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르게이 선교칼럼] 현장 이야기
모스크바에서 북동쪽으로 500km 정도 올라가면 ‘끼네쉬마(Kineshma)’라는 작은 도시가 나온다. 그 지역 감독(episcope) 안수식이 있어 방문하였다.
감독 안수식이 특별하기에, 많은 목회자들이 동참하였다. 대부분 익숙한 얼굴들이었다. 10시에 예배가 시작되었는데 세 명의 감독 목사들이 나와서 설교를 하니, 안수식을 하기까지 세 시간이 걸렸다. 점심을 간단하게 먹고 나서 축하와 격려의 시간이 계속된다. 참석한 목회자들과 성도들 중 격려의 메시지를 전하고 찬양도 하면서.
필자도 간단한 메시지를 전하였다. 목회자나 성도들이나 ‘직책이나 연륜, 목회 경험에 의지하지 말고’, “너희 진보를 나타내라”는 바울의 말씀으로 ‘나이가 들어도 늘 배우고 확신한 일에 거하라’고 권면하였다. 그리고 실례를 들었다.
“공적 집회에 대표 기도자가 나와 기도하는데, 창세기부터 시작하여 아브라함 이삭 야곱으로 이어져 긴 시간 기도를 마치고 나니 교인들이 모두 가버리고 없었다. 강단 뒤 목사님께 교인들이 어디 갔냐고 물으니, 목사님이 화가 나서 대답하기를, 아브라함 때 모두 가버렸다”고 했더니, 모두 ‘와~’ 하면서 웃는다.
당신들은 참으로 인내가 대단한 사람들이라고 칭찬해 주었다. 모든 순서를 공식적으로 마치니 오후 5시가 되었다. 7시간을 예배당에 앉아서 참석하게 된 것이다.
그래도 이번에는 좀 빨리 끝났다는 생각이 든다. 지난 번 다른 지역에서 교회 기념일 행사를 하는데, 그 때는 오전 10시에 시작하여 저녁 7시에 마쳤다. 함께 모시고 왔던 나이 드신 목사님은 언어를 알아듣지 못하여 너무나 괴로워하시면서 “이 목사, 예배하면서 이렇게 미칠 것 같은 심정은 처음이다”라고 하시는 것이다. ㅎㅎ 그래서 결국 중간에 쉬는 방으로 안내해드린 일이 있었다.
필자는 예배 중에 다른 성도들의 모습을 살펴보았다. 이렇게 긴 시간 동안 몇 번의 설교를 들으면서 어떤 반응으로 참여하는지? 그런데 놀랍게도 모두 한결같이 경청하고 또 노트에 기록하고 있지 않는가? 어디를 가나 성도들은 노트를 하면서 말씀을 듣는다.
어떻게 이럴 수 있나? 아직 자유롭게 찬양하고 예배할 수 있음에 감사하는 것인가? 공산당 시절 집단 교육을 받았던 것이 습관이 되어서인가 하는 생각도 해본다. 아이들이 졸면서 몸서리칠 만한데도, 엄마 옆에서 멍하니 참고 견디는 것을 보니 참 대단한 일이라 여겨진다. 저렇게 습관이 되는 것인가?
한국 같으면 어떨까? 어림도 없지 않을까 생각이 든다. 짜여진 시간의 틀에 매여 정한 시간을 넘어서면 대부분 일어서서 화를 내면서 가지 않았을까 생각도 든다.
이곳 신앙인들의 마음속에 신앙 공동체를 매우 귀하게 여기고 있는 것을 보게 된다. 아직 자본주의 물결이 약해서인가? 아마 그럴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런데 말씀에 목말라하고, 전심으로 찬양하고 간절함으로 기도하는 순수한 모습을 보면 얼마나 감사한지 모른다.
정성을 다해 식사를 준비하고 나누고 섬기는 모습을 보면, 과거 한국교회 모습도 생각이 난다. 서로 돕고 협력하는 모습이 너무 아름답다. 이런 것이 살아가는 모습 아닌가? 끝없이 대화하면서 어려운 이야기를 들으면 위로해 주면서 즉시 서로 붙잡고 기도해주는 모습이 참 아름답다. 기쁘고 즐거운 시간이었다.
안수식을 마치고 이리저리 돌아 집에 오니 모두 1,300km를 달리게 되었다. 넉넉 잡아 20시간 정도 이틀 간에 걸쳐 혼자서 운전을 하게 된 것이다. 이것은 보통 한 달에 두세번 있는 일상이다.
눈길을 달리다 보면, 장거리 운행하는 트럭이 중앙선을 넘나드는 경우가 있다. 가슴 철렁하는 순간이다. 거대한 트럭이 배를 드러내고 길옆 도랑에 넘어져 뒤집혀 있는 것을 쉽게 보는데, 갈 때도 올 때도 이러한 장면을 목격한다. 주님의 인도하심을 따라, ‘오늘은 이곳 내일은 저곳’ 찬양이 저절로 흘러나온다.
세르게이, 모스크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