넷플릭스 <정이>, 기독교의 ‘영혼’에 도전하는 문제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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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리콜라주 인 더 무비] ‘연니버스’ <정이> (3)

연상호 감독 식 트랜스휴머니즘,
기독교적 인간 이해 해체 시도해
인공지능 발전 더해 의존할수록
기독교 세계관은 설 자리 잃을 것

번 주 박욱주 박사님의 ‘브리콜라주 인 더 무비’에서는 지난 주에 이어 <부산행>, <지옥> 연상호 감독의 넷플릭스 SF영화 <정이>를 분석합니다. 배우 故 강수연(윤서현)의 마지막 필모그래피가 된 이 영화에는 배우 김현주(윤정이)와 류경수(상훈) 등이 출연합니다. 아주 조금의 스포일러가 들어 있습니다. -편집자 주

▲인공지능 휴머노이드와 정신 전송 기술을 소재로 삼는 영화, &lt;정이&gt;.

▲인공지능 휴머노이드와 정신 전송 기술을 소재로 삼는 영화, <정이>.

◈정신전송과 신토: <공각기동대>에 표현된 오시이 마모루 감독의 일본식 영혼 이해

넷플릭스 오리지널 영화 <정이>에 등장하는 정신전송 기술에 대한 묘사, 그리고 전송된 정신이 원본의 재림이거나 원본과 동격의 정신체라는 메시지는 서구 대중문화계에서 플라톤 철학의 환생론을 계승하지만, 동양 대중문화계에서는 다른 한 가지 사상을 추가로 반영하고 있다. 바로 신토의 정령신앙에 깊게 영향받은 일본 불교의 윤회론이다.

2000년대 이후 세계 대중문화계에 정신전송 기술이라는 소재를 크게 유행시킨 작품은 일본에서 나왔다. 바로 오시이 마모루 감독의 <공각기동대> 애니메이션이다. 이 작품은 시로 마사무네의 원작 만화를 애니메이션으로 제작한 작품으로, <패트레이버> OVA 시리즈 등으로 일본 내에서 주로 명성을 쌓던 오시이 감독을 전 세계에 알린 작품이다.

특히 <매트릭스> 시리즈 감독이었던 워쇼스키 형제가 <공각기동대>의 ‘의체화(정신 복제 및 전송)’ 기술이라는 설정에 매료되어 <매트릭스>의 가상공간 속 캐릭터 설정에 적용한 일화는 영화계에 널리 알려져 있는 일화이다.

<공각기동대> 이전에도 의체화나 정신전송과 비슷한 설정을 가진 영화들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로보캅> 시리즈가 대표적이다. 하지만 복제된 정신을 데이터와 알고리즘 형식으로 전환해 여러 몸으로 옮겨탈 수 있게 만든다는 설정에 있어서는 <공각기동대>의 영향력을 무시할 수가 없다.

오시이 감독은 고등학생 시절이던 1968년 일본의 좌파 공산주의 학생운동 조직 전공투(全共鬪)의 치열한 저항운동에 매료되었던 인물이고, 평생 좌익 공산주의 사상을 고수하며 이를 자신의 작품 속 세계관에 다양한 방식으로 반영한 인물이다.

<공각기동대>도 마찬가지다. 이 작품 속에 투영된 오시이 감독의 인간 이해를 들여다보면, 일본의 전통적 영혼 이해와 유물론적 인간 이해가 절묘하게 혼합되어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우선 일본의 전통적 인간 이해란 기본적으로 신토의 정령사상에 바탕을 둔 불교 윤회론이다. 일본 정령사상은 그리스 고대 종교의 물활론(hylozoism)과 유사한 점이 많다. 기본적으로 모든 만물에 영혼(정령)이 깃들어 있다는 믿음을 중심에 둔다. 길가에 풀 한 포기, 돌멩이 하나에도 정령이 깃들어 있고, 심지어 인간이 만든 도구들에도 정령이 깃든다고 믿는다.

그러나 고대 그리스 물활론과 일본 신토의 정령 사상은 인간의 영혼의 위치를 놓고 확연한 견해 차를 보인다. 서구의 물활론은 확연하게 인간중심적이다. 인간의 영혼과 다른 사물의 영혼 사이의 존재적 격차를 수긍하고 인간의 영혼을 우위에 둔다.

