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선아 사랑해>, <꽤 괜찮은 해피엔딩> 등을 쓴 이지선 교수가 22일 tvN 예능 ‘유 퀴즈 온 더 블록’의 ‘lucky, happy, enjoy’ 특집에 출연했다.
이지선 교수는 23세 대학생 때 불의의 교통사고로 전신 55% 부위에 화상을 입었고, 재학 중이던 이화여자대학교를 떠났다. 그리고 최근 교수로 부임해 23년 만에 모교로 돌아왔다.
“23세에 학교를 떠났는데 23년 만에 교수로 돌아왔다”며 인사한 이 교수는, 사고 당시에 대해 “유아교육과를 다니고 있었고, 졸업을 앞둔 상황이어서 발달이 늦은 아동을 위한 치료를 공부하며 대학원을 준비하고 있었다”고 했다.
이 교수는 “학교에서 집으로 돌아가던 길이었다. 친오빠가 옆 학교에 다녀서 오빠의 차를 얻어 타고, 그날도 늘 다니던 길로 가던 중에 신호등이 바뀌어서 오빠도 차를 세웠고 일상적 대화를 하고 있었는데, 뒤에서 음주운전하신 분이 이미 한 번 사고를 내고 도망을 가면서 빠른 속력으로 저희 차를 들이받게 됐고, 6대의 차가 부딪히다가 차에서 불이 나기 시작했다”고 했다.
이 교수는 “불이 제 몸에 먼저 옮겨 붙고, 오빠가 저를 꺼내면서 오빠도 화상을 입었다”고 했다. 조사 결과 사고 당시 가해자는 혈중 알코올 농도 0.35% 만취 상태였던 것으로 드러났다. 이 사고는 당시 뉴스에 보도될 정도로 심각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당시 이 교수의 상태는 죽음을 준비해야 한다고 할 정도였다고 한다. 이 교수는 “저는 사실 기억이 거의 없다. 오빠에게 듣기로는 의사분들이 화상이 문제가 아니라 맥박이 안 잡힌다고, 곧 갈 것 같으니 빨리 작별 인사를 하라고 했다고 한다”고 전했다.
이 교수는 “초반엔 꿈을 꾸고 있다고 생각했다. 의식이 돌아오고 나선 산소호흡기를 끼고 있어 말도 못했다. 이후에 엄마가 사고 상태를 알려 주셨다. 첫 수술은 상한 피부를 걷어내는 수술이었다. 피부를 걷어내니 감각이 살아나며 고통이 어마어마했다. 또 감염되면 안 되니 소독을 받아야 했다. 지옥에서 들릴 법한 소리가 이런 소리일까 그런 시간을 보냈다”고 했다.
이후 머리의 실밥을 뽑기 위해 앉으며 자신의 화상 부위를 보게 됐다는 이 교수는 “태어나서 처음 본 장면이었다. 제 다리에는 살색이라고 부르는 피부가 없는 상태를 보게 됐고, 내가 살 수 없는 상황이구나 그때야 직감했다. 엄마에게 ‘낮에 얘기하다 밤에 갈 수도 있다’고 얘기했는데, 엄마가 제 입에 밥을 밀어 넣으시면서 기도하셨다. 그런 엄마를 보고 그 밥을 받아 먹으며 ‘살아서 나가야겠다, 최선을 다해야겠다, 마음으로 지지 말자’는 생각을 하게 됐다”고 했다.
이날 방송에는 이지선 교수의 가족도 함께 출연했다. 이 교수의 어머니 심정 씨는 “할 수 있는 게 그것(기도)밖에 없었다. 엄마가 낙심한 얼굴을 보이면 안 될 거 같아서 기도가 모든 걸 감추는 역할도 했었다”고 했다.
이 교수는 “이런저런 얘기를 하다가 ‘내 인생이랑 엄마 인생이랑 바꿔줄 수 있냐’고 물었는데, 엄마가 ‘바꿔 줄 수 있으면 천 번이고 만 번이고 바꿔 주겠다’고 했다. 눈물이 나서 더 이상 그 뒤에 말을 못했다”며 “엄마가 중환자실에서부터 ‘괜찮다’고 해서 저는 좀 괜찮은 줄 알았다. 그게 큰 힘이 됐다. 그 뒤 7개월을 병원에 있었는데, 친구들도 찾아올 때마다 문 앞에서 서로 울지 말자고 다짐하고 옛날의 저로 대해줬다. 참 즐거웠다. 웃는 게 고통을 이긴다”고 했다.
