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코의 주장에 대해 당연히 반론과 비판도 많다. 이들을 요약해 보면 다음과 같다:
우선 푸코의 ‘계보학적’ 연구방법에 대한 비판이 있다. 즉 그가 연구에 인용한 역사적 사료가 선택적이었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푸코는 감옥과 정신병원을 주로 연구하였고, 다른 형태의 조직(예를 들어 공장)은 무시하였다. 푸코의 계보학적 ‘지식의 고고학’은 과거를 유려하게 재기술해주고, 또한 그의 방대한 자료와 섬세한 분석에서 이끌어 낸 이론은 매우 과학적이라고 생각되기 쉽지만, 지적으로 정직하지 못하며 경험적(empirically)으로 신뢰하기 어렵다.
그는 역사를 담론의 인위적 공식화로 고착시켰다. 그는 복잡한 사회발전을 과도히 단순화하였고, 빈약한 증거로 너무 일반화하였다. 푸코의 이론은 막스 베버나 Norbert Elias 같은 사회과학의 이론을 고려하지 않았다는 점에서 ‘프랑스 중심주의’(francocentrism)라고도 한다. 그리고 무엇보다 자유민주주의의 위대한 성취를 과소평가하였다.
푸코가 말하는 권력의 개념은 여전히 ‘미분화되어 있고’, ‘훈육사회’(disciplinary society) 개념은 권위와 권력 사이, 또는 폭력과 정당성 사이를 적절히 분별하지 않고 있다. 또한 인간관계에서 권력이 없을 수 없으므로, 그가 말하는 자유는 도피하는 것이거나 또는 비현실적 이상적(ideal)이 될 수 있다. 그런 의미의 자유는 진실하지 않다.
실제적으로 그의 숙고는 지리멸렬하다는 평가도 받는다. 즉 이론에 내적 모순들이 발견된다. 푸코의 사고방식이 포스트모더니즘의 ‘신비적 규범주의’(crypto-normative)라고 부르는 암묵적 규범(an implicit norm)에 기초한다고 보는데, 이는 결과적으로 그가 반대하고자 하는 계몽의 원칙에 의존하는 것이다. 특히 그는 자유와 정의에 대한 보편적 규범을 공격하고 해체하려 하지만, 그 규범들을 암묵적으로 인정하고 있다. 푸코는 진리주장(truth-claims)의 가면을 벗기려 하였지만, 스스로의 작업을 통해 그 자신의 진리주장을 하고 있다. 그는 막강한 구조적 힘에 대해 저항하지 못한 채 피해받는 개인을 제시하고 있지만, 동시에 (푸코 자신처럼) 개인의 자유와 자기-창조는 실제 가능하다는 것을 암시하고 있다.
가장 뚜렷한 비판은 푸코는 자신이 맹렬하게 비판하는 사회정치적 문제들에 대해 대안이 될 긍정적 해결방법을 제안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규범의 해체가 긍정적 대안이 될 수 없다. 그는 지식을 해체할 뿐이지 지식의 ‘새로운’ 이론을 적절하게 형성하고 제시해 주지 않는다. 푸코의 철학이 기존 규범과 윤리를 공격한다는 점에서 대중적 흥미를 불러일으키지만, 그 이상의 큰 반향을 불러일으키지 못하고 있다.
기존 규범을 해체한다는 점에서 그는 비도덕적이다. 푸코 개인의 비도덕성은 오래전부터 정평이 나 있다. 그의 동성애 행위도 문란할 뿐 아니라 가학피학적(도착적)이다. 당연히 그는 일반적 도덕도 무시하였다. 그래서인지 1971년 푸코와의 한 TV 대담에서 노암 촘스키는 “나는 지금까지 푸코같이 전적으로 비도덕적인 사람을 보지 못했다. 나는 개인적으로 그를 좋아하지만, 그를 이해할 수 없다. 푸코는 다른 종에서 온 것처럼 보인다”고 말했다. 무엇보다 그의 사후에, 생전에는 그의 명성에 의해 은폐되어 왔던 그의 소아동성애 가해자였다는 추문이 폭로되었다. 당연히 그의 이론이 청소년들에게 알려지면 안된다.
