善行)이 있어야 아버지의 아들이 된다’는 ‘사전(원인)적 의미’가 아닌, ‘그 선행들이 있으므로 아버지의 아들답게 된다’는 ‘사후(결과)적’ 의미이다. 곧 그들이 그런 선행(善行)들을 행함으로 ‘아버지의 아들답게 된다’는 말이다.
“불의한 자가 하나님의 나라를 유업으로 받지 못할 줄을 알지 못하느냐… 음행하는 자나 우상 숭배하는 자나 간음하는 자나 탐색하는 자나 남색하는 자나 도적이나 탐욕을 부리는 자나 술 취하는 자나 모욕하는 자나 속여 빼앗는 자들은 하나님의 나라를 유업으로 받지 못하리라 너희 중에 이와 같은 자들이 있더니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과 우리 하나님의 성령 안에서 씻음과 거룩함과 의롭다 하심을 받았느니라(고전 6:9-11)”.
이 역시 ‘윤리적인 결함이 없는 자가 하나님 나라의 유업을 얻는다’는 말처럼 들리나 전체 문맥을 보면 그렇지 않다. ‘열거된 죄들’이 하나님의 나라를 유업으로 받게 하지 못하지만(사실 모든 죄는 하나님의 유업을 받지 못하게 한다), 그들이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과 성령 안에서 씻음과 거룩함과 의롭다 하심’을 받아 하나님의 유업에 참여할 수 있게 했다는 말이다.
‘하나님 나라’가 ‘은사’임을 시사하는 ‘유업(inheritance)’이라는 단어가 이를 더욱 확실시 해준다. 결론적으로 이 말씀은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과 성령 안에서 씻음’을 받았으니 이젠 다시 그런 죄들에 연루되지 말라는 뜻이다.
예수님이 ‘간음 중에 붙들린 여자’를 용서하시면서, “나도 너를 정죄하지 아니하노니 가서 다시는 죄를 범치 말라(요 8:11)고 하신 말씀과 같은 뜻일 게다. 곧 ‘용서를 받기 위해’ 죄를 범치 않는 것이 아니라 ‘용서받았기에’ 죄를 범치 않는다는 뜻이다. ‘성화’가 ‘칭의’의 조건이 아닌 그것의 결과물임을 확증해 주는 대목이다. 할렐루야!
이경섭 목사(인천반석교회, 개혁신학포럼 https://blog.naver.com/PostList.nhn?blogId=byterian ) 저·역서: <이신칭의, 값싼 은혜가 아닙니다(CLC)>, <개혁주의 신학과 신앙(CLC)>, <개혁주의 영성체험(도서출판 예루살렘)>, <현대 칭의론 논쟁(CLC, 공저)>, <개혁주의 교육학(CLC)>, <신학의 역사(CLC)>, <기독교신학 묵상집(CLC, 근간)> 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