또 이 교수는 “중환자실에 들어와서 아버지가 사고 설명을 해주셨다. 보통은 이런 상황이 되면 합의해 달라고 찾아오는데, 아무도 안 온다고 했다. 그때 제가 혹시 찾아오면 용서한다고 말해 달라고 했다. 이미 제게 닥친 고통이 너무 컸기에 누군가를 미워하고 분노하는 감정도 견디기 어려운 것이니, 그것만큼은 피할 수 있도록 신의 배려가 아니었을까 생각한다”고 전했다.
이 교수는 “이후에도 (가해자는) 오지 않았다. 뉴스에 나온대로 성만 알고 있다. 근데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제가 직접 만났다면 잊을 수 있었을까? 저희 엄마도 오빠도 성격이 좀 있다. 아무도 찾아오지 않았었기 때문에 우리가 잊고 살았다. 적어도 그 부분만큼은 잊어버리고 제가 살아남고 회복하는 데 힘을 모을 수 있었던 것 같다”고 했다.
이 교수는 “병원에 있는 동안 수술을 받으면 예전 모습으로 돌아가는 줄 알았다. 저희들이 화상은 몰랐다. 피부는 갖게 되었지만 기대하지 않았던 모습으로 집에 돌아갔고, 또 다른 어려움이 시작됐다. 새로운 저를 받아들이는 과정이 참 힘들었던 것 같다. ‘이거 나 아닌데’ 하면서 제 모습을 잊으려 했는데, 그때 저를 사랑하는 사람들의 눈빛이 보이게 됐다. 너무 달라진 모습인데도 제 피부를 보는게 아니라 내가 원래 사랑한 동생, 내 딸, 내 조카로 봤다. 이 사랑을 저버려산 안 된단 생각을 하게 됐고, 거울 앞에 용기를 내 서게 됐다”고 했다.
이 교수는 “TV에 출연한다 할 때 다들 걱정이 많았다. 실제로 길에 나섰을 때 저를 구경하고, 보고 놀라는 분들, 눈빛들 참 많았다. 제일 듣기 싫었던 소리가 혀 차는 소리였다. 늘 들렸다. TV에서 자세히 보고 길에서 만나는 저를 그냥 지나가 주시길, 내 삶에도 희노애락이 있으니 너무 특별하게 여기지 말아 주시길, 또 저를 보고 갖게된 이해의 폭이 누군가에게 ‘지선 씨처럼 오늘을 잘 살아가구 있구나’ 그런 눈빛으로 바라보길 바라는 마음으로 세상에 나갔다”고 했다.
또 “사고를 당했다고 말할 때마다, 음주운전 교통사고 피해자라고 말하는 것 같았다. 피해자로 살고 싶지 않았고, 돌아보니 마냥 피해자로만 살지 않았다. 잃은 것도 많았지만 얻은 것이 참 많았다. 보이지 않지만 훨씬 중요한 것을 많이 얻게 됐다. 그래거 사고를 만났다고 말했다. 그렇게 말한 순간부터 사고와 나쁜 일과 헤어지기 시작했다. 우리가 불행을 만났을 때 자기 자신에 대해 다시 쓰기 하는 게 필요한 것 같다. 그 다시 쓰기를 할 수 있던 힘은 주변 사람들이 저를 환자, 장애인이 아니라 내가 사랑하는 누군가로 봐 주어서, 그렇게 제가 피해자로 살지 않고 이지선으로 열심히 살아가게 된 것 같다”고 했다.
끝으로 힘든 일을 마주하고 있는 이들에게 “꿈에서조차 일어나지 않길 바라는 일을 마주하더라도 그 일과 헤어질 수 있다. 지금 상황은 암울하고 절망적일지라도 우리 인생이 결코 비극으로 끝나지 않는다. 꾀 괜찮은 해피엔딩을 맞을 수 있다는 기대, 희망으로 오늘 하루를, 또 하루를 살아나가다 보면 분명 그날이 올 것이다. 그 날에 대한 의구심이 드시면 그때 저를 떠올려봐주시면 좋겠다. 끝났다고, 다 망가 진것 같아도 오늘이 있다. 인생이 계획대로 흘러가지 않더라도 인생 꽤 괜찮다는 마음을 가지면 좋겠다”고 했다.