필자는 의과학적 사실에 근거하여 반론을 제시하고자 한다. 우선 푸코가 광기(madness)라고 부르는 상태가 돈키호테의 순진한 행동이나 광기어린 시인의 어떤 신비스런 정신상태 같은 것을 말한다면, 이는 실제 뇌의 퇴행성 장애가 동반되는 정신병(psychosis)과 같지 않다. 실제 정신병의 대표격인 조현병(과거 정신분열병)이나 양극성장애(조울정신병)를 가진 환자의 행동은 뇌의 인지적 기능의 부조화와 더불어 망상과 환각 또는 감정적 흥분이 특징이다. 이들 증상들은 자신과 타인에게 해를 끼치며 통제하기 어렵다.
푸코는 19세기 정신의학이 권력이 되어 광기의 사람이나 동성애자를 강제로 감금하였다고 비난하지만, 그 이전 18세기 다수의 정신과의사들이 환자들을 감금상태에서 풀었다는 역사적 사실이 있다. 이후에도 정신의학자들은 끊임없이 강제입원의 관행 같은 치료행위에 대해 비판하는 윤리운동이 있어 왔다. 결정적으로 60년대 인권운동과 더불어 서구에서는 대형 정신병원의 수많은 입원환자들을 퇴원시켜 지역사회로 ‘해방’하였다. 그 결과 거리에 노숙자들이 증가하였고, 그들의 소소한 범죄로 감옥에 가는 바람에 이제는 감옥이 이들로 만원 사태가 되고 있다. 현재 우리나라에서도 강제입원을 규제하는 정신보건법이 제정되어 실행되고 있다. 정신장애 문제는 엄연한 현실이며 낭만적이 아니다.
푸코가 보기에 섹슈얼리티는 사회적으로 구성되는 것(socially constructed)이다. 1973년 정신의학계는, 동성애자들의 인권시위의 압력을 받아 -즉 사회구성적으로- 동성애는 정신장애가 아니라고 결정하였다. 그래도 무언가 부족하다고 보았는지, 1990년대에 동성애가 정상이라는 근거를 유전에서 찾았다. 최근에 이르러 동성애 유전자가 없다는 것이 판명되었는데, 푸코는 이를 몰랐던 것 같다. 생식을 못하게 하는 행동방식이 유전될 수 없는 것이다. 이처럼 사회구성이론은 근본적으로 생물학적 사실을 무시한다는 치명적 약점이 있다.
생물-의학적으로 동성애가 인간 본성(human nature)이 될 수 없다. 성(섹스)의 본질은 정자와 난자의 결합으로 새로운 생명을 잉태하고, 양육하는데 있다. 어린이는 아버지와 어머니의 사랑으로 잉태되고 자라고, 사회화되고 성숙한다. 따라서 동성애는 자연(nature)에서 벗어난 것이며, 사회적 규범에서도 벗어난 것이다. 사회에서 동성간 사랑은 우정, 형제애. 전우애. 등으로 나타난다. 항문성교는 구강성교나 자위처럼 질성교를 대신하는 도착적 쾌락 행위일 뿐이다.
기독교적 시각에서 볼 때, 푸코가 평생 추구한 바는, -그가 어려서 가톨릭 교육을 받았다는 점에서 – 하나님과의 관계를 대신하는 방법을 찾으려는 욕구라는 견해가 있다. 푸코 자신도 자신을 ‘신비가의 한 종류’(a kind of mystic)라 말한 바 있다. 그는 “육욕적 고통의 에로티시즘(사도마조히즘)은 신비적 경험에 근거한 부정적 신학을 가능케 한다”는 말에 충실한 것 같다. 철학자 Roger Scruton은 말히기를, 푸코는 근대 무신론자들 중 광신적 이단자로서, 신의 빈자리에 비이성적인 초자연을 두었다고 비판하였다. 푸코는 자신의 천재적 재능으로 이성/계몽이라는 우상을 파괴하였지만, 그는 결국 자기의 합리화(rationalization) 내지 자기-신격화(self-deification)의 길로 빠진 것 같다. 이는 요즘 동성애자들의 행동방식으로 주목되는 바, 어떤 자기도취적인 자폐증적(autistic) 성향을 나타낸 것 같다. 한 사람의 철학은 그 사람의 인격에 의해 영향받기 마련이며, 인격은 어려서부터의 경험이 축적된 결과이다. (다음 칼럼은 푸코의 개인사)
민성길 한국성과학연구협회 회장(연세의대 명예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