반면 신토의 정령사상은 중국 도교의 기(氣) 사상과 유사하게 인간의 영혼이든 자연 만물의 영혼이든, 기본적으로는 우열이 없다고 믿는다. 정령은 단지 그것이 깃드는 신체의 특성에 맞춰 다양한 모습으로 나타날 뿐, 기본적으로는 하나의 동일한 물질적 기운이라는 것이 신토의 일반적인 정령에 대한 인식이라고 볼 수 있다.

그리고 이런 사상은 불교의 만물일여(萬物一如) 사상과 함께 맞물려 일본인들의 전통적인 인간과 자연의 이해를 형성하였다.

▲오시이 마모루의 대표작 &lt;공각기동대&gt;의 정신전송 장면.

▲오시이 마모루의 대표작 <공각기동대>의 정신전송 장면.

◈정신전송과 유물론: 오시이 감독의 영혼 이해를 계승한 연상호식 트랜스휴머니즘

이런 일본의 전통적 정령 이해에 따르면 로봇은 당연하게도 인간과 동격의 정신을 가질 수 있다. 인간 신체보다 더 탁월한 기능을 가진 휴머노이드 안에 정령이 깃들면, 인간 수준 혹은 그 이상의 정신이 발생되리라는 생각이 일본인들의 로봇에 대한 태도를 결정한다.

일본이 로봇 메카닉 애니메이션에 열광하고, 실제로도 로보틱스나 인공지능 기술 분야의 선진국이 될 수 있었던 데는 이런 사상적 배경이 크게 작용하고 있다.

오시이 감독은 여기에 더해 유물론적 인간관을 추가했다. 정신을 순전히 신경계 내부 물리적 작용의 산물로 보는 물질주의적 견해에 따라, <공각기동대>는 원본인 인간의 정신 패턴을 의체화하여 전기신호 덩어리로 전환된 인격을 원본 인격과 동격으로 간주할 뿐 아니라, 그보다 진화된 인격으로 격상시키는 메시지를 전달한다.

영화 <정이>의 정신전송 기술을 살피면서 오시이 감독의 인간 이해를 논하는 이유는, <정이>의 연상호 감독 또한 <공각기동대>에 상당한 영향을 받은 인물이기 때문이다. 애초 <정이>의 포스터부터 <공각기동대> 장면의 오마주인데다, 여러 설정이나 전투 장면 역시 두 작품 사이의 유사성을 확연하게 드러낸다.

연상호 감독은 초등학생 때부터 오시이 감독의 작품을 즐겨봤다고 밝힌 적이 있고, 2017년 오시이 감독이 내한했을 당시 직접 대담 패널로 참가해서 오랜 팬을 자처했다. 그리고 <정이> 발표 후 인터뷰에서도 <공각기동대>를 좋아하는 사이버펑크 작품 중 하나로 지목한 적 있다.

이런 맥락으로 본다면 <정이>의 결말에서 복제된 로봇 인격이 별다른 학습 과정도 없이 주인공 윤서현에게 원래 어머니와 동일한 행동 패턴을 보여주는 장면은 복제된 인공지능과 원본 인격 사이의 동격성, 아니면 더 나아가 동일성을 수긍하는 오시이 식 정신이해를 계승, 반영한 장면이라고 볼 수 있다.

▲오시이 식 정신 이해를 계승한 영화 &lt;정이&gt;.

▲오시이 식 정신 이해를 계승한 영화 <정이>.

기독교적 관점에서, 이런 정신 이해는 결국 성서적 영혼론과는 완전히 상극을 이루는 것이다. 성서의 가르침에 따르면 인간 영혼은 한 사람으로부터 온 인류에게 전해져 내려오는 것으로 특정한 동일성을 갖지만, 각 사람 영혼에 부여된 인격은 절대로 복제 불가능한 고유성을 가지며 각자의 영혼에서 분리될 수도 없다.

이것은 기독교 내세관의 절대적인 선결 조건이다. 인격 혹은 정신은 각자의 영혼과 영원히 함께하기에 믿음과 순종에 따른 은혜와 보상도, 그리고 불신앙과 죄악에 따른 저주와 형벌도 함께 책임지고 함께 감당하기로 되어 있다. 이 영혼과 정신에 대한 이해를 해체하는 것은 곧 기독교 내세관의 해체로 이어진다.

그래서 <공각기동대>와 <정이>가 전달하는 정신 복제 및 신체 이동 가능성에 대한 메시지는 단순히 기독교의 인간 이해에 반대될 뿐 아니라, 궁극적으로는 내세에서의 은혜와 형벌에 대한 믿음마저 반박하는 사상이라 볼 수 있다.

이것은 정신전송 기술에 의한 정신의 재생 혹은 부활이라는 메시지가 정치적 올바름(PC)을 내세우는 자들이 주장하는 삶의 고유성과 자연성, 그리고 차이의 존중이라는 메시지에 위배되는 소재임에도 불구하고 각종 대중문화 콘텐츠에 끊임없이 등장하는 이유일 것이다.

정치적 올바름을 지지하는 근래 대중문화계 주류 입장에서는 정신전송 관련 영화나 드라마가 전하는 메시지가 탐탁치 않겠지만, 전통 기독교 영혼론과 인간 이해를 해체하는 데 도움이 되기에, 그리고 상업적 이익을 얻기 좋은 소재이기에 대중문화계 내에 널리 퍼지도록 용인하는 것이다.

결언하자면, 영화 <정이>는 인공지능 기술에 대한 과도한 기대감과 그로부터 파생되는 여러 과학주의적 공상들이 기독교 영혼론에 도전하는 여러 양상들을 집약해 놓은 문제작이라 볼 수 있다.

향후 일상에서 인공지능 기술이 더욱 발전하고 이 기술에 의존하는 정도가 커질수록, 대중문화계 내부에서 전통적인 기독교적 인간 이해는 점점 더 설 자리를 잃어갈 것이다.

▲&lt;공각기동대&gt;와 &lt;정이&gt; 속 정신전송 기술과 관련된 메시지는 기독교의 영혼론과 내세에 대한 믿음을 반박하고 해체한다.

▲<공각기동대>와 <정이> 속 정신전송 기술과 관련된 메시지는 기독교의 영혼론과 내세에 대한 믿음을 반박하고 해체한다.

박욱주 박사(연세대 연합신학대학원 겸임교수)

연세대학교에서 신학을 전공했으며, 동 대학원에서 조직신학 석사 학위(Th.M.)와 종교철학 박사 학위(Ph.D.)를, 침례신학대학교에서 목회신학 박사(교회사) 학위(Th.D.)를 받았다. 현재 서울에서 목회자로 섬기는 가운데 연세대 연합신학대학원 겸임교수로 재직하고 있으며, 기독교와 문화의 관계를 신학사 및 철학사의 맥락 안에서 조명하는 강의를 하는 중이다.

필자는 오늘날 포스트모던 문화가 일상이 된 현실에서 교회가 보존해온 복음의 역사적 유산들을 현실적 삶의 경험 속에서 현상학과 해석학의 관점으로 재평가하고, 이로부터 적실한 기독교적 존재 이해를 획득하려는 연구에 전념하고 있다.

최근 집필한 논문으로는 ‘종교경험의 가능근거인 표상을 향한 정향성(Conversio ad Phantasma) 연구’, ‘상상력, 다의성, 그리스도교 신앙’, ‘선험적 상상력과 그리스도교 신앙’, ‘그리스도교적 삶의 경험과 케리그마에 대한 후설-하이데거의 현상학적 이해방법’ 등이 있다.

브리콜라주 인 더 무비(Bricolage in the Movie)란

브리콜라주(bricolage)란 프랑스어로 ‘여러가지 일에 손대기’라는 의미를 갖고 있다. 이 용어는 특정한 예술기법을 가리키는 용어로 자주 사용된다.

브리콜라주 기법의 쉬운 예를 들어보자. 내가 중·고등학교에 다니던 학창시절에는 두꺼운 골판지로 필통을 직접 만든 뒤, 그 위에 각자의 관심사를 이루는 온갖 조각 사진들(날렵한 스포츠카, 미인 여배우, 스타 스포츠 선수 등)을 덧붙여 사용하는 유행이 있었다. 1990년대에 학창시절을 보냈다면 쉽게 공감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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